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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11화 (111/304)

111화 기연 가로채기 (1)

유청화였다.

지난번에 처음 만났을 때는 검은 블라우스에 올 레드 컬러로 조합한 드레스 코드였는데.

오늘은 반대였다.

붉은 블라우스에 올 블랙 컬러였다. 뽀얀 피부라서 그런지 어떤 조합이어도 잘 어울렸다.

눈가 아래의 작은 별 문신.

그리고 블라우스 단추 두 개를 풀어헤친 틈새로 보이는 붉은 장미 모양의 문신까지.

강후가 알고 있는 유청화의 모습 그대로였다.

유청화가 강후와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정신 스캔을 시도했다.

그녀를 본 순간부터 이미 대비를 했던 강후였기에 당연히 유청화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서로 시선이 마주친 가운데, 유청화가 씨익 웃었다.

대놓고 속을 들여다보려는 생각을 해 놓고도 저렇게 뻔뻔한 것을 보면, 보통 낯짝은 아니다.

선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그녀는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실제로 원작에서도 에밀리아 로즈 다음으로 열세 개의 별에 대한 소속감이 낮았던 구성원이었다.

피를 나눈 동료라기보다, 열세 개의 별을 큰손으로 생각하고 움직인 느낌이 강했달까?

장시환, 채관형, 케이시 렉스, 엘리자베스 등을 상대로 무척 많은 아이템과 스킬북을 팔았다.

그렇게 쌓아 올린 그녀의 부는 전부 중국에서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는 데 쓰였고 말이다.

어쨌든.

신투 길드에서 판을 크게 벌여놓은 듯하니, 구경이나 해 볼 생각이었다.

“이렇게 보네요?”

“그러게요.”

“서울이 이럴 때 보면 참 좁아요. 마켓에서 만날 거란 생각은 못 했는데 말이에요.”

“머릿속 들여다보기는 그만하시죠.”

“헤, 자꾸 오기가 생기네요. 이렇게 안 뚫리는 헌터는 오랜만에 만나보거든요.”

“남의 집 현관문을 함부로 열어보려고 하는 거, 예의 아닙니다.”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릴게요. 직업병인 것 같아요.”

“이유가 너무 하찮네요.”

강후의 일침에 유청화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듣기에 따라 기분 나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무례를 인정했다.

직업병이라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다.

매번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스캔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다 보니…….

뭔가 악의적으로 속을 들여다볼 생각을 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다.

물론 당하는 입장에서는 불쾌해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나저나 제가 드린 명함은 아직 안 쓰셨더라구요? 전화도 따로 안 주고 말이에요.”

“아직 중국 쪽에는 볼 일이 없어서요. 신투 길드에도 크게 관심은 없고.”

“약간 자존심 상하는데요?”

“제 페이스에 충실한 거죠.”

강후는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유청화의 속내가 궁금했다.

정신 스캔에 대한 완벽에 가까운 저항 능력 때문일까?

그녀에게 무언가 제대로 보여 준 게 없는데, 상당히 각인이 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물론 공격적으로 외국의 헌터를 영입하기로 유명한 것이 신투 길드이기는 하다.

차이나 머니로 불리는 중국 특유의 자본력을 바탕으로 인재들을 싹쓸이하는 것.

그것은 신투 길드의 오랜 운영 철학이기도 했다.

실제로 신투 길드 내에는 다국적의 유능한 헌터로 조직된 정예 부대도 존재했다.

강후가 화제를 돌렸다.

“아이템을 좀 사려고 합니다. 2등급 아이템으로 보고 있고, 이왕이면 목걸이로.”

“와! 2등급 아이템이요?”

“돈은 충분히 있습니다.”

“아뇨. 돈이 없을 것 같아서 드린 말이 아니에요. 요 며칠 큰 손이 아예 없었거든요.”

유청화가 양손으로 큰 원을 그렸다. 그녀의 특징은 대화에 있어 손동작이 정말 크다는 것이다.

그것이 묘하게 대화에 집중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었는데, 이 역시 의도된 행동으로 보였다.

“볼 수 있을까요?”

“여기는 3등급 미만의 물품 위주로 파는 곳이에요. 별도로 마련된 특설 판매장이 있어요.”

“3등급 이상은 그곳에 있나 보죠?”

“네. 바로 옆 빌딩이에요. 정화 길드와 헌터 치안청으로부터 허가도 받은 판매처구요.”

“가 보죠.”

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잠깐, 유청화의 ‘수작질’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봤다.

이를테면 빌딩으로 유인해서 납치를 한다거나 하는…… 얼마든지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차원 강탈자로부터 부여받은 성좌 특전, 순간이동 능력이 있는 만큼 걱정하진 않았다.

여차해서 상황이 꼬일 것 같으면, 곧바로 빠져나오면 그만이다.

“따라오세요. 제가 직접 안내할게요. 간만에 싸늘한 판매장에 온기가 돌겠네요!”

유청화가 한껏 기분 좋아진 표정으로 친절하게 강후를 안내하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서글서글하게 눈웃음까지 보이며 안내하는 그녀의 모습에 적의는 없어 보였다.

물론 안심할 수는 없다.

* * *

그녀의 말대로 서울 마켓 본점 바로 옆의 빌딩, 그 최상층이 신투 길드의 VIP 마켓이었다.

정화 길드와 헌터 치안청의 인가를 확실히 받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인지.

중간중간 배치된 가드의 견장이 두 조직의 소속으로 되어 있었다. 위장은 아니었다.

말없이 그녀를 따라가는 동안.

강후는 원작 속의 유청화에 대한 기억을 좀 더 짚었다.

그때 문득, 기억의 심연에 잠겨 있던 그녀의 대사 구절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스스로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영웅이 좋아. 미움받는 쓰레기는 싫어.】

당시 대사를 소설에 쓸 때는 그저 열세 개의 별이라는 ‘영웅’이 된 감정에 취한 말 정도로 그려냈는데.

지금은 다르게 보였다.

그녀에게 있어 열세 개의 별이라는 존재가 신념의 투영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실제로 원작에서 장시환이 유청화에게 했던 말도 있었다.

【유청화. 나는 당신이 가끔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게, 단지 돈 때문인가 싶을 때가 있어.

떠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떠나도 좋아. 난 신념과 사명을 갖고 세상을 구할 영웅을 원해.

영웅은 때로는 그 속을 헤아려 주지 못하는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수도 있는 법이니까.】

뭔가 대화에 숨겨진 균열이 느껴지는 기분이다.

원래 내용을 쓸 때는 그저 서로의 기 싸움, 혹은 일침 정도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다시 보니, 유청화에 대한 결속감이 생각보다 많이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에밀리아 로즈처럼 빈틈을 노릴 구석이 있을지도 모른다. 열세 개의 별이 열셋이 아닐 수 있도록.

‘멀리 보자.’

강후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이런 고급 설계는 충동적, 즉흥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길게, 그리고 멀리 봐야 한다.

“자! 이제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모든 공간이 1등급, 2등급, 3등급 아이템으로 가득할 거예요.”

유청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힘껏 문을 앞으로 밀어냈다.

그러자 그녀의 말대로 셀 수 없이 많은 진열대 안에 고이 모셔진 다양한 아이템이 보였다.

서울 마켓 본점에서 본 것보다도 훨씬 수가 많아 보이는, 다양한 아이템의 향연이었다.

새삼 대륙의 물량 공세를 느낄 수 있는 현장이기도 했다.

“편하게 좀 보겠습니다.”

“얼마든지요. 전 따라다니면서 귀찮게는 안 해요. 쇼핑할 때 그런 거 질색해서.”

“그럼.”

강후가 입구의 진열대부터 차례대로 훑기 시작했다.

일부 아이템은 실물을 가져와서 옆에 옵션을 적은 설명서와 함께 비치해 두었고.

일부는 견본을 진열해 두고 옆에 설명서와 배송 가능 일정 및 기간을 적어 두었다.

신투 길드 소유의 전세기를 띄워서 배송하기에 금방 받아볼 수 있다는 설명과 함께.

‘정말 많군.’

좀처럼 감탄을 하지 않는 강후도 혀를 내두를 만큼, 판매 물량이 정말 많았다.

여기 있는 아이템의 가치를 전부 합친다면, 수십조 원은 우습게 넘길 양이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해당 층계는 엘리베이터부터 내벽 전체가 두터운 보호 결계에 둘러싸여 있었다.

아마 하루에 유지비만 2억 원은 족히 들어가는 호화 시스템일터.

원래는 짧게 쇼핑을 끝내는 것이 강후의 스타일이지만.

이번에는 너무 볼 것이 많다 보니, 시간이 꽤 걸렸다.

어느 순간부터는 시간의 흐름도 잊은 채로 아이템을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두 시간쯤 흘렀을까?

방음 설계가 된 투명 유리 부스 안에서 통화를 하던 유청화가 밖으로 나왔다.

강후의 결정이 끝나서다.

“이걸로 하죠.”

“어디 보자……. 역신의 숨결? 이거 괜찮은 목걸이에요. 암살자 계열이 관심을 많이 갖죠.”

“가격은?”

“1,100억 원이에요. 죄송하지만 흥정은 불가능해요. 이미 충분히 디스카운트가 되기도 했고요.”

“음.”

현재 잔고는 1,116억 원.

목걸이 값을 지불하고 나면 16억 원이 남는다.

그래도 많은 잔고지만, 순식간에 빈털터리가 되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을 듯했다.

하지만.

그만한 값어치가 분명히 이 목걸이에는 있었다.

무엇보다 타인에 대한 의존도를 최소로 하고, 1인 올라운더가 되려는 강후에게는 꼭 필요했다.

“혹시 모르실 것 같아서 말씀드려요. 저희 신투 길드의 아이템을 구입하시면, 나중에 1회에 한정해서 교환도 가능해요. 값어치는 같아야겠지만?”

“알고 있습니다.”

“호호. 좀 특이한 서비스죠? 이래서 저희가 고정 거래자가 많아요. 장시환 님도 주 고객이시죠.”

원작에서도 유청화가 이런 식으로 아이템 판매를 열세 개의 별에게 정말 많이 하긴 했다.

교환 기회까지 곁들이니, 쓰다가 마음이 변하면 한 번이지만 바꿀 수도 있었고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부터는 추가금을 내고 아이템을 교체하는 것이 가능했다.

귀찮게 팔고 사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 입맛대로 세팅을 바꿀 수 있어 매우 편했다.

“이걸로 하죠. 역신의 숨결.”

강후가 목걸이를 가리켰다.

이제 한눈에 보기에도 허름해 보이는 7등급 목걸이를 벗어 던지고, 새 녀석과 함께할 차례다.

* * *

이내 신속히 정산을 마치고.

강후가 목걸이를 착용하는 동안 유청화는 눈치껏 자리를 비웠다.

어차피 남은 것은 거래에 감사를 표하는 작별 인사가 전부니까.

【역신의 숨결 - 목걸이】

【등급 : 2등급】

【근력 +50】

【민첩 +200】

【항마 +200】

【맷집 +50】

‘순풍의 목걸이가 민첩 15를 올려주는 게 끝이었으니까. 이 정도면 대격변 수준이네.’

모든 스탯이 대폭 올랐다.

강후가 이번에 민첩 스탯에 신경을 쓴 것은 그간 전투를 치르면서 느낀 기본의 부재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강후는 신속한 기동력과 움직임의 뿌리를 가속을 비롯한 스킬에 의존해 왔었다.

그러다 보니, 스킬을 사용하지 못할 때의 움직임이 너무 굼떴다. 적어도 자신의 기준으로는.

높은 민첩 스탯은 스킬 없이도 상시 가속이 기동 능력에 적용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스킬 의존도가 높아지면, 내가 스킬을 원활하게 사용하지 못했을 때 목각이 되기 딱 좋으니까.’

목각인형처럼 때리기 좋은 것이 어딨던가. 그런 신세가 되고 싶진 않았다.

바뀐 스탯 확인에 앞서, 강후가 역신의 숨결에 달려 있는 특수 효과 두 개를 다시 살폈다.

특수 효과.

고등급 아이템을 구매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어떤 효과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착용자와 엄청난 시너지를 만들어 내기도 하니까.

【중독 억제】

【회복 억제】

한눈에 봐도 자연스러운 흐름을 막아 주는 특수 효과다.

역신의 숨결을 구매하기로 마음먹은 이유. 목걸이의 정체성에 깊은 관련이 있는 옵션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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