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80화 (180/304)

180화 신의 바람 (2)

* * *

혈화에 휘말린 토우시 길드원은 즉사했다. 터져 죽었으니까 죽음을 의심할 이유도 없었다.

늘 그랬듯, 강후는 그 헌터에게서 성좌가 강탈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강탈이 막 진행되는 찰나, 갑자기 계약이 해지되었다는 메시지가 이어졌다.

내용은 이랬다.

【‘신의 바람’과의 계약이 해지되었습니다. 구속이 없는 계약자와 유지될 수 없는 계약입니다.】

성좌창에 잠시 추가됐던 성좌, 신의 바람에 대한 정보가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재빨리 내용을 확인했다.

【신의 바람】

【자폭으로 생을 마감하는 계약자에게 신병(神兵)의 구성원이 될 영광스러운 기회를 부여합니다.】

‘뭐지, 이 섬뜩한 설명은.’

눈살이 찌푸려졌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그다음을 부여하는 다리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니.

그래서 방금 토우시 길드원도 미련 없이 자폭을 택한 듯했다.

저기서 말하는 신병이 무엇인지는 강후도 짐작할 수 없었다. 원작에 없는 설정이라서다.

원작에서 나오지 않은 설정이라면 크게 두 가지다.

무게감이 적어, 굳이 구축할 필요가 없던 설정이었거나. 혹은 마왕에 관련된 설정이었거나.

둘 중 하나다.

마왕에 관련된 설정을 짜지 않은 이유는 너무 간단했다.

소설의 엔딩 시점이 마왕 등장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왕 부역자 엔딩이 난 것이고.

‘전자보다는 후자 같은데. 이런 성좌를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강후의 눈빛이 깊어졌다.

놀란 것은 강후를 지켜보는 성좌도 마찬가지였는지, 대재앙 – 어둠이 간만에 목소리를 냈다.

【어둠은 빛의 뒤에 음흉하게 숨어있는 법이다. 멀지 않은 곳에서 은밀한 어둠을 찾아내었군.】

‘신의 바람에 대해 아십니까?’

【모른다. 나와는 결이 다른 녀석인 것 같다.】

대재앙 – 어둠의 대답은 간결했다. 대성전의 성좌도 모르는 이 성좌는 도대체 뭘까?

자폭이니 신병이니 하는 언급을 하는 것으로 봐서는 평범한 성좌 같지는 않다.

대성전에서 이름을 날렸을 법한 느낌인데, 대재앙 – 어둠은 아는 것이 없는 모양.

【대성전 외곽의 존재일 수도. 혹은 대성전 내의 은밀한 비밀일 수도 있다.】

차원 강탈자가 말을 보탰다.

성좌들도 잘 알지 못하는 성좌에 대한 이야기라서 그런지, 강후의 긴장감도 확 올랐다.

미지의 진실과 마주한 느낌이랄까. 소설로 따지면 떡밥만 뿌려진 느낌이라 기분이 묘했다.

원작자도 모르는 떡밥이라니.

어쨌든 할머니의 목숨도 구하고, 리코우 길드가 또 한 번 신세를 지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다만 성좌를 빼앗았다가 다시금 잃은 느낌이라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물론.

“형님. 우선 제가 여기를 수습할 테니, 숙소로 돌아가시겠어요? 아이템은 제가 회수하겠습니다.”

안영호가 눈치껏 나선 덕에 나름의 보상이 생기긴 했다.

죽은 토우시 길드의 헌터에게서 회수한 아이템을 직접 주려는 모양이었다.

그쯤이면 수고비로는 충분할 듯싶었다. 혹은 그 이상일지도.

“그래. 속 편하게 밥이나 먹으러 다닐 상황은 아닌 것 같네. 그럼, 수습하고 보자.”

“네, 형님.”

“고생해.”

다시 호텔로 발걸음을 돌렸다.

사람들이 강후의 모습을 스마트폰에 담고, 동영상을 찍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이번의 전투에 쓴 스킬이라고는 기교의 장막과 횡 이동, 대참수가 전부였으니까.

다만 당분간 헌터 그램의 이슈가 될 것 같기는 했다.

‘오사카 정의구현남’ 같은 낯뜨거운 타이틀이나 안 걸리면 다행일 것 같다.

* * *

호텔로 돌아오는 동안에 강후는 대재앙 – 어둠, 차원 강탈자와 좀 더 대화를 나눴다.

우선 대재앙 – 어둠은 자신을 의심하지는 말아 달라고 했다.

딱히 의심하지 않았음에도 강하게 신의 바람과 접점이 없음을 어필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만큼 강후에게 도매금으로 싸잡혀 보이기 싫어서였기도 하고.

동시에 여전히 강후에게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주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주시 중인 세 명의 계약자 중에 강후가 단연 으뜸이었다.

다만 성좌 특유의 자존심 때문에 다른 성좌들과 같은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못마땅할 뿐.

어쨌든 자신이 망설이는 사이, 강후가 훌쩍 성장을 한 상황이었기에 무게추는 꽤 기울어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대재앙 – 어둠이 오히려 강후의 심기를 잘 살펴야 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차원 강탈자는 자신의 강탈이 거부당한 것은 처음이라며, 당황스러워했다.

시종일관 차분하고 냉정한 그녀답지 않은 반응이었다.

일단 강후는 답을 얻을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해 봤자 끝나지 않는 의문으로만 남기 때문이다.

오히려 쓸데없는 불안감만 자극하게 된다. 성좌가 모르는 것을 자신이 알 수는 없다.

이번에 신의 바람에 대한 꼬리가 밟혔으니, 언젠가는 몸통을 볼 일이 있을 터.

그럼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 보면 된다. 신의 바람이라는 성좌가 있다는 것 자체는 알았으니까.

그렇게 대화를 일단락짓고는 호텔에서 쉬며 티비를 봤다.

늘 그랬듯이 헌터 관련 채널을 틀었다. 온통 일본어였지만 해석에 어려움은 없었다.

- 헌터 ‘호사카 켄지’가 현재 1급 지명수배범 ‘이시하라 유우지’와 함께 있는 것이 포착됐습니다.

일본 치안청 당국은 두 헌터의 조합이 매우 우려되는 조합이라는 입장입니다.

아울러 호사카 켄지에게 즉각적으로 이시하라 유우지와의 협력을 중단할 것을 경고했습니다.

“미친놈 둘이 만났네.”

강후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호사카 켄지는 공간 활용 능력 쪽으로는 알아주는 일본의 네임드 헌터다.

강후가 민수현을 구출했을 때.

- 실로 믿기 힘든 공간 이동 능력입니다. 일본에서 공간 이동으로 유명한 호사카 켄지도 이 정도 거리는 어려울 겁니다.

하고 이현석이 언급했던 인물이 바로 그였다.

켄지의 장거리 공간 이동 스킬은 10km를 훌쩍 넘는다.

강후의 순간 이동 능력은 활용에 제한이 있지만, 켄지는 마력만 있으면 언제든 가능했다.

켄지의 공간 능력과 유우지의 극딜 능력의 조합.

어디서 많이 본 조합이다. 바로 장시환과 채관형의 조합. 심판의 지옥에서 봤던 그 능력이다.

- 어제 촬영된 해당 영상은 두 사람이 오사카 시내로 들어온 영상이었습니다.

- 리코우 길드는 즉각 두 헌터에 대해서 경고 성명을 발표하고, 오사카 시에서 즉시 퇴거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꽤 골치 아파지겠군.”

일본 방문 시점이 아주 베스트했다고 말할 순 없을 듯했다.

물론 이런 것 하나하나 다 따지면 갈 곳은 어느 곳도 없다. 감수할 부분이기는 하다.

“이 빌어먹을 세계에 낙원 같은 건 없어. 지옥은 몰라도.”

침대에 몸을 눕힌 강후가 익숙한 멘트를 중얼거렸다.

원작의 신강후가 장시환에게 했던 말 중에 하나다.

그 말이 정말 어울리는 세계다. 힘이 곧 법이 되고, 나약함이 곧 죄가 되는 시대.

“후.”

뜨거운 한숨을 토해내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

내일부터 바쁘게 암흑기 파밍에 힘쓰려면 체력 회복은 필수다. 컨디션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 * *

그 이후, 일주일이 흘렀다.

레벨은 188.

던전 한 곳을 돌 때마다 레벨 2가 오른 셈이었다. 총 다섯 개의 던전을 공략했기 때문이다.

【신강후 Lv. 188】

【클래스 : 암살자】

【고유 재능 : 제법 우수한 주력 / 대단히 뛰어난 동체 시력】

【근력 760】【민첩 1015】

【체력 841】【마력 21】

【항마 510】【맷집 660】

【* 암흑기 280】

암흑기가 대폭 올랐다.

130에서 280까지 올랐으니, 무려 150이 오른 셈.

한 곳에 15 정도의 암흑기 파밍을 예측했는데, 두 배의 목표를 달성했다. 상당한 초과달성이었다!

“솔라키움, 매드 솔라키움은 정말 원 없이 썼네. 뼈랑 근육이 녹는 것 같은 느낌이 이런 건가?”

던전 출구 바로 앞에서 강후가 널브러진 채로 찬 바람을 쐬며, 열기를 식히고 있었다.

솔라키움도 8개로 줄었고, 매드 솔라키움 역시 10개가 됐다. 슬슬 추가로 살 때가 온 것이다.

각신환은 아꼈다.

손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을 때가 몇 번이고 있었지만.

추가 수급이 너무 어려운 귀하신 몸이다 보니, 쓸 수가 없었다. 손이 떨렸달까.

그래도 어찌저찌 공략은 성공했다. 애초에 던전 수준 자체가 아주 높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흑월참이 커.”

강후의 총평이었다.

일반 헌터가 와서 똑같이 공략을 했다면, 기껏해야 다섯 군데에서 30 정도 올렸을 터다.

대량의 암흑기 파밍을 위해서는 망령 몬스터 사냥이 필수인데, 녀석을 죽일 수가 없어서다.

강후는 암흑기를 활용하는 히든 스킬 흑월참을 이용, 망령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었다.

관련 스킬이 있고 없고의 차이로 5배 이상의 기댓값을 얻은 것. 엄청난 격차였다.

“스킬도 미들 보스, 메인 보스가 있던 다섯 번째 던전에서 두 개는 강탈했고…… 이쯤이면 충분하네.”

앞서 미들 보스, 메인 보스가 없는 네 던전에서는 따로 스킬이 추가된 것이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던전은 보스가 두 마리 있었고, 녀석들로부터 스킬을 톡톡히 챙길 수 있었다.

【칠야(漆夜)】

【스킬 숙련도 : Lv. Max】

【해가 없는 밤에는 암흑기의 회복 속도가 2배 증가합니다.】

현재 강후의 암흑기 회복 속도는 순흑의 구도자 덕분에 분당 1.

칠야 덕분에 이제 분당 2의 기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밤이라는 전제가 붙긴 하지만.

암흑기는 지금처럼 성좌 영향이 없으면 자연 회복이 불가능하기에 관련 상승효과는 매우 중요했다.

【위선(僞善)】

【스킬 숙련도 : Lv. Max】

【신성력 공격을 받으면 신성력의 일부를 암흑기로 회복합니다.

단, 무속성 공격은 제외.】

흥미로운 스킬은 또 있었다.

아마도 던전의 언데드 몬스터들이 전부 암흑기 기반의 몬스터라 그런지 특화가 이렇게 된 모양.

언젠가는 신성력을 다루는 몬스터를 상대할 일도, 헌터와 싸울 일도 생길 것이다.

미래를 생각하면, 아주 좋은 구성이었다.

이를테면 구원의 성녀 엘리자베스 같은 신성력 기반 헌터를 상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지금은 암흑기 기반 스킬이 흑월참 하나밖에 없지만, 앞으로는 더 늘어날 거고.’

장래가 유망한 우량주에 투자하는 것과 비슷한 형태라, 강후로서는 기대가 컸다.

암흑기 관련 스킬은 스탯의 희귀함만큼이나 위력이 상당하다.

암흑기는 보통 스탯 1,000까지는 150이 오를 때마다 대미지가 2배 정도 오르는 것으로 본다.

즉, 이번에 150이 오른 강후의 흑월참도 이전보다 최소 2배 이상의 대미지를 기대할 수 있다.

적게 잡아서 그 정도고, 다양한 변수를 고려한다면 2.5배나 3배가 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망할 타카시 새끼.”

혼자만 있는 던전 안이라 타카시에 대한 욕이 바로 튀어나왔다.

일주일 내내, 언데드 던전을 공략하는 동안 강후는 그림자 걸음의 습관을 찾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찾지 못했다.

모든 움직임을 머리에 담았지만 도저히 어디에서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그 생각 덕분에 좀 더 움직임이나 자세가 깔끔해진 것은 맞지만, 마음의 찝찝함이 남았다.

이래서야 타카시와의 사이에서 밀고 당기기는커녕, 쭉 당겨갈 판이었다.

물론 그래서 이 악물고 일주일 동안 타카시에게 사소한 DM 한 번 보내지 않기도 했지만 말이다.

친구가 되자고 깊숙하게 어필하고 들어갔던 만큼, 이번에는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녀석의 성격이 그렇다.

너무 들이댄다 싶을 정도로 가까이 굴면 흥미를 잃고 멀어진다.

그래, 괴짜라는 표현이 딱 맞았다. 녀석의 심리를 요리하려면 반드시 적절한 레시피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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