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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50화 (150/304)

150화 춘천행 (3)

* * *

‘뭐지, 이 새끼?’

자신이 기공탄을 튕겼을 때, 어지간한 헌터였으면 대응도 못 하고 죽었어야 했다.

백번 양보해서 중상 정도는 입어야 했다. 전력으로 기공탄을 날린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후는 보호 결계를 펼쳐, 날아든 기공탄 공격을 막아냈다.

결계가 완전히 박살 나긴 했지만 기공탄도 기존 동력을 잃고 사라져 버렸다.

결국 등가교환이 된 셈이었다. 상호 파괴가 일어났고, 없었던 일이 되어 버렸으니까.

증선락은 도무지 스킬 연계를 짐작할 수 없는 강후의 정체가 궁금했다.

얼굴의 절반은 복면으로 가리고 있는 터라, 암살자라는 것 외에는 알 수 있는 정보가 없었다.

한편.

강후는 증선락의 기공탄 공격을 한 번 경험하고는 일대일로 맞붙을 생각을 버렸다.

단순히 일대일 상황이 아니다.

그의 뒤로 펼쳐진 상황을 보니, 마탄 저격수들이 위치를 재조정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거리가 닿지 않아, 앞서서 쉴 새 없이 이어지던 저격이 멈춘 상태였지만.

언제 자리 잡은 저격수들이 다시 방아쇠를 당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거리가 좀 있기는 해도, 지원을 위해 달려오고 있는 용병 무리도 제법 보였다.

우웅-. 우웅-.

강후가 주변을 살피니, 공간 전체가 미세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수준이 높은 기공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주변의 공간에 이런 식의 변화를 만들어 낸다.

공간의 일렁임이 의미하는 것은 환영술 같은 형태의 속임수가 원천봉쇄된다는 뜻이다.

환영술을 펼쳐봤자, 저 일렁임에 휘말리는 즉시 엿가락처럼 환영이 춤을 출 것이다.

그러면 더 볼 것도 없이 본신과의 구분이 쉬워진다. 스킬 사용의 의미가 아예 없다.

‘목적 방향 자체는 같아. 나는 연구소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고, 저놈은 연구소 안으로 가는 걸 막으려 하지.’

최종 목적지는 자신이나 증선락이나 같았다. 원하는 결괏값만 다를 뿐.

그래서 강후는 차라리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뻔한 흐름으로 가다가 한 번 세게 비틀기로 했다.

어차피 상대 입장에서는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도 상당히 클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전투를 피하려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어색하기보다는 당연하겠지.

강후는 그 당연함을 비틀 생각이었다. 궁지에 몰린 쥐가 갑자기 고양이를 물 듯이.

연구소 쪽을 흘깃 봤다.

아직 연구소 안에서 문을 열거나 사람이 마중 나오려는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현명한 판단이다.

괜히 잘못 문을 열었다가는 증선락에게 그대로 입구를 돌파당할 수도 있다.

지금 연구소가 다국적 용병대를 상대로 버틸 수 있는 것은 그래도 두터운 철문을 가졌기 때문이다.

철문에 온갖 방어형 결계를 떡칠하고, 이를 커버할 저격수를 배치해 둔 덕분이다.

한데 철문이 뚫려버리면, 그때부터는 작정하고 밀려들 용병대를 막을 방법이 없다.

제1 연구소 내에 전투 전력은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에, 뚫리면 답이 없었다.

이 역시 안전 불감증이 만들어낸 사고인 셈이다.

항시 상주해야 하는 레드 키 홀더 중 한 명이 임의로 외출한 것도 치명적인 안전 실수였고.

기술 개발에만 집중해 온 자신들이 타깃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정문 제약의 판단도 실수였다.

그나마 만약을 대비해 최소한의 대비는 해 두었던 것이 지금만큼의 시간을 벌 수 있었던 셈.

하지만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다음 대규모 공격은 정문 제약도 레드 키로 발동시킨 대형 결계가 아니면 버틸 재간이 없었다.

그때.

‘한 명.’

강후가 이쪽으로 집중되고 있는 저격수 한 명의 조준을 느꼈다.

황야의 전략가에게서 얻은 성좌 능력 중에 하나인 ‘직관’ 덕분이다.

자신이 조준점에 정확히 자리하기 전에 직관을 통해서 미리 그 사실을 인지할 수 있는 만큼.

앞서 수많은 저격이 있었음에도 강후는 미리 영리하게 위험 지역에서 회피할 수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직관을 활용한 인지는 저격수의 타깃이 자신이 아니라 증선락임을 명확히 알게 해 주었다.

‘협공이면 할 만하지.’

강후는 저격수가 분명히 지금도 증선락을 노릴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때를 기다리고 있음을 느꼈다. 눈빛 하나 오간 것이 없지만, 경험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저격은 한 번 실패하면, 위치가 노출되고 상대로 하여금 경계성을 강화시킨다.

그래서 가장 좋은 저격은 한 번의 저격이라는 말도 있는 것이다. 실전에 딱 어울리는 말이었다.

파아앗!

바로 그림자 걸음을 펼쳤다.

환영술이 억제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지금으로서는 그림자 걸음이 가장 활용도가 좋다.

강후는 증선락을 마주한 시점부터 은신은 거의 쓰지 않았다. 무용지물이라서다.

기공수는 주변의 기감을 다루거나, 혹은 기의 흐름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것에 능숙하다.

절대 은신마저도 위치가 바로 탄로 난다.

오히려 기공수 입장에서 암살자의 은신을 반길 정도다.

왜냐하면 암살자는 은신 상태가 되면, 평소에 비해 심리적으로 안정감과 자신감을 얻기 때문이다.

기민함이 무의식 중에 떨어지게 된다.

‘쫓아봐. 쫓는 재미가 가장 극대화될 때, 고양이를 깨무는 앙칼진 쥐가 되어 줄 테니.’

타앙!

파앙!

잠깐 사이에 한 차례 교전이 오갔다. 증선락의 기공탄과 강후의 호신이 맞부딪힌 현장이었다.

타앙!

또 한 번 날아든 기공탄.

카칭!

이번에는 강후가 납치로 가져온 버려진 철판으로 보기 좋게 기공탄을 막아냈다.

겉으로 보이는 그림만 보면, 이렇게 불공평한 교전이 없다.

강후는 전력을 다해서 방어 스킬을 활용하고 있는 것에 반해.

증선락은 손가락 몇 번 튕기는 것으로 공격을 대신하니까.

하지만 모르는 소리다.

증선락도 최대한 많은 기를 담아, 한 번에 강후를 향해 터뜨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것이 스킬에 막혀 흩어질 때마다 깊은 분노를 느꼈다.

일대일 상황이 진즉에 정리됐어야 할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그때.

“하.”

지금까지 한 번도 작은 숨결 한 번 토해낸 적 없던 강후가 증선락을 향해 입을 벌렸다.

증선락은 느꼈다. 이 솜씨 좋은 암살자놈도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을.

그럴 수밖에.

너무 먼 거리를 쉬지 않고 여기까지 이동해 왔다.

마약을 듬뿍 들이마시고 왔다고 해도, 이 정도면 정말 많이 버텼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랬다. 퍼질 때가 됐다. 그것도 한계에 이르러서, 퍼지다 못해 터질 때도 됐다.

그 순간.

“……!”

증선락은 자신에게로 향하는 저격수의 시선을 느꼈다.

예상했던 결과다.

제1 연구소 외곽에 접근자를 노리려는 저격수가 있었던 것은 초반부터 알았으니까.

처음부터 예측 범주에 두고 있었던 부분이라 새삼스럽지도, 놀랍지도 않았다.

‘그래, 암살자 놈이 다 그렇지. 저격으로 시간을 벌고, 안으로 들어갈 속셈이겠지.’

수가 뻔히 보인다.

알고 당하기에도 좋은 노림수지만, 그것은 당할 사람이 실력 없는 어중이떠중이일 때의 얘기다.

이미 강후를 쫓을 때부터 증선락은 이런 그림을 미리 생각하고 있었다.

그 말은 즉, 그림의 판을 깨버릴 준비도 이미 다 마쳐 놓고 왔다는 얘기다.

타앙!

연구소 안에서 마법 불꽃이 일며, 증선락을 노린 마탄이 순식간에 날아들었다.

【기공강벽】

하지만 허무하게 막혔다.

강후의 보호 결계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두텁게 만들어진 기공 강벽은 쉽게 마탄을 막아냈다.

심지어 약간 금이 가고 만 수준이라 추가 저격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천파난격】

증선락이 필살기를 꺼냈다.

누가 봐도 가장 가까운 연구소 문으로 들어가려는 것이 뻔히 보이는 강후의 움직임이다.

그래서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 방향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갈가리 찢어버릴 생각이었다.

막아내려고 하든, 혹은 어설프게 피하려고 하든 간에 손도 못 쓰고 터져 죽게 말이다.

스아앗!

그러자 계속 후방 이동을 거듭하던 강후가 대뜸 증선락에게 달려들었다.

“흥.”

증선락이 코웃음을 쳤다.

지나가던 개가 보더라도 분신술을 활용해서, 시간을 벌려고 하는 것은 뻔하니까.

암살자의 전형적인 레퍼토리다. 분신이나 환영 따위를 이용해 시간을 지연시키는 수작.

워낙 많이 경험해 본 개수작이라 증선락은 분신에 아예 관심도 두지 않았다.

역시나 증선락의 옆을 스쳐 지나가기만 했을 뿐이지, 분신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도망치기 급급한 판국에 분신술로 만든 분신까지 컨트롤 할 정신은 없을 것이다.

분신술이 다루기가 쉬운 스킬도 아니고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연구소 쪽으로 도망치는 강후가 분주하게 좌우로 몸을 움직이며 ‘생쇼’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기공탄 공격을 회피해 보겠다는 애처로운 몸짓으로 보였다.

의미 없는 짓이다.

공간을 통째로 날릴 거니까. 그 안에서 멀쩡할 수 있는 것은 단단한 강철 정도가 고작일 뿐이다.

쿠과과과!

순식간에 날아간 천파난격의 충격파가 강후를 포함한 모든 구조물을 덮쳤다.

얼마나 강력한 충격파였는지 콘크리트로 된 외벽이 줄줄이 터져나가며 가루가 흩날릴 정도였다.

휘말린 강후도 마찬가지.

몸을 날려 피하려다가 천파난격에 말려든 강후의 몸이 갈가리 찢겨지며 최악의 끝을 맞이했다.

종잇장처럼 찢겨서 오히려 측은해지기까지 할 만큼, 안타까운 최후였다.

그런데.

“……?”

끝이 이상했다.

사람이 찢어 죽으면 당연히 사방으로 튀어야 할 피와 살점이 보이지 않았다.

특히 피!

조금만 베여도 붉은 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그 피가 한 방울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찰나의 순간이 영겁의 시간이라도 된 것처럼, 증선락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그것도 잠시.

뒷골부터 시작해 등골을 타고서 쫙 내려가는 전율이 증선락의 전신을 감쌌다.

허를 찔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것도 엄청난 리스크를 안고, 자신의 빈틈을 완벽하게 노린 강후의 한 수를 말이다.

파앙!

증선락이 반사적으로 몸을 앞으로 날림과 동시에, 기공파를 뒤로 방출하며 추진력을 얻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을 스쳐 지나갔던 것이 강후의 분신이 아니라 본신이었으니까. 뒤가 위험했기 때문이다.

대응이 신속했던 걸까?

증선락은 고통 없이 현장을 빠져나왔음에 만족했다.

강후가 뒤를 잡긴 했지만, 공격까지 이어가진 못했던 모양. 불행 중 다행이었다.

한데 바로 그때.

주르르륵.

허벅지 뒤를 타고 내려오는 뜨거운 느낌이 있었다. 피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액체.

거기에 한술 더 떠, 햄스트링 근육을 따라 불에 타는 듯한 통증이 전해졌다.

고통이 없던 게 아니었다.

너무 순식간에 허벅지 뒤를 베여버린 탓에 고통이 전달될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니미…….”

증선락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일단 한 방 세게 먹은 이상, 어떻게든 다음 공격은 막아내야 한다. 지켜야 한다.

【기공강벽】

그래서 보지도 않고, 일단 후방으로 냅다 기공강벽을 펼쳤다. 잠깐의 시간이라도 벌기 위해서.

대응은 깔끔했다.

하지만 강후는 애초에 벽을 두고 공격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탁!

손가락 한 번을 보기 좋게 튕겨 주었을 뿐이었다.

【혈화】

퍼퍼퍼펑!

붉은 피의 폭발이 일어나며, 증선락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떴다.

확실하게 X 됐다.

지금 증선락의 머릿속에는 그 생각밖에 없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오금이 저릴 공포감이 감당할 수 없는 해일처럼 밀려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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