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스킬 풍년 (4)
투르보의 특이점 중 하나는 횡 이동을 쓸 줄 안다는 것이었다.
앞서 전투를 지켜보았던 강후가 바로 파악한 특징이기도 했고, 그래서 예상 범주 안에 있었다.
다만 그 반대로, 투르보는 알지 못하는 것이 존재했다. 바로 강후도 횡 이동을 쓸 줄 안다는 것.
“흣……?”
투르보는 분명히 강후의 후방으로 이동했음에도 보이지 않는 강후의 뒷모습에 놀랐다.
타깃의 뒤쪽으로 이동하는 형태의 횡 이동을 썼으니, 당연히 그의 등판이 보여야 정상이다.
한데 강후가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푹! 푹푹! 푹! 푹!
“크아아아!”
찰나의 순간에 많은 일이 벌어졌다.
투르보는 자신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후방에서 나타난 강후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순식간에 얼마나 많은 공격을 당했는지, 뒷목부터 허리까지 전부 화끈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끌끌! 역시 강후 형이야!”
상황을 지켜보던 박동재가 소리쳤다.
강후의 공격을 횡 이동으로 대응하던 투르보의 비웃음이 떠올라 통쾌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잖은가.
네 공격은 얼마든지 피해줄 수 있어, 하는 느낌으로 코웃음까지 쳤던 투르보다.
그런데 회심의 회피 기동이 강후의 똑같은 대응에 간파당해 버렸으니 속이 다 후련했다.
투르보의 횡 이동은 결과적으로는 뻘짓이 되어 버렸다.
정면승부를 한 것만도 못하게 됐다. 손해도 이런 손해가 없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투르보가 대회전을 하면서, 일단 강후를 뒤로 물러나게 했다는 정도.
“으…… 으잇!”
화가 잔뜩 난 투르보가 전력을 다해 주먹으로 지면을 내리쳤다.
이 역시 아까 강후가 파악한 투르보의 기술 중 하나로, 지면 강타라고 불리는 스킬이다.
타깃을 시간차로 공중에 띄우는 기술인데, 투사체가 날아오는 것이 보여서 얼마든지 대응이 가능했다.
“…….”
강후는 움직이지 않고, 지면 강타의 투사체가 날아오길 기다렸다.
이 녀석은 추적, 유도 능력이 있어 미리 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오히려 체력만 소모된다.
쿠드드드!
지면 위를 따라 흙과 바위들을 들썩이며 날아온 지면 강타가 강후를 막 타격할 즈음.
프슷!
신속 회피 스킬을 활용해 깔끔하게 대응했다. 보고 피하니, 못 피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역시 외형에 관심 끄고, 극단적으로 패턴만 파악하니까 대응법이 간결해지네.’
강후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식의 접근법은 원작의 아키야마 타카시가 많이 했던 방법이기도 했다.
그가 주장했던 이론 중에는 ‘만물 패턴론’이 있었다.
패턴만 알면 이기지 못할 몬스터는 없다는 것이다. 설령 레벨 차이가 심할지라도 말이다.
타카시가 근거로 제시한 사실은 다소 허무맹랑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강후에게는 설득력이 매우 높은 얘기였다.
그 근거는, 이 세계를 창조한 창조주가 모든 메인 보스 몬스터를 공들여 조형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이 세계의 창조주, 그러니까 원작자인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물론 타카시는 자신이 소설 속 인물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살았던 것은 아닌 만큼…….
진심으로 창조주를 논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타카시의 예상이 맞았다.
일단 혈화는 아꼈다.
한 방에 보내기에는 아직 투르보에게 누적된 대미지가 부족하다는 판단이었다.
그 와중에.
쿠웅! 퍼엉!
푸우욱! 푸욱!
마법사와 궁수의 연계로 이어진 공격이 연이어 투르보를 타격했고.
강후에게 잔뜩 정신이 팔려있던 투르보가 몸의 중심을 잃은 채, 대책 없이 비틀거렸다.
다시 찾아온 기회였다.
“후!”
뜨거운 숨결을 토해내며 접근하는 강후의 기동을 본 투르보가 재차 주먹을 내뻗었다.
퍼석!
하지만 이번에는 분신이었다.
순간적으로 강후의 위치를 놓쳤던 투르보는 애먼 곳에 헛심을 잔뜩 쓰고 말았다.
투르보에게는 자신의 횡 이동이 간파당해, 후방을 완전히 내줬던 공포가 각인되어 있었다.
그래서 강후의 접근을 일단 막아볼 요량으로, 다시 대회전 패턴에 들어갔다.
이렇게 하면 위협적으로라도 강후를 몰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확실히 이를 악물고 대응해서인지 강후도 가깝게 접근하려던 계획을 수정하게 됐다.
직전보다 훨씬 더 많은 투사체를 만들어내는 대회전을 시전해서다. 강화 버전인 듯했다.
그림자 걸음이 적절히 쓰였다.
뒤로 보내두었던 그림자 하나를 활용해 손쉽게 위치를 바꿀 수 있었다.
나머지 그림자들은 전부 투르보를 향해 접근하게 만든 상황.
어차피 그림자니까 전부 피격당해 없어져도 상관없는 상황이었다. 미련 둘 건 없었다.
하지만 투르보는 강후의 그림자마저도 신경이 쓰였는지, 더욱 회전 속도를 높였다.
‘그렇다면.’
【처세술 – 지면 강타】
계산이 선다.
앞서 투르보가 활용한 지면 강타 스킬을 처세술로 임시 카피해 뒀던 상황.
강후가 그림자에 과잉 대응하고 있는 투르보를 향해, 지면 강타를 그대로 돌려줬다.
회전에 잔뜩 정신이 팔린 투르보는 지면을 따라 날아드는 자신의 복제 스킬을 알지 못했다.
다음 순간.
쿠드드드!
이내 투르보에게 닿은 지면 강타 스킬이.
“우왁!”
투르보의 몸을 위로 붕 띄웠다. 동시에 그의 대회전 스킬이 끊겼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때.
강후는 대회전 패턴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은 그림자 하나를 특정했다.
바로 이어지는 위치 전환!
그러자 멀리 있던 강후의 위치가 순식간에 투르보의 옆으로 바뀌었다. 최고의 위치였다.
【뇌격진】
강후가 공중에 뜬 투르보의 몸 전체를 시원하게 전류로 휘감아줄 뇌격진을 깔았다.
빠지지직!
그리고 전류의 향연에 몸을 맡기며 투르보에게 접근해 녀석의 몸에 대참수를 박았다.
자신이 구현한 뇌격진의 영향은 전혀 받지 않는 강후였으므로, 전류는 전혀 방해가 되지 못했다.
이윽고 꽂혀든 대참수.
푸우욱!
“끄워어어……!”
지옥이 시작됐다.
투르보의 등과 허리 전체가 너덜너덜해진 것도 모자라, 대참수에 노출된 배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풍뢰진에서 업그레이드 한 이후에 보스 몬스터를 상대로 처음 써보는 뇌격진이었다.
기존의 풍뢰진이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기에는 아쉬운 점이 있어서 아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좋은데?”
생각보다 효과가 괜찮았다.
전류의 발생 빈도도 압도적으로 높았고, 무엇보다 상처를 비집고 들어가 입히는 추가 피해가 컸다.
단단하고 건조한 외피는 전류를 지져도 큰 타격이 없지만, 촉촉한 속살은 얘기가 다른 것이다.
하물며 그 안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혈관과 근육, 수많은 장기라면 더더욱.
“으드드! 으드!”
투르보가 공중에서 추락한 이후에도 제멋대로 노는 몸을 어쩌지 못하고 부르르 떨었다.
몸에 난 상처에서는 쉴 새 없이 피가 뿜어져 나왔다. 마치 구멍이 뚫린 물풍선을 보는 것처럼.
더 끌 것도 없었다.
【혈화】
강후가 지금의 투르보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스킬 하나를 발동해 주었다.
그리고.
퍼퍼퍼펑! 펑! 펑!
산 채로 폭탄이 되어 버린 투르보의 몸이 인정사정없이 터지며, 그대로 생을 마감했다.
자신감 넘쳤었던 시작을 생각하면, 형편없이 초라한 최후였다.
【레벨이 대폭 올라 170이 되었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한 강후의 레벨이 훅 올라갔다.
아울러 스킬 강탈까지 활성화됐다.
경험했던 지면 강타나 대회전도 스킬 목록에 들어갔지만, 선택 대상에서는 제외했다.
지면 강타는 타깃을 공격하기까지 시간이 걸려, 강후에게는 호흡이 잘 안 맞는 스킬이었고.
대회전은 전에 새미의 스킬을 강탈하지 않았던 것과 같은 이유로 강탈에서 제외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선택한 스킬은 바로 밀쳐내기.
투르보가 대회전 공격에 연계해서 사용했던 특성 패시브 스킬을 강탈하기로 했다.
【밀쳐내기】
【숙련도 : Lv. Max】
【투사체 혹은 물체를 날리는 공격에 대해서 밀어내는 힘을 추가합니다.
단, 비활성화를 할 경우에는 힘이 추가되지 않습니다.】
【현재 대상자가 밀쳐내기를 적용할 수 있는 스킬 목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전광비도. 흑월참. 백일참.】
‘좋아. 밀쳐내기로 상대의 균형을 무너지고 흐트러지게 할 수 있으니, 활용 가치는 매우 높다.’
마음에 드는 스킬이었다.
변수 창출이 가능한 스킬은 언제든 환영이다.
하물며 밀어내는 과정까지 신경 쓸 필요 없이, 스킬 특성이 알아서 수행해 주지 않는가.
이 정도면 아주 유용한 옵션이었다. 투르보 같은 몬스터에게만 있기에는 너무 과분한 옵션이다.
* * *
이후 뒷수습이 진행됐다.
사전에 은밀하게 약속했던 대로 강후와 박동재의 역할은 각각 악마와 천사로 갈렸다.
박동재는 도움을 준 헌터 3인방의 몸 상태를 점검해 주면서, 그들을 세심하게 살폈지만.
강후는 팔짱을 낀 채로 그들을 매섭게 살폈다.
투르보를 죽이고 나온 전리품에 대한 이야기가 매듭지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뒤늦게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었던 강후의 예상과 다르게, 그들은 즉각 반응을 보였다.
“죽다 살아난 현장에서 욕심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경험치 일부가 공유된 것만으로도 저희는 만족합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세 헌터가 거의 동시에 말했다.
부상이 심했던 검사 헌터도 박동재가 가져온 포션 덕분에 기력을 어느 정도 찾은 상태.
다들 크고 작은 상처가 있었지만, 중상이라고 할 만큼의 치명적인 상처는 없었다.
“정말 멋진 전투였습니다. 암살자가 이렇게 보스 몬스터를 유린하는 것은 처음 봅니다.”
“게다가 다른 클래스의 보조를 받지 않고, 사실상 일대일 탱킹을 하기도 했고요.”
마법사와 궁수 헌터가 각기 느낀 바를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셋이서 고생하던 보스 몬스터를 강후 혼자서 잡아냈으니 말이다.
물론 강후는 박동재의 쉼 없는 버프 보조와 마법사, 궁수의 지원도 한몫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강후의 활약에 취해서, 혼자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별 탈 없이 끝나 다행입니다. 전리품은 감사히 갖도록 하죠.”
강후가 덤덤하게 답했다.
갈등 없이 전리품에 대한 이야기가 마무리되니, 한결 분위기가 편해졌다.
실제로 헌터들의 세계에서는 이런 일이 추가 갈등의 씨앗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도와주고도, 혹은 도움을 받고도 이익에 눈이 팔려 고마움을 잊고 대립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
강후가 살짝 눈에 익은 듯한 세 헌터의 견장을 보고는 이어 물었다.
“혹시 어느 길드 소속입니까?”
“저희는 셋 모두 스핏파이어 길드 소속입니다. 영국의 스핏파이어 길드, 혹시 아십니까?”
대화에서 영국식 악센트가 느껴진다 싶었는데, 예상대로 그쪽 사람이었다.
스핏파이어 길드를 모를 리 없는 강후였다.
지금 월 20억 원 한도로 알차게 쓰고 있는 골드 카드를 준 곳이 바로 스핏파이어 길드니까.
“너무 잘 알죠. 제게 이것을 주신 곳이니까요. 저에게는 소중한 인연이 된 길드입니다.”
강후가 자연스럽게 품속에 넣어뒀던 지갑에서 골드 카드를 꺼내 보였다.
스핏파이어 길드의 마스터 가니에르가 직접 자신에게 넘겨준, 의미 있는 물건이었다.
그 순간.
“와…… 이걸 받으셨다고요?”
세 헌터의 표정에 놀람이 일었다.
눈앞의 이 남자가 길드 마스터에게 매우 큰 의미가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