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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72화 (172/304)

172화 미스테리 던전 (3)

* * *

마나 트랩.

엄밀하게 따지면 던전에서 보기 흔한 함정은 아니다.

헌터들이 머무는 자택이나 길드 시설에 보안을 목적으로 설치되는 경우는 많았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트랩은 이상할 것도 없었으며, 오히려 당연했다.

하지만 던전에서 보게 되는 일은 적었다. 이 트랩을 설치할 만한 지성체가 있어야 해서다.

그래서 강후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마나 트랩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온갖 변수가 존재하는 미스테리 던전이라고 하더라도, 트랩만큼은 아닐 것이라고 본 것이다.

오산이었다.

일행은 강후가 이동 경로에 있는 트랩을 하나하나 해체하는 것을 보면서 놀라고 또 놀랐다.

그들 중에서 가장 마나의 흐름을 잘 잡아내는 연수아가 시도해 봤지만, 트랩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감지용 장비가 있었다면 단숨에 찾아냈겠지만, 던전 안은 기계 장비가 통하지 않는 곳이다.

결국 감각에 의존해서 찾아야만 하는데, 연수아는 연신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강후가 이동 경로에서 제거한 트랩의 수만 해도 총 열다섯 개.

화력은 최소 발목까지는 중상을 입힐 수 있을 만큼의 위력을 가진 녀석들이었다.

아무리 약하게 잡더라도 발가락 몇 개는 제물로 충분히 바칠 수준이었고.

“뭔가…… 많이 부끄러운 현장이 되고 있는 것 같은데.”

장태진의 얼굴이 붉어졌다.

미스테리 던전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박동재에게 깐깐한 외부인 합류 기준에 대해 말했던 그다.

변수 대응에 능해야 하고, 팀에 짐이 되지 않아야 하고, 위험 요소를 꼼꼼하게 체크해야 하고…… 등등.

다양한 이유를 붙여가며, 팀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필요한 자격을 말했었는데.

상황만 놓고 보면 지금 자신들이 통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가장 위험한 것을 놓친 마당이라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전부 강후의 덕을 보며, 안전하게 전진하고 있었다. 강후가 없었다면 누군가는 무조건 다쳤을 터다.

강후는 장태진의 반응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고, 묵묵히 할 일을 해 나갔다.

여기에 가볍게 입을 놀려, 쓸데없이 말을 보태는 것 보다.

가만히 있는 것이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가치를 더 높게 보기에 적합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랬다. 전략적인 침묵이었다.

명가 길드의 사람들은 앞으로도 이용 가치가 상당히 큰 사람들이다.

그들이 갖고 있는 인맥이나 던전에 대한 연결 고리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넓고 깊다.

눈도장을 제대로 찍어 두면, 두고두고 쓸만한 일이 많을 터였다.

앞서 강후가 제주도에 다녀오면서 그루 길드의 환심을 샀듯이 말이다. 지금도 같은 형태다.

‘재밌군. 재밌어.’

강후가 어쩔 줄 몰라 하는 동료들을 뒤에 둔 채, 계속 전진해 나갔다.

누가 더 중요한 사람이지?

그들에게 이런 화두를 던져 주고 싶었다. 이미 생각에 푹 빠져 있겠지만 말이다.

* * *

그 무렵.

김신령은 자신의 저택에서 계속 소환수들을 부리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간만에 어둡고 눅눅한 세공실에서 나와 탁 트인 훈련장에 있으니 느낌이 새로웠다.

그간 소환수들에게 소홀했다는 생각도 들고 해서, 훈련 시간을 대폭 늘리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강후 덕분에 각각 능력이 급상승한 소환수들의 움직임을 보는 재미가 있어서이기도 했다.

“확실히 물건이란 말이야. 아무 생각 없이 내 소환수들에게 스킬을 쏟아붓기만 한 게 아니었어.”

대만족이었다.

소환수의 움직임에 ‘생각’이라는 것이 추가되었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질 만큼, 변화는 컸다.

복기해 보면, 강후가 소환수와의 훈련 과정에서 끊임없이 녀석들의 빈틈을 공략한 것이 컸다.

스킬 뽐내기에 몰입한 것이 아니라, 소환수의 빈틈을 집요하게 노리는 것에 집중했던 것이다.

그 덕분에 이를 방어하고 대응하는 과정에서 학습을 거듭한 소환수의 수준이 확 높아졌다.

이건 단순히 훈련을 잘했다로 내릴 결론이 아니었다.

훈련을 누가 시켰는가, 그가 어떻게 스승의 역할을 했는가, 얼마나 가치가 높았는가!

그런 관점에서 접근해 볼 문제였다.

김신령은 자꾸 강후 생각이 났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니, 더 생각이 났다.

그렇다고 생각의 흐름에 맡겨 두자니 더 생각이 났다. 매력에 푹 빠진 느낌이랄까.

“그런 녀석이면 세공 아이템을 채워 주고 테스트하는 맛도 쏠쏠할 것 같은데…….”

그녀의 취미 아닌 취미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바로 테스터.

게임으로 따진다면 출시 이전에 먼저 경험할 수 있게 해 주는 베타 테스터의 포지션이다.

다양한 세공, 개조 아이템의 제작에 능한 김신령은 특이한 옵션의 아이템을 종종 만들곤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당연히 현재진행형.

그런 그녀가 과거에, 제작한 아이템을 착용시켜 보고, 평가를 들으면서 멋진 조언을 해 주던 사람이 있었다.

지금은 다시는 보지 않을 최악의 악당이 되어 버렸지만, 그땐 정말 아끼는 아이 중 한 명이었다.

“빈센트 마이어…….”

애써 지워 버렸던 이름이 떠오른다.

정말 제대로 밀어 주고 키워 주고 싶어서 마음을 많이 썼던 녀석이다. 그만큼 녀석이 많이 따르기도 했고.

그러나 전부 가식이었다.

자신에게 보여 줬던 모든 일면은 가짜였고, 그의 본색은 바로 살인마가 되어 버린 지금이었다.

그래서 김신령은 빈센트 마이어의 악명에 대해 늘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그로 인해 희생된 헌터들에게도 같은 감정이었다. 자신 때문에 괴물이 성장한 듯해서다.

다시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꾸 강후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건.

외면하려고 해도 보이는 강후의 실력 때문이었다. 보면 볼수록 매력이 느껴지는 것이다.

보석을 아무리 외면하려고 해도 보석 자체가 반짝이는 것을 숨길 수는 없듯이.

지금의 강후가 딱 그랬다.

계속 지켜보고 싶고, 접점을 만들고 싶었다.

한 번 호되게 당한 아픔이 있음에도, 다시 바보처럼 이끌려보고 싶은 인연이기도 했다.

그것이 이성적인 호감은 아니지만, 헌터 대 헌터로서 느끼는 강한 이끌림인 것은 맞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양주를 좀 마셔야겠어.”

강후로 시작해서 강후로 끝나는 생각에 완전히 푹 빠져버린 지금이다.

김신령이 체념한 듯, 고개를 휘휘 저으며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독한 술이 간절하다.

* * *

중간 휴식의 시간이 왔다.

그새 레벨은 1이 올라서 171이 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경험치 벌이는 정말 짭짤한 수준.

보통 넷도 아닌 다섯이 왔다면, 사실 미들 보스 정도까지는 가야 레벨업을 기대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보정된 경험치가 추가로 들어오는 덕분에 남은 네 사람에 비해 상대적인 이득을 더 봤다.

강후는 박동재와 함께 전방 정찰 및 경계를 목적으로 일행에게서 떨어져 나온 상태였다.

지금은 두 사람이 정찰 담당이고, 나머지 셋이 휴식을 하는 시간이다.

다음번 휴식은 정반대의 포지션으로 진행이 될 예정이었다. 계획된 로테이션이다.

강후와 박동재가 충분히 먼 거리까지 이동한 것을 확인한 세 사람.

그들은 그제야 일상적인 대화에서 ‘강후’로 화제를 바꿨다.

포문을 먼저 연 사람은 가장 꼼꼼하게 강후를 지켜본 장태진이었다.

“출혈 유지는 아예 걱정할 필요도 없고. 어떻게 본다면 호수보다 훨씬 변수 창출에 능해.”

장태진과 최호수는 동갑, 연수아는 동생이기에 두 사람은 서로 편하게 말하는 사이였다.

연수아만이 두 ‘오빠’들에게 존대를 하고, 깍듯하게 예를 갖추는 식이다.

최호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들어오는 공격을 묵묵하게 받아내며 시간을 벌어 주는 쪽에 가깝지. 신강후 님은 스스로 판을 짜는 쪽이고.”

연수아도 의견을 보탰다.

“제가 점수를 높게 주고 싶은 부분은 강후님이 암살자라는 거죠. 원래 일반적으로 암살자는 저렇게 안 하잖아요?”

“리스크가 크니까.”

“맞아요. 태진 오빠 말처럼 가뜩이나 종잇장인 물몸 암살자인데 저러다가 죽으면 본인만 손해고.”

“기본 스탯에서는 좀 아쉬운 움직임이 보이는데, 스킬로 커버되니까 전혀 문제가 없어 보여.”

“네. 기본 움직임은 생각보다는 좀 느려요. 근데 스킬로 봤을 때는 속도가 정말 빨라요. 저도 살피다가 몇 번 놓쳤을 정도로.”

“도대체 스킬이 몇 개지?”

“모르겠어요. 스킬 안에서도 변주를 주니까, 그림자 관련된 스킬 같은 경우는 갈피도 못 잡겠어요. 그림자를 각각 별개로 봐야 하는지, 도대체 어떤 식으로 굴러가는 건지.”

이야기꽃이 핀다.

결과적으로 세 사람은 전부 강후의 실력에 감탄하고 있었다.

‘스킬빨’이라는 말로 강후의 능력을 낮게 평가하기에는 활용 능력이 정말 뛰어났다.

아무리 좋은 재료라고 한들, 셰프의 손길이 엉망이면 맛없는 요리가 되기 쉽다.

하지만 셋의 기준으로 봤을 때, 강후는 최고의 셰프였다.

적재적소에 자신이 가진 스킬을 사용할 줄 알았고, 효과를 최대로 보는 방법을 알았다.

그것은 냉철한 판단력과 다양한 경험이 없다면 절대 보여 줄 수 없는 모습이기도 했다.

그때.

“하, 뭐 하고 있는 거냐, 우리?”

장태진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순간 자괴감이 확 든 탓이었다.

보통 미스테리 던전에 오면, 핵심이 되는 주제는 앞선 전투에 대한 복기였다.

각자 자신의 아쉬웠던 점을 얘기하고 반성하거나, 혹은 만족하는 점을 자랑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던전에 들어온 이후, 지금까지 계속 대화의 중심에는 강후가 있었다.

심지어 강후는 지금 정찰을 나가 있어 자리에도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후의 실력에 대해 감탄하는 이야기를 자꾸 하게 되는 것이었다.

사실 그것이 명가 길드원들의 ‘전매특허’이기도 했다.

실력 있는 헌터에게 항상 관심을 갖고 동경하며, 배우고 가까이할 점을 찾는다는 것.

그것이 지금의 소수 정예를 만든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런 명가 길드원 세 사람에게 강후는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실력자였다.

아쉬운 건 레벨? 아니었다.

오히려 레벨이 낮기에 더 기대가 됐다. 그만큼 성장의 가능성이 훨씬 더 많다는 뜻이니까.

같은 시각.

박동재와 함께 정찰 중인 강후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미들 보스 구역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들 보스 몬스터의 이름은 팔크스. 거대한 낫을 들고 있고, 인간형의 외형을 하고 있다.

미스테리 던전 공략에서 최종 목적지이기도 했다. 메인 보스 몬스터는 너무 강력했기 때문이다.

강후도 관련된 브리핑을 듣고는 욕심낼 이유가 전혀 없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강한 녀석이었다.

강후가 말했다.

“던전이 매력 있네. 몬스터들이 멍청하지 않아. 생각하는 비선공형의 몬스터들로 구성되어 있고.”

“맞아. 미스테리 던전에 있는 몬스터들은 유독 똑똑하지. 유인해도 쫓아오다가 말잖아?”

“그게 좀 놀라웠어.”

앞선 전투에서 강후가 몇몇 대장격 몬스터를 유인해서 처치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

보통 던전에서 자주 쓰는 방법으로 무리에서 이탈시켜, 손쉽게 제거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하지만 미스테리 던전의 몬스터들은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알았다.

어느 정도 쫓다가, 낌새가 수상한 것을 인지하고는 원래 자리로 돌아갔던 것이다.

게다가 매복을 진득하게, 끝까지 하는 경우도 있었다.

기척이 좀 느껴졌다고 해서 바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정말 가까이 접근할 때까지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궁수의 매복은 한 번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그리고 갈수록 놈들의 치밀함도 더해져 갔다.

“기대 반 걱정 반이군.”

그래서 강후는 머지않아 마주하게 될 미들 보스 몬스터, 팔크스를 보며 긴장하고 있었다.

센 놈이 머리까지 똑똑하면 정말 까다롭기 때문이다. 적으로서는 가장 상대하기 싫은 타입이다.

물론 그만큼 녀석으로부터 강탈할 스킬에 대한 기대치는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그로부터 한나절 후.

강후가 이동 경로에 있는 몬스터를 남김없이 척살하며, 착실하게 레벨을 끌어올리고.

어느덧 레벨 172를 지나, 173, 그리고 174가 막 되었을 즈음.

강후와 일행은 팔크스를 100m 앞에 둔 위치까지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진짜 크네.”

모두가 팔크스가 들고 있는 길이 4m 이상의 대형 낫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자기 몸보다 훨씬 긴 낫을 양손으로 움켜쥔 팔크스는 벌써 잔뜩 몸이 달아올라 있었다.

“쉽지 않겠군.”

강후의 눈빛도 깊어졌다.

녀석에게 유의미한 공격을 시도하려면 4m를 단숨에 좁힐 수 있는 기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어설프게 거리를 벌리거나 좁혔다가는 저 낫에 어디든 날아가기 딱 좋은 상황.

꽤 어려운 녀석이 될 듯했다.

이것이 미스테리 던전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한 방에 훅 갈 수 있는 위험이기도 했다.

저승과 천국은 단 한 끗 차이의 경계를 두고 곁에 머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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