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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83화 (183/304)

183화 친구의 자격 (3)

* * *

그 이후로도 강후와 타카시는 던전 안에서 계속 전진하며 나아갔다.

이곳은 몬스터와의 전투는 거의 없었고, 있다 해도 순식간에 정리되는 수순이었다.

그렇게 30분이 흘렀다.

강후는 묵묵히 던전의 패턴 해결에 집중했다.

덕분에 할 일이 없어진 타카시가 무료함을 느끼게 될 즈음.

“그만 가죠.”

타카시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러자 강후가 웃으며 답했다.

“이제 더 궁금하신 게 없나 보죠?”

“음?”

“언제까지 시험만 계속하실 건가 싶어서요.”

“뭐…… 이 정도면?”

속내를 들켜 버렸지만, 타카시는 딱히 어색해하지는 않았다.

너무 노골적으로 패턴이 쏟아지는 던전에 데려오긴 했으니까. 모르는 게 바보다.

타카시가 이어 물었다.

“생판 모르는 던전에 왔는데 편하게 가고 싶진 않았어요?”

헌터의 당연한 본능이다.

불확실함과 마주하는 것은 바로 죽음과도 직결될 수 있는 문제라 대다수의 헌터가 꺼린다.

물론 도전과 모험을 즐기는 헌터도 있지만, 보통은 사전 정보가 있는 것을 선호하는 것이다.

그러면 위험은 최소화하면서, 쓸만한 과실은 전부 취할 수 있으니까.

강후가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당장 닥칠 일도 알 수가 없는데, 던전에서 당황하지 않고 편하게만 가려는 게 의미가 있습니까?”

“허허.”

“끊임없이 긴장하고, 질문을 던지며, 상황을 탐구하고 파악하는 것은 제 성격이기도 해서요.”

덤덤하게 말하는 강후의 말에서는 진심이 묻어났다.

이 세계에서 눈을 뜬 이후로 강후는 한 번도 마음 편히 지냈었던 적이 없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극한의 피로감을 느끼고 탈이 나도 진즉에 났을 상황.

하지만 강후는 긴장을 즐겼다.

그리고 이 악물고 쫓아가야 할 목표가 있음에 감사했다.

열세 개의 별은 여전히 강후에게 위협적이고, 그래서 동기부여가 되는 인물들이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타카시도 마찬가지다.

녀석도 레벨로만 따지면 자신에 비해 3배 이상은 될 정도로 높다. 비교 선상 자체가 다른 것이다.

“솔직히 놀랐어요. 암살자치고는 매력적인 스킬을 꽤 가지고 있던데요.”

타카시가 감탄하며 말했다.

오늘 그가 본 스킬이 자신이 가진 스킬의 ‘일부’라는 사실을 안다면 더 놀랄 것이다.

결국 타카시도 열세 개의 별과 아직은 연결이 되어 있는 만큼, 강후도 다 보여 주지는 않았다.

그래도 충분할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타카시가 강후에게 집중해서 본 것은 그림자 걸음, 분신술, 직관, 영혼 파동이었다.

암살자가 기만에 능한 것은 당연하다 치더라도.

사전 회피 능력이나 정신계 능력까지 갖고 있는 것은 상당히 놀란 부분이었다.

타카시가 검술을 기반으로 하지만, 분신 활용 능력을 장착한 것만으로도 지금의 경지에 올랐다.

헌터들은 타카시가 분신을 다루는 능력을 동경하고, 또 매우 까다로워 한다.

이렇듯 주 능력에 따라붙는 다른 부수적인 능력 한두 개만 있어도 평가가 달라지기 마련.

한데 강후는 암살자라는 틀에서 완전히 벗어난 스킬을 꽤 많이 갖고 있었다.

그리고 타카시도 확신했다.

강후가 자신을 아직은 전부 믿지 못하기에 일부는 의도적으로 숨기고 보여 주지 않았다고.

그래서 더 궁금했다. 싸매고 가릴수록, 속이 더 보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이치니까.

좋은 스킬과 스펙을 가졌음에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모든 상황에 의문을 갖는 암살자.

타카시는 강후가 꽤 마음에 들었다. 자신과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던전 밖.

아파트 앞에 보이는 계단 앞에 강후와 타카시가 앉았다.

언덕 위에 있는 아파트이다 보니, 정면에는 언덕 아래로 내려가는 긴 계단이 만들어져 있었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지만.

사람들이 살았을 때는 어린아이들이 열심히 뛰어놀면서 오르락거렸을, 딱 그런 계단 같았다.

타카시가 백팩에 미리 챙겨왔던 커피를 마셨다. 보온병에 담긴 따뜻한 믹스커피였다.

정작 분신은 마실 수도 없으면서 왜 챙겨왔는지는 의문이지만, 덕분에 공짜 커피를 마셨다.

강후가 따뜻한 커피를 홀짝이며 약간의 쌀쌀함에 으스스해진 몸을 다스리는 동안.

옆에 앉은 타카시의 분신도 마시는 척(?)만 하며, 강후와 장단을 맞췄다.

그때, 계단 아래의 맞은편에 보이는 멘션에서 한 남자가 나와서는 분리수거를 하고 돌아갔다.

여기에 가만히 앉아 풍경을 보고 있자면, 1990년대의 주택가가 생각날 만큼…….

아늑하고 평화로워서, 다른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곳이었다. 느낌이 좋았다.

말이 오가지 않는 적막도 괜찮았다. 강후는 침묵을 어색해하기보다는 즐기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타카시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기에 먼저 침묵을 깨고 말문을 열었다.

“당신과 뭘 왁자지껄하게 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이득을 의도적으로 노리는 것도 아닙니다.”

진심이었다.

타카시를 열세 개의 별에서 떼어놓고 싶어 접근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에게서 던전 같은 알맹이만 취할 생각으로 접근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던전에 대한 집요한 분석이나 연구, 공략에 있어서는 진심인 타카시의 열정이 좋았다.

자신과 결이 비슷하다고 느끼는 부분도 분명 있었다.

타카시가 되물었다.

“당신은 나에 대해서 잘 모르지 않습니까? 우린 이번에 처음 본 사이인데 말이죠.”

“그게 중요한가요?”

“…….”

맞다.

인연을 언제 맺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가 중요한 것은 절대 아니다.

헌터들의 관계라는 게 그렇다.

어제까지 친하고 가까웠더라도, 오늘은 적이 될 수 있다.

그 정도면 차라리 다행이다. 내일은 내 곁에 없을 수도 있다. 죽음은 바람처럼 늘 곁에 있으니까.

“그저 당신처럼 던전 하나하나에 애정을 갖고 공략하고 싶을 뿐입니다. 가슴 떨리게 하는 던전을 치밀하게 연구하고, 공략하고, 성취감을 느끼고 싶은 거죠.”

말주변이 좋지 않은 타카시 앞이다 보니, 평소보다 무척 말을 많이 하게 되는 강후였다.

그게 부자연스럽다거나 싫지는 않았다.

기본 성격을 억누르고, 높인 텐션으로 말할 수 있는 만큼 타카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강후의 말에 깊은 울림을 느꼈는지, 타카시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저도 하나부터 열까지 치열하게 던전에 도전하는 게 좋습니다.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거든요.”

강후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타카시다운 대답이다. 녀석은 원작의 모습 그대로였다.

타카시가 말을 덧붙였다.

“전에도 시험을 했었는데. 이번에 한 번 더 시험해서 미안합니다. 그만큼 당신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어요.”

“이해해요.”

“다음에는 제대로 나랑 공략 한 번 해 볼 생각 있습니까? 미해결과제가 남은 던전이 꽤 많거든요.”

“대환영입니다.”

당연히 오케이다.

타카시는 열세 개의 별과의 인연을 끊는 것과 별개로 헌터로서도 매우 쓸만한 인재다.

솔직히 그가 자신과 어울려주느냐의 문제지, 나한테 어울릴까를 고민할 포지션은 절대 아니다.

“우리 서로 레벨이 몇인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이런 건 생각하지 말죠. 피곤하니까.”

“밥값은 해야겠다 정도만 인지하고 있죠, 그럼.”

“다음에는 제가 먼저 연락할게요. 그때는 서로 편하게 이름이라도 부를 수 있으면 좋겠네요.”

“신강후입니다. 나이는 29세.”

“아키야마 타카시. 서른셋.”

“형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아니. 그냥 타카시라고 불러 줘요. 형이라는 단어를 썩 좋아하진 않아서…….”

그 순간, 강후는 타카시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라 멈칫했다.

원작에서 직접 언급된 적은 없지만, 암시하는 듯한 느낌으로 언급된 적이 있는 내용.

그것은 타카시가 히키코모리의 삶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별한 남동생에 대한 얘기다.

그 역시도 충실하게 구현이 되어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타카시의 아픔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알았어, 타카시.”

“그래, 신강후. 다음에 또 보자고.”

둘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헤어짐과 만남이 익숙한 강후인지라, 갑자기 자리가 정리 분위기로 가는 것도 어색하지 않았다.

그렇게 먼저 강후가 아파트 단지를 떠나며, 타카시와 작별 인사를 하려던 그때.

타카시가 자신을 향해 오른손의 새끼손가락을 펼쳐 보였다.

처음에는 무슨 시그널인가 싶었지만, 이어진 타카시의 말을 듣고는 모든 의문이 풀렸다.

“네가 이동할 그림자는 새끼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려. 직접 확인해 봐. 차이가 있을 거야.”

그것은 바로 강후가 끝끝내 스스로는 풀지 못했던 자신의 습관, 그림자 걸음 스킬의 약점에 대한 얘기였다.

친구가 된 기념으로 받은 선물치고는 의미가 큰, 강후에게는 목숨만큼 소중한 선물이었다.

* * *

리코우 타워로 돌아온 후.

강후는 지하의 훈련장에서 바로 연습에 들어갔다.

타카시의 지적대로 그림자 걸음 스킬을 쓰면서 살펴보니, 과연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완벽한 마나 분배가 이뤄지지 않아서, 마나 흐름이 이동 직전에 달라졌어.’

원인 진단도 끝났다.

습관이 맞았다.

그림자를 빨리 전개하려는 마음이 앞서다 보니, 디테일을 100%가 아닌 99%만 챙겼던 것이다.

거기서 놓친 1%가 바로 새끼손가락의 흔들림이었다.

‘돈으로도 못 바꿀 조언을 얻었군. 막힌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네. 이걸 첫 만남에 봤다는 거지.’

새삼 타카시의 관찰 능력에 경외감이 드는 강후였다.

자신도 꽤 하는 편이지만, 관찰 능력에서만큼은 타카시에 비해서는 한 뼘 모자랄 듯했다.

어쨌든 오늘은 큰 소득이 있는 것 같아서 뿌듯했다.

타카시와 가까워지는 것은 깊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녀석을 상대로는 재거나 따지는 것보다 솔직하게 밀어붙이는 것이 훨씬 더 잘 먹히는 편이다.

애초에 돌려 말하기나 올려치기가 잘 안 통하는 타입이기도 하다.

그래서 앞으로도 있는 그대로 타카시를 대할 생각이었다.

그의 이용 가치가 높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솔직하게 얘기해 주는 게 정답이다.

듣기에 따라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녀석은 그런 솔직함을 매우 마음에 들어 하는 성격이다.

“남은 암흑기 던전 다섯 개는 일단 좀 미루고.”

강후가 스마트폰으로 확인한 현재 상황을 살피며, 일부러 보류시켰던 공략 일정을 재확인했다.

토우시 길드와의 전면전이 다시 격화되고 있어서다.

물론 전투의 영향권에 있는 던전은 아니었지만, 굳이 무리하면서 가고 싶진 않았다.

‘임밸런스 포인트가 JR삿포로역 근처인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위치가 정확히 특정이 안 돼.’

강후가 일본에 온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임밸런스 포인트가 여기에 있어서였다.

국내에서도 이미 재미를 본 공간이다. 시공간과 차원이 만들어낸 오류의 이득을 취하는 곳.

예전부터 일본에 오면 꼭 들르겠다 생각했었는데, 위치가 아주 디테일하게 기억나진 않았다.

원작에서 언급된 내용은 이랬다.

- JR삿포로역 인근에 있는 임밸런스 포인트는 유독 햇빛이 들지 않는 빌딩 옆의 을씨년스러운 던전 안에 있었다.

장시환은 여기서 자신이 도대체 어떻게 임밸런스 포인트를 찾았나 싶었다. 그만큼 위치가 엉뚱했다.

이 내용을 가지고 가서, 조건에 맞는 던전을 찾아봐야 하는 상황. 쉽다고 하기는 어려울 상황이다.

바로 그때.

안영호에게 전화가 왔다.

던전 얘기는 보류 상태라 나올 시점이 아닌 만큼, 그에게서 전화가 올 용건은 하나밖에 없었다.

“어, 영호야.”

- 형님. 후쿠오카 해방구 진입을 도와줄 사람을 찾았습니다. 검문 검색 프리패스예요.

“내부자군.”

후쿠오카 해방구로 들어갈 인간 통행증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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