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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85화 (185/304)

185화 타락한 진실 (2)

* * *

당황해서 자신의 뒤를 쫓는 하야부사 길드원들의 모습이 재밌었다.

한편으로는 놈들이 치밀하게 판을 짜놨다는 생각도 들어, 섬뜩한 구석도 있었다.

입구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여기저기 쌓인 시체의 수도 더 많이 보였다.

일부는 입구의 위험 지역을 빠져나오는 것까지 성공했던 듯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서 뒤통수가 뚫려 죽었다.

강후가 다시 ‘순간이동’을 지정한 위치를 확인했다.

바로 입구 앞이다.

즉, 순간이동을 쓰면 바로 입구 겸 출구가 나오고 바로 나갈 수 있다.

여기서 잡히거나 죽지만 않는다면, 탈출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한눈만 팔지 않으면 된다.

타앙! 타앙!

그 와중에도 마탄을 쏘는 소리가 시끄럽게 강후의 귓전을 때렸다.

다만 총성을 듣고 있음에도 피하진 않았는데, 직관이 발동되지 않아서였다.

직관이 발동되지 않았다는 것은 조준이 정확히 되지 않았다는 뜻. 그래서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사기네.’

그래. 사기가 맞다.

이런 능력을 가진 성좌가 자신에게, 그것도 일방적으로 고개를 숙이는 계약을 제시했던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감격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황야의 전략가를 만난 것이 행운인 것 같달까.

‘무난하게 쫓기는 그림은 재미없지.’

강후는 추격을 따돌리는 와중에도 자신이 생각한 그림대로 판을 짰다.

【붕괴】

적극적으로 활용한 스킬은 붕괴였다. 예전에 윤상미와 간 던전에서 얻은 스킬이다.

쿠드드득!

붕괴 스킬을 쓰자, 마치 투명한 포크레인으로 땅을 판 것처럼 순식간에 구덩이가 생겼다.

그 규모가 성인 십수 명은 충분히 매장할 수 있을 만큼 커서,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구덩이를 파는 암살자라니. 선 세게 넘네.’

헛웃음이 났다.

단검을 든 상태로 후방에 구덩이를 만들어내면서 달려가고 있는 풍경. 익숙해질 수 없는 그림이다.

바로 그때.

……!

직관이 발동됐다.

【귀요미!】

강후가 슬라임을 만들어냄과 동시에 신속 회피 스킬로 우측 이동을 전개했다.

퍼엉!

그러자 저격에 노출된 슬라임의 양쪽 눈이 X자로 변하며, 제자리에서 풍선 터지듯이 사라졌다.

자신을 추격해 오는 저격수는 총 아홉 명.

전부 총을 들고 있는지라 수적으로는 압박이었지만, 그것이 열세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정조준 과정을 거치고 저격하는 저격수들은 강후 입장에서는 까다로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변수가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별도의 조준 과정이 없이 눈으로 가늠하고 바로 방아쇠를 당겼던 것이다.

보통 게임식 표현을 빌려서 ‘노줌’이라고 하는데, 원작에서는 ‘눈 조준’이라는 표현을 썼다.

저격에 일가견이 있는 헌터들만이 가능한 방식이기도 하다. 맞추기가 정말 힘들어서다.

직관이 발동되는 순간, 이미 방아쇠를 당긴 상태이므로 강후 입장에서도 까다로운 적이었다.

그래서 강후는 그림자 걸음을 활용해서 더욱 상대의 시야를 교란하기로 했다.

아무리 자신이 회피에 능하다고 한들, 언제까지 무한대로 마탄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마탄은 한 번만 실수해도 즉사로 연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살상 수단이다.

“보자. 너희가 얼마나 근성이 있는지.”

강후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이동 속도를 높였다.

세트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 온 던전이다. 이제 와서 포기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 * *

같은 시각.

‘우연이 참 신기하네.’

강후를 쫓는 그녀의 눈빛이 이채를 띠었다.

우연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것은 이곳에서 이 남자를 만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일전에 강후가 정문 제약의 제1 연구소에 레드 키를 전달하기 위해 왔을 때.

연구소 안쪽에서 저격 포인트를 잡고 증선락을 견제했던 바로 그 저격수였다.

그녀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하야부사 길드로부터 용병으로 고용이 되어서였다.

워낙 솜씨 좋은 저격수로 소문이 나 있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셈.

한국, 일본. 그 넓디넓은 땅에서 이렇게 다시 마주치게 됐으니, 우연은 분명 우연이었다.

실력은 볼 것도 없었다.

당시에 자신이 저격 한 번을 서포트해 준 것만으로 증선락의 손가락 두 개를 잘랐으니까.

증선락이 어떤 헌터인지 잘 아는 그녀로서는 강후의 실력을 의심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니 지금 자신의 곁에 있는 저격수들이 헛방을 연속으로 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다.

당시에도 강후는 다국적 용병대의 집중 저격이 있었음에도 어렵지 않게 피했다.

마치 조기 경보 시스템을 갖추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덕분에 저격수들만 놀림감이 됐었다.

‘나름 신속 이동에 특화가 되었는데도 거리가 안 좁혀져.’

몸에 바짝 힘이 들어간다.

저격은 물론이고 추격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강후를 상대로는 예외였다.

민첩한 암살자에게 추격을 논하는 것이 어불성설일 수는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 강후는 계속 저격에 노출된 상태로 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무작정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뒤에 저격수들을 단 채로 좌우 회피를 해가며 이동 중이었다.

그럼에도 쫓아가질 못하는 것이다.

만약 정직한 직선 이동 대결이었으면 진즉에 지평선 너머로 강후를 놓쳤을 상황이었다.

“X발, 그냥 포기하자.”

“야, 갈수록 멀어지잖아, X발!”

“X 같네…….”

뒤에서 욕이 터져 나온다.

마탄을 다루는 솜씨만 있는 녀석들이라, 장기 추격전에는 젬병이었다.

다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추격할 의지를 잃고 자리에 멈춰서고 있었다.

추격의 시작은 아홉 명이었지만, 이제는 그녀 하나로 줄었다. 이쯤이면 됐다고 생각한 거겠지.

그도 그럴 것이 어차피 입구와 출구가 한 곳이기에 결국 강후를 만나게 될 거란 계산이었다.

‘죽이고 싶은 게 아니라,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네.’

다시 속도를 내는 그녀는 앞서 강후를 쫓던 저격수들과는 생각하는 것이 조금 달랐다.

우연이 두 번 겹치면 필연이라는데.

그때도 흥미로웠던 저 헌터의 실체가 궁금했다. 어떤 능력을 가졌고, 뭘 하는 헌터인지.

물론 서로의 이름조차 알기 힘든 세상에서 제대로 된 통성명은 어렵겠지만.

그래도 말은 한번 섞어보고 싶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연구소에서 대화나 나누는 건데.

그때는 스스로 신비주의니 뭐니 하고 생각하다가, 접점을 만들 기회를 차단하고 말았다.

프스스슷.

이내 일행을 떨어져 나온 그녀가 강후를 부지런히 쫓았다.

“야, 야! 뭐하러 쫓아가?”

“그만 가, 인마!”

“됐어. 저 X, 어차피 용병이잖아. 하고 싶은 대로 냅둬. 뒈지는 것도 지 운명이지, 뭐.”

“하여간 똘끼는…….”

그녀를 몇몇 헌터가 말렸지만,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결국 뜨내기 용병이니까. 세심하게 챙겨 줄 필요는 없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 * *

거리가 좁혀지지도, 멀어지지도 않는 시점에서 강후가 한 번 뒤를 돌아봤을 때.

의외의 상황을 목격했다.

뒤를 쫓는 저격수가 눈 조준을 하던 헌터만 남았다는 사실은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 저격을 당할 줄 모르는 만큼, 계속 시야를 교란하며 거리 벌리기에만 집중했었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니, 어느 순간부터 상대가 더 이상 마력탄총을 겨누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뒤로 확 돌려서는 등에 메고 있었다. 별도로 손에 든 무기도 없어 보이고, 권총 형태도 없었다.

게다가 양손까지 들고 있는 것이 전혀 싸울 의사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

그래서 강후도 멈춰 섰다.

동시에 상대도 멈췄고,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신호를 손짓을 통해서 보냈다.

‘피차 서로 거리를 아예 좁혀버리면, 내 쪽에서도 노림수가 많아지는 게 사실이지.’

상대와 가까이서 대화를 하더라도 크게 상관은 없을 듯했다.

완전 근접 거리에서는 거너보다 암살자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니까.

강후는 가만히 서 있었고, 상대가 점점 가까워져 갔다.

서로 복면을 하고 있었지만, 가까워질수록 상대가 여자라는 사실은 알아볼 수 있었다.

두껍게 잡힌 쌍꺼풀도 그렇고, 모자 뒤편으로 쭉 나온 머리카락도 제법 길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거리가 좁혀지자, 그녀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당신. 정문 제1 연구소?”

“음?”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싶었다.

잘못 들었나 했다. 갑자기 정문 연구소 얘기가 나올 만한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강후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녀가 부연 설명을 했다.

“나 그때, 당신을 서포트하려고 저격했었어.”

“그랬나.”

강후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기억은 당연히 있었다. 그때 증선락과 전투를 치르는 과정 중에서 저격의 도움을 받았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현장에 같이 있었다고 할 수는 없다.

“서로 눈빛으로 교감을 했었지. 전략적으로 증선락을 끌어들이고 싶어 했잖아? 역공하려고.”

“음.”

“그때 당신의 생각을 알아보고, 나도 저격으로 템포를 맞춰 줬었던 거야. 다만 용병 신분으로 거기를 갔던 터라, 괜히 인사하면서 신분이 노출되고 싶진 않았어.”

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당시에 연구소 안에 있던 저격수인지 아닌지가 크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고마운 감정을 느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뿐이니까.

다만 그것과 별개로 그녀의 실력이 좋다는 생각은 했다.

오늘 던전 안에서 경험한 실력도 보통은 아니다.

대응할 방법이 당연했기에 문제가 없었지, 아니었다면 진즉에 몸의 어딘가가 뚫렸을 터다.

“그때, 증선락의 손가락을 자르는 것을 보고 실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도 똑같네.”

“칭찬이면 고맙게 듣지.”

“세상이 참 좁아, 그렇지?”

“그러게. 당신이 그때 그 사람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맞다면 감사 인사는 전하고 싶었어.”

담백하게 말했다.

그때 전하지 못했던 말을 지금 하는 것이기도 했다. 당사자가 아니라면 아닌 대로 상관없다.

“혹시 나중에 쓸만한 거너가 필요하면 연락해 줄 수 있을까? 실력 좋은 암살자, 정말 좋아하거든.”

순간 복면 사이의 눈가에 홍조가 일렁이는 것이 보인다.

뭐지, 이 여자? 딱히 낯부끄러울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지레 부끄러워하는 눈치다.

분위기랑 전혀 안 맞는 방향이기는 하지만, 개인의 취향은 다른 법이니까. 존중은 해 줘야겠지.

강후가 버퍼인 박동재를 선호하듯, 저격수인 그녀가 암살자를 선호하는 게 이상할 건 없다.

암살자가 적의 시선을 많이 잡아끌수록, 저격수 입장에서는 노릴 수 있는 찬스가 많아질 테니.

다만 그건 같이 호흡을 맞출 때의 얘기고, 적이라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녀가 품속에서 꺼낸 종이 하나에 마침 갖고 있던 펜으로 쓱쓱 뭔가를 적었다.

그리고는 살짝 구겨서는 강후에게 휙 던져 주었다.

내용을 보니, 헌터그램 보안 계정 주소였다. 일전에 타카시에게 받았던 것과 같은 형태다.

특정한 사람에게만 공유하는 계정으로 일반적인 계정으로는 절대 노출되지 않는다.

“이름은 아야네. 꼭 연락해 줘. 실력 있는 암살자랑 꼭…… 해 보고 싶어.”

“목적어를 제대로 말해. 뭘 하고 싶은 건데.”

강후가 여기까지 와서 엉뚱하게 얼굴을 붉히고 있는 ‘아야네’에게 일침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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