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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43화 (143/304)

143화 울릉도 (3)

* * *

공간 격리가 풀리기도 전에 검은 그림자가 죽은 것을 보며 문형서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소름이 돋았다.

강후가 무서워서는 아니었다.

너무 빠른 시점에 예상하지 못한 화력을 가진 반격 스킬로 검은 그림자를 끝장내서다.

문형서도 검은 그림자를 저렇게 일격에 죽여본 적은 없었다. 불가능한 그림이었다.

검은 그림자 같은 망령 형태의 몬스터를 한 방에 처치하려면 조건이 정말 까다로웠다.

이를테면 다량의 신성력이나 암흑기를 이용해서 일거에 몰아치는 형태여야 하는 것이다.

그 말은 즉, 강후가 암흑기를 다룰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레벨 200이 되지 않은, 그것도 암살자가 암흑기까지 다룰 줄 안다는 얘기인가?

괜히 암흑기나 신성력이 제7의 스탯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깨우치기 어렵고, 깨우친다 한들 쓸만한 양을 모으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후는 이미 충분한 양의 암흑기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믿기지 않았다.

“천천히 나오지. 상황은 다 끝났으니.”

강후가 문형서가 자리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방향을 향해, 웃으며 말을 남겼다.

격리 중인 공간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무슨 스킬인가 싶겠지.

한편, 강후는 검은 그림자를 처치하고 획득한 암흑기 스탯을 살피고 있었다.

【‘검은 그림자’를 처치하고 임의의 확률로 활성화된 암흑기 스탯 ‘20’을 얻었습니다.】

‘진짜 수지 맞았네.’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양의 암흑기를 한 번에 얻었다. 덕분에 암흑기 스탯이 120이 됐다.

이 스탯이 매우 소중한 이유는 제7의 스탯은 포인트를 투자해서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몬스터 사냥 또는 아이템 획득으로만 올릴 수 있는 스탯이었다.

제7의 스탯이 옵션에 들어가 있는 아이템은 그 수가 매우 적어서, 구하기 너무 어려웠다.

결국 이렇게 검은 인도자나 검은 그림자를 처치해야만 올릴 수 있는 그림.

하지만 그것도 철저하게 확률을 따라가고, 확률 자체도 한 자릿수에 머무는 만큼…….

얻을 상황보다 얻지 못할 상황이 더 많았다.

하루 종일 이쪽 계열의 몬스터를 사냥하고 다닌다 치면, 1 정도 오르면 많이 오르는 것일 터.

모든 시간을 암흑기 획득에 집중한다고 했을 때로 잡으면, 약 1달을 아낀 것과 같았다.

단 한 번의 전투로 말이다.

이윽고, 공간 격리가 풀린 문형서가 원래 공간으로 복귀하며 강후를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

마스터 K가 강후를 자신을 대하듯, 잘 지켜주라고 신신당부를 했었기 때문이다.

신보다도 더 신처럼 모시는 마스터의 말에 부응하지 못했으니, 자괴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신강후 님. 제 불찰입니다.”

바늘로 눈을 찔러도, 눈 한 번 깜박하지 않을 것 같은 문형서가 약한 모습을 보이니 의외였다.

그만큼 K의 당부가 그에게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뜻도 되겠지.

하지만 강후는 문형서를 탓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검은 그림자의 타깃이 문형서였기 때문에 그가 공간 격리가 된 것일 뿐이다.

반대로 검은 그림자가 집요하게 자신을 타깃으로 삼았으면, 결국 자신이 격리되고 말았을 것이다.

“신경 쓸 것 없어. 어차피 저 녀석의 선택은 복불복이잖아. 누가 선택되어도 이상할 게 없지.”

“하지만…….”

“해피 엔딩으로 끝났음에 감사하자고. 덕분에 나도 재미를 좀 봤고 말이야.”

레벨이 오른 건 아니지만, 상당한 경험치를 한 번에 얻었기에 강후는 만족하고 있었다.

특히 암흑기 스탯의 증가가 반가웠다.

지금도 충분히 강력한 흑월참의 위력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테니까.

문형서는 계속된 사과가 오히려 부담을 줄 수 있겠다 싶어 화제를 돌렸다.

“멋진 대응이었습니다. 정말 깔끔한 스킬 공격이었습니다. 전혀 예상할 수 없었을 만큼.”

자신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이 어색한 분위기를 어떻게든 풀어보고 싶었다.

이쯤 되자, 첫 만남에서 강후에게 날 선 반응으로 경고했던 자신의 모습도 부끄럽게 느껴졌다.

문형서는 강후가 검은 그림자를 죽인 스킬이 절대 평범한 스킬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짐작 가는 바는 있었지만, 일부러 내색하지 않았다. 스킬에 대해 따로 언급이 없었기도 했고 말이다.

문형서는 입이 무거운 사람이었다. 마스터 K에게 가르침을 받은 덕분이었다.

하물며 마스터 K가 특별하게 생각하는 손님이니 비밀을 발설하고 싶진 않았다.

오히려 숨겨 주는 쪽이라면 모를까. 다만 강후에 대한 경외감만큼은 꼭 표시하고 싶었다.

“타이밍이 잘 나왔어.”

“아직도 좀 얼떨떨하네요. 그라운드 제로 남쪽에서는 절대 나올 일 없는 녀석인데 말입니다.”

“녀석이 직접 내려온 것 같지는 않고.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데리고 왔을 수도 있지.”

“헌터의 소행이란 말입니까?”

“불가능한 일은 아냐. 검은 그림자도 지성을 가진 존재니까. 헌터와 어떤 협의가 있었을지도?”

“음…….”

“다 추측일 뿐이야. 어쨌든 절대라는 전제는 앞으로 붙이지 않는 게 좋겠어. 100%는 없잖아.”

“시정하겠습니다.”

“시정은 무슨. 스스로 잘 피드백 해 봐. 다양한 상황을 변수에 둬서 나쁠 건 없잖아?”

“그렇죠.”

문형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보다 레벨이 훨씬 낮은 사람에게 충고 아닌 충고를 듣고 있는 상황이지만.

기분이 나쁘거나 자존심이 상하지는 않았다. 일견 타당한 말이었으니까.

다행히.

강후의 멋진 대응 덕분에 검은 그림자와의 일은 해프닝으로 끝나게 됐다.

문형서는 다짐했다.

강후의 말대로 상식에 따라 판단하는 불가능이라는 단어는 머리에서 지우겠다고.

아주 위험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사고를 제한하게 만드니까.

그런 의미에서 강후의 이번 대응이 더 멋지게 느껴졌다. 좋은 것을 배웠다.

* * *

이후로 별다른 이슈는 없었다.

물론 강후와 문형서 둘 다, 주변 경계에 더 집중하면서 이동한 덕분이기도 했다.

중간에 몇몇 헌터 패거리가 서로 시비를 걸고 싸우는 광경을 목격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일의 영역이라 무시하고 지나갔다. 괜히 정의감을 발휘할 필요는 없다.

어느샌가 도착한 김신령의 별장 앞.

여기는 별장이라는 표현보다 차라리 대저택, 거대 아지트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입구에서 차를 타도, 한참을 더 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왜냐면 정문에서부터 실제 거처로 보이는 건물까지의 거리가 꽤 길었기 때문이다.

‘이미 희생자가 좀 있군.’

강후가 밖에서 슬쩍 내부를 살펴보니, 여기저기서 헌터의 시체가 제법 보였다.

특이하게도 시체가 썩는 냄새는 나지 않았다. 울타리나 내부 수풀에 특수한 처리가 되어있는 걸까?

평범하지는 않은 것이 죽은 헌터의 시체가 서서히 말라가는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마치 생기를 서서히 빨리면서, 다른 어떤 무언가의 ‘양분’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별장 전체의 보안, 감시 시스템의 동력 중 일부가 생체일 수도 있겠지.’

다양한 추측이 가능하다.

별장 전반의 거대한 공간이 전부 시험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드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목숨이 위험해질 것 같으면 순간이동을 쓰면 되니까.

물론 그렇게 되면 김신령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만큼, 이후의 스텝이 꼬이긴 할 터다.

그때.

문형서가 정문에 있던 방문자용 벨을 눌렀다.

이미 기다리고 있었는지, 벨을 누르자마자 허스키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누구지?

“저, 문형서입니다. 마스터 K께서 보내셔서 고객과 함께 왔습니다. 뵐 준비가 끝났습니다.”

- 고객 얼굴 좀 봤으면 좋겠는데?

김신령의 목소리와 말투는 듣기에 따라, 재수 없다고 하기 딱 좋은 색깔을 갖고 있었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일 수도 있고, 그만큼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일 수도 있다.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은 그녀에게서만 얻어낼 수 있는 무색 부적이 꼭 필요한 시점이니까.

강후가 화면에 잘 잡힐 수 있는 자리로 위치를 옮기고, 얼굴을 살짝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바로 반응이 나왔다.

- 오? 잘생겼잖아? 형서야, 이렇게 보니까 네가 오징어가 따로 없는 것 같다.

“……꼭 그런 말씀을 이런 자리에서.”

문형서가 난감한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김신령의 말이 틀리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누가 봐도 강후는 매력적인 외모의 소유자가 맞았다. 자신은 평범한 얼굴일 뿐이다.

- 그냥 얼굴 한번 보고 싶었을 뿐이야. 형서, 너는 내가 사람을 보낼 테니까 따라서 들어오고.

“네.”

- 우리 잘생긴 고객님께서는 제가 정한 룰대로 입장해 주셔야겠네요. 동의하시죠?

“그러죠.”

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 하다가 죽을 것 같으면 언제든 도망쳐도 됩니다. 물론 다시는 얼굴 보지 않을 생각으로요.

“이따가 뵙죠.”

강후가 호기롭게 한 마디를 답으로 건넸다.

그녀에 대한 기억과 연구는 어느 정도 끝낸 상태. 밑그림은 충분히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끼이이이…….

굳게 닫혀 있는 정문의 철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멀지 않은 곳에 어둠이 짙게 깔린, 수풀과 가시덤불로 벽을 세운 미로 지대가 나타났다.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바로 들 만큼 까다로워 보이는 ‘시험’의 시작이었다.

* * *

안내자를 따라, 특수 지하 통로로 이동한 문형서는 바로 김신령을 만날 수 있었다.

김신령과 마스터 K가 서로 친분이 깊었기에 자연스럽게 문형서와도 가까워졌다.

문형서에게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건넨 김신령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어지간해서는 고객을 잘 보내지 않는 양반이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기에?”

“도움을 주고 싶어 하시는 부분이 있으십니다.”

“오호…… 바깥사람에게는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 그 양반이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까? 그래야 여기에서 지켜보는 재미가 있지 않겠어?”

김신령이 가리킨 위치에는 수십 개의 화면이 모니터를 통해 출력되고 있었다.

전부 그녀의 별장 안에 있는 미로, 함정 지대를 고화질로 보여 주고 있는 화면들이었다.

필요에 따라서 화면을 확대하는 것도 가능했고, 각도를 전환해서 보는 것도 가능했다.

실감 나는 구경을 위해서 설계되었다고 해도 될 만큼, 지켜보기에 특화된 구성이었다.

“오는 길에 검은 그림자를 만났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만 상황은 그랬죠.”

“아? 요 며칠 울릉도 내에서 헌터 실종 사건이 빈번하다더니만, 그놈 소행이었나 보네?”

김신령의 눈빛이 반짝였다.

다수의 헌터가 희생되었다는 사실 자체는 달리 감흥이 없어 보였다. 그건 문형서도 마찬가지.

실종되거나 죽는 것이 일상화된 세계라 그런지, 사실 별생각이 없었다.

“네. 그런데 초기 대응 과정에서 제 미숙함으로 공간 격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럼 저 친구가 검은 그림자를 일대일로 상대했단 말이야? 검은 그림자는? 도망쳤어?”

“아뇨. 죽었습니다. 그것도 단 한 번의 공격에, 정확하게 반으로 갈라져서 말입니다.”

“오호? 그게 가능하단 말이야?”

“네. 그게 가능하더군요.”

김신령이 자신도 모르게 혀끝으로 입술을 핥았다. 관심이 고조될 때 보이는 특유의 반응이었다.

한데 바로 그때.

【도전자, 제1구역 통과.】

모니터에서 강후가 첫 번째 트랩을 돌파했음을 알리는 메시지가 떴다.

이제 시작이기에 가장 신중하게 움직여야 할 구간. 그래서 시간이 꽤 걸릴 것이라 예상했는데.

벌써 강후가 통과한 것이다.

“이놈 봐라……?”

그녀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재밌는 놈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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