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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71화 (171/304)

171화 미스테리 던전 (2)

* * *

시연은 금방 끝났다.

강후는 히든 스킬인 ‘흑월참/백일참’과 몇 가지 핵심 스킬을 제외한 스킬을 모두 보여 주었다.

어차피 던전에 들어가면 사용할 수밖에 없는 스킬이기에 공개에 대한 부담도 딱히 없었다.

강후의 스킬을 꼼꼼히 살핀 세 사람이 내린 결론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박동재가 자신만만하게 추천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

그간 자신들이 생각해 왔던 암살자의 이미지와 강후는 결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세 사람 모두 강후의 스킬이 가진 다양성에 가장 높은 점수를 줬다.

스킬빨이라는 것이 헌터에게 있어, 절대 무시 못 할 요소이기 때문이다.

야구로 따지면 투수에게 다양한 변화구 옵션이 있는 셈이었다.

그래서 상대하는 입장 – 타자 – 에서는 어떤 변화구 – 스킬 – 가 올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한데 강후는 노림수를 갖기 힘들게 만들 정도로 많은 스킬을 갖고 있었다.

강후에게 확인한 스킬이 열다섯 개 이상을 넘어갈 무렵에는 하나하나 기억하기를 포기할 정도.

“제가 말씀드렸죠? 강후 형에게는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든 그 이상이 있다고요.”

“동재야, 적당히 해라. 낯 간지럽다.”

자신의 매력을 대신 어필해 주고 있는 박동재에게 강후가 눈짓을 보냈다.

백번 천번 고마운 일이긴 하지만, 각 잡고 이렇게 띄워 주는 것이 영 어색해서 견딜 수 없었다.

물론 기분은 좋았다.

세 사람의 반응이 훨씬 더 호의적으로 변한 것을 보니, 더욱 뿌듯하기도 하고.

“시연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구경 했네요. 전 동재의 자신감이 이해가 갑니다.”

먼저 직접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장태진이었다.

명가 길드의 마스터인 장선영의 남동생이기에 입김이 상당히 큰 인물 중에 하나.

그런 그가 먼저 강후에 대한 인정의 물꼬를 트니, 나머지 두 사람의 반응도 결이 같았다.

“기대가 됩니다.”

“적으로 마주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씀드린다면…… 너무 호들갑일까요?”

최호수와 연수아도 반응을 보탰다. 확실히 호의적이었으며, 영혼 없는 멘트도 아니었다.

‘재밌겠어.’

강후 역시 이들과 함께하게 될 미스테리 던전 공략이 기대가 됐다.

분명 예측하기가 어렵고 위험할 가능성이 높은 던전이지만, 그래서 더 설렜다.

특히 미스테리 던전의 가장 큰 특징점은 레벨이 낮은 헌터에게는 ‘보정 경험치’를 제공한다는 것.

이들 중에서 가장 레벨이 낮은 강후로서는 경험치에 대한 기댓값이 훨씬 큰 셈이었다.

게다가 미들 보스와 메인 보스도 틀에 박힌 형태나 개수로 나오는 것이 아닌 만큼.

이득을 보려면 악착같이 뜯어낼 만한 요소가 많았다.

죽지만 않는다면! 얻을 수 있는 보상은 일반 던전보다 훨씬 더 많고 다양했다.

강후는 던전으로 들어오면서 그동안 확인을 미뤄 뒀던 아이템 하나를 살폈다.

일전에 정문 제1 연구소와 관련된 의뢰에서 한 판 붙었던 헌터, 증선락에게 얻은 반지였다.

그의 손가락을 절단하고 탈취한 반지는 총 2개.

그중에 하나는 마나에만 특화된 반지라서 판매할 계획을 세운 상태였다.

앞서 강복화를 만났을 때 팔 수도 있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보관만 하고 있어 타이밍을 놓쳤다.

그리고 남은 반지 하나는 일찌감치 착용은 하고 있었지만, 옵션 확인을 이제야 했다.

사실 아주 특별한 이슈까지 있는 것은 아니어서, 확인을 서두르지 않았던 것이기도 하다.

【경쾌 - 반지】

【등급 : 3등급】

【민첩 +200】

【항마 +15】

【맷집 +15】

민첩 스탯에 특화된 반지였다.

기공수인 증선락에게 다소 부족한 기동력을 채워 주는 용도의 반지였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강후에게는 결이 잘 맞는 반지였다.

스탯은 다다익선이고, 특히 민첩 스탯은 스킬이 없을 때의 기본적인 기동력을 높여 주니까.

강후는 그간 선천성 마나 과민증이라는 특수한 몸 상태 때문에 체력 육성에 집중했을 뿐.

민첩 스탯이 중요하지 않았었던 것은 아니었다. 생존을 위해 체력이 0순위가 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렇게 민첩에 특화된 반지는 쌍수 들고 환영일 수밖에 없었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군. 할 게 많다 해서, 정신을 놓아 버리면 그건 더 큰 문제지.’

느슨해졌다기보다는 정신없는 일정 속에서 흐트러진 집중력을 되찾아야 함을 자각했다.

쓸모없는 아이템을 갖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도 손해다.

빨리 현금화를 해서 쓸만한 아이템으로 바꾸거나, 아니면 상위 아이템 구매에 쓰는 게 맞다.

* * *

던전 공략이 시작됐다.

일본에 가기 전의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일정.

던전에 입장하자마자 강후 일행을 반긴 것은 던전 특유의 공기나 배경이 아니었다.

입장과 동시에 쏟아지는 화살비였다. 고지를 선점하고, 매복하고 있던 궁수들이 있었던 것이다.

인간형 궁수 몬스터로, 언뜻 보면 판타지 영화 속의 엘프 궁수를 쏙 빼닮은 적들이었다.

강후가 상황을 인지하고 즉각적인 대응에 들어갔을 때, 다른 동료들 역시 이미 대응하고 있었다.

팍! 파팍!

먼저 최호수는 일행 전면에 서서는 몸을 최대한 부풀려, 날아드는 화살을 맨몸으로 받아냈다.

‘저게 되나.’

목적을 갖고 일행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강후가 화살비를 받아내는 최호수를 보며 경악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스킬 ‘석화’를 믿는다고 해도, 저렇게 깡다구 있게 버티진 못할 것 같았다.

최호수는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자신의 두꺼운 피부로 공격을 받아내고 있었다.

게다가 급소가 될 만한 부위, 그리고 눈처럼 연약한 부위는 별도로 특수 외피가 활성화됐다.

탱킹 특화라는 말이 전혀 아깝지 않을 세팅이었다.

티잉! 티잉! 티잉!

이어 장태진이 여기저기에 만든 기공강벽은 여러 갈래로 날아드는 화살의 위협적인 경로를 차단했고.

위이이잉…….

연수아가 부적을 태우며 만들어낸 주술 역장은 화살 속도를 현저하게 늦춰 버렸다.

그 역장 안에서는 마치 시간조차 느려진 것처럼 화살이 아주 느리게 지나갔다.

연수아가 그 안에서 손을 휘저어가며, 화살을 하나하나 회수할 수 있을 정도였다.

박동재는 화살비의 대부분을 받아내고 있는 최호수에게 방어 버프를 쏟아붓는 중이었다.

‘다들 좋네.’

한 명도 당황하지 않고, 능숙하고 차분하게 대응하는 모습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프로페셔널함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달까. 스스로에게 갖는 자부심의 근거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한데 바로 그때.

‘대장인가?’

강후는 궁수 무리 중에서 유독 손끝에 맺히는 마나의 기운이 강렬한 존재를 확인했다.

다른 궁수들과 달리, 화살 한 대에 담아내는 마나의 양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다.

더 무서운 점은 고출력의 마나를 한 점에 담아내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것이다.

가속과 도약을 반복하며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강후가 궁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납치 스킬의 사전 동작.

실로 오랜만에 쓰는 납치 스킬이지만, 지금은 쓰임새가 매우 충분해 보였다.

“억!”

이내 궁수 대장이 신음을 토해내며, 강후의 납치에 이끌려 날아왔다.

피잉!

그 사이에 활시위를 떠난 화살 한 대가 일행이 있는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쉬이이익…… 퍼석!

연수아가 펼쳐둔 역장의 방해를 전혀 받지 않고 통과해서는 뒤에 있던 나무에 꽂혔다.

강후가 납치로 변수를 주지 않았더라면, 누군가 크게 부상을 당했을 한 방이었다.

“아.”

짧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의 위력이 궁수 대장에게 있었던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위기를 넘겼다.

세 사람의 시선은 일제히 강후에게로 향했다. 그 덕분에 위험을 모면할 수 있었기에.

한편 강후는 납치한 궁수 대장의 뒤에서 그의 목을 감싸고는 그대로 단검을 꽂아 넣었다.

작정하고 한 방에 전력을 담은 대참수였다.

그리고 동시에.

파앙!

강후에게서 출발한 그림자 다섯 개가 궁수 무리를 향해, 어지러이 파고들었다.

푹! 푹! 푹!

강후가 대참수 한 번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궁수 대장의 목에 단검을 몇 번 더 찔러 넣었다.

이어서 혈화를 곧바로 발동시킨 뒤, 더 잴 것도 없이 그림자 하나를 선택해 위치를 옮겼다.

그러자 궁수 대장과 멀리 떨어진, 궁수 무리들 한가운데에 자리하게 됐다.

퍼펑!

궁수 대장의 핏빛 폭발은 영화 속의 한 장면과도 같았다.

방금까지 호기롭게 화살을 날리던 대장이 어느 새 목 없는 귀신이 되어 쓰러지고 있었다.

파팟! 팟! 팟!

여기에 호흡을 맞춰, 강후가 연속 네 번으로 위치를 바꾸며 궁수 넷을 추가로 유린했다.

그림자가 ‘실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궁수들은 속수무책으로 단검에 찔려 죽어갔다.

미리 선점하고 있던 고지.

하지만 이 안에서 불청객 하나가 날뛰기 시작하자, 근접전에 약한 궁수들로서는 답이 없었다.

어설프게 활을 휘둘러서 강후를 타격하려는 시도는 처음부터 아예 무위로 돌아갔고.

푸욱!

“커억!”

되려 강후에게 화살을 빼앗기고는 화살째로 눈이나 목 옆을 찔려 비명횡사할 뿐이었다.

게다가 상처를 입은 궁수 모두에게 공평하게 한 번은 찾아오는 혈화는 저승사자와도 같았다.

“이게 암살자의 힘인가?”

“우리가 늘 바랐던 그림이기도 했죠. 주도적으로, 능동적으로 먼저 판을 짜 주는 암살자.”

“즉, 적극적인 암살자지.”

그 시각, 강후의 원맨쇼를 지켜본 세 사람이 저마다 감탄이 섞인 멘트를 하고 있었다.

세 사람은 스스로가 변수에 매우 능숙하게 대처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단 방어하고 난 뒤, 반격의 물꼬를 트면 상황은 무난하게 정리될 것이라고도 판단했다.

하지만 강후는 그것보다 한 걸음을 앞서 나가서, 아예 적의 매복지를 뒤집어 놓았다.

게다가 궁수 대장의 차별화된 특성을 인지하고는 그를 핀셋처럼 납치로 소환해 죽였다.

그 덕분에 박동재를 포함한 넷은 부상을 피할 수 있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박동재가 감탄하고 있는 세 사람을 향해서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때요? 진짜 대단한 형이죠? 판단도, 실행도 전부 빨라요. 페이스 맞추기가 정말 어렵죠.”

“한 번으로 속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첫 대응은 우리보다 훨씬 빠르고 예리했어.”

장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암살자니까 당연한 건 없다. 기동이 빠를 순 있어도, 저렇게 순식간에 여럿을 제압하긴 어렵다.

“정직하게 화살이 그대로 왔으면 호수가 다쳤을 거예요. 피했으면 제가 다쳤을 거고요.”

연수아도 의견을 보탰다.

강후가 궁수 대장의 일격을 무위로 돌아가게 만든 것이 정말 컸다.

화살의 위력이 다를 수는 있다고 생각했지만, 감속 왜곡을 무시하고 들어올 줄이야.

복기할수록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는 상황이었다.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때.

“잠깐!”

강후가 다급하게 외치며, 앞으로 전진하려던 일행을 멈춰 세웠다.

궁수들이 제압된 마당에 더 신경 쓸 것이 있나 싶었지만…….

어느새 앞으로 다가온 강후가 장태진의 발끝에서 50cm도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서.

사각. 서걱. 사가각.

바닥에 묻혀 있던 대인용 트랩 하나를 단검 끝으로 들어 올렸다.

일정 체중 이상에만 반응하는, 마력 폭발형의 트랩이었다.

누구 하나 느끼지도, 예상하지도 못했던 함정. 그것이 강후에게는 보였던 모양이다.

“…….”

일순간 적막이 감돌았다.

박동재가 절대 실망할 일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이유를 다시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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