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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04화 (104/304)

104화 스킬 업그레이드 (2)

한편.

보스에게서 강탈한 스킬은 ‘붕괴’였다.

분신술의 획득에 정신이 팔려있었지만, 붕괴 스킬의 효율도 꽤 괜찮았다.

붕괴의 경우, 흙이나 모래 지면일 때, 일시적으로 싱크홀을 만들 수 있었다.

딱딱하지 않은 지형이면 되는 것이다. 아주 깊게 구멍이 파이지는 않지만, 변수 만들기에는 충분한 스킬이었다.

* * *

그 외에 전리품으로 나온 마석 몇 개는 윤상미에게 양보했다.

얼마 되지도 않아서 던전 라이센스 가격으로 퉁치기에도 민망할 양이기는 했다.

고대한 레벨 100의 달성이 이렇게 끝났고. 드디어 적요석을 어디에 쓸지 생각할 때가 됐다.

그간 짬짬이 생각해 오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고민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될 듯했다.

일단은 윤상미와 헤어진 다음에 살필 요량으로 그녀를 집에 바래다주었다.

그녀가 대전 서구 탄방동에 세컨드 하우스 개념으로 지내고 있는 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초 계획은 그녀를 집에 바래다주고, 호텔을 잡아서 거기서 쉴 생각이었지만…….

생각보다 창백해 보이는 윤상미의 안색에 생각을 바꿨다.

해결사 때문에 기절했다가 깨어난 데다가, 그런 상태에서 바로 던전 공략을 이어간 게 문제였던 듯했다.

그래서 그녀를 침대에 눕힌 뒤, 구식이기는 하지만 수건에 물을 충분히 적셔 이마에 얹어주었다.

상비약을 챙겨 와, 따뜻한 물과 함께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감정이 무디다 해서, 사람을 간호할 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윤상미는 의외인 모양.

“오빠가 이런 병간호를 할 줄 안다니, 의외네요.”

“그 말, 할 줄 알았어.”

“아무래도 그 미친놈에게 제압당하고 기절하는 과정에서, 몸에 무리가 갔나 봐요.”

“던전 공략을 내가 너무 서둘렀나 싶네.”

“전혀요. 들어가자고 한 사람은 저예요. 상황이 그렇다는 거죠. 오빠 탓을 할 필요는 없어요.”

“아무튼 좀 쉬어. 한숨 자고 일어날 때까지는 옆을 지켜주지.”

“와……. 진짜 오빠답지 않은 멘트네요.”

“피가 아무리 차가워도 얼진 않았어. 주둥이 나불거릴 시간에 그냥 자는 게 어때?”

“헷, 그럼 신세 좀?”

윤상미가 괜찮은 체하며, 익살스런 표정과 함께 이불 속으로 몸을 쏙 파묻기는 했지만.

강후는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컨디션이 안 좋다.

괜찮은 척을 하는 거지, 괜찮은 것은 아니다. 적어도 제대로 된 숙면은 필요하다.

아니나 다를까.

10초도 채 되지 않아, 윤상미는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엄청 피곤했던 것이 분명하다.

잠깐 테라스로 나온 강후가 정유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레벨 100 달성도 끝났고, 매드 솔라키움도 다 떨어진 만큼 반드시 K를 만날 이유가 생겼다.

중간에 오산역에 잠깐 들러볼까도 싶었지만, 지금은 필요한 것들부터 챙기는 게 좋겠지 싶었다.

- 여보세요…… 어으어.

전화를 받은 정유리의 목소리는 다 죽어가는 사람의 그것과 똑같았다.

물론 오전 6시라 전화를 하기에 적당한 시간이 아니긴 했지만.

“내가 너무 일찍 전화했나?”

- 아니야, 오빠……. 괜찮. 괜찮은데 어흐…… 잠시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열심히 세수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푸어푸의 표현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이윽고 잠이 확 깬 정유리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 요즘 왜 이리 자도 자도 피곤한지 모르겠어. 침대를 바꿔서 그런가?

“통화 괜찮지?”

- 응, 괜찮아. 오빠, 이제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진 거야?

“응. 그라운드 제로에 가 봐야겠어. 직접 살 물건도 있고, 여쭈어보고 싶은 것도 있고.”

- 내일 아침에 서울역에서 만나 출발하는 건 어때? 할아버지가 오늘은 마감하는 날이셔서.

“마감한다는 게 무슨 뜻이지?”

- 솔라키움 수확을 하는 날이기도 하고, 재고 정리를 하시는 날이기도 하거든!

“아, 그럼 오늘은 무조건 피해야겠군.”

- 응. 그래서 내일 아침에 보자고 한 거야.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걸로 할까?”

- 아냐! 차편은 내가 구할 테니까! 오빠는 그냥 서울역으로 오면 돼. 아침 7시, 괜찮아?

“문제없지.”

- 그럼 내일 아침 7시. 뿅!

장난기 가득한 정유리의 목소리와 함께 통화가 끝났다.

기차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차편을 구한다는 말이 살짝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서울에서 벗어나 경기 북부권으로 가게 되면, 그때부터는 상당히 치안이 어수선해지기 때문이다.

북부에는 군벌 심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범죄 조직도 꽤 많이 포진해 있었다.

차라리 심연의 관할 영역을 통과하는 것이 서울만큼이나 안전했다. 이현석의 통제 아래 있기에.

하지만 그렇지 않은 지역도 통과해야 하는데, 여긴 온갖 납치와 공격이 난무하는 무법지대였다.

도로 위에서 움직이는 차를 향해 바주카포를 쏘는 것도 그리 놀라울 사건이 아니었다.

정유리가 그걸 모를 리는 없고, 그렇다면 안전을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는 차편을 구한다는 얘긴데.

그러기 위해선 많은 돈이 필요한 만큼, 누구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 궁금했다.

어쩌면 베일에 가려진 인물, 할머니의 도움을 받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건 내일 보면 될 일.

강후는 시원한 바람이 부는 테라스에 나온 김에 적요석 업그레이드도 같이 살피기로 했다.

괜히 윤상미가 자는 거실에서 진행했다가 강한 섬광이라도 발생하면 민폐가 따로 없으니까.

‘일단 적요석 7개 중, 2개는 빼두자. 언제 효율 좋은 스킬을 얻을지 모르니.’

다섯 개만 활용하기로 했다.

적요석과의 궁합이 좋은 스킬을 이후에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비는 필요하다.

첫 번째로 강후가 적요석을 투자한 것은 맷집에 특화된 5등급 아이템 반지인 무신의 유희였다.

원래 아이템은 적요석 업그레이드가 안 된다.

하지만 툴팁에 ‘가능’한 것으로 표시되는 아이템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무신의 유희였다.

귀한 스탯 중 하나인 맷집에 관련된 아이템이기에 적요석의 투자 가치는 충분했다.

아이템에 적요석을 투자하는 것은 보통 2등급, 1등급까지 끌어올렸을 때 가치가 극대화된다.

【4등급 아이템으로 업그레이드를 진행하시겠습니까?】

【해당 아이템은 적요석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며, 소모 개수는 총 1개입니다.】

【이후 3등급 아이템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에는 적요석 2개가 소모됩니다.】

강후가 바로 확인을 눌렀다.

오늘 적요석을 다 갖다 부을 수는 없지만, 하나를 미리 투자해 둘 필요는 분명히 있었기에.

【무신의 유희 - 반지】

【등급 : 4등급】

【맷집 + 150】

【특수 재료인 적요석을 활용해 한 등급 위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합니다.】

“좋네.”

업그레이드 덕분에 맷집 스탯의 상승폭이 50에서 150으로 늘었다.

현재 맷집은 495.

보통 500을 상회하게 되면, 레벨 75 미만의 헌터로부터 받는 기본 공격 대미지가 대폭 감소한다.

스킬이 아닌 평범한 공격으로는 어지간해서는 생채기조차 내기 힘들게 되는 셈이다.

“1등급까지 가려면 2개, 3개, 4개…… 총 9개군. 뭐, 이건 차근차근 가는 걸로.”

당장은 적요석 효율이 낮게 느껴질 수는 있지만, 강후는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미래 대비는 이쯤이면 됐고.

이제 즉각적이고도 확실한 변화를 이끌어 낼 때다.

강후가 미련 없이 곧바로 선택한 것은 호신 – 2단계였다.

방어 동작이나 방어에 대한 심리 투자를 최소화하고 싶은 강후에게 필수인 스킬이기에.

【적요석 1개를 사용, 호신 – 3단계로 업그레이드를 진행하시겠습니까?】

자잘한 메시지들이 이어 출력됐지만, 중요하지 않은 안내는 전부 지워버렸다.

업그레이드가 바로 이뤄졌다.

이렇게 단순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적요석 하나가 없어지면서 스킬 툴팁이 확 바뀌었다.

이런 부분을 볼 때면, 헌터의 시스템이 정말 게임 시스템을 빼닮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호신 – 3단계】

【스킬 숙련도 : Lv. Max】

【패시브 스킬. 활성화 시, 재활성화까지 1시간이 소요됩니다.】

【호신을 활성화하여 0.5초간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모두 무력화시킬 수 있습니다.】

【보유 마나의 33%를 활용해서 2단계를 재발동할 수 있습니다.】

“0.5초의 절대 무적. 거기에 비선택적으로 두 차례의 공격 무력화가 가능하다는 얘기네.”

툴팁 내용을 이해한 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0.5초는 어떤 공격이든 막아낼 수 있고, 이후에는 두 차례 공격을 막는다는 뜻이다.

아이템이나 스킬 판정에서 ‘절대’라는 단어가 붙는다면, 무조건 이득이다. 그것도 아주 큰 이득.

물론 매번 쓸 수 없는, 시간 단위로 대기 시간이 필요한 스킬이기는 하지만.

절체절명의 순간이나, 전략적인 맞불이 필요할 때 정말 유용할 듯했다.

무적 판정을 믿고서, 과감하게 달려드는 그림도 가능하다. 암살자에게는 매우 든든한 보험인 셈.

이어서 환각 스킬도 적요석 하나를 투자했다.

애초에 0.2초의 환각 절대 유발 판정이 있기에 역시 쓸모가 큰 스킬이었다.

업그레이드가 완료되자, 환각의 절대 유발 시간이 0.2초에서 0.75초로 늘어났다.

0.55초의 증가.

1초도 안 되니 정말 짧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 짧은 순간에 헌터의 세계에서는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난다.

가볍게 다칠 것이 깊게 다치고, 깊게 다칠 것이 돌아오지 못할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 시간의 의미를 너무나도 잘 아는 강후이기에 오히려 증가폭이 크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다음은 그림자 걸음이었다.

원래는 다섯 개의 그림자 중에 하나만 선택해서 위치 이동을 할 수 있었지만.

업그레이드를 통해서, 남은 그림자도 모두 활용하게 됐다.

상대의 입장에서는 본체는 물론 그림자 다섯의 위치를 모두 신경 써야 한다.

골치 아파지는 것이다. 물론 그런 상대를 곯려 먹는 강후의 입장에서는 신나는 일.

그리고 남은 1개는 분신술에 투자를 마쳤다.

적요석 하나를 투자한 것으로도 분신의 스킬 화력 판정이 33%에서 50%로 늘었다.

최종 목적은 분신과 본신이 모두 100%의 화력을 낼 수 있게 하는 것.

아직은 먼 미래의 얘기지만, 강후는 언젠가는 꼭 현실로 만들 수 있으리라 믿었다.

“후. 묵은 체증이 전부 쓸려 내려가는 느낌이군.”

여분의 적요석 2개를 제외한 모든 적요석 투자, 업그레이드를 마친 강후가 뜨거운 숨을 토해냈다.

바뀐 스킬의 설명들을 꼼꼼하게 살피느라, 숨을 쉬는 것도 무의식 중에 참았던 것이다.

지금의 구성이면 전종두나 해결사 수준의 헌터와도 훨씬 더 수월하게 겨룰 수 있을 듯했다.

물론 예상일 뿐이다.

조금 시선을 위로 올려서, 강동현 같은 녀석을 떠올리면 다시 답답해지는 구석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강동현이라고 해도, 절대 무적의 판정을 무시하고 깨부술 수는 없다.

어쨌든 적요석을 고루고루 알차게 사용한 느낌이라 기분이 좋았다. 의미 있는 이득을 볼 일이 있을 터다.

한데 바로 그때.

【‘야바위의 달인’ 성좌가 당신에게 꽝 없는 돌림판을 돌릴 기회를 제공합니다.】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 도통 신경을 쓰지 못했던 성좌 메시지의 알람을 이제야 제대로 확인했다.

바로 눈에 띈 메시지는 야바위의 달인 성좌가 남긴 것이었다.

그래. 행운의 돌림판을 돌릴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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