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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18화 (118/304)

118화 박동재 (4)

* * *

강후는 마스터키를 이용해서 일부러 다른 인질들이 갇혀 있던 철문도 모두 열어 주었다.

물론 딱 한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 주는 것은 잊지 않았다.

“문은 제가 열어 줬지만, 안전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선택은 본인들이 하는 겁니다.”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처럼 모든 인질을 안전하게 구할 수 있으면 정말 좋을 것이다.

강후도 그런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타적이지 않다 해서, 피도 눈물도 없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십수 명이 넘어가는 인질을 모두 안전하게 데리고 나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심지어 건물 안에 있는 전투 인력은 자기 혼자다.

인질로 갇혀 있는 모두가 헌터지만, 그들은 쓸만한 아이템이 하나도 없었다.

전부 오쇼 용병단에게 빼앗겼기 때문이다. 납치된 마당에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어쨌든 핵심이 될 무기가 없으면 스킬을 활용해도 화력과 전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같이 뭉쳐서 나갑시다!”

“따로 달려나가봤자, 들키면 개죽음이에요!”

“그럽시다!”

그래도 밑바탕이 헌터인 사람들이라 그런지, 생각과 의견 일치는 매우 빨랐다.

다만 일부 헌터는 강후가 철문을 열어줬음에도 안에서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것 역시도 선택이다.

그들은 무리해서 탈출을 시도하다가 죽는 것보다, 여기서 안전을 꾀하고 싶은 것일 터다.

좋은 선택이냐고 묻는다면, 강후는 무조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인질과 강후의 탈출이 성공하든 성공하지 않든, 저들은 괜한 화풀이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선택할 기회를 줬으니, 결과에 책임질 기회도 같이 준 거지.’

강후는 그렇게 남은 인질에 대한 미련을 털어냈다. 모두의 운명이 자신의 책임은 아니다.

일단 횡 이동을 활용해 은신 상태를 유지한 후, 인질들 틈에 섞여 움직였다.

그들을 방패막이로 썼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쏠릴 시선을 기다린 노림수였다.

아니나 다를까.

“인질들이 도망친다! 잡아! 반항하는 새끼는 바로 죽여도 좋다! 조져!”

탈출 행렬을 확인한 오쇼 용병단의 헌터 하나가 소리쳤다.

대장은 아닌 듯하지만, 함께 온 용병 다섯을 통솔할 수 있는 위치는 되는 듯했다.

“덮칩시다! 수에서는 우리가 앞섭니다!”

탈출하는 헌터들 틈에서 자연스럽게 명령을 내리게 된 남자가 소리쳤다. 현명한 판단이었다.

여기서 혼비백산해서 도망치면, 오히려 개죽음당하는 인원만 늘어난다.

일부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일단 덮치고, 놈들의 무기를 탈취하는 것이 차라리 빠르다.

【기교의 장막】

강후가 기교의 장막을 깔았다.

횡 이동으로 얻은 은신은 공격에 돌입하면 바로 해제되는 만큼, 더 확실히 몸을 숨기기 위해서다.

“죽여! 무기도 없는 놈들이다!”

오쇼 용병단원도 바로 맞섰다.

다들 탈출하겠다는 일념으로 달려들고 있지만, 강후는 한두 명의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봤다.

그런데 최전방에 있는 남자 둘이 마음에 걸렸다. 그들은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사명감에 푹 빠진 것 같았다.

“음.”

눈에 밟힌다.

그들의 ‘목숨’을 활용하면, 더 수월하게 용병들의 빈틈을 노려볼 수 있지만.

자신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목숨을 내어놓는 두 남자의 패기에 점수를 주고 싶었다.

냉정하게 말해 그들을 도울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효율의 문제가 있을 뿐이지.

【전광비도】

【전광비도】

연달아 전광비도 스킬을 활용하며, 품속에 있던 투척용 단검 두 자루를 날렸다.

따로 회수할 필요 없는, 살상보다는 견제와 기동 차단이 목적인 값싼 단검이었다.

홰애앵!

좁디좁은 인질들 사이를 파공음과 함께 날아간 두 자루의 단검이.

푸욱! 푸풋!

“크윽!”

“제기랄!”

두 남자의 머리를 반으로 쪼갤 생각으로 대검을 내리찍던 용병에게 적중했다.

한 명은 겨드랑이에 단검이 꽂히는 바람에 대검을 떨어뜨렸고.

다른 한 명은 손등에 단검이 꽂혀, 마지막 과정에서 검의 경로가 완전히 비틀렸다.

“아……!”

“도와주신 건가?”

두 남자가 이성을 되찾았다.

그들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강후가 방금 자신들이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기게 해 줬다는 것을.

바로 그때.

허공에서 갑자기 강후가 홀연히 나타났다.

기교의 장막의 은신 덕분에 보이지 않던 강후가 장막 밖으로 나오면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장막 밖으로 나가면 그 즉시 은신 효과가 사라지면서 장막이 없어지고, 2배 향상된 이동 속도를 2초 얻습니다.】

기교의 장막 밖에서 얻을 수 있는 속도 강화의 이점을 누리며.

푸화아악! 푸화악!

대참수와 연계한 단검 공격이 일거에 두 용병을 덮쳤다.

워낙 가까운 곳에서, 그것도 소리소문없이 나타나 목을 그어버리고 지나가 버린 상황.

“끄윽!”

“컥.”

용병 둘이 뒤늦게 자신의 목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고, 서둘러 상처를 지혈하려고 했지만.

푸슈슈슛!

혈관을 뚫고 솟구쳐나오는 혈류가 훨씬 더 강했다. 피가 봇물 터지듯 전방으로 분출했다.

“이 새끼다!”

남은 용병 셋이 강후의 존재를 인지하고는 공격의 방향을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방금 죽은 두 용병이 떨어뜨린 두 자루의 대검이 고스란히 인질의 손에 넘어가면서, 상황이 더 좋지 않아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다, 빠지자!”

“연막탄 던져!”

앞서 목숨을 잃은 둘보다는 판단이 빠른 용병 하나가 연막탄을 터뜨렸다.

그 바람에 지하 4층 일대는 온통 연기로 가득 찬 아수라장이 됐다.

연기에 휘말린 건, 강후도 마찬가지.

야시나 다른 형태로도 시야 확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강후에게는 일반적인 경우와 다른 형태로 적의 위치를 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바로 성좌 스캔 능력.

도망치는 용병 셋은 저마다 성좌 계약이 있었고, 그 덕분에 붉은 점이 머리 위에 보였다.

즉, 보이지 않아도 표적으로 삼을 지점과 방향은 얼마든지 특정할 수 있었다.

“후.”

심호흡을 한 뒤.

쉬이이익!

전력을 다해 2등급 단검, 타락한 신념을 전광비도로 투척했다.

지정한 한 개의 ‘인식 무기’를 회수할 수 있는 장갑, 몰리스 마니체를 믿고 던진 일격이었다.

그리고.

“어커헉!”

목덜미에 타락한 신념이 정통으로 꽂힌 오쇼 용병단원 하나가 즉사했다.

한 치의 오차 없이 정중앙을 뚫고 들어간 단검은 경추를 그대로 작살 내버렸다.

“씨, 씨, X발……!”

“뭐야, 저 새끼? 도대체 뭐냐고!”

인질을 제압하겠답시고 기세등등하게 현장에 나타난 용병 다섯의 끝은 한심했다.

셋이 죽고, 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뺐다.

얼마나 급했으면 자동 잠김 상태가 되도록 제대로 닫았어야 할 문도 내팽개친 채로였다.

그 덕분에 놈들의 도주 경로가 고스란히 강후와 인질의 탈출 경로로 바뀌었다.

총체적 난국.

애초에 용병단의 잔당으로 이름값을 제외하면 어중이떠중이가 모인 것이나 다름없는 그들이었다.

특히 조직에 대한 애착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들에게 수습은 먼 나라의 얘기였다.

그렇게 안에서, 밖에서.

인질 장사로 불로소득을 취하던 오쇼 용병단의 운명은 종막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 * *

인질 사망자 제로.

용병단 사망자 다수.

강후가 예상했던 것보다 상황이 훨씬 더 좋게 흘러갔다.

예상에 없던 변수가 하나 더 있었던 탓에 좋은 방향으로 상황이 풀렸던 것이다.

‘잔당을 규합했다고는 해도, 나름 체계나 사명감 정도는 남아 있을 줄 알았는데.’

적의 상태가 너무 심각했다.

지나치게 이기적이었다.

그래서 얼마든지 강후의 추격이나 인질의 탈출을 방해하고 어렵게 만들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고 그저 제 목숨 하나 부지하겠다고 뒤도 안 보고 내뺐다.

물론 한 놈은 그래도 정신이 제대로 박혀 있었다.

지하 2층의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치게 된 대장.

전종두의 심복 중 한 명이었던 녀석으로 이름은 박준. 강후와 같은 암살자 계열의 헌터였다.

짧게 자른 스포츠 머리에 수십 개는 족히 넘어가는 입술과 귀의 피어싱이 인상적인 남자였다.

박준이 강후를 보자마자 적의를 드러냈다.

“네가 인질들을 제멋대로 풀어 준 개새끼구나.”

“네가 인질들을 제멋대로 가둬 둔 개새끼구나.”

했던 말 그대로 돌려주기.

속 긁기에는 무엇보다 가장 좋은 방법이다.

강후는 박준과의 거리를 가깝게 두고 있었다. 약 10m 정도.

암살자 대 암살자의 전투면,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코앞까지 닿을 거리였다.

그것을 서로 인지하고 있어서인지, 가까운 거리임에도 묘한 대치의 기류가 흘렀다.

“네놈 때문에 장사를 통째로 날렸어. 물론 널 죽이면 복구하고도 충분히 남을 듯하지만 말이야.”

‘성좌가 좀 흥미롭군.’

강후가 성좌 스캔에 걸린 박준의 성좌 정보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러자 박준이 쏘아붙였다.

“너 이 새끼, 남자 좋아하냐? 날 보고 입맛은 왜 다시는 거냐?”

“맛있을 것 같으니까.”

“허…… 이거 또라이네.”

“좋은 재료를 갖고 있어도 요리를 못하면 맛이 없을 수밖에 없지. 네가 딱 그래.”

“무슨 말을 지껄이는 거야, 이 호모 새끼가.”

박준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강후가 언급한 ‘맛’의 의미를 생각하는 듯했다.

어쨌든 강후가 자세를 살짝 낮추고, 박준의 움직임에 대응할 준비를 마쳤다.

암살자 대 암살자의 전투는 장기전이 거의 없다. 단기전, 혹은 초단기전으로 끝난다.

그래서 솔라키움을 따로 섭취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

어지간해서는 선공을 즐기는 강후지만, 이번만큼은 박준을 상대로 신중함을 유지했다.

박준은 앞서 다른 용병 부하들을 열심히 베던 강후가 신중해지자, 코웃음을 쳤다.

“네 녀석이 어떻게 우리 대장을 죽였는진 모르겠지만. 아마도 뭐 운이 좋았던 거겠지.”

“그랬을지도.”

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이 워낙에 방심을 많이 하는 타입이라서 말이야. 내가 누누이 말을 했지만 안 고치더군.”

“박준. 우리 여기서 조용히 평화 협정을 맺고 각자 물러서는 건 어떻게 생각해?”

“뭐?”

“서로 힘 빼고, 괜히 목숨 내놓을 필요가 있나? 서로 모른 척만 하면 나는 탈출하고, 너도 살길 찾으면 되잖아.”

“병신이! 잔뜩 쫄아 가지고 주둥이로 못 하는 말이 없네!”

암살자로서 자신의 실력에 제법 자부심이 큰 박준은 강후가 겁을 먹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전종두의 죽음은 그 이후로도 모두에게 풀리지 않은 난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레벨 높고, 피지컬 좋은 전종두가 일대일 전투에서 졌을 리 없어서다.

그래서 다들 전투 직전에 강후가 은신으로 은밀히 접근했고.

생기 흡수로 전투력을 끌어올리기에 골몰하고 있던 전종두가 은신을 놓친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주의에 따른 빈틈 노출로 인한 어이없는 사망. 그럴듯한 결론이었다. 실제와 전혀 다르지만.

강후의 소극적인 대응은 호전적인 박준에게 바로 자극이 됐다.

원래 간을 보면서 공격의 타이밍을 잴 생각이었지만, 이쯤이면 선공이 확실히 이득일 듯했다.

그때.

파앗!

강후가 먼저 움직였다.

도약과 함께 단검을 앞으로 내지르며, 정면으로 승부를 걸어오는 정공법을 택한 것이다.

‘멍청한 놈.’

박준은 당황하지 않았다.

자신의 장기가 바로 이런 공격을 무위로 돌아가게 만드는 신속한 회피였으니 말이다.

심지어 성좌의 효과까지 받아서 궁극기 스킬로 변환까지 되어 있는 것이 회피 스킬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

회피 스킬이 발동되지 않았다.

“X발.”

박준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강후의 다섯 번째 성좌 특전.

공간 이동 스킬 제한에 완벽하게 당했다는 것을 그는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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