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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89화 (189/304)

189화 좋은 놈, 나쁜 놈 (2)

* * *

켄지의 비웃음.

의미가 있었다.

이렇게 같이 허공에서 떨어진다면, 암살자로 보이는 녀석에게 탈출 수단은 없을 것이다.

일부러 주변에 의지할 수 있을 만한 시설이 전혀 없는 공간으로 골라서 열었다.

그림자를 활용한 공간 이동 스킬을 쓸 줄 아는 것이 대단하기는 했지만…….

그 역시도 탈출 수단으로 활용하기에는 불가능한 허허벌판의 공중에서 둘이 추락하는 중이었다.

“흥.”

켄지가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강후에게 코웃음을 치며, 공간을 열 준비를 했다.

타이밍을 맞춰서 자신만 쏙 들어가고, 강후는 들어올 수 없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나름의 계산도 다 끝내 뒀다.

추락에는 날개가 없다. 날개 없는 암살자가 갈 곳은 지옥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데 바로 그때.

“……읏!”

강후가 자신을 향해서 손동작을 취하더니, 이내 몸이 불가항력으로 강후에게 쭉 끌려갔다.

납치 스킬이었다.

설마 암살자에게 이런 류의 스킬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켄지는 무방비로 당했다.

확신에 차 있던 것이 실수였다.

하지만 눈 뜨고 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끌려가는 와중에 몸을 보호할 마법 스킬을 썼다.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몸 전체를 감싸는 보호막이 생겼고.

투웅!

힘껏 단검으로 켄지의 배를 찌르려던 강후의 계획이 빗나갔다.

다음 순간.

꽈악!

공격이 무산된 강후가 깊게 잴 것도 없이 켄지를 전력으로 끌어안아 버렸다.

3자가 본다면 서로 껴안고 최후를 맞이하려는 커플을 보는 건가 싶을 정도로 격한 포옹이었다.

“이런 씨X……?”

켄지의 얼굴이 흙빛이 됐다.

아직 공간을 열기 전이다.

타이밍이 최악이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지? 같이 죽던지, 아니면 같이 살던지인데.”

이어 귓가에 속삭이듯, 간질이며 들리는 강후의 목소리는 소름 끼칠 정도로 차분했다.

감정적으로 격앙되어 있지도 않았고, 지나친 분노에 잠식되어 있지도 않았다.

“또라이냐?”

“자기 소개해?”

“X발……! 진짜 미친 새끼 아니야, 이거?”

“왜 자기 소개 하냐니까.”

강후가 포옹 강도를 높였다.

여전히 방어막이 켄지를 감싸고 있어 단검으로 상처를 낼 방법은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그런 켄지를 아예 통째로 묶어둘 수는 있었다. 여기에다가 선택을 강제하는 것이다.

“같이 죽고 싶다는 거냐?”

“그러면 내 입장에서는 싸게 먹히는 장사지.”

강후가 웃었다.

켄지의 성좌 정보를 보니, 아무리 낮게 잡아도 레벨 400 이상은 거뜬히 되어 보인다.

공간 활용에 특화될 수 있는 성좌가 더덕더덕 붙어 있다.

마음 같아선 죽여서 성좌를 빼앗고 싶지만, 공간 활용 능력만큼이나 방어 능력이 빼어나다.

괜히 원작에서 켄지를 죽일 방법은 그가 죽었을 때뿐이다, 라는 내용이 나온 게 아닌 듯했다.

죽이고 죽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지만, 그래서 더 자신을 지키는 것에 필사적인 세상.

켄지는 죽이는 것보다 ‘죽지 않는’ 것에 특화된 헌터였다. 강후와는 정반대라고 볼 수 있다.

켄지가 아래를 흘깃 내려다보았다. 둘이 뒤엉켜 떨어지고 있으니 가속이 더 붙고 있다.

이대로 배째라 식으로 버텼다가는 정말 강후의 말대로 같이 죽게 될 상황.

아무리 보호막으로 몸을 두르고 있다고 해서, 수백 미터 공중에서 떨어지고도 멀쩡할 순 없다.

“지랄.”

켄지가 공간을 열었다.

이대로는 강후와 함께 안전하게 탈출하게 될 판이지만, 그걸 신경 쓸 새가 없었다.

같이 죽겠다는 미친놈이랑 동반 자살을 할 수는 없으니까. 일단은 살고 볼 일이다.

지금까지 죽음에 대해 초탈하게 혹은 무덤덤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경험해 보니 아니었다.

진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머릿속이 하얘졌다.

스윽!

이내 공간이 열리고.

쿠웅! 쿠궁! 쿵!

그 안으로 말려 들어간 강후와 켄지가 차가운 아스팔트 지면 위를 한참을 굴렀다.

그 와중에 켄지를 시야에서 놓치지 않은 강후가 단검 하나를 꺼내서는 바로 전광비도로 날렸다.

쉬이이익! 까앙!

하지만 켄지의 대응도 빨랐다.

기존 보호막으로는 부족하다 여겼는지, 정면에 두텁게 마나 방패를 만들어 단검을 조기에 차단했다.

그리고 가속과 도약을 번갈아서 전개하며 거리를 좁히려는 강후를 새로이 공간을 열어 떼어냈다.

강후는 그림자 걸음까지 활용하면서, 상황에 변수를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그림자는 다섯 개니까 그중 하나를 기습적으로 선택하면, 켄지도 빈틈이 노출될 것이라는 계산.

스륵! 사락! 스르륵!

하지만 보기 좋게 빗나갔다.

켄지는 그림자 수에 맞춰 여러 개의 통로를 여는 것으로 대응했다.

각각이 새로운 공간으로 휘말려 들어간 그림자들은 강후의 시야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좋아. 마음에 드네. 이래야 이름값이지.’

강후가 완벽하게 무산된 자신의 연계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켄지의 대응은 깔끔했다.

그림자 자체의 변수를 아예 없애 버리는 방법이 그에게 있었고, 강후가 생각한 정답과도 일치했다.

실력 좋은 놈은 상황에 맞게 대응할 판단력과 능력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켄지가 그랬다.

‘까다롭긴 까다로워.’

큰 틀로 분류하자면, 마법계 헌터인 켄지지만 특이하게도 방어적으로도 능력이 걸출하다.

아까 코앞에서 힘껏 꽂은 대참수 공격이 보호막에 튕겨 나올 때, 강후는 직감했다.

보통 방어 능력이 아니라고.

대참수 일격이 가지는 파괴력은 어지간한 방어 기제로 견뎌낼 정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물며 근접전에서는 시체 취급을 받는 것이 마법계. 그런데 켄지에겐 해당되지 않았다.

그때.

켄지가 힐끗 시선을 다른 곳에 두는 것이 보였다.

강후와 거리를 두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공백. 그 틈을 노린 또 한 번의 공간 창출이었다.

자신이 접근하는 이슈가 없음에도 공간을 여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유우지가 오는 거겠지.

‘호기심과 무모함은 한 끗 차이지. 이대 일은 아냐. 정리하고 빠져나갈까.’

강후가 두 다리에 힘껏 힘을 줬다. 켄지와 유우지의 환장의 조합을 상대로 이기는 것은 어렵다.

자신의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조합으로 만들 수 있는 시너지의 총합의 격차가 너무 커서다.

그래서 타깃을 바꿨다.

저 통로를 통해 들어올 가능성이 높은 유우지를 노리기로.

설마 꼭꼭 잘 숨어있던 켄지가 다른 헌터와 뒤섞여 싸우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겠지.

타다다닷!

전력 질주!

켄지는 무시했다.

그리고 열린 통로로 들어온 한 남자의 실루엣을 보고는 온 힘을 다해 대참수를 날렸다.

보조의 개념으로 뇌격진까지 통로 위에 깔아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휘몰아치기였다.

다음 순간.

“켄지 왜 이리 늦…… 커억!”

아무 생각 없이 안으로 들어서던 유우지가 배에 느껴진 묵직한 고통을 느끼고는 멈춰 섰다.

동시에 자신의 배에 뭔가를 찔러 넣은 상대가 홀연히 통로의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이내 자연스레 닫히기 시작하는 통로.

“커헉?”

유우지는 방금 자신을 찌르고 간 상대가 누군지 생각할 틈도 없이 깊은 고통에 휩싸였다.

단순하게 단검으로 긋고 지나간 정도가 아니었다. 힘껏 옆구리의 근육과 살점을 찢으며 지나갔다.

빠지직! 빠직!

게다가 공중에서 쏟아지는 전류의 향연은 덤.

이는 상황을 인지한 켄지가 보호막으로 막아 주었지만, 배에 난 상처를 되돌릴 순 없었다.

“씨, 씨……X.”

풀썩!

유우지가 주저앉아 버렸다.

방금까지만 해도 리코우 길드원을 신나게 유린하며, 힘의 차이를 즐겼던 유우지였다.

그리고 켄지가 연 통로로 기분 좋게 들어왔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일격을 당해 버렸다.

유우지가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통로 반대편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남자, 강후의 모습이 보였다.

아울러 강후의 뒤에는 시간차를 두고 합류한 리코우 길드원 일부도 같이 현장을 목격하고 있었다.

“유우지가 찔렸어! 이분한테 당했다고!”

“뒈져라, 이 새끼야!”

“넌 영원히 무적일 줄 알았냐? 어?”

그들은 강후에게 일격을 당해 버린 유우지의 모습에 통쾌함을 느끼고는 환호하고 있었다.

오히려 시종일관 차분한 강후의 모습이 이질적으로 느껴질 정도.

유우지와 켄지가 강후의 모습을 두 눈에 똑똑히 담았다.

이름도 소속도 아직은 알지 못하지만, 언젠가 알게 되겠지.

“쿨럭!”

유우지가 피를 토했다.

생각보다 내상이 심하다.

지금으로서는 빨리 현장을 이탈하는 게 우선이 되어야 할 듯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유우지의 불운은 끝나지 않았다.

탁!

강후에게서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들렸고.

퍼퍼펑!

곧바로 배에서 피분수가 튀었다.

그리고.

스으윽!

열려 있던 공간의 문이 닫혔다.

오사카에 켄지와 함께 ‘놀러’ 왔다던 유우지에게 악몽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치명상을 입은 상황! 긴급 치료가 필요해졌다.

* * *

그 이후.

강후는 바로 리코우 타워에 있는 자신의 숙소로 돌아왔다.

구구절절 리코우 길드원에게 상황을 설명할 생각은 없어서, 대화 요청도 거절했다.

간부들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리코우 길드의 자존심에 큰 스크래치가 날 일이었다.

아마 이번 일로 후미야를 비롯한 간부들도 수습에 꽤 골머리를 앓게 될 것이다.

적어도 오사카 시의 안전만큼은 책임지고 지키겠다던 그들의 공언이 헛말이 되었으니까.

켄지와 유우지가 네임드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는 그다지 사람들에게 와닿지 않겠지.

우우웅! 우웅!

꺼져 있었던 스마트폰의 전원을 연결하고 켜기 무섭게, 진동이 연신 울렸다.

뭔가 싶어 살펴보니, 타카시로부터 헌터 그램으로 온 개인 DM이 연달아 도착하고 있었다.

아까 보냈던 DM이 스마트폰을 이제야 켜는 바람에 폭탄 알람으로 오는 모양.

- 너 지금 뭐야? 켄지랑 일대일을 한다고?

- 켄지는 공간 능력을 진짜 잘 쓰는 놈이야. 방어 능력도 좋고. 네 실력으로는 힘들 텐데?

- 죽은 거 아니지? CCTV에 안 잡히네?

- 유우지는 또 어디 간 거야? 혹시 살아 있으면 바로 보고 연락해라. 걱정되니까.

- 연락 안 받아? 죽지 말라고!

“뭐지, 이 광기는.”

강후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타카시가 가까운 사람에게는 사소한 걱정이나 배려도 잘해 주는 성격이라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진심’으로 자신의 위험을 걱정해 주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묘했다.

잠깐 사이에 나름 친해진 걸까.

만약 타카시가 CCTV를 통해서 자신이 켄지와 싸우고 있는 모습을 봤다면…….

패턴론에 입각해서 상황에 대응한 자신의 모습에 동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구나 싶었다.

타카시의 진심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정말 걱정이 되니까 걱정을 한 거고, 다행히 결과는 좋다.

강후가 헌터 그램의 보이스 채널을 활용해서 타카시에게 연락을 했다.

그러자 신호가 한 번을 울리기도 전에 바로 타카시가 받았다.

- 살아 있었냐?

“살아 있었지.”

- 야, 이…….

그 뒤로 이어진 타카시의 말은 굳이 귀담아들을 필요가 없는 욕의 향연이었다.

스마트폰에서 잠시간 귀를 떼고 있던 강후는 이내 타카시의 목소리가 줄어들자 다시 귀를 댔다.

- 켄지한테 뒈진 헌터가 한둘이 아니라고. 아무리 호기심 때문이라도 그렇지, 너무 무모한 짓이었어. 그건.

“그 정도였나? 할 만한 것 같았는데.”

- 이거, 또라이네. 아주 또라이야……. 켄지가 유우지를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면 죽었을 거라고!

“신경 쓸 것을 알았기에 간 것도 있지. 어쨌든 살아 있으니 너무 걱정은 마.”

- 목숨은 원 코인이야. 조심해.

타카시의 마지막 말이 제법 심장을 떨리게 했다.

맞다. 죽으면 그다음은 없다.

원작의 신강후도 사냥개처럼 달려드는 미친 근성이 있었는데.

돌이켜보니 빙의한 자신도 그런 모습을 똑같이 닮아 있었다.

그 순간에는 두려움이나 무서움보다는 호기심이 앞섰다. 부정적인 생각을 완벽히 억제할 만큼.

본성은 어디 안 가는 걸까.

자신보다 훨씬 센 헌터를 상대해 보니 정말 재밌었다. 심지어 한 방 제대로 먹이기도 했고.

그래도 타카시의 말대로 목숨은 누구나 공평하게 하나뿐이라는 것은 명심해야 할 듯했다.

오늘 죽은 사람에게 내일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시간일 뿐이니까.

그리고 자신은 오늘보다 내일을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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