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08화 (108/304)

108화 마스터 K (4)

* * *

구르르릉.

어느덧 쏟아지기 시작한 장대비가 천둥 번개를 동반하며, 그라운드 제로 일대를 덮쳤다.

창문을 연신 두드리는 빗줄기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장난 아니게 쏟아지고 있었다.

K와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기는 했지만.

이 장대비 때문에 오늘 서울로 돌아가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지금 고민할 문제는 아니다.

K가 강후에게 깊이 우려낸 포르티스 티를 한 잔 더 따라주며 물었다.

“차는 어때?”

“좋습니다. 감정이 요동치지 않고 하나로 합쳐지는 느낌이네요.”

“포르티스 꽃잎을 말린 가루에다가 마약을 섞으면 어떻게 될 것 같나?”

“앞뒤 뵈는 게 없을 것 같은데요.”

“맞아. 내가 외부에 어떤 것을 팔아도 전부 마약이 섞인단 말이야. 도대체 헌터 치안청에서는 뭘 하는 건지…….”

“어차피 정화 길드 2중대잖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라서 부정도 못 하겠군. 물론 내 주요 고객들이지만 말이야, 껄껄껄.”

K가 웃었다.

그리고는 다시 무르익은 분위기 속에서 거래 전에 나눴던 대화를 이어갔다.

“버프 과반응증이 있었던 헌터에게 말이야. 버프와 디버프를 동시에 걸어봤어. 치명적이진 않지만, 디버프 계열 스킬을 걸었지.”

“효과가 있었습니까?”

“응. 과반응이 사라졌어. 자,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접근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나?”

“마력을 끌어들이는 만큼 빠져나가게 만들면 되겠지만…….”

강후가 말끝을 흐렸다.

앞서 설명으로 들은 메커니즘에 따르면 그렇게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선천성 마나 과민증이라는 것이 부작용을 대가로 마나를 빠르게 회복하는 것이 장점인데.

그것을 동일한 양의 방출로 해결을 해 버리면, 결국 0에 수렴하게 되니 멍청한 해결책이 된다.

결국 고통도, 이득도 없는 쓸모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강후와 같은 생각을 한 K가 고개를 끄덕이며, 강후의 의문점을 해소해 주었다.

“알아. 그렇게 정직하게 하면, 머저리 같은 방법이 되지. 하지만 가짜 마나를 방출시킨다면?”

“그게 가능합니까?”

“미안하지만 이 부분은 가설이야. 1차 착안 수준이라는 얘기지. 하지만 이론상으로는 가능해.”

“가짜 마나의 개념을 좀 더 듣고 싶은데요.”

원작에서도 등장한 적 없는 이야기이기에 강후의 눈빛이 어느 때보다도 반짝였다.

원작자의 의식과 원작의 내용이 닿지 않은 곳에도 세계는 만들어져 있었다.

강후의 입장에서는 ‘모르는 것 빼고는 다 아는’ 상황. 그리고 이 가설은 모르는 얘기다.

“심장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힘. 그것을 우리는 마나 또는 마력이라고 부르지.”

“그 심장을 마나 하트라고도 부르죠. 다양한 별칭이 있긴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그래. 그것은 진짜 마나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마나야.”

아직 핵심은 나오지 않았다.

강후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자 K가 테이블 위의 거치대에 올려뒀던 타블렛 PC를 켰다.

그리고 몇 개의 검색어를 빠르게 입력하고는 바로 참고할 이미지를 찾아냈다.

강후가 일전에 팔을 날려버린 마법사, 공태수에 대한 이미지였다.

“누군지 아나?”

“울산에 있는 피의 도살자, 공태수 아닙니까?”

“잘 아는군. 얼마 전에 왼팔을 잃었지. 그 팔에 걸린 돈이 수십억은 했다던데.”

“…….”

그 수십억의 주인이 바로 앞에 있다.

하지만 이예린을 제외하면 어느 누구도 사실을 알지 못하는 만큼, 비밀이 새 나갈 일은 없을 터.

“정화 길드의 마스터가 관심을 꽤 가지는 것 같더라고. 공태수쯤 되는 녀석의 팔을 도대체 누가 베어간 걸까, 하고.”

“그렇군요.”

“현장 CCTV 영상부터 해서 쫙 돌려 보고 있는 모양이야. 내게도 물어보더군, 누군지 아냐고.”

“용병이고 얼굴 정도는 가렸을 텐데, 어렵지 않을까요.”

“하지만 현장에 쓴 스킬에 대한 기록은 있잖은가. 교차 검증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특정이 되지.”

“그렇겠네요.”

“공태수 얘기를 하다가 거기까지 갔군. 어쨌든 이 친구가 팔뚝에 마석을 박은 건 알지?”

“상당한 고급 기술이 적용된 인체 개조로 알고 있습니다.”

“맞아. 잘못하면 부작용도 많은 작업이지. 하지만 그 친구는 성공적으로 수술이 됐어. 물론 팔을 날려 먹었지만.”

“직접 하신 겁니까?”

“누가 했는진 비밀이야. 단, 저런 방법으로 체내에 마나를 방출할 도구를 심어둘 수 있다면.”

“그것이 가짜 마나의 역할을 한다.”

“맞아. 그러기 위해서는 초소형의 부적형 아이템이 필요해. 특히 방출 옵션이 달려 있는.”

“조건이 까다로워지네요.”

“응. 이게 첫 번째 난관이지. 게다가 나중에 그 부적을 몸에 세공도 해야 하고.”

“가설이라도 개연성이 충분해서 마음이 가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하하.”

가설이 그럴듯하다고 해서 미리 김칫국을 마실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비관할 필요도 없다.

“초소형. 부적. 방출 옵션.”

“맞아. 어디서 구매하거나 혹은 구할 수 있을지는 내가 알아보고 전해 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너무 기대하지는 마. 구한다고 해도 가설이 틀릴 수 있고, 구하는 것 자체도 어려울 수 있어.”

“희망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강후의 진심이었다.

길고 어두운 터널에서는 먼 끝자락의 빛 한 줄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희망이 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선천성 마나 과민증의 부작용을 체념하고 받아들이며 사는 것과 비교하면.

부작용 해결 가능성이 0%가 아닌, 조금이라도 존재하는 지금이 훨씬 더 좋았다.

“아까 내게 팔 아이템이 있다고 그랬지?”

“예, 그렇습니다.”

여기 온 김에 해결사를 죽이고 얻은 아이템을 처분하고 갈 생각이었다.

예상 감정가는 300억 원.

팔고 나면 잔고가 1,100억 원이 훌쩍 넘어가니, 2등급 아이템 하나를 더 살 여지가 생긴다.

‘심판의 지옥에 관련된 면접 때문에 서울에 가야 하니까. 서울의 마켓에서 둘러보면 되겠다.’

다음 일정은 서울로 잡으면 될 듯했다. 동선이 간단하니, 머릿속이 복잡하진 않았다.

K와의 독대를 끝마치기 전. 그가 인자한 미소와 함께 강후에게 맺는 말을 꺼냈다.

“차갑디차가운 피가 내 손녀에게 따듯했다는 건, 자네 역시 본질이 따뜻하다는 거겠지.”

“유리가 제게 좋은 자극이 됐습니다. 제게는 없는 감정선을 많이 갖고 있더군요.”

“그래. 내 손녀를 무조건 어린아이처럼 챙기지는 말게. 다만 응원은 많이 해 주게. 응원과 격려를 먹고 자란 아이거든.”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이야. 다음부터 이런 상담은 시간당 천만 원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

“많이 싸네요.”

“하하, 그런가? 그럼 다음에는 선금을 먼저 입금하고 오라구.”

“명심하죠.”

“유리 말대로 농담을 진담으로 받는 친구구만. 그래서 재미가 없다고 한 거였군.”

“…….”

정곡을 찌르는 말이기에 강후는 침묵으로 답을 대신했다.

맞는 말이다. 스스로 봐도 정말 지독하게 재미없는 사람인 것만은 확실하다.

* * *

결국 강후의 예상대로 비는 그치기는커녕, 더욱 굵어졌다.

일기예보에 별 관심이 없었기에 벌어진 상황이기도 했다.

날씨 뉴스를 들어가 보니, 중부 지방 전역에 단기 호우 특보가 일찌감치 내려졌던 모양이었다.

그 바람에 강후와 정유리는 K의 배려로 그의 별장에서 하루 머물게 됐다.

정확히는 비가 그치면 출발하기로 한 것이지만, 그때가 언제일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오빠, 다 됐어! 잠깐만 기다려 봐! 먹고 나서 또 달라고 할 것 같아서 아예 많이 만들었어!”

정유리는 괜찮다는 강후를 두고 ‘굳이’ 요리 실력을 보여 주겠다며 토마토 파스타를 만들어왔다.

향기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음식이라는 것은 원래 먹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법.

데코까지 확실하게 해서 내어온 파스타를 본 강후의 표정에 만감이 교차했다.

만약, 맛이 없으면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거짓말을 하는 게 좋을까.

그렇다면 표정은 어떻게 지어야 완벽하게 거짓말이 될까……를 고민하고 있는데.

이미 정유리의 포크가 입에 들어오고 있었다. 파스타를 한가득 둘둘 만 채로.

강제로 먹게 된 파스타.

이도 저도 아닌 맛에도 불구하고 강후는 고생한 정유리를 위해,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맛있네.”

하지만.

“똥을 씹어도 그 표정보다는 좋겠다. 쳇…….”

이미 정유리는 삐져 있었다.

영악한 거짓말은 얼마든지 하는 자신인데. 이상하게도 선의의 거짓말은 너무 어려운 강후였다.

* * *

얼마 후.

“음…….”

“흠…….”

강후와 정유리는 정원의 잔디가 훤히 보이는 통유리 앞에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었다.

‘비멍’이랄까. 비를 보며 멍하니 있는 것이다.

생각보다 꽤 괜찮았다. 머릿속에 가득한 잡념이 잠깐이나마 사라지는 느낌이랄까?

바로 그때.

강후와 정유리의 스마트폰이 동시에 울렸다.

둘 다 메일 알림이었다.

【정선규 님에게 정화 길드 던전 관리팀에서 메일 드립니다.】

【귀하는 심판의 지옥 공략 관련, 서류 면접에 합격하셨습니다. 내일 12시까지 삼성역의 정화 제5빌딩으로 오시면 되겠습니다.】

【제5빌딩의 로즈마리 홀에서 면접이 진행되며, 입구에서부터 직원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내일 면접을 전날 저녁에 통보하는 건가.”

강후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예상한 대로 서류 면접은 합격한 모양. 정유리도 서류 면접을 통과한 듯했다.

“오빠는 몇 시?”

“정오.”

“나는 오후 6시! 면접 끝난 다음에 바로 신도림역으로 이동하면 되겠다.”

“던전 일정이 있나 보지?”

“응. 심판의 지옥 공략 전까지 일정 빡빡하게 잡아놨어! 오늘이 유일한 휴일이야!”

“그렇군.”

“새벽에는 비 그친다고 하니까, 그때 바로 출발하자. 차라리 지금 좀 자 두는 것도 괜찮을 듯한데?”

“그래야겠어.”

차 안에서 자는 것은 불편하다.

어차피 아무것도 할 것 없이, 멍하니 있는 지금이 잠을 자기에는 최적의 시간.

정유리의 제안대로 강후가 구석에 보이는 어두운 방으로 향했다.

워낙 넓은 별장이다 보니, 방은 셀 수도 없이 많아 휴식은 문제없었다.

새벽 2시.

비가 그친 것을 확인한 강후와 정유리는 별장에 왔을 때처럼 안전 리무진을 타고 출발했다.

기사와 경호원은 계속 대기 중이었으므로, 달리 준비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서울로 향하는 길.

비는 오디오가 영 불편했던 정유리는 뒷좌석 중단에 설치된 소형 TV를 켰다.

마침 화면에서는 헌터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었는데, 내용이 강후의 관심을 끌었다.

헤드라인이 인상적이었다.

【전주의 전동 제약 건물에서 대규모 전투 발생. ‘태양’의 소행으로 밝혀져.】

“한 번 터질 것 같긴 했는데.”

강후가 놀란 기색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동 제약은 말이 제약사지, 사실상 마약류 각성제 유통의 중심점 역할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불법 개조와 은밀한 인체 실험이 이뤄진 곳이라 말도 많은 곳이었다.

기존에 전동 제약의 뒤를 봐주던 세력은 길드 ‘낙원’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이들을 기습적으로 공격한 것이 바로 ‘태양’인 모양.

태양은 전주권에서 규모가 제법 큰 범죄 조직으로 악명이 높은 이클립스보다 규모가 컸다.

그리고.

‘대장 강태양이 강동현의 배다른 형이기도 하고.’

원작자만이 아는 비밀을 간직하기도 한 조직이기도 했다.

이래저래 관련해서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유쾌하기보단 불쾌해질 소지가 많은 문제의 조직.

‘남부가 시끄러워지겠군.’

예측되는 미래에 강후의 눈빛도 깊어졌다.

물론 기억 속에서 강후는 자신에게 이득이 될 만한 파편을 열심히 찾고 있었다.

혼란은 곧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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