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일본으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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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리품 자체는 생각보다는 부실하게 나왔다. 노란색 마석 10개로 다 합치면 100억 원의 감정가.
팀원 총합이 5명이니, 1인당으로 분배하면 20억 원 정도의 분배금이 되는 셈이었다.
이것도 절대로 적은 금액은 아니다.
하지만 다루는 경제적인 규모가 커지다 보니, 상대적으로 적게 보이는 것이다.
레벨은 무려 4가 올라, 단숨에 178이 되었다.
이유는 너무 간단했는데, 팔크스를 강후 혼자서 처치했기 때문이다.
박동재의 버프 지원도 이번에는 다른 팀원을 지원하느라 없었기에 진정한 의미의 솔플이었다.
‘그래도 아직까진 일대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몬스터가 많아서 이득이긴 하네.’
강후가 내린 총평이었다.
이번에 팔크스를 상대했을 때처럼, 아직까지는 급소나 핵심 부위를 노리는 변수 창출이 가능했다.
맷집 좋고 체력 좋은 몬스터라고 하더라도, 급소에 대한 노림수에는 약점이 있다는 얘기다.
일격에 죽을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레벨이 높아지고, 진입하는 던전의 수준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지게 되면.
그때부터는 ‘기계형’ 몬스터가 나오기 시작한다.
이런 녀석들은 급소라고 할 만한 부위가 없어서, 정말 죽을 때까지 ‘발악’하다가 죽는다.
설령 급소로 특정할 만한 회로가 있다 하더라도, 대체 시스템이 있어서 의미가 없었다.
원작에서 몬스터들에 대한 공략 난이도 상향을 연출하기 위해 고심했던 설정인데…….
결과적으로 지금은 강후가 언젠가 마주해야 하는 빡빡한 미래가 되어 버렸다.
물론 걱정보다는 기대감이 훨씬 더 컸다. 어려운 만큼 보상은 확실한 녀석들이다.
‘다양한 무기를 다뤄서 나쁠 건 없어. 가끔은 팔이 긴 전투가 필요할 때도 있고.’
강후는 팔크스에게서 강탈한 스킬의 가치를 매우 높게 보고 있었다.
암살자 특성에 있어서는 단검이 가장 잘 어울리는 무기인 것은 맞다.
오히려 다른 무기는 특색을 죽여 버리는 악조건이 된다. 시너지도 거의 없고.
하지만 언제까지 단검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상대해야 할 적의 수준도 점점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초근접 거리의 전투를 허용하지 않는 헌터들도 있을 터다.
어떻게든 상대와 거리를 두려는 적에게 단검은 가장 쓸모없는 무기가 된다.
일단 붙으면 되는 것 아닌가?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그런 헌터들은 접근하지 못하는 방법을 필사적으로 연구한 케이스니까.
결국 가위바위보의 싸움이 되기 마련인데, 무기 하나로는 낼 수 있는 패가 하나뿐.
그래서 강후는 단검뿐만 아니라 장검, 대검, 단창, 장창, 도끼, 채찍 등등…….
다양한 무기를 활용할 가능성을 만들어 두고 싶었다.
쓸 줄은 아는 것과 쓸 줄도 모르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의 큰 차이를 갖는다.
예전에 허정태에게 얻은 강격의 장창을 아직까지 한 번도 못 쓴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창을 어떻게 다루는지는 모르기 때문이다. 막연하게 휘두르면 되지 않을까 하고 있는 정도다.
‘시간을 더 쪼개서 훈련에 써야겠다. 이제 장창 정도는 서브 무기로 다룰 수 있겠어.’
생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장창에 대한 활용법이 떠오른다. 초감각 – 무기 스킬 덕분이다.
강후가 확 오른 체온을 식히며,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즈음.
팔크스의 죽음과 함께 자동으로 소멸해 버린 골렘을 지나온 나머지 일행이 강후를 찾았다.
준비했던 공략은 여기까지인 만큼, 이제 방향을 돌려 나갈 시간이었다.
강후로서는 필요한 것을 다 얻은 만큼 딱히 미련은 없었다.
팔크스의 수준을 봤을 때, 여기서 더 깊게 들어가면 고전할 가능성이 컸다.
“어지간해서는 이런 말을 먼저 드리지는 않습니다만. 다음 공략을 꼭 기약하고 싶네요.”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장태진이었다. 그가 어떤 평을 해 줄지 궁금했는데, 내용이 아주 좋았다.
“사실 세 분과 동재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앞에서 뛰놀 수 있었다고 봅니다.”
“형은 정말! 겸손이 패시브야.”
강후의 대답에 박동재가 옆구리를 푹 찌르며 말했다.
박동재가 보기에 강후는 진짜로 모르는 것 같았다.
저런 겸손이 상대를 두 번 죽이는 멘트가 된다는 것을.
뒤집어 해석하면, 내가 앞에 있는 동안 너희는 뒤에서 뭐했냐?는 내용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여기 있는 세 사람이 그렇게 속 좁은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겸손이 거만함으로 바뀌는 건 한 끗 차이인 것이다. 애석하게도 듣는 사람의 수준에 따라 해석이 갈리게 된다.
연수아가 말했다.
“사실 저희는 전반적으로 모든 움직임을 보수적으로 가져가는 편이에요. 안전 지향적이죠.”
“그 성향도 존중합니다. 다름의 문제지, 틀림의 문제는 절대 아니니까요.”
강후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했다. 진심이었다. 무조건 공격적으로 움직이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 느꼈어요. 상황을 극적으로 뒤집을 그림이 보이면,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고요.”
연수아의 말에 옆에 있던 최호수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세 일행 중에서 극단적이라고 할 정도로 방어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유는 그녀가 접근전과 난타전에 가장 취약한 주술사 포지션이기 때문일 터.
하지만 그런 그녀도 강후의 적극적인 대응을 보면서 느낀 점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찾아만 주시면, 날카로운 창이 되어 빈틈을 노리는 사냥개의 역할은 제가 하겠습니다.”
강후가 담백하게 답했다.
그들은 계속 지금처럼 든든하게 방패가 되어 줘도 상관없다. 그러면 뒤는 걱정할 게 없어지니까.
“꼭 다시 뵙죠. 멋졌습니다.”
최호수가 짧고도 확실한 멘트로 강후와의 팀플레이를 평가했다. 그 말이면 충분했다.
“보세요. 제가 진또배기 암살자로 소개해 드린다고 했죠? 강후 형 더 바빠지기 전에 많이 찾아 주세요! 번호표 뽑으셔야 될 겁니다!”
옆에서 본인보다 몇 배는 더 신나서 호들갑을 떠는 박동재의 환장(?)의 하모니까지.
강후는 그렇게, 첫 미스테리 던전 공략을 만족스럽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예비로 둘 수 있는 공략법이 전혀 없다 보니, 체감 난이도가 상당히 클 수밖에 없는 던전.
앞으로도 미스테리 던전에 올 때는 긴장을 바짝 하고 와야 할 듯했다. 방심은 금물이다.
* * *
공략을 마무리하고 밖으로 나온 강후는 박동재와 짧게 대화를 나눈 뒤, 바로 헤어졌다.
특별한 얘기는 없었다.
다만 이클립스에 대해서 정보를 좀 더 철저하게, 면밀하게 찾아 주겠다는 박동재의 약속이 있었다.
특히 차소혁을 중점적으로 추적하겠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예전에 압박감을 제법 느꼈었던 차소희의 추적과 달리, 차소혁은 부담이 조금 덜했다.
애초에 강후가 활동 무대를 전국적으로 쓰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더 나아가 차소혁이 소속된 조직인 ‘태양’은 이클립스에 비해서는 규모가 작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차소희에게 쫓기던 시절과 지금의 자신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도 컸다.
“뭐하려나, 지금은?”
강후가 문득 떠오른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요즘 새삼 느끼고 있는 것이 바로 ‘인연’에 대한 무게였다.
인연은 돈 주고도 살 수 없고, 내가 갖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얻어지지도 않는다.
아이템은 돈이 있으면 사면 그만이지만, 인연은 그만한 노력과 수고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인지 곁에 가까이 맺고서 지내는 인연들을 허투루 넘기고 싶지 않았다.
바로 통화가 연결됐다.
- 오빠? 무슨 일이에요? 오늘 복권이라도 긁어 봐야 하나? 먼저 전화를 이렇게 받을 줄이야!
“잘 지냈어?”
- 무소식이 희소식이죠, 오빠! 오빠는 어때요? 하긴 뭐, 항상 바쁘죠?
“나야 늘 그렇지.”
- 저 지금 던전 앞이에요. 요즘 자는 시간 빼고는 무한대로 던전 뺑이치고 있어요.
“팀이야?”
- 네. 합도 잘 맞고, 던전도 연줄이 제법 많아서. 각잡고 성장에 올인하기 좋네요.
“좋네. 늘 던전이 골치인데.”
- 그러니까요. 나중에 오빠랑도 던전 하나 제대로 가 보려면, 저도 실력을 더 키워야 하지 않겠어요?
“지금도 충분해.”
- 됐어요, 립서비스는. 아무튼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오빠, 항상 조심해요. 쫓는 눈이 많잖아.
“뭐…… 부정하진 못하겠군.”
- 들어가 봐야겠어요! 그러면 또 연락해요! 뿅!
“다음에 연…….”
강후가 뒷말을 마무리 짓기도 전에 통화가 끝났다.
미소가 지어졌다. 뭐랄까. 주변의 사람들도 같이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에 기분이 좋달까?
강후는 박동재나 정유리처럼,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자극이 되어 줬으면 했다.
그래야 아래나 옆이 아닌, 위를 보고 힘차게 달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명가 길드의 헌터에게도 인정을 받는 위치까지 올라오기는 했지만.
그래 봤자 열세 개의 별의 구성원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여전히 하찮은 실력이었다.
지금 당장 일대일 승부로 끝장낼 수 있는 열세 개의 별이 과연 있을까……?
죽지는 않을 수 있어도, 비기거나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 적수는 없었다.
갈 길은 여전히 멀다.
* * *
그날 이후.
강후는 단 한 번의 외출로 아이템을 판매한 일을 제외하고 내리 이틀을 쉬었다.
판매한 물품은 총 여덟 개였다.
예전에 증선락에게서 빼앗은 반지 중에 팔려고 한 반지, 그리고 이번에 분배받은 마석.
여기에 혹시나 싶어 갖고 있었지만 예비로도 필요 없을 듯한 흉갑과 아수라의 혜안을 더했고.
예비로 있던 광기의 전주곡 장갑, 마법사 사냥꾼 발찌, 추적의 신발, 순풍의 목걸이, 상승의 기력 팔찌까지 전부 판매했다.
이렇게 여덟 개를 묶어 인근의 마켓에서 팔았고, 넉넉하게 350억 원의 돈을 챙길 수 있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전부 현금화하니, 그 액수가 제법 컸다. 예상외였다.
이틀 동안 안전 호텔에서 강후는 온종일 방에 틀어박혀 푹 쉬면서 지냈다.
다음 일정이 확정돼서다.
바로 일본행.
안영호로부터 연락이 왔다.
리코우 길드에서 강후와 조율한 던전들이 전부 ‘안전’하게 준비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토우시 길드와의 전면전에서 영향권에 들지 않는 범위가 된 모양.
게다가 타카시에게 만남에 대해서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는 소식도 함께 들었다.
‘타카시의 마음을 어떻게 얻느냐가 문제군. 평소의 나와 다르게 텐션을 좀 올려야겠지.’
타카시에 대한 접근법은 나름대로 머리에 그려 둔 상태였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꽤 냉소적인 구석이 많은 녀석이기에 접근에 신중해야 한다.
틀에 박힌 모습을 보여 주면 그의 흥미를 전혀 끌 수 없을 터.
그러면 어떻게든 타카시와의 접점을 만들겠다는 계획이 시작부터 어그러지게 된다.
“드디어 일본을 가네.”
침대에 눕힌 몸이 점점 더 아래로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그간 누적된 피로가 있는 듯했다. 이것도 일본에 가기 전에 전부 털어낼 참이다.
강후는 안영호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일본에 간다는 사실은 알리지 않았다.
최근 부쩍 가깝게 지내는 박동재도 마찬가지. 굳이 신변 노출을 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있다 보니, 문득 전에 울릉도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났다.
그때, 울릉도에서 강후는 분명히 원작자 시절의 자신의 모습과 쏙 빼닮은 남자의 뒷모습을 봤다.
환각이나 환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뚜렷해서, 좀처럼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뒷모습이었다.
누굴까.
원작자인 자신은 이렇게 신강후가 되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데.
만약 그 ‘원작자’가 살아있다면, 그 안에 있는 것은 도대체 누구일까? 또 다른 나일까?
그때, 답을 얻었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그를 보내 주고 말았다.
“울릉도를 한 번 더 가 보긴 해야겠어. 거기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미련이 남는다.
차라리 잘못 본 것이라면, 그렇다는 확신이라도 얻어야 묘한 기분이 들지 않을 듯했다.
그로부터 이틀 후.
강후는 오사카 공항에서 안영호와 그의 외삼촌인 스즈키 후미야를 만났다.
오래전, 안영호를 구했던 날부터 약속하고 고대해 왔던 첫 일본행이었다.
활동 배경이 국내에만 한정되어 있던 강후가 처음으로 국외에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