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박동재 (2)
* * *
다시 전세혁과 통화를 했다.
강후로서는 일단 박동재의 안전을 100% 확보할 수 있는 계산이 섰기 때문에 대화는 순조롭게 풀렸다. 물론 문제가 하나 있긴 하다. 바로 자신의 안전에 대한 문제.
“일단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박동재 씨를 제가 만나기만 한다면. 탈출은 100% 보장합니다.”
- 100%요?
“네. 가능해요.”
- 어떤 방법인지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건 착수하게 되면 말씀드리죠. 지금 말할 이유는 없는 것 같네요.”
강후가 적당히 선을 그었다.
전세혁을 못 믿는다기보다, 일에는 순서와 단계에 맞는 대화가 있기 마련이다.
시작도 안 했는데, 끝이 어떻게 될지를 알려 주는 건 강후의 스타일과 맞지 않았다.
특히 주도권을 갖고 자기 페이스로 끌고 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성격이니 더더욱.
- 일단 세영이도 움직일 거고, 저와 뜻을 함께하는 동료도 일부 움직일 겁니다.
“믿을 만한 분들인가요?”
- 저보다 더 믿을 수 있는 친구들입니다. 전부 다 동재를 알아요. 아끼는 형들이기도 하고.
“인원이 너무 많으면 독이 되겠지만, 적당해서 나쁠 건 없죠.”
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질 구출은 머릿수로 하는 것이 아니다.
수틀렸을 때 언제든 인질의 목숨을 취할 수 있는 적이라면 더욱 그렇다.
- 동재를 말씀대로 확실하게 구해 주시면 전에 갔던 미로 던전 소유권도 드릴 수 있습니다.
“그건 좀 불합리하네요.”
- 예?
“혼자 갈 수 없는 던전이잖습니까. 소유권을 받아도 받은 게 아니죠. 팀을 짜야 하는데.”
정곡을 찔렀다.
물론 전세혁이 나쁜 의도로 이런 제안을 꺼낸 것은 아닐 터다.
던전이라도 줄 수 있을 만큼 박동재가 중요하고, 대가를 치를 준비도 됐다는 거겠지.
마음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제안에 빈틈이 있으니 바로잡을 수 있도록 따끔하게 지적을 할 뿐이다.
그의 마음을 이해한다 해서, 할 말을 하지 않는 우유부단함은 자신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 다른 던전도 있습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군요.
“어쨌든 직접 뵙고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타깃이 될 장소가 어딥니까?”
- 강원도 쪽입니다. 오쇼 용병단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까쉬마르 길드가 아니고요?”
- 그게 뒷사정이 좀 있습니다.
“그럼 올라오시죠. 저, 수원역에 있습니다. 여기가 적당할 것 같은데.”
- 알겠습니다. 올라갈 준비가 되는 대로 바로 연락드리죠.
“그럼.”
통화가 끝났다.
아직 심판의 지옥 공략까지는 시간이 남은 만큼.
박동재를 구하는 일에 참여해도 문제는 없을 듯했다.
다른 사람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구출 계획에 회의적이었겠지만.
박동재는 얘기가 다르다.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고, 안영호만큼이나 자신에게 빚진 마음을 얹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인연은 단순한 선의로만 굳건해지지는 않는다. 때로는 마음의 채무를 만들어 줄 필요도 있다.
그것이 무의식중에 더욱 인연을 결속되게 해 준다. 사람 마음이란, 그래서 간사하다.
착하게 정성을 다하기만 하면, 그 속에 담긴 진심을 알아줄 것이다? 소설에서나 나올 헛소리다.
“전세혁이 정보를 입수하고 허술하게 그림을 짰을 것 같지는 않고. 잠입은 문제가 아닐 거야.”
강후의 계산에서 박동재의 구출은 변수가 아니었다. 상수였다.
순간이동 능력을 활용하면 그는 안전하게 내보낼 수 있다.
문제는 자신이다.
하루에 한 번밖에 쓰지 못하는 순간이동 능력인 만큼, 자신의 탈출이 관건이었다.
* * *
“차라리 선규 오빠에게 던전을 주느니, 그 던전을 처분해서 용병을 잔뜩 사는 게 낫지 않아?”
“불꽃놀이를 말하는 거냐.”
“어! 그게 더 싸게 먹힐 것 같은데. 선규 오빠를 나쁘게 보는 게 아니라, 비용적인 측면을 보는 거야.”
“동재는 인질이야. 오쇼 용병단의 더러운 새끼들이 수틀리면 목 안 날릴 것 같아?”
“음…….”
“걔네는 어차피 인생 막장이야. 그래서 인질에다가 빨대라도 꽂으려고 하는 건데. 그게 어그러질 것 같으면 뭐부터 하겠냐고.”
“그건 또 그렇네.”
전세혁에게 다른 방향으로 의견을 내려던 반세영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인질 여럿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고 동재를 어떻게든지 살리려는 건데. 물량 공세가 답이 아냐.”
“오빠, 다른 암살자 인맥도 꽤 있지 않아? 실력 있는 암살자 인맥 말야.”
“있지. 하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자기가 짊어질 것들이 많아서 거절하더군.”
“하긴…… 그렇네.”
이해가 갔다.
은신, 잠입에 특화된 암살자 직업군이 아니면 티 나지 않게 건물에 들어가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전면전 중에 정신이 없으면 몰라도, 평소의 접근은 암살자 직업군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그렇기에 전세혁의 암살자 인맥들은 전부 거절했다.
리스크도 너무 높고.
무엇보다 인질을 살려서 데리고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지켜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곧 부담이다.
만약에 침투 후 암살 또는 정보 폐기나 탈취가 목적이었으면 지원이 줄을 섰겠지만.
인질 구출이었기에 여기서 모두 거절 의사를 밝혔다. 박동재에 대해 그만큼 간절하지도 않았고.
“무슨 계획일지 궁금하네. 동재의 탈출을 100% 보장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가능한 걸까.”
전세혁이 아무리 생각해도 사라지지 않는 물음표였다.
강후가 허풍을 떨거나, 되지도 않은 확언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그가 더 잘 알았다.
분명 자신이 있어서 하는 말일 텐데,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99%도 아니고 100%면, 도대체 뭘까?
전세혁이 반세영을 쓱 보자,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오빠가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알아? 선규 오빠의 자신감을 믿어 보자고.”
“다른 제안을 빨리 고민해 봐야겠군.”
“동재 오빠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잖아. 일단 그것만 생각하자.”
“그러게. 명색이 400레벨을 코앞에 둔 헌터가 아끼는 동생 하나 직접 구하지를 못하네.”
“원래 사람은 다 특화된 재주가 있는 거라. 너무 자책하지 마, 오빠. 난 멍청해서 이런 계획 잘 못 세워.”
“그건 그렇지.”
“뭐야, 고민을 잠깐도 안 하는 그 빠른 인정은…….”
전세혁의 마음을 달래 주려다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의문의 1패를 당한 반세영이었다.
* * *
만남은 빠르게 이뤄졌다.
전세혁이 팀을 꾸리고 있던 와중이라, 그 길로 전부 수원역으로 출발했던 것이다.
올라오는 동안에 전세혁이 미리 통째로 대여를 마친, 보안용 사무실에서 만남이 성사됐다.
전세혁의 안내를 받으며, 그가 데려온 일행과 인사를 나눴다.
다들 서글서글한 눈빛으로 강후와 악수를 하기는 했지만.
믿음이 묻어나는 전세혁, 반세영과 달리 의심 어린 눈빛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강후의 레벨이 이제 막 100을 넘겼다는 것을 들은 터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여기 있는 모든 구성원 중에 강후의 레벨이 가장 낮은 셈이었는데.
핵심 역할을 할 사람이 강후이기에 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내색하는 사람은 없었다.
강후의 자리를 자신 있게 대체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헌터가 한 명도 없었으니까.
암살자 계열도 없었고, 강후처럼 확률 100%로 박동재를 구한다고 확신하는 사람도 없었다.
브리핑은 전세혁의 주도로 진행됐다.
강후는 브리핑에서 공유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어떻게 잠입할지 계획을 세워볼 생각이었다.
일단 생각보다는 간단했다.
침투 경로에 대한 계산은 전세혁이 이현석에게 건네받은 내부도 덕분에 쉽게 풀렸다.
애초에 인질 수용 공간이 건물 완공이 된 것이 아니라, 공사 도중에 들어간 것이라서다.
갑작스런 김수경 용병단의 기습과 강후의 활약으로 전종두가 죽은 탓에 생긴 변수였다.
그래서 1층에서부터 지하로 내려가는 환풍구 라인에 보안상의 허점이 있었다.
또한.
김수경 용병단을 통해서 전세혁이 내부자로부터 마스터키를 구했다고 했다.
인질이 갇힌 보안용 문을 직접 딸 일은 없어진 셈이다. 마스터키로 여는 것이 가능했다.
‘오쇼 용병단이 피를 나눈 전우애가 끓는 조직은 아니지.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흐름이야.’
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배신자가 난무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 없는 그림이기는 했다.
만약 끈끈한 조직이었다면 내부자의 협력이 아니라, 오히려 함정일 수도 있다고 봤겠지만.
그들의 결속력을 생각하면 돈에 혹해서 외부에 있는 정보, 없는 정보 다 퍼 주는 것이 확실했다.
최종적인 점검을 마친 전세혁이 강후에게 화제를 돌렸다.
가장 핵심이 될 얘기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퍼즐에 대한 의문을 풀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선규 씨에게 조심스럽게 설명을 요청합니다.”
“일단 사전 준비는 완벽하게 된 것 같네요. 보안이 허술한 루트도 있고, 마스터키도 있고.”
“그렇죠.”
“인질 구출 후. 제가 탈출하는 과정에서 팀 전체가 외부에서 주의를 확 끌어주실 거고요.”
“그것도 맞습니다.”
내용인즉, 강후가 박동재를 내보내고 탈출을 시도할 때.
전세혁이 이끄는 팀이 외부에서 임시 수용소를 기습, 그들의 전력을 분산하겠다는 것이다.
어쨌든 적 전력이 나뉘게 되면, 강후에 대한 집중도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저를 의구심 어린 눈빛으로 보고 계신 시선이 유쾌하진 않네요.”
강후의 말에 정곡을 찔린 다른 팀원들이 애써 시선을 외면했다.
그들의 속마음을 탓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의심할 수밖에 없다.
레벨 100대의 암살자인 자신이 어떻게 박동재의 100% 탈출을 확신하는지 궁금하겠지.
아니,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둘째치고 어떤 그림이면 될지 심지어 가늠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암살자 직업군이 잠입에 특화된 것은 맞지만, 동행자 보호에는 오히려 약점이 많은 쪽에 가깝다.
의심을 푸는 방법은 간단하다.
증명하면 된다.
강후도 그것을 잘 알기에 시연을 해 줄 참이었다. 다만 그 전에 하고 싶은 말을 먼저 한 것이다.
당신들이 자기에게 무엇을 생각하든, 그 이상을 해낼 자신이 있다고 어필하는 것이기도 했고.
“세혁 님. 잠시 몸을 좀 빌려도 될까요?”
“……예?”
“그냥 딱 한 번만 어깨를 터치할 겁니다. 그것만 동의해 주시면 됩니다.”
“저야 어렵지 않…….”
【순간 이동하겠습니까?】
【1인의 이동이 성공할 확률은 정확히 100%입니다.】
말이 끝나기 전에 강후가 전세혁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성좌의 능력을 활용했다.
다음 순간.
“어?”
“뭐, 뭐야?”
모두의 시야에서 전세혁이 사라졌다. 소리 없이 조용하게 사라졌고, 작은 바람도 일지 않았다.
“어, 어, 어떻게 된 거예요? 세혁 오빠 어디로 간 거예요? 은신 같은?”
“틀렸어.”
반세영의 헛발질에 강후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눈짓으로 반세영이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가리켰다.
“스마트폰이 왜요?”
“영상통화라도 걸어보라고.”
강후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 반세영이 바로 전세혁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그러자 곧바로 전세혁이 전화를 받았고, 그를 둘러싼 뒷배경이 화면에 잡혔다.
“오빠? 어디야?”
“지금 내 카메라에 우리가 있던 사무실 창문이 잡히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
그리고 모두가 볼 수 있었다.
방금까지 사무실에 함께 있었던 전세혁이 반대편 빌딩 옥상에 있는 것을.
그 순간, 확률 100%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그리고.
“말도 안 돼.”
누군가가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