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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02화 (102/304)

102화 해결사 (3)

하지만 해결사도 대책 없이 있지는 않았다.

턴제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위기에 빠진 것을 깨닫는 순간 대응은 무조건 하기 마련.

해결사는 강후에게 납치를 당하는 과정에서, 일단 자신이 제대로 한 방 먹었다고 생각했다.

강후의 노림수에 당했음을 깨끗이 인정했고, 왼쪽 어깨를 내어줄 계산도 끝냈다.

몸을 최대한 비틀어 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방어 스킬을 쓰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어깨를 내어 주는 대신, 해결사는 그만큼의 시간을 반격의 기회로 썼다.

강후에게 전개한 것은 바로 산화였다. 레벨 200의 기본 스킬로 선택 가능한 스킬이기도 했다.

흑마법사 헌터의 취향에 따라서 산화, 발화, 탈진 등을 선택할 수 있었다. 해결사는 ‘산화’였다.

강후는 대참수 스킬을 연계, 해결사의 심장에 단검을 꽂을 준비를 마쳤다.

눈 뜨고 당해줄 리는 없겠지만, 타깃은 명확했다. 숨통은 한 번에 끊는 게 가장 깔끔하다.

바로 그때.

‘역시.’

당하기만 할 거라는 생각은 안 했는데, 역시 해결사의 손가락 끝에서 붉은빛이 일었다.

어떤 스킬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곱게 당해줄 생각이 없다는 의지를 알아차리기에는 충분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지.’

강후도 크게 욕심내지 않았다.

반응이 기민한 흑마법사를 상대로 일격에 전투를 끝낸다는 생각 자체가 오만이다.

다만 해결사가 전략적으로 왼쪽 부위를 내어줄 생각은 끝낸 듯하니, 결과물을 취하기로 했다.

푸욱!

“크헉!”

해결사의 왼쪽 어깨에 단검이 한 마디 정도를 찔러 들어가는 순간, 강후가 바로 단검을 빼냈다.

그리고 해결사의 몸을 발판으로 삼아, 발로 밀쳐내면서 뒤로 도약했다. 회피한 것이다.

다음 순간.

프스스스슷! 츠츠츳!

‘역시.’

강후가 있었던 자리에 연녹색의 원형 공간이 생기더니, 연기와 함께 단숨에 타올랐다.

산화 스킬이었다.

‘레벨 200에 산화로 정했나 보군. 하긴, 저게 가장 살상력이 높기는 하니까.’

예상은 적중했다.

해결사는 왼쪽 어깨를 내어 주는 대가로 자신의 목숨을 노렸다. 무서울 정도로 냉정한 판단이다.

손끝에서 일어난 변화에 신경을 썼기에 망정이지, 노림수의 성공에 취해있었더라면?

얼마 전에 죽인 전종두랑 저승에서 반갑게 악수나 나누고 있었을 것이다.

“크윽. 제법이군. 아픈데?”

“한 번에 하나만 해. 아파하던지. 아니면 별것 아닌 것처럼 허세를 부리던지.”

“더럽게 아프군. 이거, 출혈 유발 효과가 엄청난데……. 쉽게 지혈도 안 되는군.”

출혈에 있어서만큼은 강후도 자신 있었다.

출혈 효과는 지혈을 늦추고, 상대의 회복 능력을 억제하거나 반감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헌터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옵션 중에 하나였는데, 상당히 귀했다.

상위, 최상위 헌터의 세계로 갈수록 ‘출혈 딜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되는 것이다.

특히 가공할만한 회복력으로 죽지 않는 보스 몬스터를 잡을 때는 출혈 딜러가 필수였다.

없으면 절대 공략할 수 없었다. 장시환이 수백 명이 온다고 해도 안 될 정도로.

‘미리 균형을 깨는 게 좋겠다.’

강후가 즉흥적으로 생각을 바꿨다. 원래는 지금처럼 한 번 더 일격의 기회를 노릴 참이었지만.

해결사의 침착하고 신속한 반응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의 신체에 불균형을 만들어 내야, 심리적으로 균열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즉, 무시하고 싶어도 무시할 수 없는 대미지를 확실하게 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타앗!

손가락을 튕기자.

【혈화】

퍼퍼퍼펑!

피가 흘러내리던 해결사의 왼쪽 어깨에서 붉은 피의 꽃이 아름답게 피었다.

폭발이 얼마나 강력한지, 나름 근육질의 몸을 가진 해결사가 종이 인형처럼 펄럭일 정도였다.

물론 강후가 혈화 스킬만 써놓고 넋 놓고 있지는 않았다.

【납치】

다시 납치 시도.

그러나 조금 전 해결사가 구축해 놓은 악마의 벽에 막혔다.

그가 악마의 벽 뒤쪽으로 몸을 날렸던 것이다.

어차피 강후도 막힐 것을 고려하면서 스킬 연계를 짰기에, 바로 세컨드 플랜이 나왔다.

【환각】

【그림자 걸음】

환각, 그림자 걸음을 동시에 활용하는 것이었다.

환각 유지 시간이 0.2초로 짧지만, 절대 유발의 판정이기에 일단 해결사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큿……!”

환각이 순간적으로 유발한 시야는 세상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는 듯한 기묘한 그림이었다.

덕분에 그 시야를 가르며 나아간 그림자를 전부 쫓지는 못했고, 이번에는 하나를 놓쳤다.

그 시점에 강후는 지금까지 실전에서 쓴 적 없는, 아껴뒀던 옵션 하나를 꺼냈다.

【처세술】

예전에 차소희를 죽이고, 성좌를 강탈하면서 자연스럽게 계승된 처세술 스킬.

상대의 스킬 하나를 복제하여, 25% 효율로 쓸 수 있게 해 주는 스킬이었다.

워낙 마나 소모가 많고, 최근에 상대가 쓴 스킬을 복제하는 것이라 기회가 여의치 않았는데 타이밍이 왔다.

현재 기준, 최근에 해결사가 쓴 스킬은 바로 ‘산화’였다.

베껴 쓰기에는 가장 좋은 스킬이기도 했다.

파앗!

그 순간 강후는 해결사가 시야에서 놓친 그림자로 위치를 옮겼다.

【처세술 – 산화】

그리고 해결사가 서 있는 지점을 정확하게 특정하고 산화 스킬을 사용한 뒤.

바로 해결사에게 도약으로 달려들었다. 산화가 제대로 발동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흥!”

이번에는 강후의 접근을 눈치챘다는 듯, 해결사가 코웃음을 치며 오른손으로 스킬을 전개했다.

억제의 끈.

흑마법사가 스킬북으로만 얻을 수 있는 스킬로 불투명한 회백색 기운으로 상대를 옭아맨다.

일종의 포박 스킬인데, 항마 스탯에 따라 지속 시간이 달라지지만 완전 면역은 불가능했다.

강후가 붙잡히기 무섭게, 흑마법사의 시그니처 스킬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진보라 불꽃이 작렬했다.

강후의 몸 전체를 휘감은 진보라색의 불길이 순식간에 연쇄 발화를 일으켰다.

그 전에 미리 호신 – 2단계 스킬을 써둬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바로 불타 죽었을 일격이었다.

호신 – 2단계 덕에 진보라 불꽃의 불길은 깔끔하게 무효화됐다.

그리고.

치지지지직!

“으끄아아아악!”

시간차로 들어간 산화 스킬이 해결사의 오른쪽 옆구리와 그 안의 내장 일부를 녹여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

해결사가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이 스킬은 산화 스킬이었다.

자신이 쓰는 레벨 200의 기본 스킬 말이다. 그런데 강후에게 그 스킬이 되돌아왔다.

그렇다면 이 암살자에게 스킬의 복제 능력까지 있다는 건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신중하고 용의주도한 해결사도 자신의 스킬이 거꾸로 돌아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상대가 차라리 마법계라면 모를까, 암살자에게 스킬 복제는 전혀 어울리는 조합이 아닌 것이다.

첫 번째로 허를 찔렸던 것은 어깨를 내주고 버텼는데, 두 번째는 상황을 돌이킬 수가 없었다.

푸욱!

이어 강후가 여분의 단검을 전광비도에 실어 날린 일격이 또 한 번 명중했다.

“씨, 씨…….”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할 만큼의 고통이 복부에서부터 확 치밀어 올라왔다.

몸 전체가 잔뜩 경직되는 느낌이 매우 기분이 나빴다.

해결사가 오른손으로 옷 주머니를 더듬었고, 그 안에서 흰 가루를 꺼내 들었다.

마약인지 마약류 각성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성좌 ‘마약왕’과 시너지 효과를 내려는 듯했다.

“그건 안 되지.”

해결사의 반격을 예측하고 거리를 두고 있었던 강후는 어느새 다시 거리를 좁힌 상태.

연달아 일격을 당해버린 해결사는 주의를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전광비도로 날린 단검이 오른쪽 어깨에 명중하면서, 양팔이 사실상 무력화됐다.

흑마법사의 미세 컨트롤에 중요한 양팔의 통제력을 잃었다는 것은 사형선고와도 같은 상황.

휘리릭! 푹!

쉬이이익! 푹!

강후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전광비도로 연달아 다른 단검을 투척했다.

굳이 거리를 좁히지 않고도, 원거리에서 유의미한 한 방을 먹일 방법이 강후에게는 분명 있었다.

“커헉. 허억. 으허억…….”

단검 하나가 꽂힐 때마다 해결사가 주체할 수 없는 몸의 균형을 겨우 잡으며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그것도 두 번.

세 번째 단검이 명중했을 때는 결국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버틸 재간이 없었다.

쿠웅!

“쿨럭!”

제대로 버티지도 못하고 머리부터 부딪힌 해결사가 입으로 검붉은 피를 토해냈다.

복부 전체가 너덜너덜해진 넝마나 다름없는 상태이다 보니, 몸이 버티질 못했다.

투욱.

해결사가 미처 먹지 못한 하얀 가루 봉투가 바닥에 떨어졌다.

강후가 한심하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뽕 쟁이는 신고가 답이지. 125였던가.”

“크헉! 허억…….”

그것으로 끝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쇼크에 심장마비가 온 해결사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첫 등장에 걸맞게, 미친놈처럼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로 말이다.

“제사상 돼지머리도 아니고, 누가 보면 행복하게 죽은 줄 알겠군.”

푸욱!

강후가 확인 차원에서 해결사의 심장에 단검을 내리꽂았다.

99% 죽은 것은 확실하지만, 이런 미친놈은 일시적으로 깨어났다가 다시 죽는 경우도 있어서다.

헌터들의 표현으로 ‘뒤끝’이라고 하는데, 흑마법사 계열의 헌터가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성좌 넷이 줄줄이 강후의 품으로 들어왔다.

새삼 차원 강탈자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다른 헌터의 계약 성좌를 손실 없이 빼앗을 수 있는 능력은 차원 강탈자 말고는 없으니까.

괜히 강후가 그녀를 메인 성좌에 두는 것이 아니었다. 더 나은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대재앙 – 어둠이 가진 성좌 능력도 차원 강탈자에 비하면 희소성과 범용성이 떨어진다.

【암흑 성소의 수호신】

【마력 25를 암흑기 1로 전환하는 능력을 부여합니다. 단, 1분에 암흑기 1의 생성이 가능합니다.】

“티끌 모아 태산 느낌이긴 하지만, 암흑기의 물꼬를 이렇게 트는 건가. 정말 의외의 케이스네.”

암흑기는 앞으로의 활용 가치가 큰 스탯이다. 다른 헌터에게 거의 존재하지 않는 스탯이기도 하고.

암흑기 스킬을 강탈해서 구성을 맞춘다면, 요긴하게 쓸 일이 많을 것이다.

【타락한 선지자】

【감정을 완전히 말살시키는 대신, 특정 스탯을 100 올립니다.】

“이건 선택, 비선택이 가능하니까 일단 보류.”

감정이 마모된 것과 아예 없는 것은 개념이 다르다.

강후는 자신이 차가운 부분들이 있기는 해도, 어느 면에서만큼은 따뜻하고 싶었다.

최소한의 감정은 필요하다. 희로애락이 삭제된 삶은 무미건조하다 못해 재미가 없잖은가.

【마약왕】

【마약류 약물을 흡입하거나 섭취할 경우, 전투 효율이 단계적으로 10단계까지 상승합니다.】

“뽕쟁이 전용 성좌네. 이런 성좌는 대성전에서도 퇴출해 주는 게 맞지 않나?”

헛웃음이 나왔다.

마약을 대가로 전투력을 극대화시키는 성좌인데, 이 콘셉트에 충실했다가는 계약자가 단명할 판.

어쩌면 마약왕 성좌는 계약자가 오래 사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빛의 여인】

【매월 날짜의 숫자에 맞게 경험치 버프를 추가 제공합니다.】

“재밌네.”

빛의 여인 성좌까지.

특이한 성좌 넷을 손에 넣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해결사와의 전투. 그렇게 강후는 또 한 번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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