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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70화 (170/304)

170화 미스테리 던전 (1)

* * *

그 시각.

타카시는 리코우 길드로부터 온 전화를 받고 있었다.

음성 변조기를 써서 전화를 받고 있는 탓에 그의 목소리는 꽤 우스꽝스러웠다.

시사 보도 프로그램에서 얼굴을 가리고 나온 제보자가 낼 만한, 딱 그런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의 변조된 목소리, 그리고 쾌활하기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분신의 모습과는 다르게.

전화에 집중하고 있는 타카시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도 진지했다.

짙게 가라앉은 다크 서클이 그의 음침을 한 층 더 부각시켰다.

그는 도대체 몇 잔이 쌓인 건지도 알 수 없는 거대한 커피 종이컵의 탑을 한 번 쓱 보고는.

줄곧 듣기만 했던 통화에 대한 대답을 꺼내기 시작했다.

“신강후라는 헌터가 나를 만나 보고 싶어 한다는 거죠.”

- 맞습니다. 전부터 꼭 만나 보고 싶었던 헌터인데, 이번에 기회를 얻고 싶다고 하셔서요.

“저는 누군지 전혀 모르는 헌터인데.”

- 그러셔서 조심스럽게 여쭤보는 겁니다.

타카시가 떡진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 두었었던 노트북을 열었다.

타닥. 탁. 탁.

빠르게 손가락이 움직이면서 이내 강후의 이름이 입력되고, 정보를 찾는다.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타카시가 별도로 구축한 프로그램을 쓰는 것이다.

순식간에 강후에 관련된 자료들이 출력됐고, 몇 가지 흥미로운 뉴스가 확인됐다.

“흐음.”

- 어떠신가요? 만남에 관련된 페이는 저희가 지급할 예정입니다.

“신강후 헌터가 요청한 만남에 대한 대가를 리코우 길드가 치른다…… 좀 흥미롭네요?”

- 꽤 중요한 손님이라서요.

“돈은 됐고요. 일단 만나보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거야, 항상 재밌는 일이니까.”

- 알겠습니다. 관련해서 일정은 다시 여쭙고, 그때 확정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요. 수고하세요.”

통화가 끝났다.

타카시는 강후에 대한 정보들을 유심히 살폈다.

특이한 사건 몇 개에 얽혀있기는 하지만, 그리 대단치는 않아 보이는 헌터였다.

이슈가 될 만한 사건 사고에 휘말려있는 정도랄까? 리코우 길드가 저자세로 임할 헌터는 아니었다.

저 정도라면 아마 길드의 간부와 가까운 사이거나, 관련된 사람이 목숨의 빚이라도 졌거나…….

“후자군.”

얼추 짐작이 됐다.

어쨌든 리코우 길드에서 특혜를 아무에게나 베푼 적은 없는 만큼, 특별한 사람이겠지 싶었다.

다만.

“나랑 뭘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네.”

타카시는 그게 궁금했다.

가뜩이나 대외적으로 이미지도 나쁜 자신과 하고 싶은 게 뭐가 있는 걸까.

그것도 바다를 건너서 일본으로 직접 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할 만큼 말이다.

사소한 궁금증들은 헌터 그램의 보안 메시지나 개인 메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데 말이다.

“뭐, 내가 먼저 몸 달을 필요는 없지. 목마른 놈이 먼저 우물을 파야지? 하, 근데 물이…….”

목마름을 운운하고 있는데 컵에 물이 없었다. 냉장고를 열어 보니, 아까 먹은 생수가 마지막이었다.

“하아…….”

타카시가 한숨을 내쉬었다.

분신은 아직 한국에 있다.

생수를 사려면 외출을 해야 하는데…….

사람과 직접 부대끼는 것은 바퀴벌레를 보는 것만큼이나 두려워하는 타카시였다.

그런데 이곳은 번화가나 도심과도 거리가 멀어 택배나 배달이 불가능하다.

“수돗물…….”

일단 급한 대로 다른 방법으로 갈증을 해결해야겠지 싶었다.

분신이 없으니 이리 불편할 수가 없다.

* * *

밤늦은 시간, 강후는 예정대로 박동재를 만났다.

전세혁과의 얘기도 잘 마무리하고 온 후였다. 조만간 그와 협업할 일이 생길 듯했다.

타깃은 이클립스.

전세혁은 대담하게 이클립스의 아지트 중 하나를 노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강후가 노리는 대상이기도 한 ‘고경호’와 연결된 장소도 있었다.

“형! 왜 이리 바빠?”

“뭐가 바빠? 약속 시간보다 훨씬 일찍 왔는데.”

“아니, 아까 메시지 하니까 세혁이 형 만나고 있다고 해서 말이야. 그 직전에는 부산이라고 하지 않았어?”

“시간을 쪼개서 잘 쓴 거지.”

“형 보면, 시간을 분초 단위로 나눠서 칼 같이 쓰는 것처럼 느껴져. 가끔 무섭다니까?”

“가끔이라 다행이네.”

강후가 피식 웃었다.

가급적이면 낭비할 시간을 만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맞았다.

아직 해야 할 것도 많고, 쫓아가야 할 목표도 많은 시점이니까.

“차소혁. 그 사람은 아직 대전에 있어. 형 위치를 제대로 특정을 못 하는 것 같아.”

“내가 청안 용병단이랑 접점이 있으니, 아예 그쪽에 돗자리를 펴려는 것 같군.”

일전에 자신의 손에 죽었던 거너 쌍둥이 형제가 떠올랐다.

녀석들도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전국을 폭넓게 쓰는, 소속 없는 자신을 특정 지역으로 좁혀서 찾을 수는 없었겠지.

그렇다면 그나마 자주 만들어지는 접점이 용병단 청안이다. 즉, 대전으로 범위를 축소하게 된다.

그러니 저렇게 대전에 진을 치고 있는 것이다.

차소희는 이클립스 길드 차원에서 전방위적인 지원과 함께, 타 조직의 정보 공유도 받았었다.

하지만 차소혁은 그것까지는 기대할 수 없을 테니, 당분간 불철주야 계속 고생할 가능성이 크다.

“녀석이 민감도가 낮아서 정보 수집은 어렵지 않으니까. 마킹은 내게 맡겨 줘, 형.”

“눈을 붙였어?”

“음. 싸게 구했어. 걱정하지 마. 형이 부담할 필요 없어.”

“이래저래 고맙네.”

“목숨값 갚으려면 한참 남았어. 열심히 좀 갚아 보자고!”

공치사와 거리가 먼, 박동재의 겸손함이 강후는 마음에 들었다.

아마 내가 형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고 있다느니 하는 말을 해댔으면, 생각이 달랐을 것이다.

사람의 진가란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박동재는 아주 괜찮은 놈이었다.

“던전은?”

“확보 끝났어. 이동만 하면 돼. 가기 전에 테스트만 잠깐 하고?”

“던전 근처에 그럴 만한 공간이 있던가?”

“응. 다 마련해 뒀지. 형, 부담 갖고 있거나 그런 건 아니지? 살짝 표정이 굳은 것 같아서.”

“부담은 없고, 어떤 사람들일까 하는 궁금함은 있다.”

명가 길드 소속의 헌터들.

소수 정예만 모은 것으로 유명한 이 길드는 생각보다 힘이 강력한 길드였다.

앞뒤 못 재고 달려든다는 이클립스의 헌터들도 명가 길드원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

길드원 하나만 건드려도, 모든 길드원이 지옥까지 쫓아가서 복수한다는 제1 원칙!

그것이 익히 알려져 있는 탓에 누구도 명가 길드원에게 해코지할 생각을 못 하는 것이다.

이를 악용해서 명가 길드원이라고 사칭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경우에는 명가 길드를 건드리는 것보다 더 처절한 복수를 감당해야 했다.

일단 기본 구성이 ‘실종’이었다.

명가 길드를 사칭한 이후로 세상에 모습을 다시 드러낸 헌터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바로 가자, 형. 다들 기다리고 계셔.”

“동재야, 고생 많았다. 덕분에 이렇게 미스테리 던전을 가네.”

“갈 자격이 있으니까 당연히 가는 거지. 자, 갑시다! 주인공을 다들 기다려요!”

* * *

미스테리 던전의 위치는 강후가 생각한 것보다는 훨씬 더 은밀한 곳에 숨겨져 있었다.

준공 도중 건설사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버려진, 오래된 아파트의 지하였던 것이다.

그것도 시공 도중 중단된 탓에 지하에서도 허물어진 벽틈으로 엉금엉금 들어가야만 보였다.

가는 과정보다는 도대체 이곳에 던전 입구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가 더 궁금할 정도.

그리고 박동재의 말대로 아파트 근처에 스킬 시연에 적합한 정도의 공터가 있었다.

현장에는 이미 명가 길드의 세 헌터가 도착해 있었다. 오늘 함께할 일행이다.

강후를 마주한 세 사람이 각자 통성명을 하며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길드 마스터 장선영 님의 남동생이자 기공수인 장태진이라고 합니다.”

“신강후입니다.”

기공수.

일전에 증선락과 상대해 본 적이 있는 직업군이다.

기공수의 뿌리는 시작이 중국이다. 그렇다면 장태진은 중국에 유학을 다녀온 케이스일 수 있다.

성좌 정보를 살피니, 기공수 특징에 맞게 기감 활용에 도움이 되는 계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최호수라고 합니다. 미리 힘을 끌어올리고 있던 터라, 모양새가 좀 빠지네요.”

“신강후입니다. 멋지시네요.”

이어서 인사를 나눈 사람은 최호수였다. 직업군을 소개하진 않았지만, 보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그는 늑대인간이었다.

아마 이번 팀 구성에서 탱커 역할을 맞게 될 듯했다. 거구의 몸이 이미 그렇게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안녕하세요? 연수아라고 해요. 주술사예요.”

“신강후입니다. 주술사 클래스는 처음 보네요.”

“호호. 흔하진…… 않죠?”

연수아라는 이름의 여성은 주술사였다.

기공수, 늑대인간, 주술사.

전부 다 좀처럼 보기 힘든 클래스다. 원작에서도 깊게 다뤄진 적 없었다.

그런 클래스가 있다더라…… 하는 설명 정도로 스쳐나갔을 뿐. 디테일하게 다뤄지진 않았다.

구성은 좋았다.

저 인원 셋이 박동재만 더해지면 근거리, 원거리 공격에 아무 문제가 없어진다.

주술사는 버퍼, 디버퍼의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주술로 원거리 공격을 담당한다.

여기에 기공수가 강력한 한 방으로 부족한 폭딜 포지션을 채워 주고.

늑대인간이 탱킹을 담당하며 근거리 전투를 치르면, 빈틈은 완전히 사라지는 셈이다.

‘동재가 날 열심히 팔았나 보네.’

강후가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박동재를 바라보았다.

녀석은 벌써부터 들떠 있는지, 던전 주변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상황을 보니, 강후가 꼭 필요해서 초청을 했다기보다는.

박동재가 열심히 강후의 매력에 대해 언급을 한 덕분에 호기심이 생겨 부른 듯했다.

어쨌든 실력 있는 암살자도 구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출혈 딜러로서의 쓰임새도 있으니, 이래저래 괜찮은 추가 옵션이라고 생각한 거겠지.

다들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이어진 세 사람의 말은 역시나 강후를 알게 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소식에 대한 얘기였다.

확실히 이클립스와의 사건이 좋은 의미로는 자기 어필이 확실하게 되는 듯했다.

조만간 전세혁과 한 번 시원하게 칼춤을 추고 나면, 그런 쪽으로는 이름이 더 올라갈 것이다.

워낙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칭찬을 반복해서 하는 터라, 강후가 적당히 흘려들었다.

그들의 칭찬을 하찮게 여겨서가 아니라, 내용 레퍼토리가 너무 똑같아서였다.

그렇게 기분 좋은 인정의 시간이 끝나고 난 뒤.

공터 한가운데 자리를 잡은 강후가 단검을 움켜쥐고는 스킬 시연에 들어갈 자세를 취했다.

박동재가 말했다.

“형! 시연은 어떻게 할 거야? 도와줄까?”

“괜찮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게 맞아. 버프는 항상 달고 있는 건 아니잖아.”

강후가 고개를 저었다.

스킬에 대해서 상대도 정확하게 평가하려면, 다른 추가 조건이 붙지 않아야 한다.

강후는 자신이 가진 실력 그대로 그들에게 평가받고 싶었다.

이어 말을 덧붙였다.

“한 번에 제가 쓸 스킬을 전부 연결해서 쭉 가겠습니다. 집중해서 봐주세요.”

장태진, 최호수, 연수아, 그리고 박동재의 시선이 전부 강후에게로 집중됐다.

박동재의 표현에 따르면, ‘혼자 다 해 먹는다’는 암살자.

과연 그 포장이 거품인지, 제대로 된 포장인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하는 그들이었다.

레벨 400을 훌쩍 넘기는 그들은 산전수전 다 겪어본 역전의 헌터들이기도 했다.

누군가를 냉정하게 판단하고 평가할 근거는 충분했다. 그리고 당연히 강후도 예외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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