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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22화 (122/304)

122화 히든 스킬 (1)

* * *

히든 스킬.

정상적인 형태로는 절대 획득할 수 없는 스킬이다. 헌터 세계에 유일무이한 스킬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강후가 즐겨 쓰는 ‘혈화’의 하위 호환 버전인 흑마법사 스킬이 있다.

예를 들면 마나 태우기다.

마나 태우기를 숙련도 최대까지 올리고, 여기에 적요석 업그레이드나 스킬 강화를 한 경우 상대에게서 흘러나오는 마나 일부를 태워서 타격을 주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피를 태워 폭발을 일으키는 혈화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형태는 비슷한 셈이다.

하지만 히든 스킬은 활성화되는 과정에서 획득자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형태로 정해지고.

발현 과정이 까다로우면서도 의미 있는 한 방이 되도록 설계가 되기 때문에 다른 비슷한 스킬을 찾는 것이 어려웠다. 있다면 그것 역시 히든 스킬일 가능성이 컸다.

【히든 스킬은 이 세계 어딘가에 존재하는 ‘숨겨진 균열’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시환은 그런 히든 스킬을 자신이 얻게 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편으로는 위력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마법사인 자신에게는 어떤 스킬을 줄까?】

이것이 원작에 적혀 있던 장시환의 히든 스킬 획득의 스토리다. 기연 이야기다.

발견자와 호환이 잘 되는 스킬이 주어지는데, 원작의 장시환은 ‘대홍염(大紅焰)’이라는 스킬을 얻었다.

하늘에서 집채만 한 불구덩이가 떨어지는 마법 스킬이었다. 메테오의 소형 버전인 셈이다.

‘딱 한 가지 문제가 있긴 하군. 심각한 문제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강후가 히든 스킬 학습에 앞서, 신경 쓰이는 부분 하나를 짚었다.

그것은 히든 스킬을 얻으면 전 세계의 히든 스킬 보유자에게 알림이 간다는 것이다.

물론 획득자의 이름이나 외모가 노출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스킬명과 획득자의 클래스에 대해서는 정보 공개가 됐다.

즉, 이후에 스킬을 보고서 그때 알림이 떴던 그 헌터가 이 헌터구나 하는 유추가 가능한 셈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히든 스킬의 소유자끼리는 서로의 히든 스킬을 빼앗는 것이 가능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죽이면 됐다. 히든 스킬을 소유한 상대를 죽이면, 자연스럽게 계승이 됐다.

이런 이유로 원작 후반부에 가서는 히든 스킬을 가진 헌터들끼리 피의 전쟁을 벌이게 된다.

물론 승자는 열세 개의 별이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것도 아니고. 못 먹어도 고지.’

강후가 학습을 진행했다.

그런 부분이 두려워서 히든 스킬을 포기하는 건 멍청한 짓이니까. 아니,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숨겨진 균열에서 소환된 히든 스킬 하나를 학습합니다. 획득자의 성향을 분석합니다.】

【계승이 진행됩니다.】

【‘백일참/흑월참’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숨겨진 균열이 히든 스킬 획득자 전원에게 이하 정보를 송신합니다.】

【‘백일참/흑월참’ 획득.】

【암살자 계열.】

“이름이 두 개? 스킬이 두 개라는 건가?”

기본적인 스킬창과 달리, 히든 스킬은 별도로 활성화된 히든 스킬창에 따로 표시되어 있었다.

보통 하나의 스킬을 얻기 마련인데, 이름이 나뉘는 것이 이상했다.

하지만 두 개의 스킬이라고 하기에는 표기법이 하나로 되어있는 느낌도 들었다.

상세 툴팁을 살폈다.

【마력 또는 암흑기를 최대 10초까지 응축시킨 후, 전방으로 반달 모양의 검기를 방출합니다.】

【응축한 시간 및 에너지의 양만큼 위력이 강해지며, 막아낼 시에 섬광(마력), 흑암(암흑기) 영역이 생겨납니다.】

“알겠다.”

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백일참은 마력을 활용하는 형식, 흑월참은 암흑기를 활용하는 형식이다.

발현 구조는 같지만, 근거로 두는 힘이 어느 것이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는 것이다.

게다가 백일참을 막아내면 섬광 효과, 그러니까 ‘눈뽕’ 효과가 유발되는 것이고.

흑월참을 막을 경우에는 일시적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의 영역이 생긴다는 뜻이다.

“암흑기 스킬을 이렇게 얻을 줄은.”

의외라는 생각이 들어서 고개를 까딱였지만, 얻은 것 자체는 너무 기분이 좋았다.

각각 마력, 암흑기를 따로 쓰는 만큼 상황에 따라 두 번을 연달아 쓰는 것도 가능할 터다.

다만.

마나 과민증을 자극할 수 있는 과부하는 엄청 많이 걸릴 것 같았다.

강후가 바로 자세를 잡았다.

스킬 학습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체득된 기본 동작은 단검으로 호선을 긋는 형태였지만.

이건 단지 기본 동작일 뿐이고, 동작이 다르다고 해서 스킬 메커니즘이 바뀌진 않았다.

그래서 무심히 단검을 앞으로 쭉 뻗은 형태로 암흑기를 최대치로 응축했다.

“이런.”

100의 암흑기가 2초도 안 되어 전부 사라졌다.

그렇다면 흑월참에 도대체 얼마나 암흑기를 담아낼 수 있는 걸까? 최대치가 궁금해질 정도.

“크윽. 역시.”

극심한 두통이 밀려온다.

과부하 걸리기로는 둘째라면 서러울 그림자 걸음보다 네댓 배는 심한 과부하다.

다음 순간.

스이이잉!

단검에서 구슬프게 우는 소리가 나더니, 검붉은 형태로 구현된 반달 모양의 검기가 방출됐다.

쏜살같이 날아간 검기는 15m쯤 되는 거리에 있던 굵은 나무를 줄줄이 반토막 냈다.

사람이 있었다면, 당연히 사람이 선 채로 반토막 났을 위력적인 공격이었다.

“대참수나 전광비도는 스킬 계수에 정해진 한계가 있지만. 이건 정말 필살기 스킬이네.”

파악이 끝났다.

스킬 시전자의 능력에 따라, 파괴력이 정비례로 늘어날 수 있는 공격 스킬이다.

그런 스킬을 보통 헌터들은 ‘필살기’라는 보편적이고 쉬운 단어로 많이 부른다.

“이건 잘 다듬어야겠다. 연습을 많이 해야겠네.”

강후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위력은 둘째치고, 전 세계에 유일한 나만의 스킬이다. 거기에 화력에도 제한이 없다.

【너는 참 많은 것을 알고 있구나. 우연이 분명하거늘, 전혀 놀란 모습을 보이지도 않아.】

그때, 차원 강탈자가 슬쩍 말을 걸어왔다.

그녀만큼 자신을 항상 예리하게 주시하고 있는 존재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애정도 갖고 있겠지.

“운이 좋은가 보다 하는 거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사실은 다 알고 있기에 꿰뚫어 볼 수 있는 이 세계의 뻔한 빈틈이지만 말이다.

【궁금하구나. 옆에 있는 그 책도 어서 열어보아라. 나만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다.】

차원 강탈자 혼자만 말하고 있지만, 왠지 곁에 순흑의 구도자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왜일까.

사실 무료한 성좌들이 대성전에서 취하는 유일한 낙이 계약자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기도 하다.

강후가 볼 때마다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는데, 눈이 가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

이내 남은 책에도 손을 얹었다.

이 책은 어떤 내용인지 이미 알고 있기는 했다.

【메인 성좌 슬롯을 3개 더 추가할 수 있습니다.】

【이 슬롯으로 계약한 성좌는 주 성좌로서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계약자의 성장에 따라 함께 격이 올라가게 됩니다.】

【아울러 특전도 계약자에게 제공할 수 있으며, 다른 주 성좌와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바로 메인 성좌 슬롯 추가.

한 마디로 이제 강후와 차원 강탈자 사이의 일대일 사랑은 끝났다는 얘기다.

물론 순흑의 구도자가 함께하게 된 시점에서 깨진 균형이긴 했지만, 가속화되는 것이다.

【니미.】

그때.

경쟁자가 더 늘어날 것을 인지한 차원 강탈자의 짧고 강력한 한 마디가 강후의 귀에 꽂혔다.

그녀다운 반응이었다.

얼마 후.

출구를 통해 밖으로 나온 강후는 다시 익숙한 심판의 지옥의 건조한 공기를 마주했다.

아무도 모르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그리고 지금 저 멀리 어딘가에서…… 열심히 뭐 빠지게 싸우고 있을 장시환.

녀석이 레벨 800대에 이르러서 날개를 달 수 있게 해 줬던 기연이 영원히 사라졌다.

메인 성좌 슬롯 추가의 기회를 빼앗겼다는 것은 그만큼 결정타일 수밖에 없다.

메인 성좌의 자리를 보장해 주지 않으면 절대 계약하지 않는 격 높은 성좌가 많기 때문이다.

원작에서도 장시환이 이렇게 슬롯을 추가한 뒤, 서열 35위권 내의 성좌 셋과 계약을 맺었다.

이때부터 장시환은 폭주 기관차가 됐다.

레벨 1을 올리기 위해서 1개월을 족히 투자해야 하는 최상위 레벨의 세계에서 하루 레벨 1 상승이라는 경이적 성과를 거두게 된다. 주인공 보정의 끝판왕인 셈.

‘일단 차원 강탈자와 순흑의 구도자. 그리고 대성전의 승인을 받으면 황야의 전략가까지.’

일단 메인 성좌 셋이 확보되어 있는 상황이다.

차원 강탈자는 기존의 메인 성좌 계약, 순흑의 구도자는 비틀린 계약서를 활용한 변칙, 황야의 전략가는 일방적으로 특전을 제공하는 계약이기에 슬롯 활용이 중복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번에 추가된 슬롯은 오롯이 새로운 성좌에게 투자할 수 있다.

남은 셋을 누구로 채울지는 차츰 고민할 문제.

대성전의 성좌들도 강후의 메인 성좌 자리가 넉넉하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게 되어있는 만큼.

조만간 입질이 올 것이다. 당장 대재앙 – 어둠 성좌도 기회를 보고 있을 가능성이 크고.

‘이번 일로 장시환은 최소 9개에서 최대 15개의 성좌 특전을 잃었다.’

물론 미래의 가치를 빼앗았다고 해서, 지금 자신과 장시환 사이의 차이가 좁혀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의 성장을 완전히 틀어막고, 쫓을 동력을 폭발적으로 얻었다는 것이 좋았다.

장기 레이스는 결승선을 통과하기 전까지는 누가 이길지 알 수 없는 법이니까.

“일은 다 봤군.”

강후가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며, 지도를 다시 확인했다.

정리된 내용은 꼼꼼하고 세밀했다.

이 정도면 교차 검증을 해도 문제 될 것이 없다. 오히려 칭찬 세례를 받는다면 모를까.

진효영과 접선하기로 한 포인트로 방향을 잡은 강후가 속도를 내어 걷기 시작했다.

어느 때보다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 * *

그 시각.

아침부터 시작된 장대비가 천둥 번개와 함께 내리치는 오래된 성(城)안에서.

두 남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드레스 코드만 봐도 블랙 앤 화이트로 차이가 극명하고, 풍기는 기운 역시 그러한 사이였다.

외부에서 이 남녀의 조합을 볼 일이 생긴다면 십중팔구 눈을 의심할 그럴 상황이었다.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순백의 원피스로 시작하는 그녀의 복장은 어딜 봐도 다 흰색이었다.

이름은 엘리자베스.

사람들이 ‘구원의 성녀’라고 부르는 바로 그 엘리자베스다. 동시에 열세 개의 별의 일원이고.

성스럽다는 표현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그녀.

하지만 그녀의 맞은편에는 타락하고 음침하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남자가 있었다.

빈센트 마이어.

헌터의 세계에서는 실력이 좋은 헌터들만 골라서 죽이기로 유명한 연쇄 살인마다.

살인마라면 응당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것이 맞지만, 그럴 수 없을 만큼 강하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

절대 어울려서는 안 될 천사와 악마의 조합이, 은은한 홍차의 향기 속에 녹아드는 중이었다.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방금 히든 스킬 획득자가 생겼어. 누굴까? 우리 구성원은 아닌 것 같고.”

“암살자 계열이니까 우리 소속은 아냐. 누구지? 흥미롭군. 엘, 생각나는 이름 있냐?”

엘.

엘리자베스의 약칭, 애칭이다.

불러야 할 이름이 길다 보니 자연스럽게 붙은 줄임말인 셈.

“일본? 쿠사나기 이츠키 정도면 획득할 만하지 않아?”

“하지만 녀석은 지금 치료 중일 텐데……. 아냐, 그쪽은 던전 갔다는 정보가 없어.”

“빈센트, 네 생각은 어때?”

“한국 쪽은 소식 없고? 이번에 장시환이 들어갔다는 심판의 지옥 같은 초대형 던전이라면, 숨겨진 균열이 있을 법도 하지.”

“하지만 정화 길드에 쓸만한 암살자가 있지는 않을 텐데. 무엇보다 개별 행동이 불가능할 거고.”

“그건 모르지. 공략대 속에서 딴짓 거리를 한 개미 새끼 한 마리가 있을지는.”

빈센트의 눈이 선혈이 흘러가듯 붉게 빛났다.

숨겨진 균열은 규모가 작고 형편없는 던전에는 절대 생기지 않는다.

보통 많은 헌터가 모이는 곳에 생긴다. 그만큼 보이지 않는 불균형이 유발되기 때문이다.

이런 쪽으로 자료 수집을 오랫동안 해 온 빈센트에게는 가장 의심스러운 지역이 한국이었다.

지금 이 순간, 대규모 공략 이슈가 벌어지고 있는 장소는 심판의 지옥밖에 없으니까.

장시환도 아직 얻지 못한 히든 스킬을 가진 사람이……. 심판의 지옥 어딘가에 있는 것이다.

혀끝으로 입술을 핥는 빈센트의 눈빛에 호기심이 일었다.

그리고 홍차 한 모금을 들이키고는 엘리자베스에게 운을 뗐다.

“엘. 이참에 한국에 한번 놀러 가 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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