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버프 (2)
* * *
“허억. 허억. 허억.”
“후우.”
“내가 입을 잘못 털어도 한참은 잘못 털었네, 진짜…….”
“동재 너는 국내에서만 활동하기에는 아까운 인재야. 정말 좋았다. 아주 만족스러웠어.”
“숨 끊어질 것 같아.”
“좀 쉬자.”
거의 한 시간을 쉬지 않고 몬스터와의 전투에 전념한 강후가 박동재에게 엄지를 들어 보였다.
버프 덕분에 빨라진 몸은 강후에게 많은 이득을 가져다 주었다.
버프 효과를 보는 것은 둘째치고, 마나 과민증의 영향에서 살짝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기존의 전투 방식대로면 가속을 즐겨 쓰는 강후는 시간이 지날수록 과부하가 걸리는 형태였다.
특히 과부하 수치가 높은 그림자 걸음 같은 스킬을 쓸 때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림자 걸음을 쓰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위치 전환이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동재의 버프가 들어온 이후로부터는 그런 쪽으로의 스킬 활용이 줄었다.
상시 가속 상태가 버프로 유지되다 보니, 굳이 자신의 가속 스킬을 쓸 필요가 없었고.
그런 이유로 자리를 잡기가 수월하다 보니, 그림자 걸음을 공간 이동 스킬로 쓸 일이 없었다.
스킬 효율화가 이뤄진 것이다.
‘합법적이면서도 부작용이 없는 마약을 하는 느낌이랄까. 비유가 매우 이상하지만.’
지금 느낌이 딱 그랬다.
과부하가 덜 걸리니 마나 과민증에 대한 걱정도 줄어들게 되고, 움직임에 과감성이 더해진다.
예전부터 박동재의 버프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강후지만, 직접 체험하니 더 실감하게 됐다.
그리고 다짐했다. 박동재는 꼭 동료로서 옆에 두어야겠다고. 아주 최고의 버프 ‘셔틀’이다.
미들 보스 구간까지 끝내는 과정에 막힘이 전혀 없었다.
지금 강후와 박동재의 앞에 널브러져 있는 것은 방금 숨이 끊어진 미들 보스의 시체였다.
레벨은 미들 보스의 죽음과 동시에 딱 맞춰서 105가 됐고.
강후가 의도했었던 대로 버프 증폭에 관련된 스킬을 미들 보스에게서 강탈할 수 있었다.
【과몰입】
【버프 스킬 전반의 효율이 1%에서 100%까지 1초 단위로 갱신되면서 계속 증가합니다.
100%에 도달하면 ‘과몰입’ 상태가 되어 10초간 유지된 후, 다시 1%에서부터 증가합니다.】
패시브 스킬이었다.
100%에 도달해 ‘과몰입’ 상태가 됐을 때와 버프 스킬의 연계 타이밍을 맞추면 파괴적인 조합.
꽤 마음에 들었다.
스킬에 대한 신경을 쓸 것도 없이 알아서 진행되므로, 그때그때의 상황만 체크하면 됐다.
한편.
박동재는 강후가 잠깐 휴식하자고 한 시간 동안, 앞서 전투를 복기하는 중이었다.
버프 주는 맛이 났다.
대장장이가 자기가 만든 무기를 유려하게 쓰는 주인을 볼 때마다 쾌감을 느끼듯.
버퍼인 박동재는 자신의 버프를 100% 이상으로 활용해 주는 헌터를 볼 때 희열을 느꼈다.
하지만 버프라는 것이 눈에 명확하게는 띄지 않는 데다가.
취급에 따라선 소위 말하는 버프 ‘셔틀’로 통할 때도 많았다.
버프 고마운 줄은 모르고, 야! 버프 안 넣고 뭐 해? 빨리 풀 버프 둘러! 같은 식으로.
전세혁은 늘 박동재에게 고맙다는 표현을 하는 편이지만.
사실 그 외에 알게 된 인맥들은 버프를 당연스럽게 기계적으로 받는 경향이 강했다.
그리고 오히려 버프에 의존한 탓인지, 제대로 된 전투 능력을 발휘하지 않았다.
뭐랄까. 매사, 매 전투에 진심이 아닌 것 같은 느낌? 조금은 나사 풀린 느낌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강후는 아니었다.
오히려 박동재가 자신의 버프 안배가 모자란 게 아닐까 몇 번이고 스스로를 의심했을 정도로.
모든 움직임이 폭발적인 공격으로 이어졌고, 단 한 번도 전투에 느슨한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다.
짜내고 짜낸다, 라는 표현이 딱 어울릴 것 같았다. 강후는 분명히 버프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었다.
게다가 호흡을 맞추는 과정 없이 바로 전투에 임했음에도, 전혀 위화감이 없었다.
‘꼭 게임에서 고렙 쩔 받으려고 들어온 힐러 느낌이야. 민망하지만 지금 딱 그런 포지션인데.’
박동재가 스스로의 위치를 냉정하게 재단했다.
자신이 버프로 상황을 컨트롤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철저하게 강후에게 끌려가고 있다.
그리고 버프를 잘 활용하는지 살필 게 아니라, 어떤 버프를 더 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했다.
페이스의 주도권이 강후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박동재가 자기 역할에 몰입할 수 있다는 뜻.
‘재밌잖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동안 기계적인 버퍼의 역할에 충실했고, 사실 타성에 많이 젖어있기도 했던 박동재였다.
하지만 강후와 호흡을 맞추니, 스스로도 매 순간마다 많은 생각을 해야 했다.
어디에 자리를 잡고, 어떤 버프를 줘서 위력을 극대화할지를 계산해야 하는 것이다.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다는 것! 박동재는 그것이 너무 좋았다.
원래부터 달라 보였지만.
지금 보니 강후가 더욱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버퍼를 누구보다 잘 쓸 수 있는 헌터는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 * *
‘너무 날뛰었나.’
강후가 휴식을 취하면서 지끈거리는 이마를 꾹꾹 눌렀다.
익숙한 두통이라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지만, 문득 잠시 잊고 있었던 선천성 마나 과민증이 떠올랐다.
마나 과민증이 전투에 영향을 주는 것은 이제 매드 솔라키움으로 억제가 가능하다.
적어도 마나 과민증의 영향으로 정상 전투를 치르지 못할 가능성은 없었다.
매드 솔라키움, 솔라키움의 보유량을 꾸준히 유지하는 한, 그런 변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딱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매드 솔라키움을 먹고 난 후에 30분 동안 모든 고통과 억제에서 해방되는 것은…….
고통을 ‘유예’하는 것이지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즉, 30분 후에는 후폭풍을 감당해야 했다.
지금까지는 극한까지 전투를 치러본 적이 없어서, 이후의 후폭풍도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하지만 30분을 꼬박 다 쓸 만큼의 장기전, 그것도 격전이 벌어지게 된다면?
‘내가 이것에 대한 답을 얻어놓지 못했다.’
강후에게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물음표였다. 아직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다.
이제는 답이 필요해졌다.
강동현의 그릇된 호기심으로 시작된 악연으로 인해, 서로 귀찮아질 가능성이 커져서다.
아마 당분간은 강동현이 아니라 아래의 헌터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겠지만.
언젠가는 강동현과의 싸움도 피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차소희와 진효영이 죽었다 해도, 여전히 이클립스에는 실력 좋은 간부가 많다.
앞으로도 싸울 일은 널렸다.
* * *
충분한 휴식으로 체력을 비축한 강후와 박동재는 다시 광란의 폭주를 하기 시작했다.
앞서 첫 번째 폭주는 박동재도 당황한 구석이 있어, 중간에 호흡 조절에 실패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둘 다 미쳐 날뛰다 보니, 무아지경에 빠진 것처럼 던전을 휩쓸고 다녔다.
얼마나 전투에 몰입하면서 버프를 쏟아부었으면, 중간에 박동재가 마력 고갈을 외칠 정도였다.
어지간해서는 핵심 버프만 둘러주고 시간 체크만 하면 돼서, 마력이 충분히 남는 게 일반적.
하지만 강후에게는 욕심과 호기심이 앞서다 보니, 사소해 보이는 버프도 전부 활용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풀 버프 상태를 유지하려다가 마력이 완전히 바닥나 버린 것이다.
강후가 박동재의 외침을 들어서 멈췄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박동재가 기절할 뻔했다.
그렇게 보스 구역에 도착했을 때, 강후는 레벨이 무려 108까지 올라 있었다. 3이나 오른 것이다.
보통 4인으로 올 경우, 레벨 1을 올리기가 힘들다는 점을 비교해 보면…….
경험치를 넷이 아닌 둘이서만 나눠 먹는 것이 얼마나 이득인지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형. 여기 4인 권장인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
“던전 코드 밑에 바로 적힌 게 최적 권장 인원이니까. 모를 수가 없지.”
“이건…… 형이니까 가능한 2인 공략인 것 같아. 사실 몰이 사냥에 특화된 던전인데…….”
“우린 하나씩 유인해서 속도전으로 잡았지. 꼭 몰아서 잡을 필요는 없잖아?”
“암살자에게 일대일 전투가 더 잘 어울리기도 하고.”
“그렇지.”
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석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모든 전투에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강후는 일격에 화력을 집중하는 스타일이고, 그래서 일대일 전투가 효율이 훨씬 좋았다.
그래서 무리 지어 있는 몬스터들도 하나씩 꾀어내어 처치하는 식으로 갔다.
그것이 역설적으로 공략 속도를 더 빠르게 해 줬다.
일대 다수의 전투로 갔으면 시간이 몇 배는 더 걸렸을 것이다. 효율도 당연히 나빴을 테지.
“형이랑 2인으로 깔끔하게 공략을 빼니까. 이제 3인, 4인이 갑자기 시시해졌어. 가기 귀찮은데?”
“좋은 소식인가?”
“솔직히 오기 전까지 속으로 생각했거든. 암살자에 버퍼 2인 조합은 너무 위험하고, 리스크가 크다고.”
“방어를 전제로 하면 리스크가 크지. 하지만 확실한 선공을 전제로 하면 얘기가 달라져.”
“응. 그걸 느꼈어.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이 딱 형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달까?”
“암살자인 내게는 극찬이군.”
“레벨도 쭉쭉 오르고. 왜 세영이가 형이랑 던전에 가고 싶다고 했는지 이제야 알겠어.”
반세영도 쓸모가 있다.
강후는 원거리 공격 능력이 떨어지는 만큼, 원거리 옵션이 필요한 던전에는 그녀가 꼭 필요하다.
박동재가 전부가 아니고, 반세영이 전부가 아니다.
그때그때, 처한 상황에 맞게 효율이 극대화되는 파트너가 따로 있는 셈이다.
이런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실 강후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솔로 플레이였다.
요 근래 팀플레이를 몇 번 하긴 했지만, 다시 기존 방향성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솔플로 공략할 만한 던전도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아서다. 특히 일본 쪽으로는 더더욱.
“버퍼는 전장의 꽃이라고 생각해. 한 번도 하찮게 생각한 적 없다. 넌 대단한 거야.”
“형 같은 암살자면 정말 존경해도 된다고 생각해. 워낙 폼만 잡는 암살자가 많아서. 없던 암살자 포비아까지 생길 것 같았거든.”
탁!
강후와 박동재가 서로를 향한 존경을 주먹 인사로 담았다. 단순하지만 가장 확실한 인정이었다.
그로부터 5분 후.
“메인 디쉬네.”
“후우. 4인이 아니라 2인 공략이라서 좀 쫄리기는 하는데. 형만 믿고 갈게.”
“거리 유지 잘해. 놈은 내가 상대할 테니까, 대신 나서려고 하지 말고.”
“알겠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박동재가 열 걸음은 뒤로 쭉 물러섰다.
현명한 판단이었다.
버퍼인 박동재는 자신을 지키는 것이 매우 취약하다.
그래서 앞서 공략 중에 위험에 처했을 때도, 강후가 납치 스킬로 구해 준 적이 있었다.
멀리서 바로 구할 방법이 없으니, 납치로 오히려 위험 지역 탈출을 도왔던 것이다.
보스 몬스터의 이름은 로슈.
인간형이고 격투계다.
어찌 보면 강동현과 유사한 계열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강동현은 여기에 검도 쓰지만.
【이기적 탐닉】
강후의 시선은 로슈를 마주한 때부터 녀석에게 강탈할 수 있는 스킬 이름에 계속 꽂혀 있었다.
이기적 탐닉.
이 던전을 꼭 오고 싶었던 이유에 너무 딱 들어맞는 최고의 버프 보조 스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