193화 환희, 증오 (2)
* * *
영혼 사냥꾼을 죽이고, 운 좋게 암흑기 1을 획득하면서 기분 좋게 출발한 시작.
강후와 안영호는 그 이후로도 계속 전진하면서, 종종 영혼 사냥꾼을 만났다.
상대하면서 익숙해진 덕분인지, 두 번째부터는 시행착오 없이 착실하게 놈을 분쇄해 나갔다.
그래서 강후는 기본 공격에 계속 암흑기를 담도록 만드는 연습에 매진했고.
안영호는 강후가 알려 준 방법을 따라서, 치유를 활용한 공격을 하는 연습에 집중했다.
당연히 첫술에 배부를 리 없기에, 안영호는 눈물겨울 정도로 실패를 거듭했다.
애초에 강후도 안영호가 단번에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조언을 해 준 것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세상 모든 힐러가 전투 힐러가 되어 있겠지. 전투 힐러가 귀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강후가 믿은 것은 안영호의 재능이었다. 녀석이라면 해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안영호가 자신을 보면서 스킬이 많아도 형님이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강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안영호니까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던전의 첫 번째 구간, 혹은 A구역이라고 부르는 구간을 넘기고.
드디어 B구역에 진입했다.
여기서부턴 안영호가 꼭 필요한 구간으로, 강후가 안영호의 동행을 환영했던 구간이기도 했다.
상시 디버프 활성화 때문이다.
B구역부터는 ‘약탈’이라는 디버프가 활성화되는데, 이 던전의 보스 몬스터가 체력을 계속 빼앗는 구조였다.
단순히 체력을 뺏기는 수준에서 끝났다면, 사실 큰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버티면 되니까.
문제는 시간이 끌릴수록 던전의 끝자락에 있는 보스 몬스터의 상태가 회복된다는 점이다.
즉, 헌터의 생기를 빨아들여 자신의 회복 양분으로 쓰는 것이다.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되는 셈.
그래서 체력을 회복시키는 가운데 빠른 전진이 필요했다. 까다로운 투 트랙이라고 볼 수 있다.
“형님, 제 체력은 걱정 마세요. 형님 체력도 걱정 마시고요. 제가 힐 주유는 정말 잘하거든요.”
약탈 디버프로 체력이 한 번 깎이기가 무섭게 안영호의 힐이 폭발적으로 들어왔다.
안 그래도 그 기운에 놀라 뒤를 돌아보고 있는데, 안영호가 씨익 웃으며 엄지를 치켜들고 있었다.
“치료 속도가 엄청 빠르네.”
“네, 제 나름의 최적화를 끝냈어요. 영업 비밀이긴 한데, 형님한테는 알려드릴게요.”
진실의 천리안 성좌 탓인지, 이 녀석에게는 숨김이라는 선택지가 없다. 항상 직진이다.
강후가 답을 하기 전에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말을 하면, 그리고 녀석이 진실의 천리안을 발동시키고 있으면 절대 거짓을 말할 수 없다.
“알려 주면 나야 고맙지만, 힐러가 될 일도 없는 내게 굳이? 넣어 둬.”
“형님은 제 생명의 은인이시잖아요. 다 알려드릴 수 있어요. 아, 물론 길드 기밀은 빼고요.”
이 역시도 안영호의 진심이다.
다행히 머리에 총 맞은 이상한 생각은 안 해서 다행이다.
형님이니까 길드 기밀도 알려 줄 수 있다는 말을 지껄여댔으면, 반응이 달라졌을 것이다.
“어쨌든 속도가 정말 마음에 드네. 마나 쪽으로 부담은?”
“이 정도는 기별도 안 가요. 마나 쪽으로는 아이템 신경 많이 썼으니까 괜찮습니다.”
“좋아, 그럼 바로 간다. 속도전으로.”
“서포트하겠습니다!”
파앗!
강후가 바로 달려 나갔다.
타락귀는 전방이 아닌 안영호의 근처를 배회하도록 했다.
아주 만약이긴 하지만, 후방에서 망령형 몬스터가 등장할 수도 있어서다.
그렇게 앞으로 달려나가는 강후를 반긴 것은 ‘참살자’라는 이름이 붙은 몬스터 셋이었다.
참살자는 전형적인 흑의 복면인의 모습을 한 녀석들로 가상의 암살자 적수라고 보면 됐다.
공격은 일반적인 암살자 스타일과 같은데, 상처를 입으면 체력을 크게 잃는다는 특징이 있었다.
내구성이 크게 떨어지는 대신에 세 차례의 깊은 자상을 입으면 바로 ‘참살’ 디버프가 활성화된다.
디버프 효과는 간단하다. 즉사.
타다다닷!
강후와 참살자들이 서로를 마주하고 전속 질주했다.
워낙 빠른 속도로 양쪽이 가까워지니, 기존에 계산했던 것보다 거리가 훨씬 더 빨리 좁혀졌다.
【그림자 걸음】
【환영술】
화악!
강후가 참살자들과 거의 충돌하기 직전에 두 스킬을 연달아 전개하며 시야를 교란했다.
순간적으로 강후와 똑같은 환영과 실루엣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참살자들이 제자리에서 멈칫했다.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이것이 환영인지, 그림자인지, 어떤 위협이 될지 예측할 수 없기에 일단 멈추는 것이다.
판단을 보류하는 것으로 수비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나, 여기에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분신술】
【횡 이동】
강후가 쓸 수 있는 스킬의 연계가 많다는 점이다.
참살자들이 멈칫한 사이, 강후는 환영과 그림자로 시선을 확 빼앗아 두고는.
횡 이동으로 놈들의 뒤로 이동하며 그 즉시 은신 상태에 들어갔다. 분신을 세워 놓은 것은 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참살자들의 눈에는 강후의 분신이 진짜로 보였다.
“크흣!”
신음인지 비웃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참살자 셋이 일제히 강후의 분신을 노렸다.
그들은 강후의 ‘그림자’는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했는지, 잠깐 눈을 뒀다가 이내 무시해 버렸다.
하지만 강후는 그림자 셋을 차례대로 참살자들의 등 뒤로 이동시킨 상태였다.
푸욱! 푸욱! 푹!
이내 참살자들의 단검이 매섭게 분신의 몸을 난도질했다. 듣는 것만으로도 아플 만큼 강력했다.
다음 순간.
파앗!
【대참수】
푸욱!
참살자의 뒤에 있던 그림자 하나와 위치를 바꾼 강후가 곧바로 대참수를 꽂았다.
대참수 특유의 마나, 체력 사용 때문에 몸이 확 무거워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암살자 대 암살자의 전투는 속도가 생명이다.
강후는 연달아 두 그림자와 위치를 추가로 바꾸며, 대참수를 2연타로 더 찔러 넣었다.
분신을 앞에 두고 삽질한 셈이 된 참살자 셋은 그렇게 사이 좋게 뒷목에 구멍이 시원하게 뚫렸다.
그리고.
【혈화】
피의 꽃으로 마무리!
반 박자의 시간차를 두고 뒷목에서 피분수를 뿜어낸 참살자들이 차례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뚫린 목의 상처 안에서 피를 매개로 일어난 폭발이라, 목숨을 부지하기는 어려웠다.
“와!”
안영호가 감탄했다.
이렇게 스타일리시하게, 그러면서도 파괴적으로 적을 유린할 수 있는 암살자가 얼마나 될까?
안영호는 방금 강후가 보인 싸움이 마치 한 편의 영화 같고, 잘 그려진 그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 속의 주인공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날고 뛰는 적이라고 해도 결국은 완벽하게 제압하고 죽여 버리고 마는…… 그런 히어로!
하지만 감탄도 잠시.
“후우.”
강후가 거칠게 숨을 토해내면서 살짝 비틀거리자, 안영호가 재빨리 손을 뻗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남자, 강후의 회복이니까.
그 사이, 강후는 참살자 중 하나가 죽으면서 드롭한 주황색 마석을 집었다. 100억 원짜리다.
“형님, 괜찮으세요?”
“체력 소모가 좀 있는 스킬이라서. 그런데 회복이 들어오니까 바로 힘이 도네.”
“성능 괜찮죠?”
“좋아. 믿고 있었어.”
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안영호의 치유는 느낌이 다르다. 고농도로 압축된 회복 기운을 받는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체력의 회복 속도도 빨랐고, 그 폭도 일반적인 경우보다 훨씬 컸다.
“형님, 저도 은근 눈이 빠른 타입인데요. 솔직히 이번에는 형님이 어디 계셨는지 몰랐어요.”
“연계가 나쁘지 않았나 보네.”
“나쁘지 않은 게 아니라, 완전 멋졌습니다! 갓살자가 여기에 있는 것 같은데요?”
작금의 암살자 대다수가 짐밖에 안 되는 암살자 즉, 짐살자라고 불리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그나마 그 수도 많지 않다는 점에 미루어 볼 때.
안영호의 눈에 적극적으로 판을 짜고, 스스로 상황을 만드는 강후의 모습은 멋질 수밖에 없었다.
정작 당사자는 대수롭지 않아 하는 반응이지만 말이다. 안영호는 강후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 좋은 실력에도 으스대거나, 무례하게 구는 법이 없다. 겸손의 미덕이 있달까?
“가자. 네 덕분에 체력을 바로 채웠네. 시간 끌 필요가 없겠어.”
“예, 형님! 바로 가시죠!”
한 차례 시간이 끌릴 뻔했던 상황을 단숨에 정리한 둘은, 곧바로 쭉쭉 치고 나갔다.
다시 전진이었다.
* * *
이동하는 동안.
몇 차례의 전투가 있었다.
하지만 체력에 대한 걱정을 배제할 수 있게 해 주는 안영호가 있어, 걱정 없이 전투를 치렀다.
전투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몬스터를 차례대로 분쇄해 나간 덕분에 레벨은 197이 됐다.
그리고 보스 몬스터가 있는 구간이 C구역으로 이동하면서, 강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을 맞고 있으니, 전투에 몰입했던 머리도 살짝 풀리는 느낌이었다.
‘요즘 적요석 수급이 끊겼네. 다른 클래스 스킬북을 구하는 작업도 놓친 것 같고.’
스킬과 아이템 업그레이드에 필요한 적요석은 귀한 만큼 활용 가치가 크다.
초창기에 적요석을 꽤 수급했었고, 그 덕에 스킬과 아이템을 업그레이드하며 재미를 봤었다.
하지만 요즘 던전에서 얻지 못했다 보니, 지난번 업그레이드 이후로는 소식이 없었다.
적요석 수급에 관련해서도 쏠쏠하게 재미를 볼 수 있는 곳이 몇 곳 있기는 하다.
가깝게는 북한이 있고, 중국 쪽도 몇 군데 있다. 원작에서 장시환이 갔던 곳이기도 하다.
빙의 시점이 지금보다 훨씬 앞이었다면 많은 곳에서 재미를 봤었을 터.
그러나 지금은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이기에 일부 과실은 장시환에게 가 있는 상태다.
적요석은 전략적인 가치가 높은 부산물이다.
적어도 오늘 이후의 적요석만큼은 장시환과 그 일당의 손에 하나도 넘겨주고 싶지 않다.
‘북한을…… 한 번 다녀는 와야겠어. 매드 솔라키움 수급도 그렇고, 가야 할 동기는 충분해.’
강후가 생각을 정리했다.
마스터 K를 통한다면, 북쪽으로 쉽게 진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 그 또는 문형서나 황보혜와의 협업을 해야 할 수도 있겠지. 홀로는 안 될 것이다.
‘스킬북도 좀 얻어야겠고.’
암살자로 범위를 한정하면 스킬북을 얻기는 매우 어렵다.
하지만 비인기 클래스로 분류되는 직업군에서 스킬북을 구한다면 선택지는 많아진다.
어차피 다른 클래스 스킬도 꼼수로 페널티 없이 흡수할 수 있는 만큼…… 가릴 건 없다.
‘바쁘네.’
정말 바쁘다.
현실에 안주하는 삶을 살았다면 하루하루가 유유자적하는 속 편한 삶이었을 텐데.
빌어먹을 구원자의 운명이 자꾸만 위를 올려다보고, 끊임없이 뛰어가라고 채찍질한다.
그리고 파국으로 치닫는 엔딩을 아는 입장에서 그렇게 흘러가도록 두고 싶지도 않았다.
‘모자란 반토막이라도 낼 수 있어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열세 개의 별에서 다섯이나 여섯만 이탈할 수 있도록 만들어도, 얼마나 편할까 하고.
타카시를 설령 빼낸다고 해도, 열세 개의 별은 여전히 열둘이나 남는다.
강후는 유청화나 에밀리아 같은 소속감이 떨어지는 헌터는 물론.
앞으로 공식 합류할 것으로 예상되는 녀석들도 손아귀에서 걷어내고 싶었다.
장시환, 채관형, 케이시, 빈센트는 못 건드린다. 뼛속까지 타락한 놈들이라 의미가 없다.
하지만 나머지는 비벼 볼 구석이 있다. 균열을 만드는 게,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