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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39화 (139/304)

139화 니키타 보로닌 (1)

* * *

그 이후.

강후는 마진호에게 약속을 받은 대로 던전 ‘탐사’를 다녀왔다.

임밸런스 포인트에 관련된 던전에서의 짧고도 굵은 여정이었다.

애초에 혼자 공략할 수는 없는 던전이었기에 몬스터는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고.

원작의 기억을 따라, 임밸런스 포인트의 과실만 핀셋처럼 뽑아냈다.

‘나머지 포인트는 소설 속에서도 던전과 그 특성만 가볍게 언급한 수준이라 막연하긴 하군.’

나머지 포인트에서도 충분히 이득을 볼 순 있지만, 지금처럼 확신할 수는 없을 듯했다.

작은 바구니에 담은 모래 안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니까.

어쨌든 덕분에 레벨이 급상승하면서 단숨에 160까지 찍었다.

무려 30이나 올라버린 레벨.

그것 때문인지 갑자기 성좌 메시지와 후원창이 폭발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 세계의 비밀을 알고 있는 듯한 강후의 행보에 성좌의 관심이 대폭 집중된 것이다.

그것은 메인 성좌인 차원 강탈자, 순흑의 구도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늘 강후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대재앙 – 어둠도 마찬가지고.

어디서 그런 지식을 얻어냈는지 다들 궁금해했지만, 강후는 그것만큼은 노코멘트 했다.

말 그대로 천기누설이기 때문이다. 말해서 믿을지 의문이기도 하고.

‘체력으로의 투자는 딱, 200 레벨이 될 때까지만 하는 걸로.’

다시 방향성도 정했다.

레벨업을 할 때마다 얻는 포인트의 분배를 체력이 아닌 다른 스탯에 해 볼까 하는 것이다.

물론 성급하게 결정해야 할 문제는 아니다. 충분히 신중하게 생각해도 됐다.

강후가 당장 크게 티가 나지 않는 체력 스탯에 꾸준히 투자를 해 온 이유는 하나였다.

선천성 마나 과민증이 발동하고 핸디캡에 의해 체력이 계속 깎여나가기 시작할 때.

그 와중에도 최대한으로 몸이 오랜 시간 버텨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장기전이라고 할 만한 전투가 없었고.

있었더라도 솔라키움과 매드 솔라키움의 힘으로 어느 정도 버텨낼 수 있었지만.

언제까지 이런 낙관적인 상황만 벌어질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매드 솔라키움도 만병통치약이 아닌 게, 과부하를 유예하는 것이지 해결하지는 않아서다.

매드 솔라키움의 지속시간이 끝난 상태에서 전투가 계속 지속되고 있다면?

그때는 몸에 걸릴 과부하도 문제고, 그동안 유예했던 후폭풍이 미친 듯이 몰려오게 된다.

이때 버텨줄 수 있는 힘이 바로 체력이다. 체력이 없으면 순식간에 탈진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올체 암살자라. 내가 생각해도 좀 끔찍한 혼종이기는 하네.’

강후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심각한 핸디캡을 갖고 있는 몸의 사정이 만들어낸 특이한 형태의 암살자인 셈이다.

하지만 강후는 자신의 몸에 딸린 저주 혹은 축복이기도 한 선천성 마나 과민증이 마음에 들었다.

이것 때문에 지금까지 레벨 격차가 큰 적을 상대로도 전투를 성공적으로 치렀고, 또한 사기에 가까운 스킬 활용을 해올 수 있었다.

마나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더라면, 아무리 스킬이 많았어도 몇 개 쓰고 나면 끝났을 것이다.

한편.

강후는 마진호로부터 던전 공략을 한 차례 더 함께해 달라는 제안을 공식적으로 받았다.

던전이 초소형이기 때문에 공략 시간은 정말 짧게 걸릴 것이라고도 했다.

미들 보스 드롭 아이템, 메인 보스 드롭 아이템에 대한 우선권을 받기로 협의했고.

착수금과 잔금은 따로 받지 않았다. 강후가 의도적으로 마진호에게 남겨 둔 ‘마음의 채무’였다.

이렇게 살짝 빚을 남겨두면, 나중에 마진호가 강후에게 자의든 타의든 저자세가 될 수밖에 없다.

왜냐면 마진호가 그런 성격이라는 점을 강후가 간파했기 때문이다.

이현석처럼 솔직하면서도 은원이 확실한 사람이라, 절대 신세 진 것을 잊지 않을 터였다.

다음 공략 일정은 내일 정오.

덕분에 하루 남짓의 휴식 시간이 생겼다.

강후는 그루 길드의 배려로 길드 소유의 별장에서 하루를 푹 쉴 수 있게 됐다.

외부인, 심지어 그루 길드 관계자의 출입도 통제하는 완벽하고도 확실한 배려였다.

* * *

쏴아아.

때마침 제주도에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가 미세먼지가 가득했던 하늘을 빠르게 정화시켰다.

눈보다는 비, 특히 빗소리를 좋아하는 강후는 테라스에 나와 정취를 즐겼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아메리카노까지 곁들이니, 일상 속의 소소한 행복으로는 손색이 없었다.

바로 그때.

【성좌 ‘황야의 전략가’가 감격에 찬 목소리로 당신에게 말합니다.】

【드디어 대성전의 공식 승인을 받았다. 이제 계약자와 영원히 함께할 주 성좌로서 감격스러운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황야의 전략가가 오랜만에 말을 걸어왔다.

대성전의 승인을 받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는데, 갈무리가 된 모양이었다.

【미친 X. 꼴깝을 떨고 있다.】

황야의 전략가에게 적대적인 차원 강탈자가 바로 욕과 독설을 시원하게 박아 넣었다.

황야의 전략가는 상종할 가치도 없는 개소리라는 듯, 발끈하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고.

【고위의 격을 가진 성좌로서 체통을 지키는 것이 어떨까 싶은데. 당신답지 않은 언행이야.】

순흑의 구도자는 차원 강탈자의 날 선 반응이 마음에 걸렸는지, 조심스럽게 자기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아, 그렇게 체통을 중요시하는 성좌이셔서 다른 성좌와 눈이 맞아서 살림을 차리셨나?

그게 체통이고 격이라면, 나도 좀 난봉꾼처럼 살아봐야겠는데.】

【으흠…….】

차원 강탈자에게 간단(?)히 제압돼 버렸다. 이후 순흑의 구도자의 메시지를 볼 수는 없었다.

차원 강탈자가 적대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해서, 계약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감정 쏟아내기에 가까웠을 뿐, 결국 차원 강탈자도 말을 아끼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마 훼방을 놓고 싶어서 그랬다기보다는.

점점 더 빠르게,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는 강후를 오롯이 혼자 갖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 강한 소유욕이었다.

다시 분위기가 조용해지자, 황야의 전략가가 말을 이어갔다.

【내가 네게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이 요긴하게 쓰였으면 한다.

부디 멋지게 성장해다오. 조건 없이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으로 느긋하게 지켜볼 테니.】

“감사합니다.”

강후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황야의 전략가가 앞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자, 대성전의 승인을 받은 특별 계약서를 발동시키겠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계약이 이루어졌다. 강후에게 세 번째 메인 성좌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대등하다기보다는 일방적으로 황야의 전략가의 구애를 받아서 얻게 된, 강후에게는 손해 볼 것 하나 없는 메인 성좌 계약이었다.

동시에 황야의 전략가로부터 얻을 수 있는 성좌 특전 세 개가 활성화됐다.

【첫째. 계약자의 레벨보다 2배 이하의 범위로 들어오는 헌터의 정신계 공격에 대해서는 90% 면역됩니다.

설령 10%의 확률로 대처에 실패하더라도, ‘혜안’이 발동하여 강제 면역을 발동시킵니다. 단, 1일 동안은 재발동이 불가능합니다.】

‘오, 좋은데?’

정신 쪽에 특화된 황야의 전략가답게, 첫 번째 성좌 특전부터 묵직한 것이 들어왔다.

지금까지 편법을 이용해 정신계 공격에 대응하는 방법을 제외하고는.

예전에 오산 수호의 헌터, 조영재에게 강탈한 선혈의 탐식자 성좌 효과를 쓰는 게 전부였다.

체력을 잃을수록, 정신 공격에 면역이 될 확률이 상승하는 것이 성좌 효과였다.

하지만 조건부인 데다가, 확률이라는 것도 5% 정도의 수준으로 썩 높지 않았다.

한데 이제 황야의 전략가를 통해, 그 수준을 대폭 올릴 수 있게 된 셈이다.

물론 레벨 2배 이하라는 조건이 붙기는 했다.

현재 강후의 레벨이 160이니, 레벨 320의 헌터까지 커버가 된다는 뜻이다.

유청화나 에밀리아 로즈를 상대로 당장은 어렵겠지만.

부지런히 레벨을 올린다면 그녀들도 충분히 대응 가능한 가시권에 넣을 수 있는 구조였다.

【둘째, 원거리형 딜러의 ‘저격’, ‘정조준’, ‘타깃 지정’ 이 활성화됐을 때 사전 인지가 가능합니다.

‘직관’이 발동하며, 이것으로 자신이 공격 대상이 되었음을 즉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비명횡사 방지네. 수준급 저격수, 궁수를 만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경우도 많으니까.’

역시 유용한 능력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노린다는 것을 미리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생사의 차이라고 할 만큼 갭이 크다.

【셋째, ‘영혼 파동’을 사용해서 정신적으로 연결된 적 혹은 소환체의 연결 고리를 끊습니다.

마나 250을 소모하면서 정신의 혹사를 유발하지만, 완벽히 적의 상태를 초기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건…….”

상당히 매력적인 특전이다.

다만 툴팁의 내용대로 파급력만큼 강후에게 돌아올 후폭풍도 제법 됐다.

강후가 시험 삼아, 영혼 파동을 써 봤다.

계약과 함께 학습되면서 모든 지식이 전수된 성좌의 능력이기에 바로 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프스스슷!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투명한 파도가 일렁였다. 마치 뭔가를 열심히 흔들어대는 느낌이었다.

이를 통해서 흑마법사가 강령술 스킬로 불러낸 언데드들을 일거에 무력화시키거나.

소환수를 사용하는 헌터에게 확실한 카운터 펀치를 먹일 수 있는 듯했다.

단.

“크윽.”

단숨에 마나를 대량 소모하면서 엄청난 과부하가 몸 전체에 유발됐다.

고통을 경감시키는 아이템이 있음에도, 머리가 부서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고통스러웠다.

과부하가 적당히 걸리는 수준이 아니라, 매우 신중하게 사용을 고려해야 할 듯했다.

두 번만 연속으로 시전해도, 머리 전체가 버티지 못하고 방전될 것 같은 느낌.

그래도 너무 좋았다.

차원 강탈자와 순흑의 구도자, 황야의 전략가는 각각 특화된 분야가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얻은 성좌 능력 전체가 겹치는 부분 없이, 간지러운 부분만 쏙쏙 긁을 수 있게 되어 있다.

혼자 다 해 먹는 올라운더를 꿈꾸는 강후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분배다.

【그렇게 나의 계약자가 좋으냐. 너는 바보다.】

불쑥 다시 나타나서는 깨알같이 황야의 전략가에게 초를 치는 차원 강탈자의 한마디와 함께.

그렇게 강후는 또 한 번의 성장을 남몰래, 조용히 경험하고 있었다.

* * *

그 무렵.

입국 수속을 마친 한 남자 헌터가 제주 공항을 막 나섰다.

깔끔하게 민 머리. 로즈골드 색상의 테로 말끔하게 멋을 낸 안경에 잘 차려입은 수트까지.

차가운 인텔리 느낌이 물씬 풍기는 남자는 공항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을 만났다.

바로 그루 길드의 마진호였다.

“오셨군요, 니키타 님.”

“잘 지내셨습니까? 이번에 납품이 잘 이뤄진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불량품은 없으셨습니까?”

“전혀요. 까쉬마르 길드가 던전용 군용품 생산으로는 알아주는 곳이지 않습니까.”

“항상 믿고 맡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 신제품 안내 건으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화상으로도 가능하실 텐데. 너무 수고로운 발걸음하신 것은 아닌지요?”

“하하. 사실 별도로 볼일도 좀 있어서 말입니다.”

니키타 보로닌.

까쉬마르 길드 간부이자, 동시에 한국 쪽 이슈를 담당하고 있는 관리자다.

한국어는 러시아어만큼이나 능숙해서,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어지간해서는 마진호의 말대로 화상 대화를 주로 진행해 왔던 것이 니키타였는데.

이번에는 굳이 제주도까지 내려와 신제품 홍보를 하겠다는 것이다. 속내가 따로 있는 듯했다.

마진호가 물었다.

“어떤 일인지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지금 함께하고 계신 신강후 헌터를 만나러 왔습니다. 마스터의 의중이 반영된 중요한 일입니다.”

곧바로 이어진 니키타의 대답에서 그의 방문 목적이 선명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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