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55화 (155/304)

155화 자극 (2)

* * *

‘적응이 좀 어렵군. 까딱 잘못하다가는 부상을 입기 딱 좋을 것 같지만…… 뽕 맛은 좋네.’

가속 버프에 이기적 탐닉을 걸고 난 다음, 직접 체감하고 내린 총평이었다.

빨랐다. 미친 듯이 빨라서 속도가 문제가 아니라, 몸이 버틸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특히 방향을 갑자기 바꾼다거나 멈추려고 할 때, 육체적으로 걸리는 저항이 상상을 초월했다.

단지 속도에만 취해서 무리했다가는 뼈가 부러지거나 근육이 파열되어도 이상할 게 없을 듯했다.

앞으로 박동재가 있을 때, 가속 버프 최대 상태에서의 몸을 다루는 방법을 익혀야 할 듯했다.

탁 트인 고속도로에서는 과속해도 문제가 안 되지만, 굽이진 길에서 과속하면 죽기 좋다.

지금이 딱 그랬다.

아무리 빠른 속도라고 해도 능숙하게 다룰 수 없다면, 그건 저승행 급행열차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테스트를 마친 뒤.

우선 출발 지점에 순간이동을 위한 세이브 포인트를 지정했다.

오기 전부터 변수가 많은 던전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들어온 만큼.

만약의 상황이 벌어졌을 때, 최소한 박동재라도 안전하게 대피시킬 대비를 해 둘 생각이었다.

박동재에게 상황 설명을 미리 해 주자, 감동을 받았는지 연신 반짝이는 눈빛을 날려 보냈다.

“형은 버퍼부터 먼저 걱정해 주네. 질 나쁜 새끼들은 버퍼 보고 알아서 살라고 내다 버리는데.”

“어차피 그런 놈들은 나중에 도태되니까 걱정 마. 버퍼들이 머리에 총 맞지 않은 이상, 그런 놈과 또 손발을 맞추진 않겠지.”

“맞아. 그래서 버퍼 네트워크에서 따로 관리 중인 블랙리스트도 꽤 있어.”

“버퍼 네트워크는 또 뭐지?”

“이름 그대로. 버퍼들만의 은밀한 커뮤니티 같은 거지. 생각보다 폐쇄적이야.”

“그렇겠네. 내부 정보가 밖으로 새어나가면 피차 곤란해질 사람이 많을 테니까.”

“어, 형! 저쪽 봐. 저기서 카니스의 헌터들이 대규모로 공략 중인 모양인데?”

박동재가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니, 과연 초대형 몬스터를 헌터들이 공략하고 있었다.

카니스.

이 오픈형 던전 전체의 관리 주체다.

미국에서 나름 알아주는 길드이기도 하다. 물론 포르투나 길드에 비할 바는 못 된다.

바로 그때.

카니스 길드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방면에서 한 무리의 헌터가 수풀을 헤치고 나왔다.

그들은 전부 카니스 길드의 견장을 차고 있었는데, 표정이 대부분 적대적이었다.

여기에 누가 있건 간에, 관계자가 아니면 상종하고 싶지 않은 딱 그런 눈빛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들 500m 이상 떨어지십쇼. 언제 여기까지 전장이 확장될지 모릅니다. 그땐, 방해되는 헌터들은 다 죽입니다.”

카니스 길드의 거너 헌터 하나가 총부리를 겨누면서 위협적으로 압박했다.

어떤 형태로든 카니스 길드 외의 헌터가 꼬이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의사 표현이었다.

다른 길드 혹은 헌터 무리가 그랬으면 이 자리에서 바로 피바람이 불었겠지만.

강후도, 박동재도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카니스 길드가 관리 주체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특권이기도 하다. 던전 전반을 관리하는 길드로서 특별한 사냥을 보장받는 것이다.

꼬우면 그들에게 도전장을 내고 맞서면 된다.

하지만 당연히 그 끝이 좋을 리 없다. 하물며 미국에서 잘 나가는 길드 중 하나라면 더더욱.

그래서 강후도 박동재와 미련 없이 뒤로 물러났다.

“형, 뭐라는 거야?”

영어는 영 젬병인 박동재가 강후에게 물었다. 킬 어쩌고 해서, 경고인 줄 대충 알아들었을 뿐.

“사냥 영역이니까 꺼지라고. 안 그러면 뒤진다고.”

“아.”

“간단하지?”

“그러네. 그나저나 형은 영어도 꽤 할 줄 아는 모양이네?”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영어, 라틴어. 이렇게 다섯 개는 할 줄 알아.”

“와……. 미쳤네.”

“더 못 배운 게 한이지.”

진심이었다.

언젠가는 세계를 무대로도 활동하게 될 텐데. 그때 언어의 장벽을 느끼고 싶진 않았다.

물론 영어를 할 줄 아는 것만으로도 어지간해서는 다 먹고 들어가지만 말이다.

그래도 원작자의 인생을 살 때, 언어 공부에 흥미 있어 했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

특히 일본어나 영어 같은 경우는 현지인 이상으로 능숙하게 구사 가능한 수준이었다.

오히려 중국어가 살짝,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편에 속했다. 물론 이 역시도 현지인 수준이다.

강후는 카니스 길드의 몬스터 ‘레이드’로 정신이 없는 북부에서 아예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남쪽과 동쪽 방향을 가리켰다.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브리핑을 했던 것처럼, 헌터의 출입이 상대적으로 적은 곳이기 때문이다.

지형이 매우 험준하고 까다로우며, 울창한 숲이 많아 시야 확보가 어려운 곳이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헌터들은 개활지라서 시야 확보와 변수 대응에 유리한 북쪽과 서쪽을 선호했다.

“동재야.”

“응?”

“아까도 얘기했지만, 오픈형 던전이니까 미들 보스나 메인 보스가 많은 곳이잖아.”

“응, 그렇지.”

“미보, 메보만 사냥하는 건 어때? 내 페이스에 맞춰 주면, 전리품은 전부 양보하지.”

“괜찮겠어? 나야 버프 셔틀이니까 문제없지만, 제대로 싸워야 되는 건 형인데?”

“그건 내 문제고.”

“형만 상관없다면 나야 나쁠 건 없지? 전리품까지 전부 양보받는 마당이면.”

“콜?”

“그런데 형은 그 대가로 가져가는 게 뭔데?”

그때, 박동재가 예리한 질문을 했다.

어쩌면 당연한 생각이었다.

전리품을 양보하는 것은 그 대가로 가져가고 싶은 것이 있을 때 하는 일이다.

그런데 박동재가 보기에 전리품을 자신이 취하면, 강후에게는 남는 것이 없었다.

살짝 당황할 뻔했지만, 강후는 미리 생각해 뒀던 대답으로 자연스럽게 상황을 넘겼다.

“경험치 독식.”

“아. 마지막에 1분 빠져달라고? 그럼 형이 경험치를 전부 당길 수 있으니까?”

“그렇지.”

“그럼 경험치를 포기해야 된다는 건데……. 뭐, 그럼 이참에 제대로 돈벌이 좀 해 볼까?”

“콜?”

“오케이. 콜.”

거래가 성사됐다.

강후가 미들 보스와 메인 보스를 욕심내는 이유는 다른 것이 없다. 스킬 강탈 때문이다.

오픈형의 던전은 엄청난 규모에 걸맞게 다수의 미들 보스와 메인 보스가 존재한다.

강후로서는 이곳이 아주 거대한 뷔페나 다름없는 셈이었다.

심판의 지옥도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큰 곳이라, 욕심낼 만한 ‘반찬’이 많았다.

물론 던전의 수준이 높은 만큼, 난이도는 꽤 높다. 호락호락한 녀석은 없을 것이다.

스킬 하나는 값으로 매길 수 없을 만큼 가치가 귀하다.

설령 박동재에게 수백억 원 가치의 전리품을 양보한다고 해도, 강후는 아쉬울 게 없었다.

어떤 스킬을 획득하느냐에 따라서, 단 한 개의 스킬로도 가치를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킬북은 부르는 게 값이다. 연장선상에 있는 스킬 획득 역시 가치가 같을 수밖에.

박동재와 남쪽 루트로 이동하기를 1시간여.

던전 입구, 그러니까 일종의 집결지에 해당하는 위치로부터 멀어지자 주변이 조용해졌다.

오는 길에 종종 마주치던 헌터의 수도 대폭 줄었고, 만나는 빈도도 체감할 만큼 줄었다.

중간중간 자잘한 전투가 있었지만, 무리에서 떨어진 몬스터를 사냥하는 형태라서 별일은 없었다.

감질맛 나게 몸만 잠깐 풀고 만 식이라, 오히려 제대로 된 전투가 그리울 정도였다.

한데 그때.

좀처럼 보이지 않던 헌터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외형으로 보이는 모습은 헌터의 일반적인 것과 달랐지만, 그래도 헌터는 분명했다.

박동재가 뜬금없이 나타난 성직자의 등장에 갑자기 공손하게 손을 모으며 강후에게 말했다.

물론 그에게는 들리지 않게, 목소리를 낮춘 상태였다.

“형, 웬 성직자일까? 옷차림을 보면 신부님 같은데?”

“글쎄.”

“보니까 죽은 헌터 시체가 하나 보이는 것 같은데? 거기에 기도를 해 주시는 것 같기도 하고?”

“음.”

“고생이시네. 이런 곳까지 와서 죽은 헌터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있는 것을 보면…….”

참된 신부의 외형을 한 모습이라 그런지, 박동재의 경계가 빠르게 풀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신부는 죽은 헌터의 양손을 붙잡고 기도를 해 주고 있었다.

헌터의 가슴 위에 올려 둔 책과 십자가 위로 성호를 긋기도 했다. 그사이에 떨어진 눈물은 덤.

강후는 처음부터 신부를 가늘게 뜬 눈으로 보고 있었다.

신앙에 충실한 성직자의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성좌 정보가 너무 이질적이었기 때문이다.

【비열한 성직자】

【자신의 손으로 죽인 헌터의 명복을 비는 의식을 치르면, 보너스로 스탯 포인트를 1에서 10까지 랜덤으로 1회 얻습니다.

24시간에 최대 2회까지 가능하며, 2회를 채울 경우 다음 시도까지 24시간이 흘러야 합니다.】

직접 죽인 헌터로부터 조건부로 보너스 포인트를 최소 1에서 최대 10까지 획득하게 하는 성좌.

연쇄살인을 유발하는 형태의 성좌다. 본격 살인 권장 성좌인 셈. 그럴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진짜 신부님이 아닐 것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신부로 위장을 한 악마일 가능성이 크다.

그때.

천천히 일어난 가짜 신부가 강후와 박동재를 보고 눈물을 훔치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강후와 박동재 역시 그의 인사를 받았다.

다만 강후는 신부의 시선에서는 보이지 않는 허리 뒤로 손가락 신호를 보냈다.

가운뎃손가락 하나. ‘적’을 지칭할 때 쓰기로 약속한 신호다. 경계 대상이라는 것.

빠르게 의미를 인지한 박동재가 더욱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는.

“존경스럽습니다. 이렇게 망자의 명복을 빌어주는 분도 흔치 않을 거예요.”

“아닙니다. 안타까운 죽음이 늘 마음 아플 뿐이죠. 이쪽으로 가고 계신 건가요?”

“네. 맞습니다. 신부님은요?”

“솔플을 이쪽에서 해 보려다 실력의 한계를 느끼고 나오던 참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신부가 다시 죽은 헌터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성호를 그었다.

그런데 성호의 방향이 정반대였다. 본인은 인지하지도 못한 모양인지 더 진지했다.

박동재가 긴장했는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언제든 전투 페이즈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일 터.

강후가 성큼, 가짜 신부를 향해 다가섰다. 조용히 이 상황이 지나갈 것 같진 않았다.

이곳에서 혼자 헌터를 ‘사냥’할 정도라면, 보통의 실력은 아닐 것이다.

여기에 남들의 경계를 무너뜨리기에 딱 좋은 신앙인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효과는 더 클 테지.

강후가 운을 뗐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러자 그도 대답했다.

“아닙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두 분을 위해서 제가 기도를 드려도 되겠습니까? 제게는 일종의 행운을 크게 올려 주는 성좌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개소리도 나름 창의적으로 하니까 그럴듯하네.’

강후가 속으로 웃었다.

그의 성좌 정보를 스캔할 수 없었다면, 깜빡 속아 넘어가기 딱 좋은 말이었다.

행운을 높여주는 기도를 해 주겠다는데 거절할 헌터가 어디에 있을까?

없던 믿음도 생길 것이다. 일종의 버프를 걸어 주겠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되니까.

바로 그때.

더 이상의 연기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강후가 가짜 신부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적당히 해, 새끼야.”

목적을 위해 믿음까지 팔아먹는 놈을 향해 퍼붓는 짧고 굵은 독설 한 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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