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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59화 (159/304)

159화 스킬 풍년 (3)

* * *

반대편의 상황이 궁금했던 강후는 박동재와 함께 도약으로 암벽을 올랐다.

예전에 안영호를 구할 때, 빌딩 아래층부터 옥상으로 올라갔을 때 활용했던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기존 도약력이 사람이 하나 늘어나면서 반감됐지만, 그래도 암벽을 오르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마침 오르기 좋게, 중간중간에 다리를 딛고 설 만한 공간이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다.

“형은 별게 다 되네.”

“이제 안 모양이군.”

“아니.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암벽 등반을 도와줄 수 있는 형태인 것까진 몰랐지.”

박동재가 강후와 함께 오른 암벽 루트를 내려다보며 혀를 내둘렀다.

도약 스킬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것을 수직 상승하는 형태로도 활용 가능할 줄이야.

심지어 사람이 하나 늘었음에도 충분한 거리를 이동할 수 있을 만큼 추진력도 강했다.

그렇게 오른 암벽 정상에서 고개를 내밀어보니, 반대편의 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방음 결계를 넘어서자, 현장의 소리도 실감나게 들려왔다.

방음 결계는 소리 차단 외에는 별다른 기능이 없어, 자유롭게 넘나들어도 문제는 없었다.

“음…….”

강후가 전황을 훑었다.

헌터 셋이 메인 보스 몬스터로 보이는 녀석과 전투 중이었다.

“검사, 마법사, 궁수. 조합은 좋네. 근데 왜 다들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거지?”

“검사가 가장 안 좋아 보여. 부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군. 옆구리 쪽 근육에 파열이 있는 모양인데. 검을 휘두르는 모양이 어색하다.”

“그게 보여?”

“그럼 안 보여?”

“어…… 안 보이는데.”

“안목을 좀 기르도록 해.”

강후가 웃으며 면박을 줬다. 당연한 얘기지만 박동재를 기분 나쁘게 하려고 한 말은 아니다.

상황을 보며 단서를 찾아내는 것은 헌터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 중에 하나다.

정보가 보란 듯이 있는데, 이것을 해석할 줄 모르면 본인만 손해다. 그만큼의 유리함이 사라진다.

“개입할까?”

“아니. 앞서 온 공략팀인데, 굳이 그럴 필요 없어. 우리의 존재 정도만 알려 주면 되겠지.”

“어떻게 할까?”

“조금 더 앞으로 가서 얼굴이나 보여 주자고. 대신 적의는 확실하게 없음을 보여 주고.”

강후와 박동재가 몇 걸음 더 앞으로 향했다.

그러자 암벽 끄트머리에 모습이 드러나며, 상대에게도 충분히 보일만 한 위치에 자리가 잡혔다.

사실 나쁘게 마음 먹으면, 지금 싸우고 있는 헌터들의 뒤도 얼마든지 칠 수 있었다.

보스 몬스터의 공격 패턴을 아군의 움직임인 것처럼 활용하는 그림이 얼마든지 가능해서다.

하지만 강후는 자신을 회색 영역에 있는 사람이라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검은 영역. 그러니까 인간쓰레기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할 수 있지만 안 하는 쪽에 가깝기는 하다. 아마 이 몸에 남은 일말의 양심 같은 거겠지.

“…….”

강후가 숨을 죽이고, 메인 보스 몬스터의 움직임을 살폈다.

이름은 투르보. 인간형의 몬스터로 호리호리한 체구를 하고 있지만, 파괴력은 상당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투르보는 예전에 강후가 상대했던 ‘새미’의 ‘멸살 대회전’과 유사한 공격 패턴을 갖고 있었다.

지금 공략하고 있는 3인 팀이 고전하고 있는 이유는 이 패턴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서였다.

새미의 멸살 대회전보다 구체의 개수가 훨씬 더 많았고.

특히 이 구체는 막아내든, 맞든 간에 타깃을 뒤로 밀쳐내는 힘이 상당히 강력했다.

그러다 보니, 가까운 곳에서 막거나 당할수록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형태였다.

까다로운 점은 더 있었다.

이렇게 헌터의 접근을 극단적으로 밀쳐내고 나면, 주 무기인 ‘채찍’으로 후려친다는 점이다.

먼 거리도 충분히 타격할 수 있는 긴 채찍이기에 당하는 입장에서는 죽을 맛일 수밖에 없었다.

촤악!

“크아악!”

결국 채찍 공격에 당한 검사 하나가 피를 토하며 나가떨어졌다.

순간 박동재가 움찔하며 일어서려 했지만, 강후가 붙잡았다.

“기다려.”

“위험하지 않을까?”

“도와달라고 하기 전에 도와주는 건, 상대에 대한 오지랖이면서 모욕이야.”

“아…….”

“너는 선의라고 포장하겠지. 하지만 상대는 자신이 증명할 기회를 빼앗는 것처럼 볼 수도 있어.”

“증명할 기회를 빼앗는다…….”

“본인이 할 만하니까 계속 버티는 거다. 힘들면 나서지 않으려고 해도 무릎 꿇고 빌 거고.”

“알겠어, 형.”

“네가 선의라고 해서, 상대도 선의라고 생각할 것이라는 착각은 버려. 오만한 생각이다.”

강후의 일침에 박동재가 깨달음을 얻은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백번 옳은 말이었다.

그 무렵에 3인도 강후와 박동재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다.

도움을 요청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강후의 말대로 세 헌터는 투지가 있는 사람이었다.

이런 위기에서 쉽게 포기하거나 도움을 요청하고 만다면, 성장이 정체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었지만, 상황은 악화일로였다.

* * *

시간이 꽤 흘렀다.

강후는 조용히 투르보의 움직임 전체를 모두 살폈고, 머릿속에 하나하나 선명하게 담았다.

박동재 역시 강후의 제안으로 투르보의 패턴을 숙지하는 중이었다.

버퍼도 공부해야 하고, 무식은 곧 죽음이라는 강후의 말을 허투루 흘려듣지 않았다.

“다음 일격에 끝날 것 같군. 밸런스가 다 깨졌어.”

묵묵히 지켜보던 강후가 검사를 보며 중얼거렸다.

박동재는 제법 검사가 잘 버텨내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예측은 바로 빗나갔다.

“악!”

이내 채찍에 목 언저리를 타격당한 검사가 눈을 까뒤집으며 한참을 날아갔다.

아마 목에 고통을 느낌과 동시에 정신을 잃었을 것이다. 비명을 질렀는지도 인지하지 못했을 터.

메인 탱커를 잃어버린 마법사와 궁수가 다급해졌다.

그나마 투르보의 움직임을 억제해 주던 검사가 사라졌으니, 대위기였다.

“도와주십쇼!”

마법사가 소리쳤다.

하지만 강후는 그 말에 움직이지는 않았다.

지금 자신은 이곳에서 선심이나 쓰려고 지켜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필요에 따라 확실한 대가를 받고 도움을 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용병인 셈.

강후가 미동 없이 가만히 있자, 옆에 있던 궁수가 외쳤다.

“담보가 필요하십니까?”

끄덕.

강후가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마법사도 자신이 중요한 것을 놓쳤다고 생각했는지, 품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주황색 마석이었다.

마법사가 2개를 꺼냈고, 궁수가 1개를 꺼냈다.

마법사는 이것을 한데 모아서, 강후에게 염동력 스킬을 활용해 한 번에 보냈다.

담보 300억 원.

이 정도면 개입하기에는 충분한 수당이었다.

어찌나 마음이 급했으면, 강후가 마석만 먹고 도망칠 수 있음에도 그들이 반응을 보였다.

“마무리 지으면 나눠 갖자. 일단 내가 갖고 있을게.”

“형, 괜찮겠어?”

“난 파악 끝났어. 넌?”

“솔직히 좀 걱정 돼. 녀석의 패턴이 너무 복잡해. 정신없는 것 같아.”

“버프만 끊기지 않게 해 줘. 그리고 저 마법사와 궁수보다 더 뒤에 자리 잡고. 그러면 네가 첫 타깃이 될 일은 없을 테니까.”

“응. 알았어.”

현실적인 조언도 잊지 않았다. 돌려서 말했지만, 필요하다면 마법사와 궁수를 방패막이로 쓰라는 얘기였다.

강후가 바로 박동재와 함께 도약 스킬을 쓰면서 지면에 착지했다.

아무 생각 없이 뛰어내리게 했다면 박동재의 두 다리가 남아나지 않았겠지만.

착지 전에 강후가 귀요미! 스킬로 나름의 안전 쿠션(?)을 만들어 둔 덕분에 무사히 안착할 수 있었다.

물론 박동재에게만 적용해 준 안전장치고, 강후는 사뿐한 몸놀림으로 지면에 안착할 수 있었다.

몸에 걸리는 하중을 움직임으로 흘려내는 것은 암살자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기본 소양이기도 하다.

“최대 사정 거리로 견제하세요. 투르보에게 집중할 동안, 당신들을 지켜줄 수 없습니다.”

강후는 마법사와 궁수에게 경고이자 당부를 건넸다.

영어를 썼는데, 바로 알아듣는 눈치였다. 역시 영어는 세계 공용어가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합니다.”

“부탁드립니다.”

바로 그들의 앞에 굳건한 중첩으로 강화된 보호 결계를 펼쳐 주었다.

예전보다 두께가 2배 강화된, 아주 든든한 전면 방어 결계였다.

“와…….”

“이런 방어 스킬이 여기서?”

홀연히 투르보에게 향하는 강후의 뒷모습을 보며, 마법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암살자에게서 자신보다 더 높은 내구성과 두께를 지닌 것으로 보이는 방어 스킬이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마법사에게는 마나 실드라는 기초적이면서도, 마법사의 제1 옵션으로 불리는 숙련도 높은 방어 스킬이 있었다. 하지만 강후의 보호 결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순간 자괴감이 확 들 정도였다.

자신의 밥줄 스킬이 암살자의 스킬보다 형편없다고 느껴졌으니까.

그때.

쿠아아아!

투르보가 ‘토네이도’ 스킬을 사용하면서, 또 한 번 다수의 구체를 만들어냈다.

이내 쏜살같이 날아든 구체들이 보호 결계를 후려쳤지만, 결계는 든든하게 공격을 버텨냈다.

마법사와 궁수, 그리고 박동재가 놀란 것은 결계의 내구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사이에 강후가 구체 사이를 파고들며, 투르보에게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검사는 투르보의 공격을 아무리 피하려 해도 결국 피하지 못하고, 검으로 막아내다가 밀려났었다.

하지만 강후는 이미 투사체 경로를 예상하고 있었는지, 한 번도 구체에 맞지 않았다.

‘규칙에 엇박자를 섞으니까, 불규칙으로 착각하게 되지. 헌터들의 공포를 자극해서, 객관적으로 패턴을 보기 어렵게 만들었어.’

강후는 나름의 판단이 끝난 후였다.

반드시 구체가 지나가는 루트가 있다. 그것이 바로 규칙적인 루트다. 이 루트는 무조건 피한다.

그리고 전혀 타이밍이 안 맞는 박자로, 간헐적인 형태로 투사체가 날아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게 불규칙으로 가장한 규칙이다. 박자는 예상이 안 되지만, 해당 루트의 경우의 수는 5개였다.

다섯 개의 각기 다른 패턴을 소화하고 나면, 다시금 첫 패턴으로 돌아오는 식이었다.

이렇게 두 개의 큰 상황을 하나로 합치니, 일시적으로 안전지대가 되는 루트가 보였다.

강후는 그 길을 노렸던 것이다.

“와…….”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보고 피한다고 하기에는 너무 빠른데.”

“보고 피하는 게 아냐. 알고 피하는 거라고.”

마법사와 궁수의 입이 떡 벌어졌다. 어느새 강후의 실력에 대한 칭찬만이 오가고 있었다.

강후는 어느새 투르보와 한두 걸음이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까지 닿아 있었다.

뒤에서 지켜보는 동료들만큼이나 투르보도 크게 당황한 표정이었다.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을 자신의 공격.

한데 강후는 옷에 작은 생채기 하나 없이, 코앞까지 당도해 있는 상황이다.

자존심이 크게 상하는 상황이었다. 시종일관 차분했던 투르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내 투르보에게 접근한 강후가 힘껏 도약하며, 단검을 치켜들었다.

이것저것 잴 것 없이, 일단 단검부터 꽂고 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긴 도약이었다.

그때.

“큭.”

강후와 시선이 마주친 투르보가 피식 웃더니, 시야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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