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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79화 (179/304)

179화 신의 바람 (1)

후미야의 말은 적당히 절충점을 찾은 제안이었다.

만약에 강후의 활동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형태로 길드 얘기를 꺼냈으면 고민도 안 했을 터.

그런데 그는 ‘해외 활동 한정’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즉, 국외에서 활동할 때만 소속될 길드로서 리코우 길드가 어떻냐고 묻는 것이다.

솔깃한 제안이다.

‘대다수의 헌터물 소설이 그렇듯이 내 소설도 실력 있는 헌터는 프리랜서가 낫지.’

하지만 강후의 생각대로 이 세계는 프리랜서에게 더 많은 특혜가 가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그 빈틈이 바로 ‘옵저버’다.

길드원과 동일한 대우, 혹은 그 이상을 받으면서 길드에 대한 의무를 전혀 가지지 않는 존재.

일전에 스핏파이어 길드가 강후에게 제안했던 포지션도 바로 옵저버였다.

인재를 영입하고 싶은 후미야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안이 너무 확실하다.

강후가 답했다.

“괜찮습니다. 협력을 제안하기를 원하신다면, 옵저버 자격을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역시…… 그렇군요.”

후미야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예상했던 대답이라는 반응이다.

그도 구구절절 뒷말을 덧붙이지 않는 것이 한 번, 떠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리코우 길드에서 저를 필요로 하고, 그에 알맞게 옵저버 자격을 주시면 1순위로 고려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저희도 요즘 출혈 딜러를 구하는 과정에서 애를 먹는 터라. 꼭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길드 내에 암살자나 광전사의 수가 적은 편인가요?”

“많이 적죠. 토우시 길드와 전면전을 치르면서 꽤 많이 잃기도 했고요. 불균형이 좀 있습니다.”

후미야가 엄지손가락 끝으로 이마를 지그시 눌렀다. 생각할수록 머리 아픈 문제라서다.

암살자의 부족은 대다수 길드가 호소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강후는 자신의 직업이 갖는 가치가 과거보다 훨씬 고평가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쨌든 감사한 제안을 주셨는데 거절을 하게 됐네요. 너그럽게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별말씀을요. 제안과 거절은 헌터에게는 일상인걸요. 아쉬울 뿐이지 다른 건 없습니다.”

후미야가 웃었다.

그는 포근한 미소가 꽤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안영호에게는 분명 좋은 삼촌일 것 같았다.

앞으로도 리코우 길드는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지금처럼 계속 승승장구할 것이다.

토우시 길드라는 적대적 세력이 있지만, 오히려 적절한 긴장 속에서 힘을 키울 기회가 될 터다.

* * *

1시간 후.

강후는 안영호와 함께 오사카 시내를 거닐고 있었다.

맛집 투어라는 명분 아래 안영호가 강후를 끌고 밖으로 나온 것이다.

어차피 던전 공략의 시작은 내일부터이고, 오늘 별도로 훈련을 할 생각도 없었던 만큼.

강후도 못 이기는 척, 안영호를 따라 오사카 시내의 풍경을 살피고 있었다.

안영호의 성좌 정보를 살피니, 처음 그를 만났을 때에 비해서 상당히 성장해 있었다.

레벨을 정확히 가늠해 볼 수는 없지만, 못해도 250 이상은 될 것 같았다.

강후가 물었다.

“지금 레벨이 몇이야?”

“레벨요? 265쯤 됐죠?”

“날 만났을 때가 얼마 정도 됐었지?”

“137이었을 거예요.”

“꽤 많이 올렸네.”

“외삼촌이 어디 가서 얻어맞고 다니지 말라고, 아예 던전에서 살게 하셨어요. 죽고 싶었어요, 진짜…….”

“삼촌 찬스가 있다는 걸 감사하게 알아야지.”

“그건 맞아요. 쩔도 많이 해 주셨고요. 진짜 밥값 해야죠. 저를 도와주신 분이 너무 많아요.”

편법을 이용해서 안영호에게 경험치를 몰아주는 작업도 꽤 진행을 한 모양이었다.

사실 지금 성장은 그래야만 가능한 수준이기도 하다. 전방위적인 지원을 받았을 터다.

안영호의 장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난 힐러로서의 실력과 감각이다.

하지만 극단적인 단점이 있는데 바로 전투 능력이 없다는 것. 살상 능력은 제로였다.

그래서 일전에 강후를 처음 만났을 때도, 훨씬 레벨이 낮은 헌터들도 어쩌지 못했던 것이다.

안영호로서는 도망치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던 상황이었다. 그게 안영호의 단점이다.

‘성좌도 성장에 집중할 수 있게 경험치를 보조해 주는 쪽으로 붙었으니 앞으로도 걱정은 없겠군.’

안영호의 미래도 정유리나 박동재처럼 밝아 보인다.

정화 길드와 깊은 악연이 될 일도 막았으니, 아마 앞으로 리코우 길드에서 성장을 거듭할 것이다.

안영호 역시 강후에게는 꽤 중요한 카드 중 하나였다.

일단 유능한 힐러라는 부분에서 언젠가 까다롭고 어려운 던전 공략에 도움을 줄 가능성이 높고.

리코우 길드의 부 길드 마스터인 후미야는 물론, 네임드가 많은 외가의 힘을 뒤에 업고 있으니.

강후에게 직간접적으로 인맥을 확장해 줄 요소도 많았다. 그랬다. 이용 가치가 충분했다.

“형님.”

“응?”

“삼촌이 형님에 대해서 많이 조사를 하셨어요. 뒷조사 같은 것은 절대 아니고요. 실력 있는 암살자에 대해 관심이 많으시거든요.”

“안 그래도 아까 들었어. 길드 내에 암살자가 적다면서.”

“그루 길드와도 삼촌이 친분이 좀 있으신데, 거기서 얘기를 들으셨더라고요. 형님의 활약을!”

“출혈 딜러로 참여했던 용병 건을 말하는 모양이네.”

“네, 맞아요! 유능한 출혈 딜러 구하기가 어려운 건 저희 길드도 마찬가지거든요, 사실.”

“그렇게 품귀인가?”

“많이요. 국제 용병 시장에서도 출혈 딜러에 관련된 페이가 요 몇 개월 사이에 3배가 뛰었어요.”

“오호.”

흥미로운 얘기였다.

국제 용병 시장은 말 그대로 국적을 가리지 않고, 용병을 구하는 세계 시장의 흐름을 말한다.

일전에 정문 제약의 제1 연구소를 공격했던 다국적 용병대도 이렇게 탄생한 조직이다.

물론 중국 쪽에서 다수의 헌터 무리가 집중적으로 유입되긴 했지만, 구조는 어쨌든 그랬다.

“형의 최근 성장세를 생각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절대 놓쳐선 안 될 인재인 거죠.”

“영호야. 넌 정말 솔직하구나.”

“그러게요. 전 거짓말을 못 해요. 아니, 할 수가 없죠.”

“넌 영입에 관련해서 영업은 하면 안 되겠다.”

“맞아요, 형님. 하하하!”

안영호가 큰 웃음을 터뜨렸다.

【진실의 천리안】

【중립 성향의 성좌. 원하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진실을 말하게 하지만, 자신 역시 항상 진실만을 말해야 합니다.】

진실의 천리안을 메인 성좌로 두고 있는 진실의 눈, 안영호.

그러다 보니, 자신이 하는 말도 결국 진실일 수밖에 없다. 돌려 말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안영호의 성좌에게 말리지 않는 방법은 간단하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일단 말을 하면 진실만을 말하게 되기에 비즈니스적인 대화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때.

해 질 무렵, 저녁을 알리는 붉은 노을의 평화로움이 지평선을 따라 내리 앉을 즈음.

“저 새끼 잡아!”

“토우시 길드다!”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두 차례의 말밖에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것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뭐지?”

안영호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어디서 들린 걸까.

정황상, 토우시 길드원이 오사카 시내에 잠입해 있다가 리코우 길드의 순찰대에 발각된 모양.

서로 전면전 중이기 때문에, 적대 세력의 영역에 들어와 있는 첩자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이쪽! 이쪽이에요!”

“여기에요!”

시민들이 소리쳤다.

리코우 길드의 관할 아래에서 평화를 누리고 있는 시민들은 그들에 대한 신뢰가 높았다.

당연히 토우시 길드의 헌터들에게는 적대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갈 방향을 순간적으로 놓쳐버린 토우시 길드원이 움켜쥐고 있었던 단검의 방향을 돌렸다.

행인 중에 손녀와 함께 길을 거닐고 있던 할머니 하나를 노린 것이다.

우악스러운 손길로 손녀를 옆으로 밀쳐낸 그는 할머니의 목에 곧바로 단검을 겨누었다.

“할머니! 으아아아앙!”

아이는 울었고.

“유코! 여기로 오면 안 돼! 할머니 괜찮아! 얼른 저 언니들한테 뛰어가!”

할머니는 혹시나 손녀가 갑작스런 인질극에 휘말릴까 하는 걱정에 전력으로 손짓했다.

“이런 개새끼 같은 놈.”

안영호의 입에서 가감 없이 욕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는 혹시나 강후가 이 일에 휘말릴까 싶어, 미리 말리려던 그때.

“응?”

바로 옆에 있었어야 할 강후가 사라지고 없었다.

아주 작은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그새 강후가 자리를 비운 것이다. 예상도 못 한 결과였다.

안영호가 놀란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다시 강후의 모습이 보였을 때, 강후는 어느샌가 토우시 길드원의 뒤에 자리 잡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솨악! 쇄액! 서걱! 솨악!

강후의 단검이 인정사정없이 토우시 길드원의 몸을 베었다.

양쪽 손목, 허벅지 뒤쪽의 햄스트링, 그리고 뒷목까지!

전투를 수행할 능력을 상실하기에 가장 좋은 부위만 골라서 베어 버린 것이다.

다분히 의도적인 공격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이라 토우시 길드원은 할머니를 위협할 타이밍조차 잡지 못했다.

인질극을 벌이려다 오히려 난도질만 당한 셈이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피칠갑을 한 할머니가 그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피를 뒤집어썼지만, 그중에 할머니의 피는 없었다. 전부 악독한 ‘그놈’의 것이었다.

“와, 뭐야?”

“어떤 분이지? 리코우 길드 헌터 님인가?”

“바로 할머니를 구했어!”

행인들이 강후의 놀라운 활약을 보고는 하나 같이 스마트폰을 들어 그를 영상에 담았다.

강후로서는 썩 반갑지 않은 촬영이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위험을 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뭐랄까. 이때만큼은 내 일이 아닌 남 일이라는 생각이 잠시 사라졌던 듯했다.

한편으로는 손녀와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할머니에게 비극이 드리우지 않길 바랐을지도.

후회하진 않았다.

이기적으로 생각한다 해서, 꼭 모든 일에서 나만 생각할 필요는 없기에.

“크허억!”

쿵!

강후의 단검 난도질에 완벽하게 무장해제를 당한 토우시 길드원이 무릎을 꿇었다.

속절없이 쏟아져 내리는 피가 이미 얼마 남지 않은 그의 운명을 암시해 주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빠르게 이쪽으로 접근해 오는 리코우 길드의 순찰대가 보인다.

보니까 둘 다 검사 헌터였던 탓에 추격이 더뎠던 모양. 검을 든 뚜벅이들의 어쩔 수 없는 비애다.

한데 바로 그때.

“X발……!”

분노에 찬 토우시 길드원이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이내 몸 전체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자폭이다.’

이런 변화가 어떤 흐름인지 강후는 잘 알고 있었다. 자살 폭탄 테러라고 해도 무방할 상황.

폭탄을 따로 장착한 것이 아니라, 본인의 몸속에 있는 마나가 폭발의 매개체가 된다.

이대로 터지면, 마나가 같이 폭발하는 것이기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

탁!

그래서 손가락을 튕겼다.

혈화.

지금 상황에서는 가장 안전하게 ‘인간 폭탄’을 해체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리고.

퍼퍼퍼펑!

피의 폭발과 함께 하늘에서 붉은 살점이 눈처럼 쏟아져 내렸다.

다행히 손녀에게로 돌아간 할머니는 아이의 눈과 귀를 일찌감치 막아 두고 있던 상태였다.

적어도 이 참혹한 살육의 현장이 연소자 관람가가 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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