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아키야마 타카시 (2)
* * *
- 실력 좀 보죠.
“그럴까요?”
- 아무나 친구로 받아들일 만큼 그렇게 외로운 처지는 아니라서!
힘주어 말하는 타카시의 목소리에서 강후는 역설적으로 그의 외로움을 느꼈다.
원작에서 조형된 타카시의 모습을 알고 있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반응이기도 했다.
타카시가 사람에게 반응하고 매력을 느끼는 감정선은 조금 비틀어서 봐야 한다.
그게 타카시의 매력이자, 동시에 단점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쉽게 다가올 수 없게 만든다.
휙!
타카시의 분신이 바닥에 떨어져 있던 연습용 나무 단검을 던졌다. 그리고 자신 역시 나무로 만든 장검을 들었다.
타카시는 당돌하면서도 자신의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할 말을 하는 강후가 신기했다.
검색으로 살펴본 바에 따르면, 능력도 제법 있어 보였다. 적어도 지금의 레벨이 어울리진 않는다.
허풍에 입만 터는 놈이면 손절하면 그만이다. 특별하게 엮인 사이가 아니니까.
그래서 부담이 없었다.
강후가 검증을 통과했을 땐 친해지면 그만이고, 아니면 다시 볼 일 없는 것일 뿐이다.
강후 역시,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단지 말 몇 마디로 타카시의 시험을 통과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이 최적의 시기야.’
확신했다.
여기서 시간이 더 흘러가면, 그때는 열세 개의 별이 다시 타카시에게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몇 개월 안으로 다수의 까다로운 던전 공략에 나서기 때문이다.
그때, 타카시가 공략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앵무새처럼 재잘대던 ‘만물패턴론’이 통하는 것이다.
그 이후로는 필요에 따라 열세 개의 별이 타카시를 찾는 일이 많아진다. 스킨십이 많아지는 것.
그래서 그때가 되면, 아무리 강후가 들이대도 타카시가 마음을 돌리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 카운팅은 전방, 후방에 있는 대형 모니터에서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할 것 없고요. 열 세죠.
타카시의 말이 끝나자마자, 대형 전광판에 붉은색으로 10의 숫자가 새겨지더니.
이내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타카시의 뒤로 너무 숫자가 크게 보여서, 쓸데없이 시선을 빼앗기기까지 할 정도였다.
바로 그때.
우웅. 우우웅. 우웅.
훈련장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던 타카시의 분신들이 하나씩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타카시가 직접 운전하는 디테일한 분신과 달리, 조악하게 분신을 닮게 만들어진 분신들이었다.
사령술의 느낌도 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정확하게 사령술로 구분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특히 타카시가 직접 다루는 분신과 본신의 관계는 일종의 운명 공동체와 같았다.
쉽게 생각한다면, 직접 다루는 분신이 본체고 나머지가 단어적 개념의 분신이라고 볼 수 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쓸 만한 패가 내 손에 있군. 언제 쓸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강후가 첫 시작과 동시에 공격적으로 사용할 패 하나를 머릿속으로 만지작거렸다.
여러 갈래의 공략을 생각했지만 역시 이것만큼 괜찮은 방법은 없을 듯했다.
어느새 1이 되어버린 숫자.
처억. 스윽.
타카시(나 다름없는 분신)와 강후가 각각 공격 자세를 잡았다.
둘은 서로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곁눈질로 전광판의 시간을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0이 되는 순간.
파앗! 파팟!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탐색을 위한 전략적 후퇴나 지켜보기 따위는 진즉에 내던져 버린 적극적인 시작이었다.
그때.
【셋째, ‘영혼 파동’을 사용해서 정신적으로 연결된 적 혹은 소환체의 연결 고리를 끊습니다.
마나 250을 소모하면서 정신의 혹사를 유발하지만, 완벽히 적의 상태를 초기화시킬 수 있습니다.】
강후가 먼저 노림수를 꺼내 들었다. 영혼 파동이었다.
황야의 전략가에게서 얻은 세 번째 성좌 특전으로, 이번이 첫 사용이었다.
“……윽!”
시간차로 고통이 찾아들었다.
아이템으로 제법 두른 고통 경감 효과를 가뿐하게 무시할 정도의 극심한 두통이 느껴졌다.
이 정도면 고통 경감이 없는 상태였으면 얼마나 끔찍한 통증이었을 지는 상상도 하기 싫을 정도.
십중팔구 바로 사방이 핑 돌아서 쓰러졌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만큼 두통의 강도가 강했다.
프스스슷.
동시에 타카시의 ‘하찮은’ 분신들이 바람에 휘말린 볏짚처럼, 힘없이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영혼 파동에 걸려든 것은 타카시의 제1 분신도 마찬가지였다.
이 녀석 역시도 타카시와 정신적으로 연결된 구성체인 만큼,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 ……와!
마이크 너머에서 당황의 감정이 잔뜩 섞인 탄성이 터져 나왔다.
타카시는 정신의 연결고리를 끊는 공격에 당황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누가 봐도 자신은 그런 공격이 딱 약점으로 작용할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1 분신과의 링크가 끊기기 무섭게 바로 연결했고, 공백은 아주 짧았다.
바짝 달라붙으려던 강후가 즉각 대응하는 타카시의 반응을 보고는 바로 멈췄을 정도니까.
다만 타카시가 놀란 것은 암살자로 알려진 강후가 이런 스킬을 썼다는 사실이었다.
정신적 연결 고리를 끊는 것은 당연히 정신계 스킬이다. 보통 마법 쪽으로 특화된 헌터가 쓴다.
암살자에게서 나올 스킬의 성질이 아니었다. 교집합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 제법…….
타카시가 강후의 시도에 나름의 감탄을 하며 멘트를 이어가려 할 즈음.
강후가 한 번 더 영혼 파동을 썼다. 이번에는 동시에 전광비도까지 연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가까이 접근하는 것은 리스크가 있지만, 멀리서 견제하는 것은 일방적이니까.
그리고 앞서 탐색으로 영혼 파동이 아주 잠깐이지만, 분명한 블랙 아웃을 만든다는 것도 알았다.
“크윽!”
강후가 신음을 토했다.
두 번까진 어찌저찌 쓰겠는데, 세 번은 못 쓸 스킬이다.
마나는 두 번째 문제고, 고통의 강도가 차원이 달랐다.
스킬을 활용하다가 자신이 오히려 고통에 블랙 아웃을 경험할 것 같을 정도였다.
잠깐이지만 아찔하면서 시야가 흩어지는 경험을 한 것이다. 좋은 조짐이 아니다.
2차 영혼 파동에 휘말린 타카시가 비틀거린 사이, 전광비도로 날아든 단검이 타카시를 타격했다.
아슬아슬하게 검을 사선으로 비틀어 막긴 했지만, 정말 막기만 한 수준이었다.
그래서 전광비도에 강후가 실어 보낸 ‘밀쳐내기’에 휘말리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 억!
타카시의 몸이 포물선을 그리며 쭉 날아갔다. 전혀 대비하지 못한 밀쳐내기가 만든 파괴력이었다.
더 잴 것도 없이, 강후가 연달아 도약과 가속을 시전하며 타카시에게 붙었다.
이런 실력자에게는 똑같은 기회가 두 번 오는 일은 절대 없다. 한 번 온 것도 많은 거다.
그렇기에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고, 상황은 상당히 좋아 보였다.
그때.
스치이잉!
몸이 날아가는 와중에도 장검을 꽉 움켜쥐고 있던 타카시가 지면 위로 장검을 그었다.
마치 의도적으로 불꽃을 일으키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츠츳!
이윽고 만들어진 불꽃에 뒤섞인 검붉은 빛의 무언가가 강후를 향해 매섭게 덮쳐들었다.
‘젠장.’
역시 레벨과 실력은 허투루 쌓은 것이 아니다.
제대로 한 방을 먹은 와중에도 타카시는 바로 반격 페이즈에 들어가 있었다.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전투에 임하는 자신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성향이었다.
순식간에 빛에 휘말렸다.
애초에 타카시를 쫓겠다고 몸이 완전히 앞에 쏠려 있었던 상황이라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뒤집어썼다.
그 순간, 강후는 실명을 유발하는 스킬임을 체감했다. 앞이 안 보였기 때문이다.
【공명의 시야】
대응은 바로 이뤄졌다.
초당 0.5의 마나를 실명 상태일 경우에만 자동으로 소모하는 공명의 시야 스킬.
앞서 썼던 영혼 파동처럼 언제 쓸 일이 생기나 싶었는데, 타카시 덕분에 스타트를 끊게 됐다.
‘잘 보이네.’
실명 상태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흑백으로 세상을 본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실명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스킬의 가치는 매우 컸다.
새삼 스킬 강탈에 공헌해 준 글로리아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 정도다.
강후가 실명에 걸린 듯한 손짓을 하며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기만이었다.
파앗!
그러자 이때다 싶었는지 타카시가 장검으로 만들어낸 검기를 강후에게 쏘아 보냈다.
연습용 목검 기반이기에 날카롭지는 않지만, 둔하게 후려치기에는 충분한 검기였다.
그러나 공명의 시야 덕분에 경로를 훤히 볼 수 있는 강후에게는 의미 없는 공격이었다.
타탓.
강후는 가볍고 경쾌한 움직임으로 검기의 경로를 피해냈다.
타카시는 눈을 의심했다.
아직 강후에게 걸린 실명 상태가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디버프에 유지되고 있었다.
그런데 강후는 경로를 훤히 들여다본 것처럼 너무 쉽게 공격을 피했다.
예측이라고 하기에는 딱 필요한 만큼으로만 여유롭게 움직인 깔끔한 회피였다.
- 허허.
타카시가 허탈함이 묻어나는 웃음을 지었다. 잠깐 사이에 강후에게 두 번이나 놀랐다.
첫째는 분신과의 링크를 강제로 끊어내는 스킬이 있음에 놀랐고.
둘째는 실명 상태를 가뿐히 극복할 수 있다는 대응수가 있음에 놀랐다.
극단적인 공격에 치중하는 탓에 자신에게 걸리는 디버프나 방해에는 약할 수밖에 없는 암살자.
그런 암살자의 특성이자 일종의 ‘고질병’이 강후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그리고.
- 슬슬 열 받네요?
강후가 원했던 반응이 타카시에게서 나왔다. 약이 오르는 모양이다.
- 잠깐만. 연초 하나만 물고 다시.
이어서 기대했던 두 번째 반응도 나왔다.
연초라는 표현을 쓰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담배는 아니다.
타카시는 정체불명의 뭔가를 태우는데, 정신 집중이 꼭 필요할 때 쓰는 일종의 필살기였다.
원작에선 마약과 연관된 것이라는 썰만 있을 뿐, 입증된 바는 없다.
어쨌든 그것을 입에 물었다는 것은 지금 상황에 어느 때보다 진심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됐다.
들고 있는 연습 무기는 위협적이지 않지만, 서로를 대하는 자세는 어느 때보다도 위협적인.
아주 치열한 난전이었다.
* * *
교전이 계속될수록, 강후는 점점 타카시가 힘든 상대임을 실감하게 됐다.
상대하는 대상이 본체가 아닌 분신이라는 탓에 성좌 스캔이 전혀 안 된다는 점이 답답했다.
그래서 녀석이 특화된 분야라던가 목적성을 한 번에 꿰뚫어 보기가 힘들었다.
원작에서도 디테일하게 성좌 설정을 설명하지 않았기에, 짐작해 볼 요소도 부족했다.
물론 애초에 서로의 레벨 차이가 상당하므로, 무너지지 않고 잘 버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점을 줘도 되는 상황이기는 했다.
갈수록 교전이 힘들어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패턴을 분석당하고 있어.’
타카시가 점점 자신의 움직임을 ‘학습’하고 ‘연구’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상대의 패턴을 읽는 노림수 플레이는 강후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타카시도 할 줄 알았다.
오히려 더 집요했다.
전투에 변수를 주기 위해 강후가 분신술, 환영술과 연계하면서 그림자 걸음을 적극적으로 썼다.
하지만 어디서 읽혔는지, 계속 본신의 위치가 탄로 났다. 눈속임이 전혀 안 통했다.
‘습관이 있는 건가?’
스스로에게 질문해 봤지만, 강후는 인지한 바가 없었다.
스스로 인지할 수 없다면 정말 미세한 습관이라는 얘기다. 겉으로는 거의 티도 나지 않는 습관.
그것이 타카시에게는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때.
- 하아앗!
타카시의 일갈과 함께 그가 힘껏 쳐올린 목검이 후방에서 접근하던 강후의 얼굴 앞을 갈랐다.
찰나의 순간.
사아아악……!
목검이 만들어낸 최대치의 검기에 휘말린 강후의 앞쪽 머리카락이 시원하게 잘려 나갔다.
실전이었으면, 그리고 몸이 조금만 더 앞으로 쏠렸으면 얼굴 앞면이 사라졌을 일격이었다.
“망할.”
오늘 열심히 일하는 강후의 미간에 또 한 번 주름이 잡혔다.
역시 타카시는 보통내기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