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76화 (176/304)

176화 아키야마 타카시 (1)

* * *

타카시는 원작에서도 항상 패턴 숙지를 강조하고, ‘생각하는 플레이’를 1순위로 추구했었다.

어떻게 보면 매사에, 그리고 공략에 진심이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도전하는 것을 즐겼다.

반면에 열세 개의 별은 접근법이 달랐다.

그들도 초심자의 위치에 있었을 때는 시련과 고난을 즐기고, 어려움과 부딪히는 것을 선호했지만.

레벨과 실력이 본 궤도에 올라온 이후로는 쉬운 방법으로 쉽게 공략하는 것을 원했다.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무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가치가 떨어질 수 있는 부상이나 실패에 대해서 극도로 회피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어차피 시행착오는 별도의 탐색대를 보내서 경험하면 됐다.

그들을 통해 알짜 정보를 얻고, 나중에 정답지에 가까운 공략법을 들고 움직이면 끝이었다.

원작의 타카시는 그것을 늘 못마땅해했다.

열세 개의 별 때문에 다양한 던전에 갈 수 있는 것은 즐거웠지만, 그것이 다였다.

그래서 원작 막바지에 이르러선 열세 개의 별과 떨어져 개별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때, 그가 남겼던 말은 강후가 직접 쓴 대사인 만큼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 고생의 가치를 모르고서 먹는 과일은 달콤해. 하지만 말야. 가치를 알고 먹는 과일은 평생을 잊지 못할 만큼 짜릿한 마약과도 같아.

당연히 동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특히 그에게 적대적인 채관형은 헛소리도 길게 하면 개소리라며, 꼬우면 열세 개의 별을 탈퇴하라는 말도 했었다.

‘쉽게 마음을 열지 않지만. 일단 한 번 마음을 열면 모든 것을 주는 타입.’

강후는 그렇게 타카시를 정의하고 있었다.

모험과 도전을 좋아하는 만큼, 그 부분에 중점을 두고 접근해야 한다. 그는 열정적인 헌터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괴짜 모습의 일부는 위장이다. 어설픈 인연을 솎아내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

강후가 제자리에 멈춰선 채로, 주변의 마나 흐름에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눈으로 보면 하나도 보이는 것이 없는, 수많은 마나 트랩의 향연이다.

독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을 정도로 여기저기에 함정을 떡칠해 놨다.

설계했을 타카시 본인도 제대로 인지하고 있지 못하면, 십중팔구 건드릴 수밖에 없는 함정이다.

집중하면 할수록.

보이고, 느껴졌다.

직접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어도, 감각의 흐름을 따라서 지도를 그려볼 수는 있었다.

‘체중 관리를 그간 잘한 점은 칭찬을 해 줘야겠네. 비만이었으면 가지도 못했겠군.’

헛웃음이 나왔다.

마나 트랩이 촘촘한 구간은 지금의 체형이 아니면 아예 지나치지도 못했을 것이다.

스윽. 스스슥.

계산이 끝난 강후가 망설임 없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시각적으로는 전혀 의지하지 않았다. 어차피 눈으로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몸의 느낌, 그러니까 감각을 믿었다. 감각이 안전하다고 믿는 그 루트를 따라 이동했다.

필요에 따라서는 몸을 높이 띄우거나, 아예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하는 구간도 있는 만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약간의 퍼포먼스도 곁들이게 됐다. 아마 타카시가 다 지켜보고 있겠지.

슬쩍 뒤쪽을 돌아보니 안영호와 후미야가 걱정 어린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허공에서 폴짝 뛰었다가, 몸을 바짝 낮췄다 하고 있으니 이상하기도 할 터다.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은 뒤의 두 사람보다 타카시가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을지가 중요하다.

* * *

같은 시각, 강후의 예상대로 타카시는 CCTV를 통해 모든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다.

자기 훈련장인 만큼, CCTV 설치에는 진심이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CCTV는 많았다.

덕분에 다양한 각도에서 강후의 움직임을 볼 수 있었는데, 갈수록 타카시의 눈빛이 깊어졌다.

“제법인데?”

처음 몇 개의 트랩이 깔린 라인을 피했을 때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발끝이나 몸이 닿을 것 같을 정도로 아슬아슬했던 구간이 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타카시는 운으로 치부했던 자신의 판단에 문제가 있음을 느꼈다.

강후는 마치 트랩을 깐 라인에 대한 지도를 머릿속에 전부 입력해 놓은 것처럼 피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슬아슬할 일도 없이, 넉넉하게 거리를 두고서 이동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놈 봐라…….”

타카시가 설탕을 듬뿍 탄 커피를 홀짝이며, 강후의 영상에 더욱 몸을 기울였다.

가뜩이나 거북목 때문에 고생하는 목이 오늘은 유독, 더 앞으로 튀어나온 상태였다.

대뜸 자신을 보고 싶다고 하던 배짱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자기 실력에 믿을 만한 구석이 있었던 모양이다. 허풍이 아닌 진실로 증명할 수 있을 만큼.

타카시가 감탄하고 또 감탄하는 사이, 어느새 강후는 상당히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었다.

지금껏 호기심에, 혹은 이번 만남처럼 시험 삼아 함정 통과를 하려던 헌터는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타카시가 G라고 표시해 둔 구간까지 들어온 사람은 강후가 처음이었다.

입구인 A 구간부터 시작해서, 폐공장 안으로 최대한 들어오려면 H 구간까지 돌파해야 했다.

강후는 그중, 마지막 구간을 앞두고 있었던 것이다. 첫 진입 기록이었다.

바로 그때.

파팟! 팟! 팟!

마치 강후가 곡예를 하듯,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뛰었다가 몸을 낮췄다가 하기를 반복하더니.

파아아앗!

이내 길게 도약하며, 단숨에 H 구간의 트랩 라인 사이를 한 번에 파고들었다.

대각선상으로 들어왔을 때 ‘유일’하게 존재하는 안전한 틈새를 강후가 정확히 캐치하고 들어온 것이다.

이 정도면 누가 머릿속에 설계도를 심어 놨다고 해도 될 정도로 완벽한 진입이었다.

“푸핫!”

타카시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괴짜 짓으로 손님을 시험하려는 자신도 우습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괴짜가 짠 게 분명한 공간에서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 강후도 웃겼기 때문이다.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웃음 코드지만, 타카시는 그 자체로 충분한 즐거움과 재미를 느꼈다.

“재밌네, 재밌어. 아차.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군.”

영상에 집중하고 있던 타카시가 부지런히 패드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분신에게 달린 마이크를 쓸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강후와 대화를 나눠야 할 듯했다.

“아흐. 아흑. 흠흠. 큼큼.”

한참 입을 다물고 있어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은 목소리를 다듬었다.

이대로 잘못 말했다가는 첫 만남부터 음 이탈이 작렬하는 대화가 될 수 있기에.

타카시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어떤 녀석인지는 대화를 나눠 봐야 알겠지만, 무척 흥미가 생기는 녀석이었다.

빨리 얘기를 해 보고 싶었다.

* * *

‘이놈의 무사 심취는 언제 끝내려나. 볼 때마다 웃기군. 의도적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건가?’

한편 최종 구간에 들어온 강후가 현장에 자리하고 있는 타카시의 분신을 보고는 웃었다.

이 무렵이면 한국에 분신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돌아온 모양이었다.

어차피 한국에서 일본으로 오는 것이야 몇 시간 남짓으로 금방 가능한 일인 만큼.

오전에 한국에 있었어도, 오후에 일본에 있는 것이 이상하진 않았다.

타카시의 분신은 전신을 치장하는 붉은 갑주에 악마 가면, 거기에 정체불명의 한문이 적힌 부적을 잔뜩 몸에 붙이고 있었다.

일본풍이라고 하기에는 중국 색깔이 있고, 그렇다고 중국풍이라고 하기엔 기본이 일본색이었다.

총평하자면 끔찍한 혼종이었다.

이래야 타카시답지, 라는 생각이 들지만, 꼭 이래야만 하나 싶은 의문도 같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때.

휘리리릭! 처억!

타카시의 분신이 현란한 움직임을 보이며, 강후의 코앞으로 날이 바짝 선 일본도를 내밀었다.

손가락 반 마디 만큼만 앞으로 더 왔어도 코 어딘가가 예리하게 베였을 그런 거리였다.

하지만 강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정면으로 보이는 분신의 두 눈을 응시했다.

타카시의 분신이지만, 결국 본신이기도 한 녀석에게 보내는 시선이기도 했다.

분신과 본신의 연결고리는 단순히 기계적인 연결이 아니다.

그랬다면 던전에서 막혔을 것이다. 인간 문명이 만든 전자기기의 활용은 던전에서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분신은 언제 어디서든 타카시와 감각을 공유할 수 있었다. 이것은 영적인 결합이었다.

- 저를 보고 싶다고 했다던데. 이유가 뭐지요, 신강후 씨?

바로 앞에서 거는 말이지만, 마이크 때문에 상당히 거리감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주 잠깐, 강후는 이것이 자신과 타카시 사이의 운명이 갖는 거리감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일종의 잡생각이다. 긴장을 견뎌내기 위해 역설적으로 떠올리는 체계 없는 생각들.

그 안에서 평정심을 찾은 강후가 당당하게 입을 열 준비를 마쳤다.

강후의 콘셉트는 간단했다.

원작에서 에밀리아가 타카시와 가까워진 방법을 벤치마킹할 생각이었다.

그 방법은 ‘들이대기’다.

우스꽝스럽게도 난 당신이 마음에 들고, 당신도 내가 마음에 들 거라는 자신감을 내비치는 거다.

타카시에게 정석적인 접근은 그의 어긋난 불신을 강하게 자극할 뿐이기에 무의미했다.

이를테면 당신의 실력을 흠모했다거나, 멋지다거나, 혹은 오래전부터 만남을 고대했다거나.

이런 립 서비스 식 멘트는 오히려 타카시에게 독이 되는 것이다.

본래의 성격을 생각하면 쉽사리 운을 떼기 힘든 말이지만.

강후는 지금만큼은 타카시가 원하는 사람이 되었다 생각하고, 그에 맞는 연기를 하기로 했다.

“우리 친구 합시다.”

- 뭐라고요?

다짜고짜 내지르는 강후의 반응에 타카시의 분신이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면전에서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싶은, 딱 그런 반응의 고갯짓이었다.

“서로 영혼 없이 어르고 달래주는 그런 쇼윈도 프렌즈 말고. 땀 흘리며 맞부딪히고 경쟁하며, 성장하는 그런 친구 말입니다.”

- 제가 왜?

짧은 반문, 하지만 아주 미세하게 떨리는 그의 목소리에서 당황스러움이 묻어난다.

긍정적인 신호다.

처음부터 속내를 보이기 싫어하는 타카시의 당연한 방어 기제니까.

떨림은 그것까진 완벽하게 컨트롤하지 못해 생긴 타카시의 인간적인 빈틈인 셈이다.

“우리 같은 사람은 원래 늘 외롭잖아요. 안 그래요?”

톤을 좀 더 높였다.

평소의 로우-미들 톤의 목소리에는 맞지 않는 하이톤이지만, 그래서 말에 좀 더 힘이 넘쳤다.

- 당신은 날 몰라요. 뭘 안다고 우리 같은 사람이라고 뭉뚱그려서 말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모르는 건 알아가면 될 문제고. 남이었어도 한 번 얼굴 봤으면 이제는 우리인 거죠.”

- 진지하게 개소리를 하네요?

“개소리도 진지하게 하면, 그럴듯한 말이 돼요.”

능구렁이처럼 받아치는 강후의 반응에 타카시도 뭐라 반박을 하려다가 이내 입을 닫았다.

그 정도 말로는 작은 내상도 입지 않는다는 듯, 태연하게 말하는 강후의 모습이 신기했다.

한편으로는 이 녀석이 뭘 믿고 이렇게 자신 있게 구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런 생각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호기심이었다.

타카시 스스로도 모르게 강후의 적극적인 태도에 말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직선적인 접근을 경험해 본 적이 드문 타카시의 입장에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열세 개의 별을 제외하면 그는 항상 누군가에게 두려움과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당돌’하게 들이대는 헌터를 본 적이 없었다. 모두가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피어오르는 흥미.

그래서인지 마나 트랩을 통과했을 때부터 달라 보이기 시작했던 강후가 특별해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사람이 달라 보였다고 하면, 혹자는 소설 쓰는 거냐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음이 그랬다.

필터가 덧씌워진 것처럼, 신강후라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무한대로 증식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순식간이었고, 타카시의 탐구 의식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한 울림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