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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21화 (121/304)

121화 준비 (2)

* * *

진효영과의 대화는 짧게 이뤄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탐색을 같이하는 게 아니라, 정보 교차 검증을 위한 감시역이라서다.

그래서 12시간 간격으로 한 번씩, 던전 내 약속 지점에서 만나 서로 간 곳을 재탐색하기로 했다.

다만 대화 초반에 느꼈던 기시감의 이유까지는 아니더라도, 진효영의 수상함은 확실히 느꼈다.

탐색이 주 포지션이 될 헌터 치고는 몸에 딱 맞게 입고 온 전투복은 개인 취향이니 그렇다 치고.

진한 향수 냄새나 과하다 싶을 정도의 메이크업 역시, 자기 주관이니 그럴 수 있다고 쳤다.

하지만 진효영은 강후와 말하는 내내 계속 앓는 소리를 냈다.

자기는 레벨이 85라서, 전투 팀 참여는 어렵다느니 하면서 아쉬운 소리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강후 같은 암살자 클래스를 예전부터 동경해 왔다며, 모르는 체 스킬을 물어보기도 했다.

강후가 진효영의 본질에 대해서 잘 몰랐다면, 호기심이 많은 여자 헌터이구나 했을 것이다.

실제로 스타일도 괜찮았다.

짙은 향수 냄새를 제외하면 뭇 남성들이 매력을 충분히 느낄 만한 요소가 많았다.

하지만.

강후의 성좌 스캔에 걸린 그녀의 성좌 정보는 총 2개였다.

조기에 능력을 깨우친 실력파 헌터가 아닌 이상, 이 정도면 무조건 레벨은 200을 넘어간다.

만약 조기에 성좌와 계약을 할 실력이었다면, 탐색 팀이 아니라 전투 팀을 배정받았겠지.

그녀는 강후가 절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거짓말을 한 듯했다. 꽤 능청스러운 거짓말이었다.

강후는 그녀가 정화 길드에서 보낸 감시자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혹은 외부에서 심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진 않았다.

어차피 이런 팀 구성은 내부 관계자들이 마음대로 한다.

구성까지 정화 길드의 간부진이 모두 신경 쓰는 것은 아닌 만큼.

팀 구성 단계에서 적당히 뇌물을 먹이거나 해서, 입맛대로 팀을 짰을 가능성이 크다.

‘적당히 놀아줄까. 의도가 있는 접근인 듯하니, 뒤에 뭐가 있는지 살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강후가 진효영의 수상한 접근에 장단을 맞춰주기로 했다. 100%의 확률로 숨은 목적이 있다.

* * *

오후 6시.

탐색 팀의 진입이 시작됐다.

강후와 진효영의 132팀은 남동쪽 루트를 배정받았다. 강후가 처음부터 요청한 방향이었다.

그쪽이 지형이 험준하고 변수가 많아 다들 꺼렸다고 했는데.

강후에게는 그래서 더 잘 된 이야기였다. 기연의 포인트는 바로 그쪽에 있기 때문이다.

던전 안으로 진입하자,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검은 대지의 향연이 강후를 반겼다.

왜 심판의 ‘지옥’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알 것 같았다.

지면은 온통 용암이 식어 만들어진 검은 용암대지로 가득했다.

소소한 식물의 흔적조차 없이, 매캐하고 기분 나쁜 연기만이 지면의 틈새로 피어올랐다.

안타까운 얘기지만 이미 희생자가 발생했는지, 빠르게 부패 되어가는 시체도 가까이서 보였다.

“와, 거인족 크기 보세요.”

“꽤 크군요.”

“저 정도면 아파트 15층?”

“더 될 수도.”

진효영이 가리킨 방향에서는 이미 거인과 공략 팀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미들 보스? 메인 보스?

아니었다.

거인족의 구성원 중 하나로 일반 몬스터였다.

애초에 거인족 몬스터 전반이 이렇게 말도 안 될 정도의 거구를 가지고 있고.

각자가 주는 보상이 매우 푸짐했다. 수백 명이 달려들어도 모자람이 없는 보상인 것이다.

물론 기여도는 당연히 정화 길드의 헌터들이 높을 테고, 알짜배기는 거의 다 가져갈 것이다.

나머지 구성원은 들러리나 다름없는 셈이지만, 본인들은 그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하겠지.

그때, 진효영이 소리쳤다.

“장시환 님도 보여요!”

과연 그녀의 말대로 공중에서 자리를 잡고 미친 듯이 마법을 쏟아붓는 장시환이 보였다.

순흑의 구도자를 잃어서일까?

암흑기, 마력의 혼합 사용이 필요한 흑마법 스킬보다는 백마법류 스킬을 활용하는 모습이었다.

‘멋있기는 하군.’

마법사의 퍼포먼스라는 게 화려한 게 많다 보니,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홀리게 하는 부분이 있다.

그래 봤자 속은 썩어들어가고 있을 터다. 있던 것을 잃는 것만큼 엿 같은 기분도 없을 테니까.

“12시간 뒤에 보죠.”

“그래요. 무탈하시길.”

“그쪽도.”

강후가 가볍게 진효영과 인사를 하고는 그녀와 반대 방향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움직이는 내내, 주변 지형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일부는 간단히 그리기도 했다.

자신의 목적과 무관하게 부여받은 임무가 있는 만큼, 해야 할 일을 미루진 않았다.

쿠우웅- 쿠우웅-.

엄청 먼 거리에 있음에도 거인이 움직일 때마다, 지축의 흔들림이 여기까지 전해졌다.

아마 저 움직임 한 번에, 헌터 여러 명이 덧없이 파리처럼 목숨을 잃을 테지.

그중 십중팔구, 아니 99% 이상은 멋모르고 참여한 용병 희생자일 것이다.

* * *

일전에 황금 고블린의 광산에서 기연의 포인트가 산봉우리 아래의 숨겨진 가시덤불이었던 것처럼.

심판의 지옥 같은 경우, 주변에 뜨거운 마그마가 계속 흐르고 있는 위치에 포인트가 있었다.

말이 좋아 포인트지, 사실 영문도 모르고 들어가면 죽으러 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왜냐하면 이따금 마그마의 분출이 일어나는 지점이 100m도 안 되는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약간의 규칙성을 갖고 마그마가 솟아오르긴 하지만, 완벽하게 패턴화된 것은 아니었다.

【장시환이 여기를 찾아온 이유는 던전에 들어왔을 때부터 느낀 이질감 때문이었다.

상당히 예민해져 있는 그의 감각은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한 구멍에 계속 쏠려 있었다.

그것은 분명.

단순하게 파인 구멍이 아니라, 허술하게 식은 용암을 덧씌운 숨은 공간을 보는 듯했다.

태생이 완벽하지 못한 이런 초대형 던전에 비틀린 공간 하나쯤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추측이었다.】

원작의 내용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선명하게 떠올랐다.

당시 당일치기로 마감하던 시점에 장시환의 성장이 더디다는 독자들의 원망 가득한 댓글을 보고.

그날, 원고 마감을 하는 과정에 즉흥적으로 떠올려서 넣은 기연이었다.

원래는 심판의 지옥 메인 공략 스토리가 나왔어야 했는데, 기연 루트로 빠진 것이다.

독자들 반응은 좋았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생각했던 전개가 꼬여서, 마감하는 내내 고생해야 했다.

‘제대로 퍼주기는 했지. 아니, 사실 주인공에게 꼭 필요했던 업그레이드이기는 했어.’

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성장이 꽤 되어있던 장시환에게도 의미 있었던 기연.

그것보다 훨씬 갈 길 멀고, 잠재력이 더 높은 강후에게는 몇 배의 의미를 더 갖는다.

“확실히 편해.”

역시 독고다이 체질이 맞는 듯하다.

누구의 눈도 신경 안 쓰고 혼자 걸으니 발걸음부터가 가볍고 편했다.

어차피 포인트까지는 시간이 제법 걸리는 만큼, 열심히 주변 지형을 눈에 담아 둘 차례다.

좋은 장소를 제공받았으니, 그에 걸맞게 부여받은 일은 당연히 해 줘야겠지.

* * *

이동하는 동안.

강후는 그간 편식하듯, 손이 잘 가지 않았던 스킬 몇 개를 둘러보고 있었다.

스킬은 개수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있는 것을 잘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금까지 강후가 얻은 스킬 중에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하다못해 슬라임 킹에게서 얻은 귀요미! 스킬도 의외로 원거리 공격 차단에 유용했다.

슬라임 자체의 타고난 귀여움은 덤이다. 보고 있으면 터뜨리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 정도다.

“신속 회피.”

암살자의 레벨 40 기본 스킬임에도 잘 쓰지 않았던 스킬이다.

단거리 횡 이동과 도약이 몸에 익어, 약간의 사전 집중이 필요한 신속 회피가 귀찮았다.

신속 회피의 장점은 어느 정도의 거리를 피할 수 있느냐보다는 부수 효과에 있었다.

【회피 기동 중에는 저항의 장막 효과가 활성화됩니다. 스킬에 대한 회피율이 상승합니다.】

바로 이 효과.

회피율이 올라간다는 것은 마치 자석의 같은 극이 만나는 것처럼 밀쳐낼 확률이 높아짐을 말한다.

결과적으로 스킬이 빗나가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회피율의 원리다.

“까다로운 스킬이 여러 갈래로 날아들 때는 저항의 장막 효과를 믿는 것도 괜찮겠지.”

적절한 그림이 그려진다.

때로는 최소한의 시도가 최대의 효율을 낼 때도 있다. 저항의 장막이 바로 그런 케이스다.

“보호 결계.”

그리고 보호 결계 역시 선택적으로 쓰거나, 거의 안 쓰는 방향으로 갔었다.

하지만 이 녀석 역시, 부수 효과에 쓸만한 포인트가 있다.

【보호 결계가 파괴될 경우, ‘황폐화’ 효과가 발동되어 반경 10m의 모든 마나가 증발합니다.】

상대가 마법계일 때, 순간적으로 마력 공급을 차단하기에 매우 좋다.

특히 마력이 부족한 상태일 때, 황폐화 효과가 적용되는 필드라면 더더욱 수급에 차질을 빚을 터.

변수 창출에는 좋다.

다만 강후가 그간 보호 결계 자체를 딱히 쓸 일이 없었던 이유는 하나였다.

극단적인 공격, 약칭 ‘극공’모드로 늘 전투를 치러왔기 때문이다.

당장에 무지막지한 괴력을 가졌던 전종두도 물러서지 않고 정면승부로 끝냈다.

하지만 강동현이라든가, 좀 더 까다로운 적을 만난다면 활용 가치는 급상승할 것이다.

“환각이나 처세술도 정말 제한적으로 썼네. 안 돼, 안 돼. 레퍼토리의 고정이 좋은 건 아니지.”

탁! 딱!

강후가 주의를 환기하듯 손가락을 튕겼다.

레퍼토리가 뻔해지면, 눈썰미가 좋은 적에게는 순식간에 잡아먹히고 만다.

그런 식으로 강후가 제압한 적도 많지 않았던가. 반대 케이스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 * *

2시간이 흘렀다.

강후가 탐색 기록을 남기기 위해 챙겨온 무지 노트의 열 장이 빼곡하게 채워졌다.

던전 내부는 전자기기의 활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구식 기록을 활용해야 하지만.

나름 옛날 감성도 느껴지고 좋았다. 글과 그림은 그 자체로 곱씹는 맛이 있다.

어쨌든 내용을 다시 훑어보니, 여기까지 이동하면서 확인한 유의미한 정보는 다 녹여낸 듯했다.

사심을 조금 보태서, 이 정도면 100점짜리 기록이라고 해도 문제없을 듯했다.

그리고.

“드디어.”

처음부터 기대하고 그려왔던 기연의 포인트가 눈앞에 있었다.

과연 뜨거운 마그마가 이미 만들어진 길을 따라 쉴 새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약 30m 정도의 간격을 두고 위아래로 마그마가 흐르는 가운데, 중간 지점에 구덩이가 있었다.

강후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구덩이 안으로 몸을 날렸다. 출구는 어차피 따로 있다.

그리고 전투가 필요하지 않은 만큼, 긴장하지 않고 훌쩍 안으로 들어갔다.

이내 강후를 반긴 것은 심판의 지옥이라는 던전의 이름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풍경이었다.

그래, 천국이나 낙원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빛과 따스함이 가득한 곳이었다.

글로 그려냈던 익숙한 풍경.

그 풍경에 맞게 원작의 기억들도 같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아울러 장시환이 누렸던 ‘호사’도 함께 기억난다.

달리는 말, 주인공 장시환에게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서 꼭 필요했던 성장의 자극제들.

이제 그것을 이 세계의 다른 존재, 진(眞) 주인공 신강후로서 가져갈 때가 왔다.

산들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들판 위에 고풍스럽게 조형된 나무 원탁 하나가 놓여 있다.

그 위에.

책이 두 권 있다.

각각 다른 책이고, 저마다 기연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정수’가 담겨져 있다.

책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사실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내용은 활성화되는 것이다.

강후의 손이 자연스럽게 오른쪽에 놓인 책으로 향했다.

이 책과 관련된 결과가 더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히든 스킬.”

헌터의 세계에 총 77가지 종류밖에 존재하지 않는 특수한 스킬! 그중 하나에 대한 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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