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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78화 (178/304)

178화 아키야마 타카시 (3)

- 이쯤이면 됐어요, 그만하죠.

“예?”

- 지금 서로 눈높이가 맞는 상태에서 싸우는 게 아니잖아요. 실력은 충분히 봤단 얘기에요.

타카시가 무덤덤한 목소리로 그만하자는 의사를 밝혔다.

강후의 입장에서는 이제 막 열기가 고조되려는 찰나인데, 타카시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말뜻은 충분히 이해했다.

지금까지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만으로 판단은 끝난 거겠지.

아무리 낮게 잡아도 지금 타카시의 레벨은 최소 550은 넘는다. 그 이하일 리는 없다.

한데 초반에 영혼 파동을 이용해 공세로 몰아붙이며, 위험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던 강후다.

그것으로 나름대로의 계산이 끝난 것일 터다. 꼭 끝장을 봐야 판단이 되는 것은 아니다.

- 근데 그거 알아요?

“어떤 것 말입니까?”

- 그림자 관련 스킬 쓸 때 말이에요. 쿠세가 있어요. 그거 안 고치면 힘들 거예요.

“역시…….”

쿠세.

습관을 말하는 것이다.

계속 그림자 걸음 스킬의 활용에서 본체의 위치를 간파당했었던 강후였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스스로는 절대 알지 못하는 습관이 어딘가에서 묻어나는 모양이다.

강후가 슬쩍 물었다.

“알려 줄 수 있습니까?”

- 날로 먹겠다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강조해 두죠.

타카시의 반응은 단칼이었다.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타카시다운 반응이 나왔다.

그는 불로소득, 무임승차 같은 단어를 정말 싫어한다. 그런 인간 군상을 혐오하기도 하고.

강후도 타카시에게 대답을 들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건넨 말은 아니었다. 찔러나 본 것이다.

다만 완벽주의의 성격을 가졌다 보니, 자꾸 신경이 쓰였다. 도대체 어떤 부분에서 읽힌 걸까?

‘재수 없으면 내가 말리겠는데.’

강후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타카시가 자꾸 자신을 생각하게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이래서는 피차 똑같아질 판이었다.

일부러 미해결 과제를 만듦으로써, 강후가 타카시에 대한 생각을 가볍게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물론 강후도 그만큼 타카시에게 생각의 울림을 준 것은 사실이었다.

타카시가 별다른 반응 없이 연습 전투를 종료한 것도 강후의 실력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미심쩍은 구석이나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었으면, 테스트는 지금보다 훨씬 더 길어졌을 것이다.

- 아직도 왜 나와 가깝게 지내고 싶은 건지는 의문이지만. 가벼운 연락 정도는 괜찮겠네요.

타카시가 무심한 말투로 말을 쓱 내뱉고는 분신의 몸에서 꺼낸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꼬깃한 상태의 종이라서 웬 쓰레기인가 했는데, 타카시의 헌터그램 보안 계정명이 적혀 있었다.

대외적으로 활동하는 계정 외에 개인 DM용의 계정이 별도로 있는 듯했다.

타카시가 말을 이었다.

- DM해요. 괜히 중간 다리 끼지 말자고요. 피차 보는 눈이 많으면 피곤하니까.

“좋은 생각입니다.”

종이를 넘겨받은 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리코우 길드의 시선이 싫은 것은 아니다. 사적인 만남에 길드를 낄 필요가 없을 뿐.

- 나가 봐요. 이제 훈련할 시간이니까.

“짧았지만 즐거웠습니다.”

- 다음에 날 만날 때는 쿠세에 대한 해답을 조금은 찾았길 바라죠. 쉽지 않겠지만?

“그때도 괜찮으면 한 수 가르쳐 주시죠. 저도 전력으로 타카시 님을 분쇄해 보겠습니다.”

- 불가능한 목표는 함부로 입에 담는 거 아니에요. 현실적으로 사는 게 중요하지 않겠어요?

“훗.”

강후는 듣기에 따라서 공격적으로 들릴 수도 있을 타카시의 말을 뒤로한 채, 폐공장을 나섰다.

타카시의 말은 있는 그대로, 문장 그대로 해석하면 피곤해진다.

그가 자신과 말을 나눴는가, 아닌가만 판단하면 된다. 전자면 관심 있다는 거고, 후자면 아니다.

그래서 주절주절 말을 계속 덧붙이는 타카시의 반응은 강후의 기준에서는 100점이었다.

안면은 확실히 텄다.

아마 다음 만남을 기약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괜히 속만 긁지 않는다면.

그렇게 열세 개의 별의 구성원 중, 한 남자의 마음에 첫 번째 파장을 일으켰다.

강후에게는 어느 때보다도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었다. 균열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 * *

“삼촌, 왜 강후 형님이 타카시에게 관심을 가진 걸까요? 평판 좋은 네임드는 더 많잖아요?”

“아무 이유 없이 만나고 싶어 했을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네 말대로 타카시의 평판이 좋진 않지.”

“그렇다고 길드에 소속된 것도 아니잖아요? 개인 소유의 던전이 많기는 하지만…….”

그 무렵, 안영호는 강후를 기다리며 외삼촌 스즈키 후미야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주제는 역시 강후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강후가 적극적으로 타카시를 만나고자 했던 것이 이해가 잘되지 않는 모양.

어지간해선 속내를 잘 읽는 후미야도 이번만큼은 강후의 생각을 짐작할 수 없었다.

물론 타카시가 대외적인 이미지가 안 좋아서 그렇지, 능력이 없는 헌터는 아니다.

실제로 그가 다루는 분신의 능력은 때때로 인체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분신이라는 존재 자체가 인체의 역학을 무시하는 결괏값을 낼 때가 종종 있기 때문에.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계산이 어그러질 일이 많이 생기는 것이다. 즉, 변수가 많았다.

“됐고. 그 부분은 더 이상 생각하지 말고, 강후 님을 최대한 깍듯하게 모시도록 해.”

“알겠어요, 삼촌.”

후미야가 계속 꼬리를 무는 대화 주제를 잘라냈다. 3자가 얘기해 봤자 알 수 없을 속내다.

어차피 타카시는 리코우 길드의 옵저버일 뿐, 길드의 소속 구성원은 아니다.

타카시와 강후의 관계에 호기심을 가질 순 있어도, 그 이상으로 발전시킬 필요는 없었다.

“한국의 정화 길드는 간부 중심의 구조라 외부 유망주 유입이 더딘 편이지. 빈틈이 많아.”

“삼촌은 강후 형님도 리코우 길드에 영입할 수 있다고 보시는 거죠?”

“얼마든지. 더군다나 우리는 해외에서 데려온 길드원이 많잖아? 확장성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제 역량을 총동원해서, 강후 형님의 모든 것을 서포트할게요.”

“그렇다고 격을 잃지는 말고.”

“명심하겠습니다!”

그러는 사이, 폐공장 밖으로 나온 강후가 두 사람 사이로 합류했다.

후미야와 안영호는 별다른 질문 없이, 바로 강후를 리무진으로 안내했다.

타카시와 있었던 은밀한 만남에 대해 이것저것 묻는 것은 분명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강후도 그런 두 사람의 배려를 읽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편하게 리무진에 탈 수 있었다.

리코우 길드의 핵심 거점인 리코우 타워로 향하는 동안.

강후는 독립성이 보장된 자신의 자리에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미뤄 두려고 할수록, 더 집요하게 떠오르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림자 걸음이 내 공격 레퍼토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나게 크지. 근데 그것을 읽혔어.’

이 세계에 빙의한 이후, 처음으로 깊게 느껴보는 자신의 불완전성에 대한 고찰이었다.

타고난 암살자적 재능.

최고의 능력을 가진 성좌.

그 하모니 속에서 지금까지 자신은 완벽하게, 그리고 아주 멋지게 성장해 왔다.

한데 완전무결한 하나의 그림과 같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모습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그것이 이번에 타카시가 말해 준 습관이었다.

그와의 첫 만남이 ‘모의 전투’였기에 오늘 일이 해프닝으로 넘어간 것일 뿐.

만약 타카시를 전장에서 만났다면? 오늘이 병풍 뒤에서 향냄새를 맡는 날이었을 것이다.

아쉬우면서 한편으로는 기대되는 아이러니한 감정이 교차했다.

불완전함은 아쉽지만.

채워 넣고 성장할 부분이 있다는 사실에서는 잔뜩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이래저래 타카시 생각이 자꾸만 났다. 그도 같은 생각이었으면 좋겠는데 과연 그럴지는 모를 일.

타카시와의 만남이 그에게나 강후에게나, 모두 의미 있는 전환점이 되고 있었다.

* * *

이후 리코우 타워에 도착한 강후는 후미야의 안내를 따라, 최종적으로 던전 공략 점검을 끝냈다.

모든 던전은 강후가 요청한 대로 언데드 몬스터 타입의 던전이었고, 수준도 딱 맞았다.

강후는 리코우 길드에서 지원해 주려고 했던 팀은 거절했다. 어지간해선 솔플을 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다만 자신이 외부인이고, 현재 리코우 길드가 토우시 길드와 전면전 중인 상태이니만큼.

자신에게 배정할 역량 전체를 던전 보안에 집중해 달라고 요청했다.

아무리 좋은 던전을 공략한다고 한들, 뒤치기를 당하면 죽기 딱 좋은 그림이 될 테니까.

그리고 힐러가 필수인 던전 딱 한 곳만 안영호와 함께 가기로 했다.

안영호의 실력을 한번 보고 싶기도 했고, 후미야의 부탁도 있었기 때문이다. 겸사겸사였다.

던전 공략은 내일부터 강후 혼자서 진행할 예정이었다.

얼마나 암흑기 파밍이 가능할지 기대가 됐다.

던전 하나마다 암흑기 15 정도만 끌어올릴 수 있어도 차고 넘치게 남는 장사다.

그 이후.

후미야는 조카이지만 길드 내의 핵심적인 비즈니스에 관여할 자격이 없는 안영호를 밖으로 물렸다.

그리고 강후에게 별도의 티타임을 요청했다. 긴밀히 나누고 싶은 말이 있다는 시그널이었다.

짐작 가는 바는 있었지만, 어떤 대답을 할지와 무관하게 후미야와 대화를 나눠 보고 싶긴 했다.

리코우 길드는 관서권을 꽉 쥐고 있는 길드로 앞으로도 계속 그 위치를 공고히 유지할 길드다.

물론 그들이 일본 전체의 패권을 움켜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알짜배기가 많은 관서권 1위 길드라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갖는 매력과 미래 가치는 컸다.

쪼르르르.

찻잔에 고소한 차가 채워지고.

한결 포근해진 분위기에서 대화가 오갔다. 첫 만남에 어색했었던 느낌도 제법 많이 걷혀있었다.

후미야가 먼저 운을 뗐다.

“이번에 일본에 큰 발걸음 하셨습니다. 영호가 그날의 일을 몇 번이나 얘기했는지 모릅니다.”

“저로서는 당연히 도와야 한다고 생각해서 도왔을 뿐인데. 영호가 많이 생각을 해 주더군요.”

“제 조카의 은인이십니다. 더 나아가 저와 제 누나의 은인이기도 하지요.”

“저로서도 그게 인연이 되어서 이렇게 일본에 오게 됐으니, 감회가 새롭네요.”

진심이었다.

인연이 가지는 나비효과를 새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만약 안영호와의 연결고리가 없었다면, 일본에 왔어도 행보가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궂은 용병 의뢰 쪽으로 기웃거렸을 테고, 어떤 험한 일에 내몰렸을지 모른다.

일본도 한국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서, 치안 부재인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큐슈 쪽은 신(新) 전국시대라는 말이 돌 정도로 수많은 길드가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거대한 지옥도라고 표현해도 무방했다. 워낙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곳이라 용병 수요가 많았다.

하지만 그런 쪽으로 일본에 인연을 만든 것이 아니라, 안정화된 길드의 귀한 손님으로 온 상황.

그러니 인연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정유리나 박동재를 생각해도 똑같이 느끼는 부분이다. 그들 덕분에 바뀐 것이 정말 많았다.

그때.

직전보다 꽤 많은 양의 차를 한 모금에 들이킨 후미야가 슬쩍 강후의 눈빛을 살폈다.

중요한 말을 하려는 듯한 눈빛. 강후가 지그시 그를 바라보자, 후미야가 바로 본론을 꺼냈다.

“혹시 해외 활동 한정으로 소속 길드를 둘 생각은 없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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