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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27화 (127/304)

127화 진효영 (2)

* * *

“음.”

“괜찮아?”

“괜찮아. 어디 긁힌 모양인데.”

빠르게 달아오르던 분위기에 잠깐 제동이 걸린 것은 강후의 손목에서 느껴진 통증 때문이었다.

날카로운 무언가에 찔린 느낌이 든 것이다.

하지만 강후는 신경 쓸 것 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다시 진효영의 입술을 부드럽게 감쌌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전혀 없을수록, 역설적으로 스킨십에 더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랄까. 상대를 영혼 없는 인형처럼 대할 수 있게 되니, 어떤 행동을 해도 부담이 없달까?

강후는 진효영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그녀가 순수한 의도로 접근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 먼저 손을 내민 것은 그녀의 뒤에 숨어 있는 흑막을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단순히 위험을 방지할 목적이었다면 애초에 그녀를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목적을 간파했으니까.

하지만 속내는 이미 다 들여다본 만큼, 그 뒤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진효영의 스킬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도, 그녀의 능력은 미리 짐작할 수 있었다.

성좌 스캔 덕분이다.

【몽마(夢魔)】

【스킬로 수면 상태가 유발된 타깃을 직접 죽일 경우, 영구적으로 마력 10을 획득합니다.

최대로 100회까지 가능하며, 그 이후에는 몽마가 한 단계 더 성장한 특전을 제공합니다.】

【심마(心魔)】

【계약자를 두려워하는 적 또는 몬스터를 상대로는 2배 더 강화된 공포감을 부여합니다.

계약자를 두려워하는 적의 정신계 공격은 계약자를 상대로 완벽하게 무력화됩니다.】

처음부터 진효영의 성좌를 보고, 그녀가 수면에 관련된 능력이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수면 유발에 관련된 능력 역시 다른 스킬 만큼이나 다양하다.

다만 강후는 그녀의 메인 성좌가 둘이라는 점에서, 고급 스킬을 갖진 않았을 것으로 봤다.

이를테면 바로 정신을 제압하고 수면 상태로 빠져들게 만드는 스킬 말이다.

이런 스킬은 실력이 충분히 오를 만큼 오른 헌터나 가능한 일이다. 유청화가 좋은 예시일 터다.

하지만 진효영은 그 정도는 아니었고, 수면을 유발하는 도구나 아이템의 보조를 받을 듯했는데.

그것이 방금, 강후와 진효영이 한 몸으로 뒤섞여 방으로 들어오면서 벌어진 ‘찔림’이었다.

그렇게 난 상처를 통해, 진효영이 수면을 유도하는 스킬을 썼을 것이다.

실제로 그 순간에는 강후도 아주 잠깐, 몸이 나른해지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의미 없는 수작이었다.

얼마 전에 마켓에서 산 2등급 목걸이, 역신의 숨결이 수면 중독을 성공적으로 억제한 것이다.

‘좀 더 놀아 줄까.’

강후가 진효영을 푹신한 침대로 밀쳤다.

“아앗!”

그녀의 긴 생머리가 흩날리며, 달콤한 향기를 풍겼다.

보이지 않는 수 싸움만 없었다면 농밀한 두 남녀의 격정적인 하룻밤이 되었겠지만…….

강후는 그저 성욕에 휩싸인 남자를 충실하게 연기하고 있을 뿐이었다.

놀라우리만치 이성적이었다. 다만 겉으로 그 티를 내지만 않았을 뿐이다.

“선규 씨, 이런 사람이었어?”

“내가 왜?”

“처음 날 봤을 때는 이렇지 않았잖아? 꼭 목석처럼 쳐다보더니, 지금은 너무 적극적인걸?”

“너 같이 예쁜 여자를 두고,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시간 끌 생각하지 마. 안 통해.”

“아흑! ……선규 씨!”

거칠게 그녀의 양손을 움켜쥐고 목선을 탐닉하기 시작하자, 가는 신음이 그녀에게서 터져 나왔다.

원작에서 신강후라는 캐릭터를 조형하는 과정에서.

인간으로서의 온기 대부분을 빼앗았을지는 몰라도, 오히려 욕망에는 충실하게 만들었었다.

성장에 대한 욕구.

지고 싶지 않은 승부욕.

그리고 말초적이고 원초적인 것에 대한 거침없는 추구.

지금 강후가 진효영에게 보이고 있는, 욕망에 충실한 행동은 진심이었다.

단지 그 안에 사랑만 담지 않았을 뿐이다. 상대도 자신에게 사랑을 담지 않았으니까. 그뿐이다.

“후우.”

본능에 푹 빠진 거친 숨소리가 강후에게서 터져 나왔다.

진효영은 강후를 양팔로 꽉 끌어안은 채, 강후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웃었다.

‘넌 끝났어.’

강동현을 골탕 먹일 만큼의 실력을 가졌어도, 역시 여자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차소희. 그래서 넌 내가 안 된다고 했잖아. 세상일은 힘 하나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고.’

강동현의 ‘총애’를 두고, 차소희에게 알게 모르게 열등감을 많이 갖고 있던 진효영이었다.

전투에 있어서는 빼어난 실력을 가진 차소희가 늘 강동현이 찾는 심복 1순위였고.

그런 차소희를 보면서 진효영은 꼭 한 번, 그녀를 넘어서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이제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강동현조차 어쩌지 못했던 신강후는 지금 완벽하게 자신에게 푹 빠져서 무력화되기 직전이었다.

“……아!”

옷 안으로 훅 들어온 강후의 손길을 느끼고, 진효영이 한 번 더 메소드 연기를 보태려는 순간.

스으윽!

강후가 다른 손으로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단검은 순식간에 진효영의 동공 앞까지 닿았다. 조금만 아래로 흔들려도 바로 각막이 찢겨져 나갈, 아슬아슬한 위치였다.

“말해. 누구야.”

“선규 씨……? 무슨 말이야?”

타인을 잘 믿지 못하는, 헌터의 일반적인 의심일 수도 있기에 진효영이 말을 돌렸다.

하지만 강후는 고개를 까닥이며 그녀의 되지도 않는 능청스러운 연기를 무시했다.

“누가 시켰는지 얘기하면, 살려 줄지는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

발각된 건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강동현이 직접 알려준 것만 아니라면, 자신의 레벨과 클래스에 대한 정보는 전부 위장이었다.

레벨 100도 안 되는, 그저 달리는 발 재주 정도나 있는 정찰 역할군에 어울릴 세팅이다.

이것을 두고 뒤에 누가 있는지 의심을 하기엔 능력이 하찮았다.

“두 번 협상은 없어.”

사악!

“꺄아악!”

단검의 날 끝으로 그녀의 볼에 붉은 줄을 만들어냈다.

“너한테나 소중한 얼굴이지, 나한테는 아니거든. 난 내 목숨이 소중한 사람이고.”

“그래 봤자! 그래 봤자일걸?”

“……?”

“이제 곧 잠들 텐데! 언제까지 네가 그렇게 기세등등할 수 있을까? 있겠냐고!”

말이 끝나자마자 진효영이 왼손 검지에 끼고 있던 반지로 강후의 팔뚝을 몇 번이고 찔렀다.

처음엔 몰랐는데, 지금 살피니 반지의 특정 부분을 누르면 날카로운 바늘 같은 것이 나왔다.

아마 이것으로 상처를 내고, 그 상처를 통해 스킬의 수면 효과를 주입하는 것이었을 터다.

아직 레벨이 충분히 높은 수준은 아니기에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사전작업인 셈이다.

“조잡하군.”

“왜 잠들지 않는 거지……?”

진효영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가 유발하는 ‘수면 중독’은 걸리면 강동현도 자지 않고는 못 배기는 옵션이었다.

물론 강동현은 상처가 날 틈을 주지 않겠지만, 지금처럼 무주공산으로 당하면 답이 없는 것이다.

앞서 강후에게 상처를 냈고.

그 상처를 통해서 몇 번이고 수면 유도 스킬인 ‘요람의 속삭임’이 들어갔다.

그럼 잠이 들어야 맞는데?

강후는 멀쩡했다.

“그렇게 날로 먹으려고 하면 쓰나.”

“…….”

강후의 말을 듣는 순간, 진효영은 등골을 타고 오싹한 느낌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간파당한 건가? 어디서부터 알고 있었던 걸까? 알았다면 도대체 어떻게?

이러면 플랜 A는 실패다. 하지만 다행히도 플랜 B가 있다.

진효영이 몸을 꿈틀거려, 호텔 밖에 있을 대기조에게 연락을 보내려는 찰나.

홰액!

강후가 진효영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순간이동을 시도하려는 것이다.

2인이 되면 확률이 50%가 되기에 성공 유무에 따라, 강후 역시 다음 계획을 달리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파팟!

“성공이군.”

“아?”

강후와 진효영은 서울의 호텔이 아닌, 전혀 엉뚱한 곳인 대전에 내려와 있었다.

* * *

목에 강후의 단검이 닿은 상태가 유지됐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숨을 거둘 수 있는 상태.

진효영은 정면으로 보이는 청안 빌딩의 간판을 보고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갑자기 서울에서 거리가 한참은 떨어진 대전으로 온 걸까? 이게 설마 강후의 능력인 걸까?

“마지막으로 묻는다. 배후가 누구야. 그것만 말해.”

“X 까, 이 X발 새끼야!”

아름다운 외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더러운 욕이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투득. 투드득. 투득!

이어 진효영의 블라우스와 치마가 인정사정없이 찢어졌다.

동시에 진효영의 전신이 마치 비늘이 솟은 것처럼 검붉고도 두꺼운 외피로 뒤덮였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외피는 목과 얼굴까지 완벽하게 감쌌다. 약점을 전혀 만들지 않겠다는 방어 기제로 보였다.

“이건 또 흥미로운 능력이군.”

“죽여버리겠어……!”

목소리가 변했다.

방금까지 고운 하이톤의 목소리가 들렸다면, 지금은 중성적인 톤으로 내려온 상태였다.

외형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에도 변화를 주는 모양.

진효영은 강후로부터 충분히 떨어진 위치까지 자리를 옮겼다.

그가 암살자라는 사실은 알기에 최대한 조심하는 것이다.

한편.

【분신술】

강후는 분신을 만들어 냈다.

실전에서 제대로 사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

눈앞에 만들어진 강후의 분신은 강후를 쏙 빼닮은 외형을 하고 있었다. 눈가에 있는 작은 점도 똑같았다.

분신술의 특징은 스킬 사용자가 자신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만큼 똑같이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만약 강후가 자신의 눈가에 작은 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분신에게는 점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서투른 암살자는 그렇게 자신의 분신을 들키곤 했다.

물론 누구보다 눈썰미가 좋고, 관찰력이 뛰어난 강후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지만.

“…….”

강후가 분신의 뒤로 조용히 숨었다.

그러자 진효영이 방향을 틀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분신이 아닌 강후의 본신을 쫓아야 하니까.

하지만 강후는 분신과 줄을 맞춰서는 그녀가 위치를 바꾸는 만큼, 자신도 똑같이 바꿨다.

애초에 앞에 분신이라는 ‘벽’이 있으니 사각(死角)을 만드는 것은 쉬웠다.

【백일참】

이미 그 시점에 강후는 백일참을 준비하고 있었다.

진효영이 가진 비늘의 내구력이 제법 높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공격 능력에서는 떨어질지 몰라도, 방어 능력에서 극대화가 되는 외피라면…….

일반적인 물리 공격은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어설픈 스킬도 마찬가지다.

한편 진효영도 나름 생각이 있었다.

‘일단 접근하기만 하면 돼.’

강후의 예상대로 이 외피는 일정 대미지 이하의 모든 공격을 무력화해 주는 외피였다.

스킬 활용 능력을 상실하게 되지만, 반대급부로 근력과 같은 육체적인 스탯이 급상승했다.

즉, 초인적인 힘으로 상대를 목 졸라 죽이거나 짓눌러 죽이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파앗!

진효영이 강후에게 달려들었다.

만약을 대비해서 양팔을 X자로 만들어 정면을 방어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암살자의 뻔한 레퍼토리가 정면에서 접근, 횡 이동으로 뒤를 잡아 공격하는 방식이니까.

이미 그 정도 계산은 끝내놓은 상태였다.

그런 수준 낮은 공격에 당할 자신이 아니다.

바로 그때.

분신 뒤에 철저하게 모습을 숨기고 있던 강후와 아주 잠깐, 시선이 마주쳤다.

“……?”

그 순간.

진효영은 전투에 맞춰 잔뜩 끌어 올려둔 자신의 항마력과 무관하게 환각에 빠지는 것을 느꼈다.

아니, 이미 빠져 있었다.

사방팔방이 온통 물에 녹인 물감처럼 정신없이 뒤섞이는 상태였다. 되돌릴 수 없었다.

‘이게 절대 판정이라고?’

모든 방어 능력, 스킬을 무시하고 뚫고 들어오는 ‘절대’ 판정.

강후에게 그 정도의 고급 환각 유발 스킬이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그녀였다.

암살자는 보통 암살자다운 스킬을 갖는다.

순간이동과 같은 공간계 스킬이나 환각 같은 정신계 스킬을 쉽게 다룰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강후에게는 말도 안 되는 조합이 벌써 둘이나 들어가 있었다.

이것은 앞서 차소희의 죽음으로 수집된 강후의 스킬 정보와는 또 다른 것이었다.

강후가 또 업그레이드됐다.

“하.”

짧은 탄식.

동시에 단검 끝을 떠난 백일참이 환각이 유발된 틈을 타고 날아와, 그녀의 허리를 갈랐다.

모든 것이 담긴 일격이었다. 외피로 버티고 자시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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