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좋은 놈, 나쁜 놈 (1)
* * *
리코우 타워 밖으로 나오자,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는 주변 상황이 보였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언제든 비를 쏟아낼 것 같은, 물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까지 불고 있었다.
타워에서는 높이가 맞아 현장이 보였지만, 밖으로 나오자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팔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황급히 다른 건물로 대피하는 리코우 길드의 헌터 둘이 보였다.
아마도 유우지에게 부상을 입은 것일 터다.
멀쩡한 몸으로도 상대하기 까다로운 헌터를 부상당한 채로 싸우는 것은 자살 행위인 만큼.
곧바로 전장을 떠난 것이겠지. 다행히 그들의 안전한 대피를 위해 다른 헌터들이 공백을 메웠다.
“잡아!”
“포위하자고!”
리코우 길드의 헌터들이 몰리면서 수적 우위가 확실해지자, 덩달아 그들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하지만 그쯤 되자, 유우지가 씨익 웃고는 전장을 바꿔 버렸다.
켄지의 능력을 활용해, 다른 건물로 향하는 공간 통로를 연 것이다.
유우지는 그 통로를 따라 다른 건물로 이동했고, 이내 통로는 사라졌다.
이어 유우지는 자신의 동선 체크를 위해, 정찰이 목적이었던 리코우 길드원을 덮쳤다.
핏줄기가 두 번 튀고.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은 두 길드원의 축 처진 몸뚱이가 건물 옥상 난간에 걸렸다.
“…….”
강후는 조용히 상황을 살폈다.
켄지가 연계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우지를 쫓는 것은 하책이다.
물론 앞에서 자꾸 유우지가 ‘어그로’를 끌고 있으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정하게 상황을 해결하려면, 유우지는 철저하게 무시해야 했다.
쫓아봤자, 방금처럼 켄지의 능력으로 위치를 바꿔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공간 개방 능력이 무적이고 만능인 건 아니지.’
유사한 능력을 가깝게 경험해 본 바로는 정유리가 있다.
그녀도 꽤 유용한 능력을 가졌지만, 강후는 그 과정에서 빈틈을 제법 발견했었다.
대표적인 빈틈은 개방된 통로의 모양으로 유추가 가능한 시전자의 위치였다.
즉, 지금 상황에서는 통로의 모양을 보고 켄지가 있는 위치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워낙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기에 일반 헌터들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구조다.
하지만 강후는 일전에 정유리와 함께 그라운드 제로에 있을 때 그녀가 가진 능력을 유심히 살폈었다. 흔한 능력이 아니기에 더 집중해서 본 기억이 난다.
사방으로 피가 튀고.
유우지가 광기에 찬 얼굴로 전장을 계속 바꿔가며, 쉴 새 없이 리코우 길드원을 벤다.
잘 훈련된 헌터들은 유우지로부터 부상만 입은 채로 안전하게 현장을 빠져나가지만.
레벨이 낮은, 그리고 훈련이 부족한 헌터들은 아쉽게도 그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보통 이런 살인은 그럴듯한 이유나 명분이 있기 마련인데, 켄지와 유우지에게는 없었다.
심심하니까.
미친놈 같은 소리지만 유우지와 켄지의 헌터 그램에 막 올라온 글의 내용이 그랬다.
- 오늘은 심심해 오사카에서 놀 생각입니다. 치안청 파이팅! 당신들의 무능함을 보여 주세요.
1급 수배범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잡지 못하는 일본 헌터 치안청을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나아가 오사카라는 장소를 특정함으로써 리코우 길드가 타깃임을 명확히 했다.
그리고 심심해서 논다는 설명으로 오늘 이 짓거리의 이유를 대신했다. 정말 미친 짓이다.
‘집중하자.’
강후는 연속으로 위치를 바꿔 가며 유우지의 움직임을 쫓았다.
계속 공간과 공간을 잇는 통로가 열렸고, 그때마다 강후의 눈이 부지런히 돌아갔다.
지금만큼은 타카시의 ‘만물패턴론’에 충실한, 통로의 패턴 파악에 열중하는 중이었다.
연달아 비명이 들리고, 부상자가 발생하는 정황이 보였지만 감정이 휘말리게 하지는 않았다.
핵심은 켄지다.
켄지를 찾아내지 못하면, 유우지를 쫓는 것은 닭 쫓던 개가 되는 것처럼 멍청한 짓이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리코우 길드원들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사상자가 제법 쌓이기 시작할 즈음.
“찾았다.”
패턴에 따라 켄지의 위치를 특정한 강후가 어둠 속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무영 스킬까지 써 가며 완벽하게 기척을 숨긴, 은밀한 추적의 시작이었다.
* * *
그 무렵.
헌터 그램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소식을 알게 된 타카시의 손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옆에 띄워 둔 수많은 모니터에는 현재 라이브 중인 방송과 다양한 CCTV 화면이 출력됐다.
리코우 타워 주변 CCTV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한 덕분에 필터링 없이 실시간 확인이 가능했다.
현장 상황은 최악이었다.
리코우 길드원들은 켄지와 유우지의 조합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듯했다.
어쩌면.
알고 있으면서도 위협적으로 움직이는 유우지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일까 싶기도 했다.
유우지가 타워 주변의 핵심 시설을 건드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타워의 보안 및 내부에 머물고 있는 관계자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는 문제인 만큼.
가시적인 위협이 되는 유우지부터 어떻게든 움직임을 억제하겠다는 목적으로 보였다.
“아니야. 그래도 켄지의 위치를 찾는 게 맞는데……. 이건 한심한 대응이야.”
타카시가 독설을 쏟아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까 간부급 인사들이 전부 자리를 비운 듯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실력 좋은 헌터가 많은 리코우 길드의 대응이 이렇게 중구난방일 리가 없다.
“얼추 위치를 알겠는데.”
강후와 같은 방법으로 접근했던 타카시는 통로의 미세한 비틀림과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 역산했다.
켄지에게도 습관이 있었고, 그 습관이 만들어낸 작은 차이가 지문처럼 묻어나는 중이었다.
“찾았다.”
이내 켄지의 위치를 특정한 타카시가 그가 있는 방향을 비추는 CCTV를 틀었다.
그러자 한눈에 들어왔다.
야외 테라스가 있는 바에서 가드의 복장을 하고 있는 켄지의 모습을.
안전을 위해 바에는 보통 여러 명의 가드를 고용해서, 손님 보호에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다.
바로 그런 바에 켄지가 있었던 것이다. 가드의 유니폼까지 착용하고 있으니 변장이 완벽했다.
계속 주변을 순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살짝 손가락을 튕기고 있는 것도 보였다.
저 동작이 바로 유우지에게 길을 열어 주는 공간 활용 스킬의 시작점이다.
여기서 현장으로 분신을 보내기에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리코우 길드에 연락을 하자니,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설령 연락하더라도, 어설픈 대응으로는 괜히 켄지가 도망갈 기회만 줄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방법을 고민하려는 찰나.
“뭐야?”
화면에 익숙한 남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 남자는 이미 켄지의 위치를 특정하고, 맹공을 퍼붓는 중이었다.
잠깐 사이에 은신과 은신 간파, 단검과 마법 스킬의 수많은 교환이 오갔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손님들이 혼비백산해서 도망치는 상황.
가드들 역시 이 상황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몰라서 우왕좌왕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푸핫! 신강후가 여기서 나온다고?”
타카시가 웃음을 터뜨렸다.
강후도 자신과 똑같은 생각으로 지금 상황에 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조합의 핵심을 간파한 후, 켄지의 위치를 집요하게 찾은 것이 주효했다.
영상 속의 강후는 시작과 동시에 켄지를 정신없이 몰아치고 있었다.
역시 가장 좋은 선택이다.
저렇게 해야만 켄지가 유우지를 염두에 둔 공간 스킬을 쓸 수 없고, 유우지의 동선이 억제된다.
게다가 전장 자체가 바의 옥상에 위치한 야외 테라스로 범위가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분신술과 그림자 걸음, 환영술을 연계하며 켄지의 시야를 어지럽히는 것도 좋았다.
앞서 속을 답답하게 만들었었던 리코우 길드원들의 대응과 비교하면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너는…… 인정이다, 인정.”
짝짝짝.
타카시가 박수를 쳤다.
그래. 세상의 모든 움직임과 행동에는 패턴이 존재한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기를 항상 바랐는데, 강후의 모습이 원하는 바와 같았다.
“야, 이거……. 제발 영상에서 잡히는 곳에서 싸워 줬으면 좋겠는데. 후아.”
타카시의 손에는 어느새 생수병 하나와 먹다 남은 감자칩 반 봉지가 쥐어져 있었다.
관전의 시간이다.
* * *
‘X발, 이 새끼 뭐야.’
한편, 켄지는 갑자기 나타난 강후와 전투를 치르느라 혼이 쏙 빠졌다.
위장도 완벽했고, 나름의 분장까지 했던 터라 위치가 들통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당장에 여기서 근무하는 가드도 알아보지 못한 얼굴을 도대체 어떻게 알아본 걸까?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고 접근했을 것이라고 판단한 켄지의 생각과 달리.
강후는 처음부터 켄지의 얼굴이 아닌 위치만 쫓았었다.
얼굴을 안 것은 나중이었다. 전투를 치르면서 알게 된 것이다.
바의 야외 테라스로 위치를 확신한 것은 공간 통로의 패턴에서 발견된 방향의 습관 때문이었고.
현장에서 그를 찾아낸 것은 선천성 마나 과민증의 민감함에 감지된 마나 흐름 덕분이었다.
아주 나쁜 그림이었다.
켄지가 강후를 상대할 수 있냐 없냐의 문제가 아니라, 자꾸 방해를 받는다는 것이 문제.
오사카에 ‘놀러’ 왔다고 입을 털어놓고는 거꾸로 털려서 돌아가면, 그 꼴이 정말 우습게 된다.
귀찮게 붙은 모기는 일단 떼어 주는 것이 답이다.
불을 켜고 잡으려는 순간, 날랜 모기는 도망가기 마련이니까. 일단 거리를 벌리고 생각해야 한다.
방금 켄지의 마법 견제에 뒤로 물러섰던 강후가 다시 앞으로 쇄도하자.
위잉!
켄지가 능숙한 손길로 그의 앞에 공간을 열었다. 엉뚱한 곳으로 향하는 통로였다.
‘차원 강탈자’의 다섯 번째 성좌 특전인 공간 이동 스킬 억제는 블링크나 텔레포트 류만 억제된다. 그러므로 공간을 열거나, 왜곡을 일으키는 스킬까지 억제할 수는 없었다.
“제길.”
속도를 늦출 새도 없이 통로에 휘말려 들어간 강후가 테라스 반대편으로 나왔다.
급하게 구현한 통로이기에 장거리 이동은 불가능했지만, 이 정도면 시간을 벌기는 충분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통로가 닫히기 전, 켄지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 움켜쥐는 듯한 시늉을 취했다.
파앗!
공간 왜곡에 관련된 스킬임을 인지한 강후가 도약으로 빠져나왔다.
그러자 간발의 차로 강후가 서 있던 위치에 공간의 비틀림이 일어났다. 왜곡이었다.
만약 제자리에 있었다면?
허리, 복부가 공간 왜곡에 휘말려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 몸이 가로로 갈라져 죽었을지도.
켄지는 강후를 멀리 보내자마자 이미 다른 공간으로 향하는 통로를 열고 있었다.
위치가 발각되어 자신에게 불리해진 장소에서 싸우고 싶지 않은 모양.
이내 켄지가 통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여기서 한 번 놓치면 켄지를 쫓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강후는 도약, 가속 스킬을 연달아 활용하며 악착같이 따라붙었다.
막판에는 그림자 걸음이 시전 즉시 그림자가 앞으로 확 튀어 나간다는 점을 활용하여 켄지의 뒤를 집요하게 쫓았다.
“씨……!”
원근감을 무시하듯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강후의 모습을 보며 켄지가 당황했다.
착시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거리를 좁힌 강후가 아슬아슬하게 켄지의 공간 통로가 닫히기 전에 들어왔다.
추격 성공.
강후가 잠시 숨을 돌리며 안도하려던 찰나, 자신을 보며 비웃고 있는 켄지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이내 그 비웃음의 의미가 드러났다.
“음.”
켄지와 자신은 의지할 구조물이 하나도 없는, 빌딩 숲 사이 허공에서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순간 이동은 앞서 후쿠오카 해방구에서 쓰고 온 터라 세컨드 플랜이 전혀 없는 상황.
‘X 됐네.’
그래서 한마디 표현으로 지금의 상황을 정리하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확실하게 X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