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스킬 업그레이드 (1)
그때.
드르르륵. 드르르륵.
죽은 해결사의 옷 속에서 스마트폰의 진동음이 들렸다.
강후는 우선 윤상미를 묶고 있던 나무의 매듭을 조심스럽게 잘라냈다.
아직 그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옆에 보이는 평평한 바위에 눕혔다.
날이 쌀쌀했으므로,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덮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다음, 해결사의 옷 속에서 꺼낸 스마트폰을 살폈다.
발신자 이름은 신준호로 저장되어 있었다. 누가 보아도 흑골단의 대장 이름이다.
예전에 차소희도 그렇고, 꼭 이 무렵이면 윗선에서 전화가 온다. 신기할 정도로.
강후가 전화를 받자, 성질 급한 신준호가 바로 물었다.
- 해치웠나?
“해치웠지. 네가 보낸 용병 말이야.”
- 뭣……?
“해결사가 뒈졌다고.”
- 너 누구야.
“됐고. 나중에 볼일 있으면 네가 직접 와라.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 야, 이, 이 새……!
일방적으로 신준호를 농락한 강후가 전화를 끊고, 스마트폰을 발로 내리찍었다.
다시 걸려올 수도 있을 전화의 진동을 듣는 것이 귀찮아서다. 어차피 볼일도 끝났고 말이다.
“윤상미.”
강후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윤상미를 살짝 흔들어봤지만, 아직은 움직임이 없었다.
자신이 가진 치유 스킬은 철저하게 본인 위주였으므로, 그녀에게는 써 줄 수 없는 상황.
지금으로서는 시간이 흘러 그녀가 깨어나기를 바라야 했다.
물론 그녀의 상태를 보니, 해결사가 정말 잠만 재워둔 것은 분명해서 걱정이 되진 않았다.
의도치 않게 생긴 여유 시간.
강후는 해결사와의 전투를 복기하며, 다시금 흑마법사의 까다로움에 대해 깨달았다.
단체 전투에서 흑마법사와 마주칠 일은 사실 적은 편이다. 그들은 최후방에 배치되니까.
하지만 이렇게 일대일로 상대를 해 보니, 여간 까다로운 직업이 아닐 수 없었다.
공격, 방어 수단이 일반적인 스킬들과는 결을 달리하는 데다가.
태우고, 녹이고, 왜곡하는 스킬이 많다 보니, 한 번의 실수로 즉사할 가능성도 존재했다.
다른 직업군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즉사 스킬이 흑마법사 직업군에는 꽤 많은 것이다.
처세술로 해결사에게 되돌려줬던 산화 스킬도 마찬가지.
산화의 범위에 심장, 머리 같은 부위가 들어가면 선 채로 죽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나중에 장시환을 상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더 끔찍하네.’
장시환은 흑마법사로서의 완전체 그 자체다. 물론 흑마법사로서의 능력도 전부가 아닌 일부다.
주인공 버프를 있는 힘껏 몰아서 받은 녀석이기에, 전투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팠다.
주인공을 뛰어넘는 진짜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삶. 결코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또 한 번 들었다.
* * *
윤상미가 잠에서 깬 것은 그로부터 10분 정도가 지나서였다.
강후가 예상한 대로 몸이나 정신에 따로 문제는 없었다.
다만 기절한 상태로 나무에 묶여 있던 탓에 약간 뻐근함을 호소하는 것이 전부였다.
“오빠, 어떻게 된 거예요? 저, 기억이 하나도 없어요. 정말 갑자기 벌어진…….”
“별일 아냐. 네가 걱정하는 그런 상황도 벌어지진 않았고.”
“별일 아니라기에는 너무 상태가 나쁜 시체가 앞에 쓰러져 있는 거 아니에요?”
윤상미가 웃는 표정으로 죽음을 맞이한 해결사의 얼굴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생길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못생긴 것도 덤이었다.
강후와 비교해서 보니, 오징어는커녕 오징어 다리의 때만도 못한 느낌이 든달까.
“왜인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우리를 노렸던 것 같아.”
적당한 거짓말로 둘러댔다.
괜히 해방구니, 흑골단이니 하는 얘기를 한다고 해서 도움이 될 것은 없으니까.
게다가 해결사가 죽어버리는 바람에 신준호는 자신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게 됐다.
해결사야 마나의 흔적을 쫓아서 얼굴도 모르는 자신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신준호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타깃을 민수현으로 바꿀 가능성이 컸다.
그녀는 적어도 얼굴이 팔리기는 한 만큼, 정보를 찾아 추적하기에 수월할 테니 말이다.
강후가 적당히 전후 과정을 설명하자, 윤상미도 더는 깊게 물어보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무방비 상태로 기습을 당하고 기절했다는 사실이 자존심이 상하는 모양이었다.
원래 허를 찔린다는 게 그렇다.
인지하고 있지 못하면, 레벨이 한참 낮은 헌터에게도 당하게 될 수 있다.
하물며 해결사는 레벨이 300대 이상으로 윤상미보다 높았다. 당한 것이 부끄러울 일은 아니었다.
물론 평상시에도 주변의 경계를 늦추지 않는 강후에 비교하면, 느슨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얘기를 듣고 난 윤상미가 얼굴을 붉혔다.
자신이 부주의한 탓에 강후에게 목숨을 빚졌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고마워요, 오빠. 제가 너무 방심했어요. 오빠까지 위험에 빠뜨릴 뻔했네요.”
“해피엔딩이면 끝이지. 지나간 일에 미련 둘 것 없어. 오히려 주머니도 두둑해졌고.”
강후가 해결사에게서 빼앗은 아이템을 보였다.
마법사 직업군답게 마력 스탯에 편중된 아이템 구성이라 강후에게는 딱히 필요가 없었다.
다만 값어치는 나가는 아이템들인 만큼, 나중에 일괄 처분하면 최소 300억 원은 거뜬할 듯했다.
헌터의 세계라는 것이 그렇다.
점점 높은 레벨의 세계로 갈수록, 헌터 하나가 죽었을 때 사라지는 금액의 개념도 높아진다.
그나마 해결사니까 이 정도 가치지, 장시환 같은 네임드가 죽으면 수조 원의 손실이다.
빈익빈 부익부는 헌터의 세계에도 존재하고, 양극화는 오히려 일반인보다 더 심했다.
“치안청에서 바로 치안관을 보냈다고 하더라고요. 이것만 수습하고 바로 들어가요, 오빠.”
“컨디션은?”
“잘 자서 괜찮아요. 어차피 던전이 크진 않으니까, 후딱 들어갔다 나오죠.”
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벨 100을 찍는 것은 확정적인 만큼, 강후의 생각은 일찌감치 그 이후로 가 있었다.
이 세계에 빙의했을 때만 해도, 정말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졌던 레벨 100.
헌터에게 있어서 제2의 전환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시기가 어느덧 코앞까지 와 있었다.
* * *
공략은 빠르게 진행됐다.
난이도도 썩 높지 않고, 던전의 규모 자체도 소형급이었으므로 어려울 것은 전혀 없었다.
그래도 2인의 소규모 팀이다 보니, 나눠 먹는 경험치 벌이가 상당히 짭짤했고.
덕분에 보스 몬스터 공략을 앞두고 레벨 100 달성 직전까지 세팅을 마칠 수 있었다.
숫자로 표현하자면 99.9 정도의 레벨이랄까? 보스 몬스터를 잡으면 딱 100이 될 상태였다.
숨 고르기를 요청한 윤상미 덕분에 생긴 1시간의 휴식 시간.
강후와 그녀가 대충 차가운 흙지면 위에 철푸덕 앉아서는 챙겨온 샌드위치를 나눠 먹었다.
차갑게 식다 못해, 돌처럼 딱딱해진 샌드위치였지만 전투 이후에 먹는 맛은 꿀맛이었다.
“선규 오빠.”
“응.”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공략 시간이 엄청 단축됐어요. 오빠 출혈 유지 스킬이 엄청 많은가 봐요?”
“출혈 스킬이 많다기보다는, 출혈을 유지하기에 좋은 스킬 구성을 가지고 있지.”
“재생력, 회복력이 뛰어난 몬스터들이 꽤 있었는데 그 구간을 너무 쉽게 공략하고 지나갔어요.”
“출혈의 장점이지.”
“오빠는 없는 거 빼고 다 있는 거 같아요. 솔직히 출혈까지 들고 있으면 사기 아니에요? 쳇.”
윤상미가 입술을 삐죽이면서 장난스럽게 볼멘소리를 냈다.
출혈이라는 것이 단순히 검으로 벤다고 해서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의 공격 옵션이었다.
즉, 출혈이 없는 공격은 상대로 하여금 피가 나게 하더라도 빠른 지혈과 회복을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출혈이 있는 경우는.
지혈과 회복, 재생 등과 연관되는 스킬 효율이 극단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나빠진다.
100이 회복될 체력이 50, 40, 혹은 그 이하로 회복되는 것이다. 똑같은 스킬을 써도 말이다.
레벨 400대 이상의 던전을 가면.
시쳇말로 ‘괴랄’하다는 표현을 쓸 만큼 재생력이 높은 몬스터가 자주 등장한다.
수시로 체력을 회복하고, 상처를 재생하기 때문에 이를 방해하는 작업이 꼭 필요했다.
그래서 상위 헌터의 세계로 갈수록 ‘출혈 딜러’를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특정 스킬 혹은 특정 아이템에서만 출혈 옵션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희소성이 높다 보니, 당연히 찾는 곳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한데 강후는 아직 레벨도 높지 않음에도 출혈을 거의 상시에 가깝게 유지할 수 있는 상황.
윤상미가 보는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공략 중에 한 번도 출혈이 끊기지 않았다.
강후가 대답했다.
“내 가치를 꽤 높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어. 귀하다는 것도 잘 알고.”
“그러니까요. 나중에 오빠가 나랑 안 놀아주는 거 아닌가 몰라. 부르는 곳이 너무 많겠는데?”
“좋은 던전을 구해오면 같이 놀아줄게. 이 정도면 충분히 괜찮은 약속 아닌가?”
“흥, 자본주의의 노예 같네요.”
“크윽.”
윤상미가 강후의 옆구리를 힘껏 찔렀다.
칼로 찔러도 눈물 하나 안 흘릴 것 같은 냉혈한처럼 보이는 강후도 옆구리는 약점인 모양이다.
재미가 들린 윤상미가 몇 번이고 강후의 옆구리를 찌르자, 결국 강후가 참지 못하고 웃었다.
아주 사소하지만, 이렇게 가끔이라도 느낄 수 있는 긍정적인 감정과 표현이 강후는 소중했다.
그래서 닳고 닳은 감정이 아예 없어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혼자 있을 때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누군가와 교류하고 함께하고 있을 때면, 무뎌지고 눅눅해진 감정이 자극받는 느낌이었다.
강후는 그것이 자신으로 하여금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만드는 소중한 불씨라고 여겼다.
그런 감정도 없어진다면, 앞서 죽은 해결사와 별반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사람이지만 사람 같지 않은 존재. 그래서 영원히 외로울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 말이다.
* * *
보스 몬스터 공략과 함께 그동안 고대했던 목표가 드디어 달성됐다.
레벨 100!
빙의 이후, 줄곧 두 자릿수를 유지하던 레벨 표시에 드디어 한 자리가 더 늘어나는 순간이었다.
【분신술】
【스킬 숙련도 : Lv. Max】
【본체를 빼닮은 하나의 분신을 만들어 냅니다. 해당 분신은 일정 비율의 전투 능력을 획득합니다.】
【숙련도 최대의 효과로 본체의 33%에 해당하는 화력을 보유합니다.】
【분신의 유지 시간은 총 10초이며, 분신 생성에 체력의 10%와 마력의 35%를 소모합니다.】
바로 기본 스킬이 추가됐다.
분신술.
환영술과는 다르게 공격 능력을 가진 또 다른 본체를 소환하는 스킬이었다.
숙련도 최대 효과 덕분에 화력은 25%에서 33%로 올랐고, 유지 시간도 5초에서 10초가 됐다.
차원 강탈자가 제공하는 특전의 힘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다.
수준급 암살자라면 능수능란하게 그리고 현란하게 쓰기로 유명한 기본 스킬, 분신술.
가짜인 것을 알면서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변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암살자의 시그니처 스킬.
그것은 앞으로 암살자로서 추구하는 전투의 방향성이 달라지게 될 변화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