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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31화 (131/304)

131화 버프 (3)

로슈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다.

전투를 시작하면 반드시 자신과 적에게 동시에 버프를 건다.

몸에 빨강, 노랑, 초록색 형태의 오오라가 생기기 때문에 보통 신호등 버프라고 부른다.

각 버프는 특징이 있는데,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버프가 될 수도, 디버프가 될 수도 있었다.

우선 빨간색은 공격 대미지가 2배 늘어나지만, 상대에게 받는 대미지도 똑같이 2배 늘어난다.

노란색은 마나 소모량을 평소보다 2배 증가시키는 대신, 스킬 쿨타임을 반으로 줄인다.

초록색은 즉사 포인트를 활성화한다. 비정상적으로 대미지가 들어가는 포인트가 생기는 셈.

이건 스킬이라기 보다는 자동적으로 활성화되는 버프라서 강탈은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전투에 있어 상당한 변수가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로슈가 즐겨 쓰는 스킬 ‘이기적 탐닉’은 자신의 버프 스킬 효율을 증폭시킨다.

그런 이유로 신호등 버프에 이기적 탐닉이 연계되면, 그야말로 지옥이 펼쳐지는 셈이 된다.

그때, 박동재가 말했다.

“형, 버프를 어떤 쪽으로 맞출까?”

“네 페이스대로 가!”

강후는 선택권을 박동재에게 줬다. 버퍼는 능동적이어야 한다.

긴박한 전투 현장에서 전투원과 버퍼가 매번 원하는 버프의 형태를 교감할 수는 없다.

척하면 딱이라는 말이 가장 잘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 사실 버퍼인 것이다.

하지만 그간 박동재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수동적인 생각으로 임해왔던 듯했다.

아마 그것은 박동재의 잘못이라기보다, 그를 다뤄온 팀원들의 문제였을 것이다.

강후는 박동재를 믿었다.

그는 생각할 줄 아는 버퍼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을 즐기는 버퍼니까.

“후하! 후!”

강후를 본 로슈가 양손을 원투 펀치를 날리는 시늉을 하며, 호흡을 골랐다.

강후는 만약을 대비해 매드 솔라키움을 입에 물었다. 먹진 않았지만, 언제든 먹을 수 있도록.

‘초록색 버프가 뜰 때까지는 일단 버틴다.’

방향성은 확실히 정했다.

로슈는 분명히 자신보다 강하고 내구성 높은 몬스터이기에 정면 승부는 좋지 않다.

빨간 버프로 등가교환이 성립되기 힘들다. 그리고 노란 버프는 딱히 매력적이지 않다.

신중하게 움직이려는 강후의 생각을 읽었는지, 로슈가 지면을 박차며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빨간 버프에 이기적 탐닉을 걸어, 극대화된 대미지 효과를 누리겠다는 녀석의 계산이었다.

【환영술】

【분신술】

동시에 두 스킬을 썼다.

강후를 중심으로 나선으로 퍼져 나온 환영 사이에 분신이 자연스럽게 섞였다.

자신의 몸에 있는 작은 티끌까지 파악하고 있는 강후이기에 분신과 환영의 모습은 똑같았다.

“후후!”

하지만 로슈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대로 우측 측면에 보이던 강후에게.

쉬이이익! 퍼억!

전력으로 어퍼컷을 날렸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확신에 찬 한 방이었다.

근거는 있었다.

유일하게 우측 측면에 있던 강후만 단검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뻐어억!

턱 아래부터 정확히 들어간 어퍼컷이 뼈를 으스러뜨리는 소리를 내며 강후의 몸을 하늘로 날렸다.

그리고 공중에서 떨어지는 강후의 몸을 향해 이미 로슈의 라이트 펀치가 작렬하고 있었다.

그때.

“큿!”

펀치를 날리려던 로슈의 몸뚱이가 갑자기 스프링에 튕긴 것처럼 뒤로 쭉 끌려왔다.

납치였다.

로슈가 방금 시원하게 올려친 것은 강후의 분신이었던 것이다.

푸우욱!

“끄허어어!”

허리 뒤쪽에서 묵직하게 찌르며 들어온 강후의 단검이 로슈에게 깊은 상처를 입혔다.

단검을 찔러넣는 순간에 대참수를 곧바로 연계했기에 녀석의 몸으로도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크허! 으허!”

로슈가 정신없이 사방으로 주먹을 내지르며, 최대한 강후에게서 멀리 떨어지려 애썼다.

일격을 먹이기는 했어도 여전히 위협적인 녀석인 만큼, 강후도 여기서 턴을 더 쓰진 않았다.

녀석의 품으로 휘말려 들어갔다가는 역공에 뼈도 못 추리고 당할 수 있어서다.

녀석은 아주 멍청한 몬스터도 아니고, 지나치게 똑똑한 몬스터도 아니었다.

‘적당히’ 생각할 줄 아는 녀석이었다. 그렇기에 강후도 지능을 무턱대고 낮게 보진 않았다.

그때.

“와. 나도 속았네.”

멀리서 강후에게 가속 버프 위주로 걸어 주면서 전투를 지켜보던 박동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박동재 역시, 단검을 들고 있던 강후의 형상을 본신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환영과 강후의 분신(으로 생각했던 본신)은 단검을 들고 있지 않았다.

‘아, 일부러?’

똑똑한 박동재는 곧바로 강후의 전략을 파악했다.

의도적으로 가짜인 척 한 것이다. 누가 봐도 가짜인 것이 너무 뻔해서 의심할 생각조차 안 들게.

“…….”

강후의 전략을 파악하고 나니, 박동재는 순간 손등을 따라 소름이 쫙 돋는 것을 느꼈다.

생각을 한번 꼬아서 기출 변형으로 선택지를 낼 줄이야. 어설프게 똑똑하면 당하기 딱 좋다.

“칫!”

로슈가 강후에게 단거리 이동을 하며 붙으려던 스킬이 통하지 않음을 알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다른 헌터였다면 순간적으로 단거리로 이동하는 스킬, 일명 ‘블링크’를 써서 붙었겠지만.

강후의 다섯 번째 성좌 효과로 억제되고 있는 탓에 스킬 자체가 아예 구현되지 않았다.

“우호오오!”

로슈가 정면승부를 선택했다.

이번에는 사방으로 강렬한 충격파를 발산하며, 강후를 거칠게 덮쳐오기 시작했다.

“음.”

환영술을 쓰려던 강후가 멈칫했다. 단순한 충격파가 아니라, 마력의 흐름을 비트는 충격파였다.

즉, 지금은 환영술을 쓴다고 해도 환영이 만들어지는 즉시 무력화될 가능성이 컸다.

괜히 수 싸움을 하려다가, 선택지가 급격히 줄어들 수 있다.

로슈의 돌격은 거셌다.

이기적 탐닉의 버프 증폭을 가속에다가 걸었는지, 눈 깜짝할 사이에 거리가 좁혀졌다.

【그림자 걸음】

이번에는 강후가 자신의 후방으로 다섯 개의 그림자를 쭉 날려 보냈다.

강후의 본체가 정면에서 들어오는 충격파의 흐름을 막아주는 방패 역할을 했기 때문에.

강후의 본체를 벽으로 삼아 일렬로 뒤로 뻗어 나간 그림자는 충격파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진짜 빠르다.’

박동재가 풀 버프 상태를 유지해 주고 있어 그나마 움직임을 쫓을 수 있는 상황.

버퍼 없이 왔다면, 강후는 진즉에 한 줌의 뼛가루가 되었을 것이라 확신했다.

공략 인원수를 늘린다면야 쉽게 잡을 수도 있을 터.

하지만 그래서는 성장의 효율이 떨어진다.

이 정도의 까다로움은 늘 고정값이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할 듯했다.

“우화앗!”

강후의 코앞까지 쇄도해 들어온 로슈가 이번에는 상단에서 주먹을 내리찍는 형태로 들어왔다.

처음부터 강후는 로슈의 공격을 막을 생각이 없었다. 철저하게 피할 생각만 있었을 뿐.

파팟.

그림자 걸음을 활용한 위치 전환으로 로슈의 첫 공격을 쉽게 피해냈다. 너무 깔끔하다 싶을 만큼.

“크으읏……!”

바짝 약이 오른 듯한 로슈가 걸쭉한 침을 흘렸다.

나름 신경 쓴 한 방이었는데 허공에 휘저은 결과밖에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웨이!”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던 로슈가 이번에는 두 다리에 있는 힘껏 힘을 줬다.

도약 직전의 동작이다.

인간형 몬스터는 철저하게 인간의 움직임을 따라가므로, 미리 노림수를 읽을 수 있었다.

쿠와앙!

공간을 가르면 이런 소리가 나는구나 싶을 만큼, 거의 소닉붐에 가까운 굉음이 들렸다.

독기가 잔뜩 오른 로슈는 아예 스트레이트 펀치를 내뻗으며 강후의 몸통을 노리고 있었다.

파팟!

아직 남아 있는 그림자 중에 하나를 활용한 회피가 다시 먹혔다.

앞서서 로슈가 뿜어낸 충격파의 영향은 사라진 이후라, 그림자들을 사방으로 분산시킨 상태였다.

“으에에엑!”

쾅쾅!

두 번의 일격이 연이어 실패로 돌아가자, 울화가 뻗칠 대로 뻗친 로슈가 지면을 내리쳤다.

그도 그럴 것이 강후의 그림자만 열심히 쫓으며, 허공에 삽질을 하는 형국이었기 때문이다.

‘히든 스킬은 안 되겠네.’

강후가 냉정하게 판단했다.

일격필살의 유혹이 어느 때보다도 강하지만, 로슈는 움직임이 정말 빠른 녀석이었다.

재수 없으면 준비 단계에서 바로 덮쳐질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되면 즉사를 면하기 어렵고.

그래서 강후가 선택한 것은.

【처세술】

방금 전에 로슈가 활용한 공격 스킬 중 하나를 처세술로 가져다 쓰는 것이었다.

선택한 것은 로슈가 첫 공격에 써먹었던 어퍼컷, 정식 스킬 명은 올려치기였다.

바로 그때.

시잉. 시잉. 시잉.

기분 나쁜 울음소리와 함께 강후와 로슈의 몸에 동시에 초록 버프가 걸렸다.

즉사 포인트의 활성화.

로슈는 턱 아래에 만들어졌고, 강후는 복부 한가운데에 점이 찍혔다.

“크워!”

다음을 생각할 겨를 없이, 강후의 배에 찍힌 점을 본 로슈가 재차 도약했다.

온 힘을 다한 공격과 도약의 반복으로 로슈도 과부하가 잔뜩 걸려 있었지만.

눈앞에서 자꾸 약 올리는 인간을 죽이겠다는 집념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아니, 일부러 무시했다.

로슈의 도약을 확인한 강후가 이번에도 그림자 하나를 선택해서 위치를 바꿨다.

아직 그림자의 여유가 있는 만큼,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회피 기동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흐아!”

로슈가 강후의 위치를 바꾼 그림자를 확인하고는 곧바로 방향을 틀었다.

무릎 관절에서 우득하고 소리가 날 만큼 급선회였지만, 그 자체가 로슈의 노림수였다.

“……!”

역으로 허를 찌르고 들어온 로슈의 노림수에 강후의 두 눈이 평소와 달리 커졌다.

이대로면 꼼짝없이 당한다.

하지만.

【신속 회피】

강후가 실로 오랜만에 기본 스킬을 꺼내 들었다.

바로 신속 회피였다.

그 이유는 명확히 있었다.

【회피 기동 중에는 저항의 장막 효과가 활성화됩니다. 스킬에 대한 회피율이 상승합니다.】

타이밍을 맞추면, 저항의 장막 효과를 보면서 회피율이 크게 상승하는 효과를 볼 수 있어서다.

회피율이 크게 오른다는 건, 적의 공격을 정타로 맞을 확률을 매우 낮춘다는 뜻도 됐다.

신속 회피로 강후가 이동한 거리는 약 75cm.

로슈의 올려치기를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는 거리였다.

사실 더 넉넉하게 피할 수도 있었지만, 강후는 자신이 계산한 거리감을 정확히 확인하고 싶었다.

만약 틀린다면……?

호신을 써서 한 턴은 버틸 생각이었다. 목숨을 지킬 보험이 있으니 과감하게 수를 던져본 것이다.

후웅!

“읏!”

엄지손가락 한 마디 차이라고 해도 될 만큼, 미세한 차로 로슈의 주먹이 얼굴 앞을 훑고 갔다.

순간 강후의 얼굴이 바람에 휘말려 일그러질 만큼 강력한 바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로슈의 공격은 실패했다. 아쉽게 빗나갔든 그렇지 않았든 말이다.

【처세술 – 올려치기】

【대참수】

그리고 강후의 턴이 왔다.

쉬이이익! 푸슉!

올려치기와 함께 연계된 대참수 스킬이 순식간에 로슈의 턱 아래를 뚫고 들어갔다.

초록색 버프 때문에 즉사 포인트로 지정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꼭 즉사 포인트가 아니더라도, 일격을 당하면 얼굴 안쪽이 걸레짝이 될 수밖에 없는 공격이었다.

“끄엑!”

턱뼈를 부수고 근육과 혀를 비집고 들어간 강후의 단검이 로슈의 뇌까지 타격을 입혔다.

완벽한 한 방을 위해 판을 크게 짜고 기다린, 강후의 노림수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미쳤다, 미쳤어…….”

저 멀리서.

박동재의 떨리는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렸다.

자신에게는 보이지 않던 승리의 그림. 강후에게는 계획이 다 있었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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