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자극 (3)
* * *
찰나의 순간에 서로의 노림수가 교차했다.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난 것을 안 가짜 신부는 들고 있던 십자가를 강후에게 내뻗었다.
암살용이었는지 손으로 가리고 있었던 십자가 밑에는 독이 잔뜩 발라져 있었다.
물론 강후는 때를 맞춰 횡 이동을 전개한 후였기에 십자가 공격에 당하지는 않았다.
“흥!”
하지만 가짜 신부는 강후의 횡 이동을 예상했다는 듯, 곧바로 후방을 쳤다.
애초에 강후가 든 단검을 보고서 암살자라는 사실을 미리 인지했던 상황.
그래서 숙련도 최대 상태의 횡 이동을 쓸 가능성도 생각하고 있었고, 역시 현실이 됐다.
후웅!
가짜 신부의 공격이 보기 좋게 허공을 갈랐다.
그는 여전히 당황하지 않았다. 횡 이동을 한 번 더 할 것도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위장을 알아차릴 정도의 실력이라면, 이 정도 머리싸움은 충분히 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기습적으로 몸의 무게중심이 뒤로 쏠린 상태에서, 원래의 정면 방향으로 스킬을 전개했다.
【포박술】
걸린 상대로 하여금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드는 포박술 스킬.
가짜 신부의 밥줄과도 같은 스킬이었다. 선 채로 멈춰 버리기 때문에 모든 공격에 취약해진다.
앞서 명복을 빌어준 헌터도 포박술로 아무것도 못 하는 상태에서 목을 찔려 죽었다.
“……!”
꾸드드득!
이윽고 포박술에 걸려버린 강후가 당황한 표정으로 가짜 신부를 바라보았다.
움직일 수 없는 몸 상태에 정신적인 공황이 찾아온 듯한 그런 눈빛이었다.
다만 딱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동행으로 보이는 헌터 하나가 너무 조용하다는 것?
하지만 차림새나 앞서 살핀 모양새에 따르면, 비전투 계열의 헌터로 보였다.
즉, 지금 자신을 노리지 않는 것은 그럴만한 전투 능력이 없어서로 판단됐다.
“오늘도 일용할 스탯이 되어 주라고. 저 녀석은 자비롭게 살려 줄 테니, 넌 내 양분이 되어야겠다.”
그가 회심의 미소를 지은 채로 강후의 왼쪽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손바닥을 활용해 순간적으로 강력한 충격파를 발산하는 스킬을 쓰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죽이면 겉으로는 생각보다 깔끔하게 최후를 맞이한다. 물론 몸 안은 만신창이가 된다.
그가 손바닥 끝에 잔뜩 힘을 주며 마무리 스킬을 사용하는 순간.
푸슈욱!
살점으로 차가운 금속이 힘 있게 파고드는 느낌과 소리가 동시에 났다.
“……?”
한데 그것은 자신의 스킬로 인해 파생되어야 할 느낌과 소리가 아니었다.
충격파는 뭔가를 터지게 하는 소리가 나지, 찌르는 소리가 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킬을 쓴 것은 자신인데, 차가운 금속의 느낌이 들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 말은 즉.
“……!”
소리와 상황의 이유를 알아차린 가짜 신부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비명 한 번 지를 틈도 없이 벌어진 상황이었다.
가까스로 눈동자를 아래로 내려보니, 목젖을 뚫고 들어온 단검이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런 탓에 신음조차 토해낼 수 없었다. 바람 빠지는 소리만 잔뜩 날 뿐이다.
이미 상황이 끝나 버렸다.
목이 관통당한 상태에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정말 신의 가호라도 받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자신은 신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착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때.
“와, 형. 이것까지 다 계산하고 판을 짠 거예요?”
짝짝짝!
시종일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박동재가 박수를 치며 반응을 보였다.
가짜 신부는 박동재의 말에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푸슈슈슈!
울컥하며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양의 피를 연달아 뿜어낸 가짜 신부는 그대로 나자빠져 죽었다.
아무리 버티려 해도 버틸 수 없는, 과다 출혈로 야기된 죽음이었다.
가짜 신부의 뒤에 있었던 강후가 자신의 옆으로 쓰러진 그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의 역을 찌르는 계산은 머리를 쓸 줄 아는 헌터라면 어려운 일도 아니지. 그래서 한 번 더 꼰 거고.”
“그 말은 저 새끼가 머리를 두 번 굴릴 것을 형이 알았다는 거잖아요?”
“알았다기보다, 영리하게 헌터의 뒤통수를 쳐 왔을 녀석의 지능에 나름 점수를 준 거지.”
“그래서 횡 이동을 한 번 더 하면서 분신을 소환하고, 곧바로 횡 이동을 또 한 거고요?”
“그렇지.”
“와, 이 설계는 정말 제대로네. 형, 장난 아닌데요?”
“수 싸움. 전투의 재미지. 이기면 재밌어. 지면 죽는다는 게 문제지만.”
툭툭.
강후가 숨이 끊어진 가짜 신부의 몸을 발끝으로 건드렸다. 그의 몸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그에게 강탈한 성좌 정보 두 개가 새로이 목록에 드러났다. 쓸만한 녀석들이었다.
【비열한 성직자】
가짜 신부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성좌, 비열한 성직자.
이제 하루에 두 명의 헌터를 죽이게 되면 추가 보상(?)을 얻을 수 있게 됐다.
물론 보상을 얻겠답시고 아무나 죽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죽일 놈 역시 많은 법. 기회가 되면 착실하게 써먹을 일은 많을 듯했다.
【타락한 장의사】
【반경 250m 내에서 죽은 헌터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습니다.】
타락한 장의사 성좌는 바로 쓰임새가 확 떠오르지는 않았다.
죽은 헌터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는 것이 어떤 도움이 될까 싶었던 것이다.
일단 사건, 사고가 일어난 곳에서 죽은 헌터를 수습하는 데에는 도움이 꽤 될 듯했다.
‘어쩌면 이런 오픈형 던전 어딘가에서 죽은 헌터의 시신을 수습하는 것과 아이템 획득에 도움이 될 수도?’
그럴듯한 생각이 떠올랐다.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죽임을 당한 헌터라면, 이후 아이템을 전부 빼앗기겠지만.
추락으로 죽거나, 혹은 몬스터에 의해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맞이했을 경우.
그럴 때는 온전히 아이템을 착용한 상태에서 죽어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시체를 찾아낼 수 있다면, 뜻하지 않은 불로소득을 추가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했다.
‘누군가의 죽음을 반가워할 수밖에 없는 그림. 그렇기에 타락한 장의사라는 이름이 붙은 건가?’
강후가 그럴듯한 이유를 덧붙이며 납득했다. 어쨌든 쓸모는 충분해 보였다.
박동재는 강후가 보인 노림수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죽은 녀석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와…… 진짜 소설 같네. 모든 걸 다 꿰뚫어 보는 암살자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 같은 거요.”
“그런 소설의 주인공 같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하지. 물론 소설이겠지만 말이야.”
강후가 쓴웃음을 지었다.
말을 하면서 묘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이 바로 소설 속에 빙의한 삶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후에게는 ‘현실’이지 ‘소설’이 아니었다.
소설 속 인물은 죽이면 글자로써 사라질 뿐이지만.
지금의 자신은 죽으면 모든 삶이 사라지게 된다. 영혼이 소멸되고 마는 것이다.
“형, 일단 숨 좀 돌리세요. 아이템은 제가 수습할게요.”
“그래 주면 고맙고.”
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쉬고 싶어서라기보다, 방금 막 새롭게 떠오른 메시지 하나에 눈이 가던 참이어서다.
【성좌 ‘광란의 살인마’가 특수 조건을 달성한 당신에게 선택 가능한 스탯 30을 제공합니다.】
【단, 항마와 맷집 스탯은 15를 제공하며, 특수 스탯의 경우에는 10을 제공합니다.】
예전에 조구빈을 죽이고 강탈했던 성좌, 광란의 살인마가 느닷없이 보너스 스탯을 제공했다.
특수 조건이 무엇인가 싶어, 세부 툴팁을 확인하려고 했지만 출력되는 것은 없었다.
아마 성좌 본인이 생각하는 어떤 기준점이 있는 듯한데, 이번에 살인 ‘할당량’이 달성된 모양.
나쁜 놈을 죽이고 조건을 달성한 모양새라 그런지, 기분은 오히려 좋았다. 보상받는 느낌이랄까?
강후는 미련 없이 암흑기 스탯을 선택했다.
특수 스탯은 단 1을 올리는 과정도 너무 힘들고 지루한 과정이기 때문에.
정말 다른 스탯이 급한 것이 아니라면, 이럴 때는 무조건 선택 1순위였다.
특히 지금처럼 암흑기 스탯에서 첫걸음을 막 내딛기 시작했을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조금만 스탯이 올라가도, 체감되는 암흑기 스킬의 파괴력 또한 쭉쭉 올라가기 때문이다.
‘잘됐네.’
광란의 살인마 덕분에 암흑기 스탯 10을 얻었다.
새삼 전에 죽였던 조구빈의 얼굴이 떠올랐다.
백 번을 죽여도 모자랄 것 같은 인간쓰레기였던 놈. 지금도 아마 지옥불에 활활 타고 있겠지.
한데 바로 그때.
강후가 생각지도 않았던 시점에 갑자기 성좌와 관련된 개인 채널이 열렸다.
개인 채널은 긴밀하게 단둘이서만 할 대화가 있을 때 열리는 대화 채널이었다.
대화마다 성좌의 성력이 소모되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잘 열리지 않는다.
그만큼 비밀스러운 대화가 필요한 것이 아니면, 보통은 메시지로 대체한다.
대화를 요청한 것은 메인 성좌, 순흑의 구도자였다. 그와의 일대일 대화는 처음이다.
【본론을 바로 말하겠다. 너에게 성좌 시험을 제안하고 싶다. 응하겠느냐?】
혹시나 했는데 성좌 시험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메인 성좌의 네 번째 특전을 얻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다.
성좌 시험을 치르지 않으면, 영원히 세 개의 특전을 누리는 수준에서 끝나고 만다.
강후가 문득 떠오른 예전의 성좌 시험을 떠올렸다. 차원 강탈자가 제안했던 그 시험.
해피 엔딩이 되어서 다행이기는 했지만, 당시에 시험이 끝나고 난 뒤에 그녀가 한 말이 기억났다.
【사전에 예비 시험을 해 보았을 때, 이 시험의 생존율은 15%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냈구나.】
이 말을 듣고 얼마나 황당했었는지 모른다. 처음부터 자신을 담글 생각이었나 싶기도 했고.
강후는 순흑의 구도자가 자신을 합법적으로 ‘손절’할 방법을 찾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제안이라면 못 먹어도 고를 하는 게 맞다.
대성전에서 서열 25위 안에 드는 최고위 성좌에게는 뭐라도 하나 더 뜯어내는 것이 정상이기에.
강후는 생각의 형태로 교감하는 방식을 활용해 순흑의 구도자에게 대답했다.
지금 이 자리에는 박동재도 있는 만큼, 소리 내어 말하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하겠습니다. 다만 설명을 충분히 들은 다음에 하고 싶습니다. 성좌 시험을 위한 공간으로 소환되는 겁니까?’
【아니다. 현실에서 수행해낼 수 있는 시험이다.】
‘소환이 아니란 말입니까?’
【그래. 방법은 단순하다.】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전의 계약자인 장시환의 시험은 이런 형태가 아니어서다.
원작의 내용대로면 차원 강탈자 시험처럼, 어딘가로 소환되어 시험을 치른 케이스였다.
그렇다면.
지금의 계약자는 장시환이 아닌 신강후 자신이기에 관련된 시험의 내용도 바뀐 걸까?
물음표가 진하게 찍힌다.
강후가 대답했다.
‘어떤 시험입니까?’
【순흑의 위선자. 이 성좌와 계약한 헌터를 죽이면 된다. 그것이 내가 제안하는 시험이다.】
성좌와 계약한 헌터를 직접 죽이는 것! 가장 직관적이면서도 까다로울 수밖에 없는 시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