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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32화 (132/304)

132화 제주도 (1)

* * *

로슈를 죽이고.

마석과 전리품 뒷수습을 끝마친 강후와 박동재는 던전 밖으로 나와 시내로 향했다.

강후는 경주 시내에 머물 호텔을 잡아둔 데다가, 박동재도 시내로 가야 하는 동선이어서다.

가는 길에 있던 마켓에서 갖고 있던 물품들을 전부 팔았다.

예전에 팔지 못한 부수적인 것들부터 해서, 이번에 던전에서 얻은 것까지 싹 팔고 나니.

약 50억 원 정도의 잔고가 확보됐다. 한때 천억 원도 넘었던 잔고를 생각하면 아쉽기는 했다.

레벨은 110.

오름세는 쏙 마음에 들었다.

사실 이런 형태가 네임드의 성장 방식이기도 했다.

경험치를 독식 혹은 최소 분배로 유지하면서 급성장을 하는 과정 말이다.

열세 개의 별을 비롯한 많은 네임드는 거의 정석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이 루트를 따라갔다.

후발주자인 강후의 입장에선 그들보다 더 폭넓게, 빨리 따라가야 하는 만큼 더 부지런해야 한다.

박동재가 마켓에서 몇 가지 아이템들을 판매하고, 필요한 것을 구하는 동안.

강후는 보스 몬스터 로슈를 죽이고 강탈한 스킬을 살피고 있었다. 상당히 중요한 스킬이다.

【이기적 탐닉】

【스킬 숙련도 : Lv. Max】

【자신에게 걸린 버프 스킬 하나를 지정해서, 해당 버프의 효율을 300% 증가시킵니다.】

로슈가 이것을 이용해서 가속에 이기적 탐닉을 걸었다. 그래서 강후도 아차 싶을 정도의 엄청난 속도가 나왔던 것이다.

강후가 노리는 것도 마찬가지.

기존에 자신이 가진 가속 스킬에 박동재의 가속 버프, 여기에 이기적 탐닉까지 걸어준다면?

말도 안 되는 미친 속도가 가능해질 것이다.

물론 전제가 하나 있기는 하다. 몸이 버텨줘야 한다는 것. 버티지 못하면 안 쓰느니만 못하니까.

어쨌든 무리를 감수하고라도 쓸 수 있는가, 아예 불가능한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게다가 꼭 가속이 아니더라도,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버프는 얼마든지 많다.

체력 회복을 극대화할 수도 있고, 스킬 쿨타임을 극적으로 줄일 수도 있다.

‘이기적 탐닉이라는 스킬 자체가 사기지. 보스 전용이니까 특성으로 퍼준 건데, 이게 차원 강탈자 특성으로 빼앗을 수 있으니까 밸런스 붕괴가 되는 느낌이랄까.’

강후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원작에서 적당히 디테일했던 것이 이렇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만약에 밸런스를 꽉 잡아준답시고, 로슈에게 이런 스킬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강후가 이득을 볼 일도 없었을 것이다.

‘갑자기 좀 씁쓸하기도 하군.’

옅은 미소는 이내 쓴웃음이 됐다.

직접 이 세계에서 살아 숨 쉬면서, 새삼스럽게 원작의 빈틈을 느끼는 것이 많아서다.

신강후의 입장에서야 반길 만한 일이지만, 과연 원작자로 소설에 진심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생각지도 않게 얻은 인기에 취해서, 너무 느슨하게 생각한 것도 있었지.’

그때는 어떤 내용을 써도, 그리고 그 내용이 좀 허술하더라도 독자들이 환호해 줄 거라 생각했다.

부역자 엔딩을 냈을 때도 마찬가지. 오히려 독자들이 기발한 결말이라며 박수를 쳐줄 줄 알았다.

‘독자들은 해피 엔딩을 원했고. 독자에게 작가가 그 누구보다 진심인 글을 원했지. 나만 다른 생각에 취해 있었던 거야. 거만하게도.’

이미 지난 전생의 삶이 되어버린 얘기지만, 강후는 그 부분에서도 교훈을 얻기로 했다.

지금 자신의 상황에 충분히 적용해 볼 수 있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능력에 만족하고 느슨하게 생각한다면, 언제든 이 세계의 어둠에 잡아먹히고 말 것이다.

이 순간.

장시환이 눈앞에 나타나기만 해도 자신은 죽는다.

아주아주 운이 좋아서 장시환을 죽인다고 해도, 자신 역시 죽음을 피하긴 어려울 터다.

최소 기대치가 ‘사망’이다. 최대는 흔적도 없이, 시체마저 소멸되어 죽는 굴욕을 맞이하는 거고.

어쨌든.

이기적 탐닉 덕분에 앞으로 박동재의 버프를 더 극대화해서 누릴 수 있는 수단이 생겼다.

자체 버프 스킬이 생기면, 그것대로 유용하게 연계해서 사용할 수 있는 만큼.

이번 로슈 공략은 정말 의미가 컸다. 게다가 강후 소유의 던전이기도 해서 더 뜻깊기도 했고.

그때, 판매와 구매를 전부 마치고 나온 박동재가 강후에게 말을 걸었다.

“형! 많이 기다렸지?”

“아니. 레벨이랑 경험치 상태를 좀 살피고 있었어. 마침 잘 나왔네.”

“형 지금 레벨이?”

“110.”

“진짜 누가 들어도 거짓말이라고 하기 딱 좋은 숫자다. 솔직히 310이라고 해도 믿을걸?”

“립서비스가 좋네.”

“아니, 진짜 그렇다니까. 형, 내가 손발을 맞춰본 고렙 헌터가 한둘이 아닌 건 알잖아.”

허풍은 아니다.

박동재는 충분히 고레벨 헌터들이 찾을 가치가 있는 버퍼였다.

강후도 이번에 합을 맞춰 보면서 느꼈다. 박동재, 이놈이 진국이라는 것을.

“그래, 읊어봐.”

강후가 팔짱을 끼고서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박동재를 지켜보았다. 무슨 칭찬을 늘어놓을까.

“형은 말야. 버프를 받으면, 그것에 맞게 전투 콘셉트를 바로 바꿔. 가속이면 기동전을 하고.”

“집중이면 적의 공격을 회피하면서 흘려내는 쪽으로 가지.”

“응, 맞아! 그거라니까. 버프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움직임을 짜니까, 화력이 더 좋아지는 거야.”

“다른 헌터는 아닌 모양이지?”

“십중팔구는 그냥 딜뻥 버프 셔틀하라고 해. 버프로 뽕맛 보겠다 이거지. 그게 폼도 나잖아.”

“전투를 폼으로 하는 건 아닐 텐데.”

“생각보다 눈에 보이는 것에 과몰입하는 헌터가 많아. 복잡하게 버프까지 신경 쓰기도 싫어해.”

“너무 날먹이군.”

“내 말이.”

박동재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의미에서 강후는 자신으로 하여금 단순 버프 셔틀이 아니라, 창의적인 생각을 하게 해 줬다.

너무 당연해서 잊고 있었던, 자신이 ‘버퍼’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해 줬던 것이다.

누군가는 뭐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박동재에게 자신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봐 준 외부인은 강후가 처음이었다.

“타성에 젖은 전투는 언젠가 사고가 나기 마련이지. 난 그런 전투는 원하지 않아.”

“그래서! 형이랑은 당분간 연락 순위를 1순위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갈 던전만 있다면야 언제든.”

“걱정 마. 생각보다 내가 인맥이 넓거든. 타협만 잘 보면, 다른 사람 소유의 던전에 가 볼 수도 있을 거야.”

“그건 신세 좀 져도 될까?”

“형이 날 구해 준 목숨값에 비하면 한참 싼 거지. 맡겨 줘!”

하찮은(?) 가슴까지 퍽퍽 치며 어필하는 박동재의 모습에 강후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순진하고. 때론 바보 같고 맹한 구석도 있달까?

정유리 같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박동재에게도 분명 있었다.

* * *

박동재와는 그 길로 헤어졌다.

원래는 시내의 호텔로 와서 시원하게 칵테일이라도 한잔할까 했지만.

전세혁과 반세영이 긴급히 박동재를 호출했던 것이다. 그들끼리의 던전 공략 일정이 있는 모양.

그래서 호텔에 들어오자마자 반신욕을 하며, 욕실 내 TV로 헌터 뉴스를 보고 있었다.

역시 오늘도 속보는 제약사 관련 이슈로 잔뜩 도배가 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폭발이 아니라.

전동 제약의 핵심 수석 연구원이 안전 가옥으로 이동하던 중에 기습으로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이건 내부자군.”

100% 내부자와의 합작품이다.

수석 연구원이 탄 차, 혹은 그 곁을 지키면서 호위하던 차에 탑승한 누군가가 정보를 흘렸을 터.

헌터 치안청에서는 무분별한 테러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연구원을 납치, 살해하는 헌터들에게 엄벌을 내리겠다고 연일 공식 입장을 냈지만.

종이호랑이의 하찮은 포효에 겁먹을 무법자는 안타깝지만, 없다. 그저 안줏거리만 되고 말 뿐이지.

그때.

이예린에게서 전화가 왔다.

“네.”

- 선규 씨! 아니, 이제는 신강후 씨라고 불러도 되겠죠?

“편할 대로 하시죠. 저는 알아들을 수 있는데, 그쪽이 헷갈리지만 않으면 됩니다.”

강후가 이미 지인들에게 본명에 대해 알려 둔 터라, 그들의 반응이 새삼스럽진 않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강후가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제약사 건에 관련된 의뢰는 보류하겠다고 했는데요.”

- 아! 안 그래도 그쪽은 전부 딜레이 해 놨어요.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되고요.

“그러면?”

- 제약사 관련 건이 아니라 전혀 다른 형태의 용병 요청 건이 들어와서요.

“뭔가요?”

- 출혈 딜러를 구하는 공격대의 의뢰에요. 꾸준히 출혈을 유지해 주기만 하면 된다고 하네요.

“보수는?”

- 착수 50억, 잔금 50억. 그리고 보스 몬스터의 드롭 아이템에 대한 최우선 선택권 1회요.

“음.”

솔깃한 제안이다.

물론 일차적인 판단이 그렇고, 더 자세한 얘기를 들어봐야 한다.

- 던전의 레벨 수준은 350에서 400대예요. 공격대는 총 9명이고, 한 자리를 더 구하는 거죠.

“의뢰처가 어딘지 공개 가능합니까?”

- 네. 제주도의 그루 길드에요. 아시죠? 제주도를 꽉 잡고 있는 길드.

“물론.”

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루 길드.

제주도 내 모든 이권을 독식하고 있는 길드로 국적이 다양한 길드원을 보유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이한 부분은 공개적으로 ‘완벽한 중립’을 천명한 길드라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정화 길드에 협조적인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비협조적인 것도 아니었고.

동시에 정화 길드원이라고 해서 도내의 활동에 프리패스를 준다거나 하는 특혜를 주지도 않았다.

즉, 그루 길드원이 아니면 모든 외부인에 대해서는 똑같은 잣대로 대하는 구조였다.

원작에서는 그런 이유로 주인공 장시환과 그루 길드가 엮일 일이 크게 없었다.

장시환에게 악감정도, 호감정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예 제주도 밖의 일에 관심이 없었다.

- 어때요? 흥미가 좀 동하지 않아요? 대미지 딜링이 아니라 출혈 쪽이면 지금 강후 씨의 수준이면 문제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콜?

“잠깐.”

이예린 특유의 빠른 추진에 휘말릴 뻔한 흐름에 강후가 제동을 걸었다.

괜찮은 조건인 것은 맞지만, 너무 이야기가 쉽게 풀린다.

일단 던전 레벨 수준이 높은 것은 둘째치고, 최근 용병 품귀 현상이 심하다는 이슈가 있다.

게다가 보스 몬스터의 드롭 아이템에 대한 최우선 선택권을 양보할 정도라는 것은…….

그만큼 던전 자체가 까다롭다는 뜻도 된다.

용병 품귀로 몸값이 올랐는데, 그 용병이 가야 할 던전의 수준까지 높다?

협상 테이블을 다시 짜야 한다.

강후가 말을 이었다.

“조건을 조정하죠. 착수, 잔금 각각 두 배씩 올리고. 미들 보스도 우선권 하나 받기로.”

- 끅…….

이예린이 뭔가 말하려다가 입을 가까스로 틀어막은 듯한 숨소리가 들렸다.

중간 조율하고 수수료를 챙겨야 하는 그녀의 입장에선 너무 과격하다 싶은 거겠지.

하지만 지금은 의뢰를 요청하는 쪽이 철저하게 을이다. 공급과 수요의 논리가 깨졌기 때문이다.

다만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해 주기 위해서, 이야기를 수월하게 만들 카드를 하나 던져줬다.

“어필 하나 하죠. 출혈은 안 끊기게 유지할 자신 있습니다. 그것도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 바로 협의해 볼게요.

재협상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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