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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12화 (112/304)

112화 기연 가로채기 (2)

중독 억제.

중독을 방어해 주는 효과다.

물론 중독 상태가 풀리는 것은 아니라서 언젠가 해독제를 먹어야 중독이 풀린다.

하지만 중독으로 가는 것은 막아 주니, 반쯤 면역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회복 억제.

이것은 이 효과를 보는 상대에게 공격을 받을 경우.

상대의 체력이 전체 75% 이상이면 어떤 회복 기전도 통하지 않게 만드는 효과다.

예를 들어 총 체력 100인 헌터가 회복 억제 효과를 가진 강후에게 대미지를 입어 80이 됐다.

이때는 체력이 전체의 75% 이상이므로 포션도, 회복 스킬도 통하지 않는다.

회복 억제 시간은 30분으로 긴 것은 아니지만, 전투라는 특수 환경에서 보면 매우 길었다.

이것은 의미하는 바가 컸다.

보통 실력 있는 헌터는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초반부터 꼼꼼하게 체력을 회복시킨다.

나중에 한꺼번에, 드라마틱하게 체력을 올려주는 스킬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있다고 하더라도, 곁에 네임드 타이틀을 달고 있는 힐러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한데 회복 억제가 걸린 ‘디버프’ 상태로 있으면 초반부터 회복을 시도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회복을 시도할 수 있는 고점이 확 낮아지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심리적으로 쫓기게 된다.

‘중독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 헌터도 많으니까. 중독 억제는 의미가 크지.’

회복 억제도 좋지만, 강후는 중독 억제를 좀 더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이것 덕에 강후에게는 더욱 힐러가 필요 없게 됐다.

보통 그들의 역할이 면역 능력을 부여하거나, 중독 상태를 해독해 주는 것인데.

애초부터 면역이 있으면 힐러의 손길을 요청할 일이 없다. 체력의 회복 방법은 강후에게도 있고.

앞으로 곁에 필요한 파트너의 직업군 중, ‘힐러’에는 빨간 줄을 그어도 될 듯했다.

냉정하게 말해서 있으면 짐이고 경험치 도둑일 뿐이다.

물론 구원의 성녀, 엘리자베스 같은 전투형 힐러라면 얘기가 전혀 달라지겠지만.

어쨌든 이번에 목걸이를 대폭으로 업그레이드하면서, 자연스럽게 맷집이 500을 넘었다.

정확히는 545.

이 정도 수치면 레벨 75 미만의 헌터로부터 받는 물리 공격 대미지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시스템 영향을 받는 스탯의 개념 속에서 발생하는 약육강식, 강자생존의 규칙인 셈이다.

스킬의 ‘마법’ 대미지는 그대로 들어오겠지만, ‘물리’ 대미지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

‘칼 든 잔챙이들은 이제 충분히 무시해도 될 수준이야.’

강후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저레벨 구간에는 유독 검사 계열이 많다. 많은 만큼 질이 나쁜 녀석도 비례해서 많고.

앞으로 그런 녀석들과 꼬일 때, 착실히 쌓아둔 맷집 스탯의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겠지.

* * *

유청화로부터 역신의 숨결 목걸이에 대한 인증서와 신투 길드의 공인 보증서를 받은 후.

작별 인사를 나누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할 즈음. 그녀가 다시 운을 뗐다.

“저기.”

“네.”

“우리 길드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생각 없어요?”

“네, 아직은 진지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너무 단호한데요?”

“신투 길드의 명암을 잘 아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썩 내키지 않는 곳인 것은 알 겁니다.”

강후의 솔직한 대답에 유청화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가 펴졌다.

강후는 알고 있었다.

신투 길드에 들어가면 제대로 밀어주긴 하지만, 그 대신 절대로 길드를 나올 수는 없다는 것을.

겉보기와 다르게 신투 길드는 인재에 대한 집착이 상당한 길드였다.

특히나 길드 마스터인 고천영은 원작에서도 인정한 또라이 중의 또라이였다.

인재를 가질 수 없으면, 남 좋은 일 하도록 살려둘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원칙이었다.

정화 길드도 신투 길드 앞에서는 명함을 내밀 수 없을 만큼, 어둡고, 아니 정말 더러웠다.

유청화는 철저하게 대외비에 붙이고 있는 고천영의 기행을 강후가 설마 아는 걸까 싶었지만.

그럴 리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마도 메이저한 길드에 대한 일반적인 반감 같은 것이겠지.

“알겠어요. 인연이 닿는다면 또 만날 수 있기를 빌어요.”

“좋은 물건 잘 봤습니다. 여유가 되면, 또 사러 오죠. 마음에 드는 게 많네요.”

“언제든지 환영해요! 올해는 상설 매장으로 운영할 거니까, 저도 어디 안 갈 거예요.”

“알겠습니다.”

띠잉.

이내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강후가 유청화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그 광경은 마켓에서 수시로 볼 수 있는 판매자와 구매자의 평범한 작별 광경이었지만.

“……내 마지막 시도까지 막힐 줄이야.”

유청화는 강후가 충분히 느슨해졌다고 생각한 때에도 통하지 않은 정신 통제에 입술을 삐죽였다.

어지간해선 사람에게 흥미를 갖지 않는 그녀에게 묘한 집착을 불러일으키는 인재가 생겼다.

물론 그녀는 강후의 이름도 알지 못했다. 심지어 가명도.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 * *

신투 길드의 VIP 마켓에서 나온 강후가 바로 향한 곳은 서울이 아닌 오산역이었다.

전부터 탐냈었던 황금 고블린의 광산 던전이 있고, 현재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이다.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확인하니, 강후가 생각한 것보다 전황의 흐름이 빨랐다.

원작의 흐름이면 세 차례의 전면전까지는 평정-바스타드 연합이 정화 길드를 상대로 버텼다.

나름의 홈 어드밴티지도 있는 데다가, 후방을 교란하는 게릴라 전술이 잘 먹혀서다.

하지만 뉴스를 보니, 2번째 전면전에서 연합이 제대로 개박살이 난 모양이었다.

외부에서 검증되지 않은 용병을 긁어모으고 있다고는 하는데, 좋은 조짐은 아니었다.

머릿수를 채워야 할 이유가 생겼다는 뜻이니까. 그만큼 손실이 많았다는 얘기다.

그래서 강후가 시간이 더 늦어지기 전에 오산으로 내려왔다.

황금 고블린의 광산 던전이 정화 길드의 수중에 들어가면, 그때는 들어가고 싶어도 못 간다.

그러면 안에 고이 잠들어 있을 기연도 놓치게 될 테고, 이후 그 기연은 장시환의 품으로 들어가게 될 터.

그 꼴은 죽어도 보고 싶지 않았다.

어수선한 와중이라 그런지 황금 고블린의 광산 던전이 있는 곳까지 별다른 일은 없었다.

날이 어두워진 데다가, 예보된 폭우가 쏟아지고 있어 시야가 전반적으로 매우 짧았다.

확실히 격전이 다른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이쪽은 관심이 느슨했다.

길드의 명운을 걸고 전쟁을 치르는 와중에 속 편하게 던전에 갈 정신 나간 놈은 없을 테니까.

사실 들어가도 문제다.

나오는 타이밍을 잘못 잡으면, 적이 우르르 몰려있을 때 나오게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즉사다.

던전 근처에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던전 입구를 중심으로 평정-바스타드 연합의 헌터와 정화 길드의 헌터가 대치하고 있었다.

감시하는 것이다.

서로 던전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셈이다. 물론 본인들도 들어가지 않는다.

강후가 그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가로등을 타깃 삼아서, 횡 이동을 하며 은신했다.

동시에 무영 스킬로 기척을 최대한 숨기고, 조용히 던전 입구로 향하기 시작했다.

발걸음도 조심했다.

저들에게 안 보이는 거지, 아예 없는 것처럼 되는 것은 아니니까. 실수하면 들킬 수도 있다.

다행히 이쪽으로 배치된 전력은 전투에 필요하지 않은 잉여 인력인 모양인지.

강후가 제법 빨리 던전으로 접근하고 있음에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얼마 후.

‘간단하네.’

강후는 쉽게 입장할 수 있었다.

서로 지나치게 눈치만 보고, 경계만 하고 있기에 가능했던 일종의 빈집털이였다.

* * *

‘몸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야. 확실히 이동도 빨라진 느낌이고. 스킬이 없는 상태에서도 좋아.’

강후가 연신 목걸이를 어루만지며 만족스러워했다.

기본 스탯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올려둔 만큼 평상시에도 늘 기본값을 해 준다.

이래서 헌터들이 아이템에 돈을 투자하는 것이다.

돈을 아무리 모아도 부족하다는 얘기도 그래서 나온다. 돈이 생기면, 사고 싶은 것이 꼭 생긴다.

오늘 강후가 2등급 목걸이 하나를 사기 위해 1,100억 원을 태운 것처럼.

“후.”

심호흡을 하고 정면을 보니, 기억대로 크게 세 갈래로 나뉜 광산의 루트가 보였다.

일단 던전 스타팅 포인트가 광산을 포함한 산자락에서 시작하는 형태라서 그런지.

주변이 온통 험준한 산길로 도배되어 있었다. 깎아지른 절벽이 보이는 곳도 꽤 됐다.

스타팅 포인트를 기준으로 5분 정도 쭉 나아가면 길이 완전히 갈라지는 형태로 세 갈래가 있는데.

서쪽 루트는 마석, 북쪽 루트는 경험치, 동쪽 루트는 스킬북 벌이가 좋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등장하는 고블린은 고등 문명의 개체로 마장기를 활용하거나, 마탄을 쏘기도 했다.

그래서 일대일 전투가 까다로운 편에 속했다.

게다가 고블린에게 탈취한 병장기들은 던전 밖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밖으로 나오는 순간 곧바로 부식되어 재가 되기 때문에, 외부에서 활용할 순 없었다.

물론 안에선 얼마든지 빼앗아서 쓸 수 있었다.

‘어차피 레벨이 목적이 아니었으니까.’

강후가 원래 목적대로 동쪽 루트를 선택했다.

스킬북 벌이가 아니라, 동쪽 루트를 가다 보면 나오는 ‘기연’ 포인트로 향하는 것이다.

원작에서 설정해 둔 바로 그 비밀 공간에서 장시환이 기연을 얻었다.

완결로부터 4년 전 시점이니까 아직은 아니다. 바꿔 말하면 1년 안에 가게 될 곳이기도 하다.

바로 움직였다.

갑자기 던전 안으로 다른 불청객이 들어올 수도 있어서다.

현재 분쟁 지역인 도시의 던전에 들어온 만큼, 언제 전투가 벌어질지 알 수 없다.

그렇게 5분쯤 걸었을까.

갈림길이 나왔다.

여기서 길을 한 번 선택하면 중간에 다른 루트로 바꾸기가 매우 어렵다. 원점으로 돌아와야 한다.

바로 그때.

“……?”

강후는 북쪽 루트에서 갑작스럽게 확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에 몸을 움찔했다.

차가운 얼음 호수의 심연에 닿은 것보다도 더 냉랭하게 느껴지는 기운. 그것은 암흑기였다.

누굴까.

해결사는 발톱의 때도 안 될 정도로 여겨질 만큼 강력한 암흑기가 느껴졌다.

‘설마?’

강후가 단검을 움켜쥐었다.

상대가 누군지 특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언제든 전투에 돌입할 준비를 하는 것이 맞다.

단순히 느껴지는 기운만으로 판단해도, 자신보다 훨씬 위의 실력을 가진 존재였다.

“어후. 배가 고프네. 너무 오래 다듬었나?”

그때, 바위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사각지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듬는다는 표현은 원작에서 보통 불규칙적으로 증폭되는 힘, 기운을 다룰 때 쓰던 말.

상대에게 그래야만 하는 이슈가 있었던 모양이다.

“하암…….”

이내 하품과 함께 의문의 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상의를 탈의한 채,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몸 상태로 걸어오고 있었다.

다음 순간.

“어? 전망대?”

그가 먼저 강후를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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