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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17화 (117/304)

117화 박동재 (3)

* * *

영상통화 자체로 모든 검증이 끝났다.

강후는 전세혁을 아주 간단하게 위치를 바꾸어 주었다. 모두가 그것을 직접 확인했다.

질문을 더 할 것도, 이유를 물을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상황이기도 했다.

얼마 후.

다시 사무실로 돌아온 전세혁이 놀란 표정으로 강후와 자신의 몸을 번갈아 보았다.

깔끔한 순간이동이었다.

이질감이 들지도 않았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몸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지도 않았다.

마치 원래 있었던 것처럼 순식간에 옥상으로 이동해 있었을 뿐. 그게 전부였다.

“이게 동재를 구할 수 있다는 확신의 근거였군요.”

“이해가 되십니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가졌던 의구심에 대해서 사과를 하고 싶군요.”

전세혁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그의 동료들도 앞을 다퉈 고개를 숙이고는 강후에게 사과의 의사를 전했다.

애초에 이런 사소한 것은 마음에 담지도 않을뿐더러, 억지로 문제시하지도 않는 강후다.

그래서 괜찮다는 듯, 가볍게 코웃음을 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해프닝인 셈 치자는 얘기였다.

그때, 대화의 흐름 속에서 빈틈을 하나 발견한 반세영이 강후에게 말했다.

“잠깐. 근데 한 가지 놓친 게 있는 것 같아. 오빠, 방금 그 스킬로 오빠도 빠져나올 수 있어?”

반세영은 박동재의 안전만큼이나 강후의 안전이 신경 쓰였다.

인질을 구출하겠답시고, 구출하려는 사람이 위험에 빠지면 안 되잖은가. 그게 마음에 걸렸다.

“확실하게 동재 씨를 구하려면, 나는 발품을 팔아서 나와야 돼.”

“역시. 거봐, 거봐. 이러면 오빠가 인질이 되는 거랑 뭐가 달라? 위험하잖아.”

걱정해 주는 반세영의 마음이 고마웠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같을 것이다.

“그래서 같이 움직이는 거잖아. 내가 탈출 페이즈로 갈 때, 외부에서 공격을 하려고 하는 거고.”

“하지만…… 그 건물에는 오쇼 용병단원이 25명이나 있어. 대장 노릇을 하는 놈도 레벨 200이고.”

“어차피 보호용 결계도 거의 없고, 감시 시스템의 구축이 절반도 안 됐지. 빈틈은 많아.”

“진짜 괜찮을까?”

“박동재 씨 구한다고 내 목숨을 버리려고 가는 거 아니니까, 괜히 앞서 나가서 생각하지 마.”

강후가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브리핑을 할 때.

강후가 박동재에게 순간이동을 써도 문제없다고 생각한 이유는 하나였다.

그곳을 지키고 부하들을 컨트롤 할 대장의 레벨이 썩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무난한 압승을 담보하진 않지만, 적어도 죽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은 가능했다.

한 가지 문제만 해결하면 될 듯했다.

사람들에게 시연을 보이느라 순간이동 능력을 쓴 만큼.

하루의 대기시간이 필요해졌다.

그 문제만 해결되면, 박동재 구출 작업의 가장 중요한 퍼즐은 준비되는 셈.

“동선 크로스체크를 다시 해 보죠. 내부와 외부에서 어떤 형태로 호응할지도 정리하고.”

강후가 다음 화제로 돌렸다.

구출은 소꿉장난이 아니다.

아무리 완벽한 계획 같아도 현장에서는 언제든지 변수가 생기기 마련.

꼭 필요한 인연을 안전하게 구출하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전세혁으로부터 쓸만한 던전을 당당히 요구하기 위해서라도.

강후는 프로페셔널하게 상황에 임하고 싶었다. 그리고 전략 회의는 날이 새도록 계속 진행됐다.

* * *

다음 날 밤.

“먹어라.”

투둑.

대충 보리밥과 된장만 풀어놓은 국물. 김치 몇 조각을 넣은 플라스틱 식판이 앞에 놓였다.

매일 복사 붙여넣기를 하나 싶을 정도로 반복되는 식단은 벌써 한 달째였다.

“…….”

“안 먹어? 가져간다?”

철문 밖의 남자는 안에 갇힌 남자를 조롱하듯 식판을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

철문 하단에 식판만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공간. 거기서 짓궂게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이곳은 강원도 양양 외곽에 위치한 오쇼 용병단 ‘잔당’의 비밀 아지트였다.

동시에 아직 완공은 덜 된, 하지만 인질을 수용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건물이었다.

“먹을게요.”

남자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식판을 잡아끌었다. 먹어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다른 것보다 밖에서 자신을 죽지 않게 하려고 힘을 쓰는 동료들이 있잖은가.

아직도 자신이 수술대가 아니라 차가운 독방에 있을 수 있는 것이 전세혁 덕분이라는 것을.

남자, 박동재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전세혁이 비싼 돈을 지불하고 목숨을 연장해 주고 있다.

“네 친구인지 친한 형인지 하는 그 인간은 호구 아니냐? 무슨 돈을 달라는 만큼 팍팍 주고, 그것도 칼 입금을 하냐? 낄낄낄.”

철문 밖의 남자, 간수는 이 상황이 재밌는 모양이었다.

그렇겠지. 그저 사람 하나 데리고 있을 뿐인데, 수억의 돈이 1주 간격으로 계속 꽂히니 말이다.

그것이 다 여기 있는 오쇼 용병단원의 주머니로 분배되어 들어갈 테지.

여기엔 자신처럼 갇혀 있는 인질이 열다섯 명 정도는 족히 되는 듯했다.

그러면 한 달에 각각의 용병단원이 수억 원의 돈을 챙겨가는 것도 어렵지 않은 그림이다.

간수가 말을 이었다.

“당분간 다이어트 한다 생각해라. 너무 잘 먹는 것 같으면 돈을 빠릿빠릿하게 입금을 안 하거든.”

“…….”

“적당히 가슴을 벌렁벌렁하도록 해 줘야, 마음이 급해져서 빨리 돈을 입금하지.”

“개새끼들.”

“그래, 열심히 욕해라. 그 정도는 너무 자주 들어서 이제는 감흥도 없다.”

휘이이이- 휘이이이-.

간수가 휘파람을 불면서 유유히 어디론가 사라졌다.

늘 그랬듯, 이 지하 공간의 끝자락에 설치해 둔 TV를 보며 기분 나쁜 웃음이나 터뜨리겠지.

박동재가 꽁보리밥을 입에 욱여넣고는 열심히 씹었다.

포기해선 안 된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자신을 생각하고 도와주는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약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라운드 제로를 가지 말았어야 했어. 거기서 나 같이 호기심 많은 헌터를 노리는 새끼들이 있을 줄은.’

그게 화근이었다.

워낙 그라운드 제로 쪽에 흥미를 자극하는 요소들이 많다 보니, 혼자 갔던 게 문제였다.

‘핫 플레이스’라고 불리던 곳에 까쉬마르 길드의 헌터들이 위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러시아의 헌터들이 여기까지 왔는지는 의문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랬다.

납치당한 사실조차 알지 못하게 정신을 잃었고, 눈을 떠보니 여기였다.

처음에는 주변에서 온통 러시아어가 들려서 러시아까지 끌려온 건가 싶었는데.

다행히 국내였다.

다만 여기가 어딘지, 도대체 무슨 용도의 건물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바로 그때.

쿠웅! 쿠쿵!

솨악! 솨아악! 푸욱!

푸슈슈슈…….

철문 밖의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한바탕 소음이 일었다.

앞의 두 번은 묵직한 뭔가가 바닥에 연달아 떨어지는 소리였고.

이어서 들린 세 번의 소리는 베이고, 또 베이고, 이어서 깊게 찔린 듯한 소리였다.

그것은 분명히 사람이나 동물의 살점을 베고 찌를 때 들을 수 있을 법한 소리였다.

그다음, 마지막.

그 소리는 사람의 몸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올 때 나는 소리였다.

어설프게 흘러나오면 저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 핏줄이 터지듯이 피가 쏟아질 때 이 소리가 난다.

“크컥. 컥. 커컥…….”

저벅. 저벅. 저벅.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간수의 신음이 점점 가까워지는 누군가의 발소리에 묻혔다.

다음 순간.

“박동재 씨. 어딥니까.”

여기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자신의 이름이 불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자신을 찾고 있었다.

“여, 여깁니다!”

삑. 삐리리릭.

이윽고 뭔가가 철문에 닿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굳게 잠겨 있던 철문이 열렸다.

천만번을 잡아당겨도 절대 열릴 일 없을 거라던 두꺼운 철문이 저절로 열리는 순간이었다.

철문 밖에서 마주하게 된 목소리의 주인공은 전세혁도, 전세혁의 동료들도 아니었다.

박동재에게는 완전히 초면인 사람의 얼굴이었다.

이 사람은 왜 나를 구하러 온 걸까? 전세혁의 부탁을 받은 걸까? 그렇다면 실력자일까?

생각이 확장되려는 찰나, 박동재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생각해 보니 철문을 나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어찌 보면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지하 4층에 위치한 이곳을 탈출하기 위해선, 반드시 1층의 로비까지는 가야 하기 때문이다.

오쇼 용병단의 보초들이 무사히 통과시켜줄 리 없다. 전투는 피하기 어렵다.

“전세혁 씨를 만나는 대로 바로 행동하라고 전하세요. 전 이제 밑에서부터 치고 올라갈 거니까.”

“예? 어떻게 만…….”

박동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강후는 그에게 순간이동을 사용한 후였다.

세이브 포인트를 외곽의 약속된 지점으로 미리 조정해 둔 상태라, 재회는 순식간에 이뤄졌다.

차디차고도 퀴퀴한 냄새가 물씬 풍기던 지하 감옥을 벗어난 것이다.

어안이 벙벙해진 박동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익숙하고도 반가운 얼굴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전세혁과 반세영.

그리고 형 동생 하면서 친하게 지내던 헌터들이 바로 앞에 있었다.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믿기지 않았다.

그렇다면 방금 자신을 구한 은인이 자연스럽게 밖으로 이동시켜줄 스킬을 썼다는 걸까?

들고 있던 무기는 분명 단검.

순간이동과는 거리가 먼 직업군 같았는데, 가늠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심지어 순간 이동한 거리는 아무리 짧게 잡아도 700m 이상은 되는 듯했다.

이런 공간 이동 스킬을 보유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마법사 직업군이어도 어려운 스킬이다.

일단 재회의 기쁨은 잠시 접어 두고.

박동재는 그가 한 말을 떠올리며 전세혁에게 말했다.

“바로 행동하라고 했어요. 밑에서부터 치고 올라가겠다고!”

“그래. 이제부터 시작이다. 널 구했으니, 이제 너를 구하러 갔던 선규 씨를 빼낼 차례다.”

“아…….”

그제야 박동재는 알 수 있었다.

‘선규’라는 남자가 스스로를 일단 희생해서 박동재 자신을 먼저 구출했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부터 그가 험난한 탈출 과정들과 맞닥뜨려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아무리 구출에 자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위험에 빠뜨려가면서까지 초면인 사람을 구할 수 있는 헌터가 얼마나 될까.

스스로에게 질문해도, 선뜻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이었다. 사람의 목숨은 누구나 하나니까.

“시선을 분산시키면 돼! 최대한 어그로를 끌어! 어차피 여기 있는 새끼들을 죽이는 게 주목적이 아니니까!”

전세혁이 모두에게 다시금 목적을 환기시켰다.

오쇼 용병단의 잔당을 토벌하러 온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박동재를 구하러 온 자리다.

박동재는 구했고, 이제 강후의 안전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

상대를 정신없이 만드는 게 중요했다.

그때.

“큭.”

반세영이 피식 웃었다.

강후를 떠올려보니 문득 떠오른 단어가 있었다. 이 말이 너무 잘 어울리는 헌터인 것 같달까?

왠지 소설 제목으로 지어도 손색이 없을 듯한, 그럴듯한 수식어가 생각났다.

“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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