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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51화 (151/304)

151화 시술 (1)

* * *

당황한 것은 비단 당사자인 증선락 뿐만은 아니었다.

안전 막사에서 현장을 지켜보던 동료 예진빈과 용병 대장들의 표정도 일그러졌다.

증선락에게서 피를 본 것이 너무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그는 타깃에게 상처를 입혀 피를 흘리는 쪽에 속했지, 반대인 경우는 없었다.

정체불명의 암살자에게 허를 찔려도 제대로 찔려 버렸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대담하고도 두려운 노림수였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증선락이 연달아 일격을 당하는 와중에도 몸은 지켰다는 것이다.

상처만 가득 남은 가운데, 정신승리를 위해서 겨우 건질 수 있는 긍정적 요소 하나였다.

강후가 혈화 이후에 도약을 연계하면서, 증선락의 숨통을 제대로 끊으려고 했지만.

증선락이 이를 악물고 기공강벽을 난사에 가깝게 펼친 덕분에 강후의 이동 경로가 제한됐다.

물론 완벽하게 연계를 막은 것은 아니었다.

증선락은 기공강벽 사이 틈새를 파고든 강후에게 왼손의 약지와 소지를 잃었다.

두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 아이템까지 함께 잃은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강후는 마치 전리품처럼 증선락의 손가락 두 개를 챙기고는 연구소 안으로 사라졌다.

쿠웅!

시간을 맞춰 딱 열린 문은 강후를 들이자마자, 곧바로 굳게 닫혔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예진빈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단순히 증선락만 당하고 끝날 문제는 아니었다.

외부에서 소속 불명 용병이 접근해서 연구소 안으로 들어갔다면 이유는 하나다.

연구소 전체를 지키기 위한, 보호 대결계를 활성화하기 위한 레드 키의 전달일 터.

초반에 키 홀더 하나를 납치하긴 했지만, 예비 키가 없을 정도로 허술하진 않았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차캉! 차캉! 우우우웅!

동력이 제대로 공급되는 소리가 들리더니, 정문 제1 연구소 외곽이 푸르게 물들기 시작했다.

다량의 마석에서 공급되는 마나를 바탕으로 가동된 결계였다.

이러면 최소 보름 이상은 어떤 공격도 무의미해진다.

밖에서 안, 안에서 밖으로 향하는 공격 시도가 전부 무효화된다.

어차피 공격 아닌 수비가 목적인 연구소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게 없는 장사였다.

그 사이, 연구소 차원에서 외부 전력을 투입할 때를 보겠지. 이제 시간은 그들의 편이 됐다.

“제대로 엿 먹었군.”

다른 용병대장이 중얼거렸다.

불패의 신화였던 증선락이 일격을 당하는 바람에 지금까지 했던 모든 작업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다만 증선락을 탓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가 당했다면, 자신들도 비슷했을 거라 생각해서다.

대놓고 말하진 않았어도, 다들 강후의 실력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보통내기 암살자가 아니라는 것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었다. 적이라 씁쓸할 뿐이다.

“다 된 밥에 이렇게 재를 뿌리나? 정말 지랄 맞군.”

예진빈이 인상을 찌푸렸다.

한편으로는 클라이언트의 입금까지 공격 시점을 늦췄던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하지만 용병은 그런 존재다. 호의로 일을 먼저 진행하지는 않는다. 대가는 선행되어야 한다.

어쨌든 저 암살자 하나 때문에 3천억 원의 의뢰가 한방에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정문 제약도 암살자를 고용하기 위해 상당히 많은 돈을 썼겠지만.

연구소와 기술, 인력을 모두 지켜냈으니 승리한 셈이었다.

다국적 용병대에는 쓸쓸한 퇴장만이 남아 있었다. 다른 선택지는 안타깝게도 없다.

* * *

그 무렵.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1 연구소장 안성훈은 연신 강후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고 있었다.

어찌나 감사 인사를 하는지, 허리를 몇 번 숙였는지도 가늠이 안 될 정도였다.

“감사는 이제 됐습니다. 무료 봉사로 한 일도 아니고. 기쁜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강후가 본인 특유의 무뚝뚝함으로 안성훈의 인사를 받았다.

속마음을 제대로 번역해 보자면, 맡은 바 일을 다 할 수 있어서 뿌듯하다는 그런 뜻이다.

매번 속마음과는 한참 동떨어진 말을 하게 되는 자신이다.

하지만 하나의 아이덴티티처럼 자리 잡은 성격이고 특성이라,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믿기지 않습니다. 증선락 하나 때문에 그간 도움을 주려던 용병들이 모두 죽었었거든요.”

안성훈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연구소 밖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절단된 손가락을 부여잡고, 피를 철철 흘리며 멀어져 가는 증선락의 모습이 보였다.

연구소 입장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귀처럼 보였던 증선락이 우습게 보이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증선락에게 일격을 제대로 먹인 강후의 모습이 더 대단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소장님.”

“예?”

“막판에 저를 도와준 저격수분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만. 정말 한 방이 컸습니다.”

진심이었다.

정확하게 타이밍을 맞춰 자신을 보조해 준 덕에 증선락을 노릴 기회도 볼 수 있었다.

증선락이 저격수에 대해 껄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더라면, 노림수도 먹히기 어려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저격수의 저격 엄호가 강후의 시간을 벌게 해 주려는 의도라고 ‘착각’하도록 만드는 것이 강후의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서로 말 한마디, 눈빛 한 번 제대로 나누지 못했지만 생각이 통했던 것이다.

“안 그래도 데려오려고 했습니다만. 당사자가 거절을 하는 바람에…….”

“거절을?”

“예.”

“연구소 관계자가 아닙니까?”

“정확히는 용병입니다. 장기 고용된 형태이긴 합니다만, 단독 행동을 보장받은 상태라…….”

“알겠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고맙다고 꼭 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쉬웠다.

반세영만큼이나 센스 있는 저격수처럼 느껴져 호기심이 있던 차였는데, 만남은 싫었던 모양.

미련은 바로 털어 버렸다.

그리고 CCTV를 통해서 보이는 다국적 용병대의 움직임을 다시금 살폈다.

보호 대결계가 활성화된 상황을 본 것인지 빠르게 철수하는 용병들의 모습이 보였다.

현명한 선택이다.

활성화된 대결계는 거대한 바위와 같다. 여기에 백날 계란을 던져봤자 계란만 깨질 뿐이다.

이것으로 목적은 달성.

보름 후에 대결계가 풀리면, 그다음의 대비를 어떻게 할지는 전적으로 정문 제약의 몫이다.

다국적 용병대가 공격을 또 할 수도 있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그건 자신이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정산은 강후의 요청으로 최대한 신속하게 이뤄졌다.

매드 솔라키움의 약효가 빠지면서, 몸 전체에 눅눅함이 빠르게 번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연구소로 접근하는 과정에서 스킬을 정말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계속 썼고.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증선락과 전투를 치르면서, 몸에 과부하가 제대로 걸려 버렸다.

매드 솔라키움이 육체적인 모든 고통과 압박을 뒤로 미뤄 주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진즉 쓰러져서 피를 토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상황이었다.

550억 원의 의뢰비.

여기에 각신환 10개까지.

약속한 의뢰 보상은 전부 받았다. 통장 잔고를 확인해 보니, 순식간에 1,400억 원이었다.

곧 시한폭탄이 터질 것 같은 느낌에 연구소장 안성훈과 바로 인사를 마친 뒤.

순간이동 능력을 이용해서 미리 체크인을 해 뒀던 안전 호텔로 복귀했다.

그리고 1분 남짓이 흐른 후.

“우욱……!”

강후가 밀려오는 구역감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구토를 시작했다.

의뢰를 앞두고, 식사 대신 가볍게 물 몇 모금만 마신 게 전부였는데 그것마저 게워냈다.

동시에 머리를 도끼로 내려찍는 듯한 고통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아이템의 고통 경감 효과가 제법 있음에도 이 정도라면.

아이템이 없었다면 아예 기절하거나 쇼크사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 하아. 그동안 매드 솔라키움으로 얼마나 꿀을 빨았는지 이제야 알겠…… 우욱!”

자조 섞인 총평을 마저 끝내기도 전에 다시 올라온 구역감에 고개를 숙였다.

시쳇말로 좆같이 아팠다. 마약성 진통제로도 다스릴 수 없는 극한의 고통을 받는 느낌.

고통을 눌러둔 덕분에 레벨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짜는 아니었다. 한계의 한계까지 끌어다 쓴 몸은 정직하게 청구서를 내밀었다.

그것이 지금의 고통과 통증, 그리고 몸이 버텨내지 못하고 지랄발광하고 있는 현재였다.

물론 한편으로는 이렇게라도 레벨이 3, 4배 차이가 나는 헌터와 해 볼 수 있다는 것이 뿌듯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성립조차 되지 않을 힘의 격차가 잠깐이나마 맞춰질 수 있었던 거니까.

증선락도 그래서 자신을 상대로 방심했고, 한 방 제대로 먹었다.

객실 테이블에 올려 둔 반지 두 개가 증거다. 증선락이 자신에게 보기 좋게 당한 결과물이다.

“후우. 후우.”

가쁜 숨을 몰아쉬며 화장실 밖으로 나온 강후가 창가로 향했다.

주변이 온통 하얀 벽이다 보니,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울렁거리는 느낌이었다.

차라리 탁 트인 풍경이라도 보면, 어지러운 느낌도 좀 가라앉지 않을까 싶었다.

“지랄…….”

하지만 안타깝게도 강후의 눈에 보이는 하늘은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보이고 느껴지는 모든 것은 정상이 아니었다.

몸을 혹사한 대가로 돌아온 후폭풍은 상상한 것 이상으로 파괴적이었다.

그래서일까.

카칭!

강후가 미리 물을 따라 둔 유리컵을 들어 올리다가, 불쾌함을 참지 못하고 잔을 박살 내버렸다.

꼬박 하루는 쉬어야 할 듯했다. 몸뚱이에 날아온 청구서가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 * *

같은 시각.

쿠웅!

목을 부여잡고 쓰러진 한 남자가 원망 섞인 표정으로 두 남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숨이 끊어진 남자는 초점 잃은 눈으로 세상을 등져버렸다.

치열한 전투 현장인가 싶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은 장시환의 펜트 하우스 안이었다.

그리고 죽은 남자가 흘린 피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는 사람은 바로 빈센트 마이어였다.

“X발, 이 새끼 아니잖아.”

빈센트가 장시환을 노려보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괜한 화풀이라는 것을 알지만, 허탈함을 이렇게라도 다루고 싶었던 탓이다.

장시환은 별생각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며 빈센트에게 되물었다.

“히든 스킬 없어?”

“없어……. 정말 없는 거였군.”

“있어도 없다고 잡아떼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네. 어쨌든 돈은 받아야겠어. 네 덕분에 유망주 하나를 죽였으니까.”

“돈은 없어. 던전은 하나 줄 수 있는데. 루마니아에 있는 내 던전이다. 소유 명의 확실하고.”

“그럼 문제없지.”

정화 길드에서 육성하던 유망주가 죽었음에도 장시환의 표정은 평온했다.

아쉽긴 하지만, 유망주야 또 영입해서 키우면 된다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 감정은 사람에 대한 감정이라기보다, 물건이 사라진 것에 대한 감정에 더 가까웠다.

장시환이 히든 스킬을 획득했을 것으로 예상한 암살자 헌터는 유망주 ‘신희성’이었다.

하지만 보기 좋게 헛발질.

그 대가로 비싼 던전 하나를 받게 됐으니, 오히려 남는 장사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한편 빈센트는 이런 접근 방식이 답답하다고 생각했는지 접근법을 바꿨다.

“심판의 지옥 공략에 참여한 모든 암살자 목록을 넘겨. 초보여도 상관없어. 다 확인해야겠어.”

직접 나설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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