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시술 (3)
* * *
그 무렵.
“음. 이게 현장에서 확보된 영상이다, 이거지?”
“예. 궂은날이었던 탓에 화질이 썩 선명하지는 않습니다만.”
“됐어. 이 정도면 파악하는 데는 어렵지 않아. 어쨌든 증선락이 당한 영상인 거잖아.”
“맞습니다.”
유청화는 부하로부터 넘겨받은 영상 하나를 보고 있었다.
신수 길드의 간부인 증선락이 제1 연구소에서 강후에게 일격을 당한 현장 영상이었다.
신수 길드가 그녀가 소속된 신투 길드의 위성 길드였기에, 항상 관심을 갖고 있었다.
특히 증선락은 그가 유망주이던 시절부터 지켜봐 왔기도 했다. 지금은 네임드가 됐지만 말이다.
타깃이 정문 제약이라는 사실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이런 일이야 흔하니까.
다만 증선락이 정체불명의 암살자에게 당했다는 것은 그녀의 호기심을 크게 불러일으켰다.
“이쪽 방어선 말야. 이쪽은 정신계 헌터를 배치하는 쪽 아냐?”
“맞습니다. 외곽 방어선이 무너져도, 여기에서 한 번 붙잡아 두기 위함입니다.”
“근데 영상 속의 이 암살자는 한 번을 멈칫하지도 않고 그냥 통과해 버리네?”
“예. 거기서 예상이 완전히 깨진 것 같습니다. 증선락 님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뭐야, 아이템 빨은 아닌 것 같고. 순수 능력으로 유혹이나 현혹을 씹고 넘어간 것 같은데?”
“예. 그렇습니다.”
“게다가 스킬 활용에서도 특이점이 있고 말이야. 암살자치고는 스킬 활용이 너무 다양하잖아?”
“일반적인 암살자는 아닐 것으로 추정됩니다. 해외에서 들어온 용병일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도대체 누구지?”
유청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순간 떠오르는 암살자가 한 명이 있기는 했다.
신강후. 일전에 유청화가 몇 번이고 정신 스캔을 시도했지만, 씨알도 안 먹혔던 그 암살자다.
하지만 현장 영상 속의 암살자와 엮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일단 증선락의 레벨이 높다. 이클립스를 통해 알게 된 강후의 정보에 따르면 격차가 너무 심하다.
게다가 얼굴도 복면으로 가려져 있어, 제대로 된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 불가능했다.
강후의 얼굴이 떠오르긴 했지만 연결고리가 부실했다. 지나친 비약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강후의 그림자 걸음 스킬에 대해 아는 사람이 현장 영상을 봤다면 반응이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강후의 스킬 구성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범상치 않다는 것만 알 뿐.
부하가 물었다.
“좀 더 알아볼까요?”
“응, 은밀하게 알아봐. 괜히 다른 길드나 용병단에서 관심을 갖는 것은 싫으니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증선락이 당했다라……. 흥미롭네. 어떤 암살자인지는 몰라도, 몸값 제대로 높아지겠는데?”
유청화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실력 있는 암살자임은 분명하다.
* * *
아침.
강후는 마스터 K로부터 연락을 받고, 그라운드 제로로 향하고 있었다.
그의 배려로 안전 리무진을 탑승할 수 있었고, 덕분에 가는 길은 매우 편했다.
박동재를 만나기로 약속한 밤까지는 시간이 충분했기에, 그를 만나는 것에 차질은 없었다.
그렇게 도착한 그라운드 제로의 ‘유리 랜드’는 지난번과 같은 풍경이었다.
수많은 인부가 같은 수의 가드들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수확 작업에 매진하는 중이었다.
안전 장비를 철저하게 착용하고 일에 임하는 것에서 꼼꼼한 마스터 K의 배려가 돋보였다.
한편 강후는 의외의 인물이 자신을 마중 나온 것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서 오십시오. 제가 모시겠습니다. 마스터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다른 분이 나오셨군요.”
“예. 문형서 님은 북쪽으로 가셨습니다.”
“북한 쪽으로 갔단 말입니까?”
“맞습니다.”
문형서를 대신해 나온 것은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당연히 초면이다.
다만 성좌 정보로 봐서는 문형서와 비슷한 수준으로 보이는 레벨의 헌터였다.
주 분야는 반세영과 같은 거너로 보였다. 성좌 옵션이 명중률과 집중력에 편중되어 있다.
“그렇군요.”
“따라오시죠. 안내자만 저로 바뀌었을 뿐, 모든 상황은 똑같답니다.”
“실례지만 성함이?”
“황보혜입니다.”
“네. 이곳에 올 일이 잦을 듯해서. 미리 이름은 알아 두는 게 좋을 것 같아 여쭤봤습니다.”
황보혜.
문형서가 없으면 대신해서 나오는 사람. 그렇다면 마스터 K의 두 번째 심복이라 봐도 무방하겠지.
황보혜를 따라간 곳에는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K가 있었다.
만남이 이뤄지자마자 황보혜는 바로 자리를 비웠고, 주변을 지키던 인력도 물렸다.
대화의 보안을 확보하기 위해서 약속된 안배였다. 모든 작업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강후를 본 K가 먼저 반갑게 악수를 청하며 운을 뗐다.
“못 본 새에 혈색이 나빠졌군.”
“어제 크게 무리를 해서 말입니다. 가뜩이나 나쁜 혈색이 더 나빠진 모양입니다.”
“어. 누가 보면 하얀 분칠을 하고 왔는 줄 알겠어. 극한까지 몸을 혹사했구만?”
“그렇습니다.”
K의 앞에서 몸 상태를 숨기려는 시도는 무의미한 듯했다.
그는 자신의 바뀐 혈색을 보고도 바로 마나 과민증으로 인한 무리를 했음을 알아차렸다.
넘겨짚었다고 하기에는 그간 그가 보여 준 직관이 있기에. 의심보다는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서는 울릉도에 다녀온 이후, 자네에게 자극을 상당히 받았는지 훈련을 하러 떠났어.”
“북한으로 갔다고 들었습니다.”
“강해지기 위해서 그쪽 땅만큼 좋은 곳이 없지.”
“위험하지 않습니까? 헌터 치안청에서도 북한 쪽은 몬스터, 식생 확인을 중도 포기했을 정도인데.”
“그만큼 기회의 땅이기도 하지. 북한에 더 이상 사람이 살지 못하게 된 이후로는 말이야.”
K의 말이 맞았다.
헌터의 시대가 시작된 이후.
빠르게 현실에 맞춰 적응하며, 저마다의 세력군을 형성한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북한은 헌터의 등장 자체를 체제 전복의 위기로 여겼다. 그들에게는 헌터가 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례 없는 힘을 얻은 헌터들이 순순히 죽어줄 리 만무했다.
결국 내전이 발생했고, 그 과정에서 미래의 전력이 되어야 할 헌터들이 허무하게 죽어갔다.
그러다 보니, 각 지역에서 던전 폭발로 등장한 몬스터를 토벌해낼 전력조차 부족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북한에 살았던 사람들은 대부분이 중국으로 넘어가 버렸다. 그리고 북한은 몬스터의 놀이터가 됐다.
사실 이것은 알려진 부분의 일면일 뿐, 언데드화된 헌터가 존재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혹은 몬스터와 교잡이 이루어져 상상하지도 못할 특이종이 발생했다는 얘기도 있었고.
‘원작에 북한 떡밥이 좀 많았어야지. 뿌려 둔 떡밥만 놓고 보면 뭐가 있어도 이상할 게 없어.’
강후가 원작의 기억을 떠올리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오죽했으면 완결 후기를 남겼을 때, 독자들이 북한 떡밥은 도대체 어디 팔아먹은 거냐고 했을까?
작가의 완결 후기 덧글보다, 북한 떡밥 관련 지적이 공감수가 3배는 더 넘게 붙었다.
K가 화제를 돌렸다.
“어쨌든 울릉도에서 형서가 자네에 대해 본 모든 것은 입을 무겁게 할 거야. 걱정 안 해도 돼.”
“걱정 안 합니다. 굳이 그런 허튼짓을 할 이유가 없을 테니까.”
“그렇지. 이 각박한 세상은 입이 무거울수록 명줄이 긴 법이거든. 그 생리를 우리는 잘 알아.”
K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옆의 선반에 놓여 있던 뭔가를 강후에게 쓱 내밀었다.
아직 설명을 듣진 않았지만,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을 듯했다. 역시 K가 바로 설명을 덧붙였다.
“무색 부적에 방출의 핵을 합친 거야. 세공법은 예전에 신령이에게 직접 배웠지.”
“전부터 알고 지내셨나요?”
격 없이 김신령을 부르는 K의 모습에서 친근함이 묻어났다. 한두 번 불러본 느낌이 아니다.
“뭐…… 결혼할 뻔, 했던 사이라고 해 두면 설명이 될까? 과거형 말이야.”
“아.”
파혼을 했거나. 아니면 결혼을 약속하기 전에 헤어졌거나.
어쨌든 한때 서로 사랑했던 적이 있는 관계인 모양이다.
잠깐이지만 K의 눈빛이 반짝였다. 젊었던 시절의 연애가 떠올랐기 때문이겠지. 이해가 갔다.
“어쨌든 신령이에게 배운 세공법으로 만들었어. 미리 얘기하지만 너무 기대는 하지 마.”
“생각하시는 것보다 저는 훨씬 더 비관적이고 부정적이라서요. 별 기대가 없습니다.”
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를 완전하게 내려놓은 것은 아니지만, 기대치를 퍼센트로 말하면 10%쯤 될 듯했다.
“그래. 편하게 하자고. 자, 무균실로 이동해서 시술을 해 보지. 세균 감염도 조심해야 하니까.”
“예. 부탁드립니다.”
K를 따라 이동한 특수 무균실은 큰 수술까진 아니더라도, 작은 수술을 할 준비는 되어 있었다.
하물며 아주 작은 부적을 몸에 심는 것 정도는 문제없이 수행할 수 있는 상태였다.
부분 마취를 진행한 다음, 부적을 심는 작업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K에게 말이나 좀 걸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K가 봉합 작업과 소독을 꼼꼼하게 마무리하고는 강후에게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스킬을 써 봐. 이왕이면 계속해서 쓰면서, 마나의 회복을 유도하는 쪽이 좋아.”
“네.”
강후가 바로 스킬을 연달아 쓰기 시작했다.
광란적 치유 같은 스킬. 즉, 공격 행위와 연결되지 않는 보조형 스킬 위주로 활용했다.
원래대로면 마나가 순식간에 소모되고, 급속도 회복이 이루어지면서 몸에 과부하가 걸린다.
즉, 통증이 유발된다.
여기서 K의 가설이 맞아떨어진다면, 부적이 가짜 마나를 방출해 주면서 과부하를 낮춰 줄 것이다.
숨통을 틔워 주는 셈이다.
마나는 정상 회복되는 것이 맞지만, 육체에 대한 압박은 최대한으로 줄여주는 형태다.
이내 몸의 변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느낀 강후가 짧은 침음성을 냈다.
“음.”
“어때?”
“한 5초 정도는 과부하를 안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똑같습니다.”
“역시…….”
“그리고 5초의 혜택도 바로 회복되는 것은 아닌 듯하네요. 대기 시간이 있을 듯합니다.”
“좀…… 기다려보겠나?”
“예. 그렇게 하시죠.”
그 이후, 30분이 흘렀다.
그러자 부적이 앞서서 그랬었던 것처럼, 잠깐이나마 과부하를 없애주는 효과를 냈다.
약 30분이 대기 시간이고.
그러고 나면, 약 5초 동안 마나 과민증으로 인한 과부하를 없애주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듯했다.
아무 성과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치고는 상당히 괜찮은 결과였다. 강후는 그렇게 생각했다.
“생각보다 부실하구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30분마다 5초는 간접적인 체험은 할 수 있군요.”
“완전히 압박에서 해방되나?”
“예. 5초 동안은 아주 조금의 과부하도 걸리지 않습니다. 마나 회복은 정상적이고요.”
“가설의 결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는 얘기군.”
“그 말은 즉, 지속적인 방출 동력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될 것 같습니다만.”
“맞아. 지금 우리가 만든 부적으로는 그 역량까지는 안 되는 거지. 출력이 낮으니까.”
“더 수준 높은 무색 부적과 방출의 핵이 필요하다는 2차 가설로 가는 걸까요?”
“하하. ……그렇지.”
K가 웃으면서도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방향성은 잡았지만, 그 방향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이 보통 까다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의 무색 부적도 김신령에게 겨우 얻어낼 수 있었을 만큼, 민감도가 높은 녀석인데.
그 이상의 수준을 구하려면, 김신령도 쉽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고.
“저는 기분 좋습니다.”
내심 실망한 듯한 K와 달리, 강후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변화의 물꼬를 터서다.
조금의 변화도 만들 수 없을 줄 알았던 지랄 맞은 선천성 마나 과민증에 균열을 일으킨 것 아닌가.
그렇다면 부족한 정보가 채워지고, 여기에 확신과 경험이 쌓이게 된다면?
지금보다 무조건 더 나은 상태가 될 것임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마이너스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강후의 긍정적인 반응이 의외였는지, K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비관적이고 부정적이라더니, 오히려 어둡게 보는 건 자네가 아니라 나였군.”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맞아. 실망하기엔 시작이 오히려 좋다고 보는 게 맞겠지.”
“그렇습니다.”
“내가 어리석었어.”
K도 기분 좋게 해 보는 작은 반성이었다.
그래. 변화는 시작됐다.
두 사람은 선천성 마나 과민증이 불치병으로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