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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29화 (129/304)

129화 버프 (1)

* * *

그 무렵.

강후와 연락이 가능한 사람들은 모두 강후에게 메시지를 받은 상태였다.

내용은 강후가 박동재에게 보여 준, 이클립스 공식 홈페이지 링크였다.

마침 마스터 K를 만나고 있던 정유리도 그와 함께 메시지를 받았다.

“차소희를 죽인 헌터가 선규 오빠였다고요? 아니, 이제는 강후 오빠라고 불러야 하나……?”

“진효영은 얼마 전까지 활동 내역이 있었는데. 최근에 죽은 모양이군. 영악한 녀석이었다만.”

“할아버지, 왜 이클립스에서 이런 내용을 공개한 걸까요?”

“너무 뻔하지 않니. 선규, 아니 강후 청년이 강동현에게 한 방 먹인 거지. 누가 봐도 욱해서 올린 척살 명단이 아니냐?”

“둘 다 강동현의 사냥개라고 불릴 만큼 실력이 있다고 들었는데 말이에요.”

“그간 왜 가명을 썼는지는 알 것 같구나. 수용소 출신이라……. 그 참혹한 곳에서 탈출을 했다니. 보통 청년이 아니군.”

“본명이 뭔가 오빠 이미지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선규라는 이름은 좀 순둥이 같았는데.”

“어쨌든 강후 청년도 머리가 좀 아파지겠구나. 이클립스와 꼬여서 좋을 건 없는데 말이야.”

“반대로 생각하면, 이클립스 입장에서도 귀찮지 않을까요?”

정유리의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그만큼 지켜야 할 것이 많은 조직이니까.

“어쨌든 사냥개가 둘이나 죽었다는 건, 그만큼 강동현을 화나게 했다는 뜻이니까.”

“그러니까요.”

“워낙 적이 많은 이클립스라서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게다. 하물며 강후 청년의 실력을 생각하면.”

K가 웃었다.

정유리를 통해서 듣고, 또 본인의 안목으로 살핀 강후의 실력으로 미루어 짐작해 본다면.

훨씬 윗선에 있는 간부나 강동현이 직접 나서지 않는 이상, 강후를 죽이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본인이 귀찮은 일에 엮이는 것이 싫어서, 저렇게 척살령을 내렸을 수도 있다.

그러면 ‘아랫것’들이 알아서 강후를 노릴 테니 말이다. 귀찮은 수고와 시간 낭비를 덜 수 있다.

“정확하게는 몰라도 차소희, 진효영 모두 레벨은 200이 넘는 헌터들이었을 텐데요.”

“레벨이 전부는 아니지.”

“강후 오빠도 참 대단해요, 그쵸?”

“그래. 그러니까 너를 그라운드 제로에서 끄집어내서 이렇게 밖으로 데려온 것 아니겠니.”

“맞아요. 호호.”

“지켜보자꾸나. 강후 청년이 도움이 필요하면 직접 요청할 테고, 그게 아니라면 알아서 하겠지.”

“저도 그럴까 해요.”

“주제넘게 참견할 것 없다. 혼자 알아서 하는 것이 익숙한 사람일 테니까.”

“네, 할아버지.”

“밥 먹자.”

* * *

“세혁 오빠. 오빠는 알았지?”

“뭘?”

“선규 오빠가 이클립스랑 이런 관계였던 거.”

“알았지. 다만 굳이 공개적으로 말할 필요가 없어서 나만 알고 있었을 뿐.”

“다들 궁금해했거든. 차소희가 죽은 것은 확실한데, 누가 죽였는지를 몰랐단 말이야.”

그 무렵, 반세영과 전세혁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클립스의 공식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는 것은 두 사람의 오랜 일상과도 같은 일이었기에.

메인 화면에 보란 듯이 뜬 강후에 대한 척살령을 보지 못할 수가 없었다.

반세영은 깜짝 놀랐다.

어렴풋이 레벨을 짐작만 하는 K나 정유리와 달리, 강후의 레벨을 정확히 알고 있기에 더욱 그랬다.

단순 수치로 따진다면 레벨이 2배 이상으로 차이가 나는 헌터 둘을 죽인 것이다.

아니, 차소희가 죽은 시점을 생각하면 3배에서 4배 차이까지로도 짐작해 볼 수 있다.

“내가 얘기했잖아. 강후 씨와는 앞으로 계속 인연을 만들어 가는 게 좋을 거라고.”

“혼자 다 해 먹는 줄은 알았지만, 사냥개까지 저렇게 때려잡고 다닐 줄은 몰랐네…….”

“진효영이 죽은 걸 보면. 강동현이 강후 씨에게 미인계를 시도했던 것 같네.”

“강동현, 비겁한 새끼! 지가 직접 싸우면 될 걸, 그걸 못 해서 여자로 꼬셔서 납치하려고 해?”

“원래 그런 놈이다. 나와도 제대로 한 번 붙어본 적이 없어.”

전세혁이 인상을 찌푸렸다.

차라리 잘 된 듯했다.

전세혁도 그렇고, 박동재도 그렇고. 주변 인맥 모두 이클립스라면 학을 떼는 사람들이었다.

오히려 그들과 심리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됐으니, 관계는 훨씬 더 가까워질 터.

강후의 실력을 생각하면, 앞으로 고생하게 될 것은 강후가 아니라 강동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떼기 힘든 혹을 붙인 셈이다.

그것도 붙이고 있을수록, 점점 더 심한 고통을 유발하는 악성 종양 같은 혹으로 말이다.

“어쨌든 강후 오빠, 진짜 무섭네. 다시 보게 됐어. 원래부터 무서운 사람인 건 알았지만…….”

“아마 강동현이 어떻게든 데려다가 써먹으려고 했을 거다. 그러다가 일이 저렇게 된 거겠지.”

“그렇겠네. 강후 오빠 정도의 실력이면 탐낼 만하잖아. 하다못해 나도 팀플레이가 간절…….”

“야, 너무 그러지 마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촌 오빠가 최고라고 하지 않았냐. 세영아.”

“이제 전세혁의 시대는 끝났어. 신강후의 시대야. 호호호.”

농담을 나누는 가운데, 서로 더 드러내어 표현하진 않았지만 강후에 대한 가치 평가가 올라갔다.

강동현은 조직의 공적으로 지정하고 처단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 주기 위한 공지였겠지만.

강후를 아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오히려 강후의 몸값을 올려주는 것으로 보였다.

저렇게 되면 이클립스를 탐탁하지 않게 여기는 곳에서 용병 의뢰를 보낼 수도 있다.

이래저래 강후가 강동현의 위에서 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전세혁이었다.

“큭.”

그래서 웃음이 나왔다.

앞으로 더 재밌어질 것 같아서.

* * *

강후는 던전에 입장한 박동재에게 물었다.

“직전에 던전에 갔다 온 헌터들은 누군지 알려줄 수 있나?”

“에, 그게…….”

여전히 박동재는 이클립스에 올라온 공지를 되새기며 얼떨떨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후는 별생각 없는 듯이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갔다.

“아까 공지가 신경 쓰이는 모양이군. 차소희와 진효영은 날 어떻게든 이클립스로 끌고 가려고 했어. 납치를 하려고 했던 거지.”

“아니, 그런 게 아니야. 걔네 둘이 쓰레기인 거는 나도 잘 알아! 단지 형이 죽였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전부 훈련받은 헌터들이잖아. 쉽지 않은 적이었을 텐데.”

“나도 그만큼의 훈련과 준비가 되어있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지 않을까.”

“아! 하긴…… 하긴, 그렇네!”

“자만은 스스로 주는 것이다.”

“응? 누구 명언이지?”

“다음에 만날 때까지 공부해 오시고. 아무튼 달라질 건 없어. 날 부를 이름만 달라졌을 뿐.”

강후가 박동재의 어깨를 툭툭 치자,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그가 강후의 질문을 떠올렸다.

“아! 세혁이 형, 그리고 세혁이 형을 통해서 알게 된 헌터 두 분이 계시는데. 백성호, 장선영님과도 다녀왔어.”

“혹시 명가 길드에 있는 두 헌터를 말하는 건가?”

“맞아! 혹시 알아?”

“개인적으로 아는 것은 아니고, 이름은 알지. 꽤 높은 분들과 손을 맞췄군.”

“내가 좀 찾는 사람이 많기는 하지.”

“그러게.”

확실히 박동재가 실력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명가 길드는 소수 정예로, 레벨 450 이상의 헌터만 모인 곳이다.

각 분야에서 한가락 한다는 헌터들이 모인 길드인 것이다.

따로 거점은 두지 않지만, 다들 재력이 좋다 보니, 활동 범위는 전국적이었다.

소유한 던전도 많았고, 그들과의 협업을 요청하는 길드나 조직도 꽤 많았다.

그런 곳에서 박동재를 따로 부를 정도라면, 그의 실력에 대해선 의심할 필요가 없다.

“형, 어떻게 손발을 맞출까?”

“굳이 맞추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나. 네 센스를 믿어보지.”

“그게 무슨 말이야?”

“버프가 들어온 건 상태창으로 내가 확인할 수 있으니까. 거기에 맞춰 싸우겠다고.”

“……그게 가능해? 버프 계산을 확실하게 하려면, 버퍼에게서 듣는 게 나을 텐데?”

“상태창 체크는 나에게는 매 순간의 일상이라.”

강후가 어깨를 으쓱였다.

게임을 할 때.

미니맵을 보는 맵플레이를 꼼꼼하게 하는 것처럼 강후는 항상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

어렵지도 않았다.

잠깐 눈길만 확실히 주면 되는 것이니까.

어쨌든 하나의 루틴처럼 일상이 된 것이라, 강후에게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게 습관화가 되어있지 않은 헌터는 방금 박동재가 말한 방법을 썼다.

버퍼가 통보해 주는 것이다.

이를테면 ‘가속 버프 30초 남았습니다!’, ‘가속 버프 15초 남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듣는 입장에서야 편하다.

하지만 말하는 버퍼 입장에서는 계속 모든 버프의 현황을 보고해야 하니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형. 이러면 내가 미친 듯이 버프를 넣기 시작하면, 형이 완전히 꼬일 수도 있어. 진짜 괜찮아?”

“그럼 꼬이게 해 봐. 꼬이게 할 때마다 내가 마석 하나씩 주지.”

“무슨 색 마…… 아앗! 색깔은 말해 줘야지, 형!”

강후가 의도적(?)으로 제자리를 박차며 앞으로 나갔다. 강후 나름의 장난이었다.

박동재도 강후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이 던전에 온 마당에 욕심을 낼 생각은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자체를 죄악시하는 것이 박동재다.

그는 강후에게 빚진 자신의 목숨을 앞으로 꾸준히 이렇게 갚을 생각이었다.

한편으론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아보고 싶은 호기심도 있었다. 실력 좋은 헌터임은 분명하다.

다음 순간.

“읏! 엄청나군.”

강후에게 바로 버프가 걸렸다.

순간 박동재의 말처럼 발이 꼬일 뻔했다. 가속이 엄청 빠르게 걸렸기 때문이다.

강후가 갖고 있는 가속 스킬보다도 2배는 더 뛰어난 효율이었다.

【질주 본능 - 55초】

‘길다.’

버프 유지 시간이 상당히 길다.

보통 기본 버프 스킬을 획득하거나 스킬북으로 깨우친 버퍼의 버프 유지 시간은 기본값이 20초였다.

여기서 숙련도를 높여야만 유지 시간을 늘리는 것이 가능했다.

저 정도면 최대 숙련도나 그 근처에 다다랐을 가능성이 높다. 수만 번은 썼을 거란 얘기다.

그리고.

파앗!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통째로 새로이 열리는 것처럼 시각 정보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졌다.

이 역시도 버프였다.

【정신 집중 – 53초】

【전략 통제 - 39초】

정신 집중은 시야에 들어오는 시각 정보에 대한 수용도를 대폭 높인다.

전략 통제는 쓸모없는 정보, 이를테면 바닥에 보이는 하찮은 자갈 따위에 대한 정보를 배제한다.

한 마디로 봐야 할 것만 확실히 볼 수 있도록 해 주는 버프인데, 체감이 확실히 됐다.

매드 솔라키움을 먹었을 때, 세상이 다르게 보이던 그때를 체험하는 느낌이었다.

‘미쳤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아직 박동재는 성장 중인 버퍼고, 성장할 레벨이 강후 자신만큼이나 넉넉하게 남은 헌터다.

지금도 미쳤다라는 표현을 할 수 있을 정도면, 나중 얘기는 굳이 할 필요도 없다.

바로 그때.

뒤에서 호기로 가득 찬 박동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어때? 버프 맛 죽이지? 이 맛에 다들 날 찾거든? 어때? 손이 근질근질하지?”

그러자 강후가 씨익 웃으며, 박동재를 향해 소리쳤다.

“그래, 같이 죽어보자!”

박동재는 그때 알았어야 했다.

달리는 말에 날개를 달아 주면, 그 말을 따라가는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를…….

날개가 제대로 달린 강후의 폭주가 그때부터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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