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잔챙이 (3)
“그건 강후 씨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판단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발언이 조심스럽네요.”
이예린의 말에 강후는 달리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청안이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꼭 나서서 정리해 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비즈니스 파트너지, 모든 것을 함께하는 운명 공동체인 것은 아니니까.
좋고 나쁘고, 이런 방식으로 해석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강후가 쓸데없는 생각을 걷어냈다.
“일단 알겠습니다. 의뢰는 그렇게 진행해 주세요.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더 좋은 의뢰를 받아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이예린과의 미팅은 끝났다.
그리고 강후는 청안 빌딩을 나서기 전, 횡 이동을 하며 자연스럽게 은신 상태에 들어갔다.
* * *
기다림이라는 것.
그것은 아무 생각 없이 있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최진호와 최진수는 실감하고 있었다.
멍때리는 일은 두 형제에게는 제법 익숙한 일이었다. 이클립스에서의 보직이 그랬으니까.
하지만 기다리는 일은 익숙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둘 다 거너이면서 저격에 특화된 헌터였지만, 이상하리만치 끈기는 부족했다.
저격의 최우선 덕목은 끈질기게 기다리는 것이지만, 기본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하암…….”
그래서일까.
언제 나타날지 기약이 없는 강후를 기다리던 최진수가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굳은 몸을 풀어주는 것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평소와 같은 움직임이었다.
한데 바로 그때.
솨악!
“끅!”
최진수의 옆으로 뭔가가 지나갔고, 기지개를 켜던 최진수가 다급히 목을 움켜쥐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
푸슈슛!
최진수가 갑작스럽게 쏟아져 나오는 피를 어떻게든 지혈하려 했지만, 의미 없는 몸부림이었다.
누구에게, 어떻게 죽었는지 판단할 겨를도 없이 최진수는 그렇게 목숨을 잃었다.
“X발, 뭐야?”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동생이 있는 쪽을 살피던 최진호의 눈에 그 상황이 보였다는 것이다.
강후였다.
청안 빌딩에서 꽤 떨어진 이곳에 숨어있던 자신들을 어떻게 발견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들켰다. 그것이 중요했다.
“신강후다! 죽여!”
“덮치자!”
함께 배치해 뒀던 부하들이 일제히 강후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최진호는 동생의 죽음에 슬퍼할 틈도 없이, 강후의 움직임을 쫓았다.
지금은 그게 우선이었다.
그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1회성이기는 하지만 반경 1km 안에서 상대를 완벽하게 추적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강후가 은신을 하든, 장애물 뒤로 모습을 숨기든 상관없이 무조건 노출이 됐다.
“크아악!”
“으악!”
잠깐 사이에 부하 둘이 목숨을 잃었다.
강후는 횡 이동을 활용한 은신과 빠른 이동을 반복하며, 부하들을 유린하고 있었다.
“제길.”
강후를 정밀하게 조준하려던 최진호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왕이면 핀셋처럼 강후만 정확히 골라내서 죽이고 싶었는데, 그게 힘든 상황이었다.
부하들이 뒤섞여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부하들 덕분에 시간이 벌리고 있고, 강후의 기동도 느려진 상황이기는 했다.
‘그렇다면.’
최진호는 생각했다.
부하들의 ‘숭고한 희생’을 재료로 삼아서, 반드시 강후를 죽이고 말겠다고.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었던 희생은 무겁게 받아들이겠다고.
그렇게 팀킬의 가능성에 대해서 자기 정당화를 마쳤다. 부하들은 꿈에도 생각 못 한 판단이었다.
‘잡았다.’
정조준을 마친 최진호가 최대한 숨을 참았다.
그리고 완벽하게 강후를 시야에 담은 뒤, 침착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이제 총성이 들리면, 동시에 강후의 이마 한가운데에서 피가 튀겠지.
설령 앞을 가로막는 부하가 있다면, 그 녀석과 함께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질 것이다.
타앙!
이윽고 들린 총성.
최진호는 성공을 자신했다.
퍼석!
역시나 최진호가 예상했던 대로 강후와 동선이 겹친 부하 하나의 뒤통수부터 터졌다.
이미 가늠하고 있었던 상황이기에 전혀 당황스럽지 않았다. 강후가 죽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이마에 정통으로 마탄 저격을 당했어야 할 강후의 모습이 멀쩡했다.
“저게 뭔…….”
최진호는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일시적으로 돌처럼 변했던 강후의 앞모습을.
그것은 분명 스킬이었다. 신체를 단단하고 강인하게 만들어 주는 방어 형태의 스킬이었다.
이건 예상에 없었다.
탱커 검사들도 쉽게 갖기 힘든, 육체 변형 형태의 방어 스킬을 암살자가 어떻게 가진 걸까?
그런 의문을 곱씹을 틈도 없이, 이미 강후는 최진호의 위치를 특정하고 접근하고 있었다.
강후는 빠르게 최진호를 타격할 수 있는 수단을 썼다.
전광비도.
투척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강후가 최진호의 도주를 막기 위해 날린 일격이었다.
“흣……!”
최진호가 날아드는 단검을 보고는 라이플을 사선으로 들어, 방어할 준비를 마쳤다.
얕봐도 한참은 얕보고 있다.
아무리 실력을 낮게 봐도 그렇지, 이런 뻔한 단검 투척에 당할 거라고 생각한 걸까.
최진호는 단검을 쳐내는 대로, 전력으로 현장에서 이탈할 생각이었다.
방금 강후의 대응으로 제대로 싸울 생각은 머리에서 지워 버린 상태였다.
힘의 차이가 명확하다!
회피 기동을 할 것도 없이 서서 저격을 막아낼 정도면, 그다음의 싸움은 무의미하다.
따앙!
이윽고 날아든 단검을 최진호가 힘 주어 막아냈다. 모양은 좀 빠져도 버티는 힘만큼은 완벽했다.
그런데.
“커헉!”
단검을 막는 순간, 최진호의 몸이 허공에 붕 떠서는 한참을 날아갔다.
그저 단검 하나를 막은 것이 전부인데, 마치 뭔가에 밀쳐진 것처럼 몸이 떠버린 것이다.
“어억!”
쿠웅! 쿵! 쿵!
대비할 새도 없이 날아간 몸은 곧바로 지면으로 떨어져 볼썽사납게 한참을 굴렀다.
경황이 없는 탓에 자신이 어떻게 구르고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상황이 꼬여도 제대로 꼬였다.
최진호의 머릿속은 ‘도주’라는 단어만 가득했다. 일단 살고 보려면 그 방법밖에 없으니까.
“프읍! 퉤!”
그새 입에 들어간 모래알을 정신없이 토해내고는 최진호가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아직 시간은 있다.
분명히 도망갈 시간은…….
푸욱!
있다고 생각했던 최진호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운명은 거기서 끝이었다.
시간 차이가 조금 있기는 했어도 결국 동생 최진수의 뒤를 사이좋게 따라간 것이다.
어느새 강후는 최진호의 이마 한가운데에다가 단검을 꽂은 상태였다.
“받았던 그대로 돌려주는 건데. 너는 버틸 방법이 없는 것 같군. 그러면 죽어야지.”
깊게 꽂힌 단검을 90도 회전시킨 강후가 눈을 까뒤집은 채 죽은 최진호를 봤다.
익숙한 얼굴도 아니고, 실력이 아주 좋은 저격수도 아니다.
이클립스에서 강동현이 공적으로 보낸 조사관 혹은 심복이라기보다는…….
척살 리스트를 보고 공을 세우고 싶었던 잔챙이들의 대장을 보는 느낌이었다.
딱 그 정도 실력을 가진 녀석들이었다.
최진호가 저격하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부하들이 제물이 되리라는 것도.
다만 성좌로 살핀 그의 레벨이 높아 보이지 않아서, 일부러 석화 스킬을 써 봤다.
이럴 때 응용해 보지 않으면, 석화의 위력을 평소에 체감할 기회가 흔치는 않으니까.
테스트는 대성공.
순식간에 단단한 돌로 변해 버린 강후의 전면부는 최진호의 저격을 간단히 막아냈다.
이 정도면 반세영 정도의 거너가 일반적 화력의 마탄을 저격하는 것 정도는 버틸 듯했다.
물론 필살기성으로 모든 위력을 쏟는다면, 그때는 계산법이 좀 달라지지만 말이다.
“형님 둘이 전부 죽었어!”
“으아아! 도망가자!”
“X 됐다, X발!”
순식간에 대장 둘을 잃은 부하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기 시작했다.
성좌 강탈의 성공으로 최진호의 죽음을 확실히 확인한 강후가 그들의 뒤를 쫓았다.
처음부터 단 한 명도 살려 둘 생각이 없었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녀석들에게 베풀 수 있는 자비는 하나뿐이다. 최대한 빨리 지옥행 특급열차를 탈 수 있도록 표를 끊어 주는 것.
일방적인 학살이 시작됐다.
그 와중에 강후는 처음으로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동안 조건이 맞지 않아서 한 번도 체감할 수 없었던 특수한 현상에 대한 경험이었다.
그것은 바로.
【대참수】
【스킬 숙련도 : Lv. Max】
【……(중략)】
【사용자 레벨의 33% 미만에 해당하는 레벨을 가진 몬스터, 헌터는 일격에 죽음을 맞이합니다.】
대참수 스킬 툴팁의 마지막에 걸려 있는 내용이었다.
지금껏 강후가 자신의 레벨보다 3분의 1 수준의 몬스터나 헌터를 상대할 일이 없어 몰랐는데.
이번에 두 잔챙이 형제의 부하들을 상대하다 보니, 조건이 충족된 것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몇몇 녀석은 대참수에 정면 타격이 아닌, 살짝 스치는 듯한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커억!”
“끅!”
마치 갑자기 심장이 멈춰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을 움켜쥐고는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확실한 죽음이었다.
‘이래서 설명서는 꼼꼼하게 끝까지 읽는 게 맞는 것 같군.’
강후가 허무(?)하게 목숨을 잃은 놈들을 보며, 한심한 표정을 지었다.
상대도 안 될 실력으로 무리 지어 온다고 해서 상황이 바뀔 것이라 생각한 걸까.
물러도 한참은 물러터진 생각이다. 그러니까 이런 잔챙이들을 형님으로 모시고 있는 거겠지.
【영혼 추적자】
【1인 1회 한정, 반경 1km 내에서 완전 추적이 가능합니다. 절대 은신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명상가】
【평소 집중력이 기존 역량의 2배로 상시 유지됩니다. 신체에 과부하를 전혀 유발하지 않습니다.】
강후가 최진호, 최진수에게 강탈한 성좌 둘의 목록을 확인하고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명상가 성좌는 패시브 스킬 형태로 적용되니, 강탈했다는 사실만 인지하고 잊어버리면 됐고.
영혼 추적자 성좌의 경우는 요긴하게 쓸 일이 있을 듯했다.
일회성이라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모습을 숨긴 타깃을 확실하게 쫓을 수 있는 수단이라서다.
아마 최진호도 저 성좌를 믿고, 은신 상태에 들어갔던 자신을 호기롭게 노린 거겠지.
하지만 좋은 성좌만 가졌을 뿐, 그에 걸맞은 실력과 판단력을 가지진 못했던 녀석이었다.
“좋은 주인 찾은 거지.”
강후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아마 강탈당한 두 성좌도 전보다 훨씬 더 좋은 계약자를 만나게 됐다고 생각할 것이다.
오히려 운이 좋다고 봐야 한다. 합법적으로 계약자를 갈아탈 수 있게 된 거니까.
슥. 스슥.
강후가 피가 잔뜩 묻은 단검을 옷에 대충 닦아냈다.
온몸이 피칠갑이 돼서, 이 옷은 어떻게 빨지도 못 하고 바로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듯했다.
피를 벗 삼아 사는 헌터의 골칫거리이기도 하다. 마음에 드는 옷도 오래 입을 수 없다는 것.
바로 그때.
강후가 전투에 몰입한 나머지, 잠시 잊고 있었던 새로운 내용 하나가 나타났다.
【하루 2회의 살인 할당량을 모두 채웠습니다.】
【희생자의 명복을 비는 의식을 진행하면, 임의의 확률로 스탯을 두 차례 얻을 수 있습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죽은 자들의 명복을 빌어 주십시오. 그것이 그들에 대한 예의입니다.】
“하여간 지랄은…….”
살인 할당량을 운운하면서 뒤에 가서는 명복이니 예의니 하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다니.
이 성좌는 아무리 봐도 정이 들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주는 스탯을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챙길 건 당연히 챙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