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10화 (110/304)

110화 면접 (2)

“예전에 살이 좀 붙어 있을 때의 사진이라. 지금은 좀 다를 수도 있겠네요.”

강후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예전에 청명 수용소에 들어가기 전에 찍은 사진을 썼기 때문이다.

스튜디오에 가서 당시에 연인이었던 한서연과 찍었던 사진이기도 했다.

보너스 컷 개념으로 찍은 독사진인데, 워낙 잘 나와서 버리기가 참 아까운 사진이었다.

그걸 서류에 첨부했더니, 마른 지금의 얼굴과 다르게 보인 모양이었다.

하긴 그때는 살집이 제법 올라 있을 때였으니,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자세히 보니 맞네요. 자, 그럼 바로 면접 시작하죠. 질문은 주로 공 심사관님이 하실 거예요.”

고주희가 옆자리에 앉은 공유석을 가리켰다.

대단히 공적인 듯한 말투로 말을 했지만, 눈빛에는 사랑이 뚝뚝 묻어나고 있다.

숨길 수 없는 남녀의 본능이자, 아름다운 모습이다.

공유석이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는 바로 질문을 이어갔다.

“스킬 구성에 대해 알려주셨는데. 이게 사실인가요? 레벨과 괴리가 좀 있는데.”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괴리가 있다는 건지 말씀해 주십시오.”

“레벨 100이라고 하셨는데. 보통 레벨 100이면 기본 스킬 7개에 다른 스킬 두세 개 정도 추가된 것이 최대치죠.”

공유석의 말대로였다.

사실 두세 개도 높게 쳐준 것이고, 기본 스킬만 갖고 있는 헌터도 많다.

애초에 스킬이라는 게, 기본 스킬 획득과 클래스 스킬북을 제외하고는 추가할 방법이 없어서다.

그리고 스킬북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

던전에서 나오는 확률도 대단히 낮고, 심지어 얻더라도 같은 직업군 스킬북이 아닐 수 있었다.

쓸모없거나 활용 가치가 낮은 스킬이라면 모르겠지만…….

공유석과 고주희의 눈에 강후가 가진 추가 스킬은 너무 좋은 것들이었다.

“구구절절 설명할 것 없이 직접 보여드리면 될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강후가 운을 뗐다.

그림자 걸음, 환영술, 보호 결계, 기교의 장막, 납치. 이렇게 다섯이 강후가 공개한 스킬이었다.

그림자 걸음, 기교의 장막은 이미 민머리를 능욕할 때도 써먹으면서 공개가 됐다.

알려진다고 해서 손해 볼 것 없는, 오히려 어필에 도움이 되는 스킬이기에 문제는 없었다.

“보죠. 던전 내에서 다양한 변수 상황이 있기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봐야 합니다.”

공유석과 고주희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제 레벨이 100밖에 안 된 암살자에게, 목록에 적힌 것들은 과연 정말 존재하는 스킬인 걸까.

직접 확인할 때가 됐다.

그리고.

파팟! 팟! 팟!

강후가 그림자 걸음부터 시작하는 스킬 시연을 절도 있게 이어갔다. 익숙한 몸놀림이었다.

* * *

순식간에 폭풍처럼 휘몰아친 스킬 인증이 끝나고.

“음…….”

“진짜네요. 숙련도도 상당히 높아 보이는 스킬이고…….”

잠시 공유석과 고주희는 할 말을 잃었다. 스스로 말끝을 흐리고 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

앞서 면접에서도 암살자 클래스는 있었다.

하지만 그 암살자는 분신술을 어설프게 보여 주면서, 정신없이 치고 빠지는 움직임만 보여줬다.

현란하게 움직이긴 했지만, 실속이 떨어졌던 것이다. 빈틈도 상당히 많아 보였다.

그러나 강후는 달랐다.

오히려 제자리를 유지하는 가운데, 적을 교란시키는 형태로 스킬을 조합해서 썼다.

특히 납치 스킬은 타깃을 끌어오는 스킬이라, 강후가 움직일 필요가 더더욱 없었다.

이미 공유석과 고주희가 서로 주고받은 눈빛에서는 강후에 대한 판단이 끝이 났다.

왜 이런 인재가 길드 소속이 아닌 용병으로 있는 것인지 의아할 정도였다.

정화 길드에 입단 신청을 하면, 쌍수들고 환영할 만큼의 기본기가 있었다.

하루 이틀 훈련으로 다져진 암살자가 아니었다. 스킬 숙련도 역시 꽤 높아 보였고.

그래도 바로 합격을 시키는 것은 모양이 빠진다 여겼는지, 고주희가 화제를 돌렸다.

물어봐야 할 질문인데 타이밍을 놓친 내용이기도 했다.

“심판의 지옥 공략에서 지향하는 바를 들어볼까요?”

“개인 공략입니다.”

“꼭 팀 단위의 움직임을 가져야 할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그러면 상당히 위험할 텐데요?”

“상관없습니다.”

“심판의 지옥은 그리 만만한 던전이 아니에요. 괜히 외부인까지 모집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어차피 죽으려면 뭉쳐 있어도 죽고, 살려면 혼자 떨어져 있어도 얼마든지 삽니다.”

“그래도 같이 대형 보스를 잡고 해야, 고유 버프를 받던가 전리품적인 이득이 클 텐데 말이죠.”

“저는 심판의 지옥 던전을 공략하기보다, 모험하고 탐험하고 싶은 쪽에 가깝습니다.”

강후가 마음에 없는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 이런 거짓말은 표정 하나 안 변하고 잘 나온다.

목적은 처음부터 뻔했다.

장시환이나 채관형의 손길이 닿을 법한 기연을 먼저 선수 치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지금도 성장 상태가 좋은 두 녀석에게 날개를 달아 주고 싶지 않았다.

“너무 아쉽지 않겠어요?”

“경험으로도 만족합니다.”

의아해하는 심사관의 반응은 이해가 갔다.

원래 이런 초대형 던전 공략은 팀 단위로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그래선 독자 행동이 불가능하니, 강후가 미리 밑밥을 깔아둔 셈이다.

어차피 강제 사항은 아니라, 저들도 권고 정도 선에서 그칠 것이다.

대신 강후가 개인적으로 탐색하고 살핀 구간에 대한 정보 공유는 해야 한다.

그 정도는 강후도 생각한 다음에 꺼낸 얘기이기에 달리 신경 쓸 것도 없었다.

“좋아요. 과정이 너무 궁금하지만, 레벨에 어울리지 않는 스킬을 제법 가지셨네요. 잘 봤습니다.”

“칭찬은 감사히 듣겠습니다.”

“개인 공략 파트로 허가하겠습니다. 정보 공유에 관련해서는 안내자가 따로 말해 줄 겁니다. 일회성 계약 체결도요.”

“감사합니다.”

“아시다시피 개인 공략 파트는 최종 보스 몬스터를 제외하고는 분배에서 제외에요.”

“신경 안 씁니다.”

어차피 관심 없었다.

대규모 공략의 전체 틀 자체가 정화 길드가 어지간한 것은 다 해 먹도록 설계가 되어 있어서다.

부스러기에 관심을 갖기에는 강후가 심판의 지옥에서 얻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 * *

계약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말이 좋아 계약이지.

전리품 분배에 대한 조항과 전투 중의 사망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한마디로 사망 동의서나 다름이 없기에 딱히 눈여겨볼 만한 조항도 없었다.

공략 출발 시점은 7일 이내, 그리고 최종 통보 시점은 하루 전으로 안내를 받았다.

왜 날짜를 특정해 주지 않는 건가 싶기는 했다. 디데이를 정하고 출발하면 깔끔할 텐데.

‘자기들 차원에서 쉽게 잡을 만한 몬스터는 빼먹는 걸지도. 굳이 남 좋은 일 할 필요 없으니.’

어렴풋이 의도가 짐작은 갔기에 불확실한 일정이 이상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물론 속 보이는 통보 과정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말이다. 어디까지나 편의주의적이다.

이윽고 면접장 밖으로 나온 강후가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면접 대기 줄이 엘리베이터 앞까지 이어져 있어, 비상계단 입구 쪽에 있는 화물용을 탔다.

평상시에는 그쪽도 사람들이 타는 만큼, 별생각 없이 탑승한 엘리베이터였다.

그런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채관형.

혼자 엘리베이터를 탔었던 모양이다. 꼭대기 층에서 내려온 엘리베이터였으니, 아마도 빌딩의 VIP 층계에 있었을 터.

채관형은 강후에게 아예 눈길도 주지 않았다.

보통 누군가가 타면 얼굴이라도 한번 보기 마련이지만, 스마트폰만 계속 보고 있었다.

‘성좌 봐라.’

세어보니 스물다섯이다.

이 정도면 레벨 700은 무조건 넘긴 상태다. 원작에서의 기억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순간, 채관형을 기습해서 죽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주 불가능한 그림은 아니다.

‘꿈은 꿈으로 끝내자.’

하지만 이성이 눈을 떴다.

채관형만 죽여서 끝날 문제였으면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게 끝이니까.

하지만 채관형을 죽이는 순간, 자신은 공공의 적이 된다.

좁게는 정화 길드의 적이 되고, 넓게는 열세 개의 별의 적, 더 나아가 사람들의 적이 된다.

그럼 지금보다 운신의 폭이 대폭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최우선 지명수배자가 될 터.

득보다 실이 압도적으로 크기에 감정에 휘말려서 헛짓거리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 X발……. 또 입구에 귀찮게 몰려있겠군. 벌레 같은 것들.”

채관형이 아무 생각 없이 말을 뱉었다가 강후의 존재를 인지하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강후가 들어서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봤자 네가 어쩌겠냐는, 그런 자신감이 담긴 제스처였다.

이내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고.

채관형이 내리기가 무섭게 로비에 몰려 있던 그의 팬들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오빠! 관형 오빠! 생일 축하해요! 여기! 여기 한 번만 봐줘요! 한 번만요!”

“오빠! 생일 축하해! 진심으로!”

“출정식 때 꼭 갈게요! 좋은 자리에서 보고 있을게요!”

수많은 팬의 환호성에도 불구하고, 채관형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손이라도 들 법한데, 뭔가 마음 쓰이는 다른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때.

“응? 저 오빠는 누구지?”

“저 오빠도 엄청 잘생겼다! 누구야? 정화 길드 헌터야?”

“제복을 안 입은 거 보니 아닌 거 같은데? 콧날 봐. 엄청 오똑해! 멋있다!”

채관형을 놓친 아쉬움으로 입맛을 다시던 팬들의 눈길이 강후에게로 향했다.

“…….”

예전에 용산역에서 있었던 일의 데자뷔가 느껴지는 상황.

강후가 신속하게 직각으로 길을 틀어서는 재빨리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졌다.

의미 없는 관심에 마음 쓰고 싶진 않았다.

* * *

이후, 강후가 향한 곳은 건대입구역 인근에 위치한 서울 마켓이었다.

서울 마켓은 한 군데가 아니라, 총 다섯 군데가 있는데.

그중 건대입구 역에 있는 서울 마켓이 1호점이었다. 본점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어쨌든 1호점이라는 번호에 걸맞게 가장 질이 좋고 판매 가치가 높은 아이템을 주로 팔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마스터 K가 언급했던 방출 옵션을 가진 부적부터 찾아봤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없었다.

그래서 원래 관심대로 2등급 아이템을 살피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중에서도 강후는 목걸이를 바꾸고 싶은 생각이 강했다.

현재 착용한 순풍의 목걸이가 7등급으로 낮았기 때문이다.

스탯 옵션도 민첩 15를 올려주는 것이 전부라서 크게 체감되는 부분이 없었다.

그때.

여기저기 둘러보며 목걸이를 찾던 강후의 눈에 확 띄는 곳이 있었다.

별도로 만들어진 판매 구역이었는데, 구역 정중앙에 깃발 하나가 보란 듯이 걸려 있었다.

바로 신투 길드의 깃발이었다.

즉, 신투 길드에서 직접 판매를 주관하는 구역이라는 뜻이다. 관계자도 있다는 얘기고.

신투 길드와 정화 길드도 교류 관계에 있기에 그들이 서울에 있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았다.

다만.

“……?”

여기서 판매를 총괄하는 사람의 모습이 구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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