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쏠리는 시선 (1)
* * *
강후가 토우시 길드원에게서 할머니와 손녀를 구한 영상이 헌터 그램의 인기 영상으로 올라왔다.
알고리즘에 이끌려 들어온 사람들은 강후의 활약과 할머니를 구한 따뜻한 모습에 감탄했다.
한편으로는 한국의 헌터가 일본에 가서 나름의 국위 선양을 했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도 했다.
헌터들 사이에 필수 어플리케이션인 헌터 그램은 접근성이 좋아, 어지간한 사람은 모두 봤다.
그것은 한서연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녀는 영상 속의 강후를 보며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빠,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네. 헌터로서도 엄청 성장했고. 정말 대단해졌어. 믿기지 않을 만큼.’
실종됐던 강후를 다시 만났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는 다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피부도 지금보다 창백했고, 훨씬 말랐었다.
게다가 헌터로서도 이제 막 발돋움을 하는 시기라, 한서연에 비해 한참 레벨이 낮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과거가 무색할 만큼 성장해 있었다. 아니, 급성장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자신과 비교했을 때는 오래전에 성장을 역전한 듯했다.
영상 속의 강후의 움직임만 봐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아마 상대도 안 될 것이다.
그때.
한서연이 소속된 59팀의 팀장이 들어왔다. 팀의 넘버링에서 알 수 있듯이 수준이 높은 팀은 아니다.
보통 정화 길드에서 15팀까지를 정예팀으로 치는데, 이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인 셈이다.
팀장이 말했다.
“오늘 훈련은 일단 보류다. 공유석, 고주희 교관께서 급한 일로 부재 중이시다.”
“무슨 일입니까?”
한서연이 물었다.
따지듯 물었다기보다, 두 사람으로부터 받는 훈련을 학수고대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정화 길드 안에서도 인망이 두터운 헌터들로 워너비로 불리는 커플이기도 했다.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누군가를 가르침에 있어 특화가 된 사람들이었다.
“마스터께서 찾으셨다고 한다.”
“마스터가요?”
“그래. 이해가 가지?”
“네, 바로 이해가 되네요.”
한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의 주인이 찾는데, 그것보다 더 우선인 일이 존재할 순 없다. 절대 복종은 당연한 일이다.
졸지에 여유 시간이 생겨버린 한서연은 오랜만에 강후에게 문자를 할까 싶어 스마트폰을 들었다.
하지만.
‘아냐. 아직은 부족해.’
이내 고개를 저었다.
최근 한서연은 훈련과 성장에만 집중하기 위해서, 모든 지인과 연락을 끊은 상태였다.
강후는 물론이고 이예린도 마찬가지.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서 이 악물고 훈련하고 있는 상황인데, 여기서 괜히 약해질 순 없다.
그저 오늘은…… 오랜만에 강후의 멋진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만족하기로 했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사람이다. 아주 작은 방해도 되고 싶지 않았다.
“와, 이 헌터 진짜 대단하네. 전에 이클립스한테도 한 방 먹이더니, 토우시 길드에도?”
“이름이 뭐라고 했지? 신강후?”
“어. 생긴 것도 아주 잘생겼어. 봐봐. 여자친구 있을까? 있으면 정말 부럽다.”
팀의 다른 동료들도 헌터 그램을 보더니, 강후와 관련된 영상을 보고 감탄했다.
뭐랄까. 아는 사람에 대한 칭찬이라 그런지, 본인 얘기가 아님에도 한서연은 뿌듯했다.
암. 강후는 칭찬받을 가치가 충분한 사람이다.
* * *
공유석과 고주희를 만나기 전.
모니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던 장시환이 몇 개의 영상을 ‘보류’ 폴더로 옮겼다.
그중에는 공태수의 왼팔을 자른 인물에 대한 조사 영상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간 꽤 추적을 해 봤지만, 뚜렷한 증거가 없어 추적을 포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단 공태수가 팔이 잘렸던 당시의 현장 영상이 없다는 점이 가장 컸고.
그다음으로 공태수가 그날의 일을 흑역사로 여기고 입을 꾹 닫고 있는 탓에 추가 조사가 안 됐다.
그뿐만 아니라, 공태수의 붉은 피 조직이 울산에서 쫓겨난 상황이라 지금은 소재도 불명이었다.
초반에 열심히 찾았을 때 연결 고리가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기에 장시환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식었고, 이내 관련 영상들이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름은 보류 폴더지만, 사실상 휴지통이나 다름없는 분류다. 이것 말고도 봐야 할 영상은 많다.
이윽고 비서의 안내를 따라 공유석과 고주희가 장시환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깔끔하게 정돈된 장시환의 집무실은 블랙 앤 화이트의 콘셉트로 심플하게 꾸려져 있는 상태.
그래서 두 사람은 다른 곳에 달리 시선을 둘 이유 없이, 장시환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다.
장시환이 말했다.
“바쁘실 텐데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하셨어요. 요즘 정신없으시죠? 훈련 일정이 빡빡해서.”
깍듯하게 고개를 숙여가며 인사를 올리고.
두 사람이 앉을 자리를 정중하게 안내하는 장시환의 모습은 매너 그 자체였다.
마스터라는 최상위 자리에 있음에도 항상 예의가 바른 장시환을 두 사람은 유독 더 좋아했다.
한 번도 장시환은 선을 넘는 법이 없었다.
흔한 갑질 한 번 한 적 없었다. 오히려 그런 갑질은 채관형이 많이 해댔지. 쓰레기 같은 놈이다.
고주희가 말했다.
“아닙니다. 훈련 교관은 저희가 요청드렸던 부분인 걸요. 매일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공유석도 말을 덧붙였다.
“배려해 주신 덕분에 워라밸까지 챙겨가며 일하고 있으니,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그나저나 예정보다 저희를 일찍 부르셨네요.”
“요즘 외부 영입이 좀 뜸했죠? 위성 길드에서 내부 승격을 한 사례를 제외하면요.”
장시환의 물음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어화 길드 같은 위성 길드에서 대거 헌터들을 정화 길드로 올려보내기는 했지만…….
장시환의 말대로 완전 외부 인사를 영입한 적은 꽤 오래전 일이었다.
장시환이 말을 이었다.
“다른 라인으로 추천받은 인재들은 전부 제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요. 혹시 추천하실 헌터가 있나요?”
“백선태라는 암살자…….”
“아, 여수 군벌인 자강에 있던 그 친구 말이죠? 약점이 너무 극명하더군요.”
공유석이 첫 번째 인물에 대한 말을 마무리하기도 전에 바로 장시환의 피드백이 나왔다.
인물 관련 자료를 꾸준히 훑는다더니 헛말이 아니었다. 관련 정보를 다 꿰고 있는 눈치다.
“조윤준이라는 검사 헌터…….”
“봤는데 거품이더군요. 해영 길드에서 이적을 요청한 헌터죠? 그냥 해영이 안고 죽으라 하세요.”
두 번째 추천도 단칼에 잘렸다.
이어서 한서연을 추천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길드 소속 구성원이라 장시환이 관심이 없었다.
길드의 정해진 프로세스에 따라 알아서 성장할 테니, 굳이 주목할 필요가 있겠냐는 물음이었다.
나름 실력 좋아 보였던 세 헌터의 이야기가 테이블 위에 올라가 보지도 못하고 떨어졌다.
그래서 두 사람은 최근에 꽤 많은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고 있는 한 헌터 얘기를 꺼내기로 했다.
언급될 당사자는 생각조차 못 하고 있겠지만, 공유석과 고주희는 꽤 많이 대화를 나눈 인물이었다.
그 인물은 바로.
“신강후라는 암살자 헌터는 어떻습니까? 이클립스 관련 사건으로 이름을 알렸고, 최근에 오사카 이슈로 유명세를 타고 있죠.”
강후였다.
공유석이 혹시나 장시환이 알지 못하는 헌터일까 싶어, 스마트폰으로 강후의 사진을 띄웠다.
사실 그간 바빠서 이클립스 관련 사건은 물론, 국내 소식에 다소 둔감했던 장시환이었다.
그런데 사진을 보니 구면인 인물이었다.
전망대에서도 봤고, 심지어 황금 고블린의 광산에서는 일대일로 본 적도 있는 남자.
게다가 얼마 전에 있었던 대규모 공략, 심판의 지옥 공략에도 참여한 적 있는 헌터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접점이 꽤 많이 만들어진 인물인 것이다.
“덧붙일 자료가 있을까요?”
그러자 앞선 얘기에 딱히 흥미가 없어 보이던 장시환의 눈빛이 반짝였다.
* * *
한편 강후는 전장에서 다급하게 복귀한 후미야로부터 감사 인사를 듣고 있었다.
유우지가 강후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한 사실은 현장에 있던 리코우 길드원이 모두 증언했고.
더 나아가 시내 CCTV 화면 일부에 강후와 켄지의 전투도 담겼기 때문이다.
짧은 영상만 있었지만, 잠깐의 모습으로도 당시의 활약을 입증하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벌써 강후에게 세 번째로 신세를 지는 상황.
후미야는 대화 내내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자존심에 입은 상처도 제법 될 터다.
“길드 차원에서 확실한 보상을 해 드리겠습니다. 금전적인 보상이 괜찮으시겠지요?”
“아뇨, 돈은 됐습니다. 다만 조사하기 까다로울 수 있는 정보를 좀 찾아 주셨으면 하는데요.”
“공식 조사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비밀 조사를?”
“후자로.”
강후가 금전 보상을 거절한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였다.
그간 리코우 길드를 살펴본 결과, 생각한 것보다 보유하고 있는 정보량이 많았다.
안영호와 이런저런 얘기를 메시지로 나누다 알게 된 것이다. 대외 정보에 상당히 빠삭하다는 걸.
이유는 하나일 것이다.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정보 네트워크가 있고, 그 규모가 상상 이상으로 큰 것이겠지.
박동재처럼 다수의 길드나 조직에 내부자를 두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혹은 회유에 성공했거나.
그래서 자신이 직접 구하기에는 껄끄러운 정보들을 후미야를 통해 얻을 생각이었다.
양보한 금전 보상은 바로 그 정보료에 해당하는 값이 되겠지.
“어떤 정보를 원하십니까?”
“JR삿포로역 인근의 모든 던전에 대한 리스트업과 정보 수집을 원합니다. 공략을 원할 시, 그 절차까지도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질문하시죠.”
“왜 삿포로 쪽에 관심을 두시는지, 그것만 좀 알 수 있겠습니까? 악의가 있는 건 아닙니다.”
“좋은 예감이 들어서라고 대답한다면, 만족할 만한 답변이 되실까요?”
당연히 좋은 대답은 아니다.
뭉뚱그려 말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대놓고 거기에 임밸런스 포인트가 있으니 가 봐야겠다는 말은 할 수 없는 노릇.
그래서 실없는 소리처럼 보이겠지만, 엉뚱한 이유를 대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알겠습니다. 남김없이 필요한 자료를 전부 조사하지요. 그것으로 보상이 되시겠습니까?”
“누락이 없다면.”
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벨을 단숨에 수십 계단을 오를 수 있는 이슈인데, 이번 보상 한 번으로 퉁 치면 완전 이득이지.
후미야는 속사정을 모르겠지만, 강후 입장에서는 무조건 남는 장사였다.
“알겠습니다. 제 직속의 헌터들을 활용해서 조사하지요. 이틀 내로 끝내겠습니다.”
역시.
예상한 대로 내부에 비밀 정보 네트워크가 있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시일을 정해 놓고 확답을 하기 어렵다. 지금 바로 접촉할 수 있는 정보통도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게 일본에 위치한 임밸런스 포인트를 찾아가기 위한 밑 작업도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암흑기 파밍을 위한 남은 던전 다섯 개를 확실히 도는 것뿐.
그러면 일본에 온 주목적 중 하나였던 암흑기 성장은 달성된다.
그날 이후.
5일의 시간이 흘렀다.
남은 다섯 개의 던전 중, 네 개의 던전 공략을 마무리하는 순간이었다.
이제 안영호와 함께 갈 마지막 던전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