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해결사 (2)
다행히도 윤상미는 어디를 다치거나 상한 부분은 없는 듯했다.
그녀에 대한 걱정과 관심을 읽었는지, 해결사가 물었다.
“여자친구인가?”
“알아서 뭐하게.”
“너 정도 되는 외모면 여자친구가 있어도 이상할 건 없겠지. 어쨌든 난 매너를 충분히 지켰다.”
“갑자기 애먼 사람 기절시켜 나무에 묶어두고, 나한테 시비까지 걸려는 놈이 매너 타령은.”
“내가 의뢰를 받은 것은 너를 데려오는 것이고, 그 자체에만 충실했다는 얘기다.”
“엎드려 절이라도 해 줄까?”
강후의 반응에 해결사는 어깨까지 들썩이며 낄낄 웃어댔다. 이상하게 재미 포인트가 꽂힌 모양.
해결사는 흑마법사다.
똑같은 실력이라고 가정할 때.
가장 까다로운 직업군이 흑마법사인데, 그만큼 부릴 수 있는 기교가 많기 때문이다.
애초에 흑마법사의 수는 암살자보다도 훨씬 귀해서, 전투 경험을 쌓기도 꽤 어렵다.
장시환이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로 불리는 이유도 그가 네임드임과 동시에 흑마법사라서다.
상대하기가 보통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변수 창출 능력이 뛰어나다.
양 손목을 까딱거리며 풀고 있는 해결사를 향해, 강후가 물었다.
“이유나 좀 알아보자. 날 왜 찾아왔지?”
“너는 김천 해방구에 들른 적이 있지. 그리고 흑골단 대장의 아이템을 훔쳐 간 여자를 구출했어.”
“신준호가 보냈다?”
“그렇지. 다른 것도 아니고 2등급 아이템을 도둑 맞았는데 가만히 있는 게 이상하잖아.”
“대단하네. 내 정체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 텐데.”
“후후. 그것이 바로 내 강점이지. 마나의 흔적만을 갖고도 얼마든지 뒤를 쫓을 수 있거든.”
“탐지견 같은 느낌인가?”
“적절한 표현은 아닌 것 같지만 맥락상 비슷하다고는 해 두지. 클클클! 재밌군.”
“웃음 포인트 참 독특하네.”
강후가 한심한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신준호가 보낸 모양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아이템을 훔쳐 간 민수현을 쫓는 것이 맞을 터.
하지만 자신을 타깃으로 삼았다는 것은 능력에 욕심이 났기 때문일 것이다.
신준호가 어떤 식으로 다른 헌터의 능력을 빼앗는지는 강후도 알고 있었다.
“너를 쫓는 내내 맡을 수 있었다. 아주 특별한 냄새를 말이야. 너에게는 아주 맛있는, 그리고 고급스러운 냄새가 나…….”
“…….”
대꾸할 말도 생각이 나지 않아 강후가 똥 씹은 표정으로 해결사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미 분위기에 잔뜩 취한 해결사는 보디랭귀지까지 섞어가며 말을 이어갔다.
“난 이런 적과의 전투를 항상 꿈꿔왔다.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힘을 가진 존재와의 전투를.”
“소원성취하셔서 좋겠군.”
“그렇지! 바로 그거야. 오늘 이 순간은 나에게 웅장하고 멋진 교향곡 같은 전투란 말이야!”
“그래, 계속 읊어봐라.”
강후가 팔짱을 낀 채, 혼자 주절거리는 해결사의 헛소리를 듣는 체했다.
그러는 동안 해결사의 성좌 정보를 스캔했다. 총 4개의 계약 성좌를 보유하고 있었다.
정확하게 레벨을 특정할 순 없지만, 이 정도면 레벨 300대로 가늠해 볼 수 있다.
‘쉽지 않겠군.’
수준급의 흑마법사다.
마법계와 암살계는 서로를 까다롭게 느끼는 상극의 관계에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부담이 조금이라도 더 되는 쪽은 암살계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접근해야 전투를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근거리 계열 직업군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암흑 성소의 수호신】
【타락한 선지자】
【마약왕】
【빛의 여인】
‘성좌 정보 봐라.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또라이 그 자체네.’
성좌 구성이 독특했다.
암흑 성소의 수호신 같은 경우는 마력을 암흑기로 전환하는 능력을 부여해 주는 성좌다.
암흑기.
마력과는 별개의 개념으로 쓰이는데, 언데드 계열의 몬스터나 보스가 많이 쓰는 기운이었다.
헌터는 흑마법사를 제외하면 쓸 일이 거의 없는데, 암흑기 기반 스킬이 없어서다.
암흑기 기반 스킬은 몬스터들의 전유물 같은 것으로 헌터와는 연결점이 적었다.
하지만 강후에게는 아니었다.
언데드 계열의 보스 몬스터에게서도 얼마든지 스킬을 강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암흑기 기반의 스킬도 얼마든지 탑재할 수 있고, 암흑기의 활용도 가능해진다.
‘마약왕 같은 성좌는 마약류 약물을 먹으면 더 미친놈으로 변해가는 그런 성좌고.’
끼리끼리 어울린다더니 해결사에게 딱 어울리는 괴짜 성좌들만 모여 있었다.
해결사가 가진 네 성좌는 여러 가지로 탐이 났다.
어차피 해결사와의 전투가 좋게 끝날 리는 없었다. 죽이지 못하면 죽는 것일 터.
해결사가 자신을 생포해서 데려간다고 해도, 신준호의 손에 죽을 테니 결과는 똑같다.
어느새 주절거리던 해결사의 말 – 강후는 한 마디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 이 끝나고.
자기만의 뽕 맛에 푹 빠진 해결사가 양팔을 여유로이 뻗어 보이며 말했다.
“날 쓰러뜨리면 네 여자친구는 안전할 거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좋지 못한 꼴을 당하겠지.”
“매너에 감사는 해 주지.”
강후가 엄지를 세워 보였다.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중지를 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카득.
하나밖에 남지 않은 매드 솔라키움도 씹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라운드 제로에 가긴 가야겠군.’
매드 솔라키움의 보충도 필요하고, K에게 볼 일도 있고. 그라운드 제로에 갈 이유가 늘었다.
그리고.
“어둠이 짙게 깔린 밤. 무대는 참으로 좋다. 우리 같이 하모니를 연출해 보자, 친구.”
해결사의 개소리와 함께 전투가 시작됐다.
* * *
쿠우우우!
시작과 동시에 해결사에게 달려들려던 강후의 앞길을 가로막은 것은 악마의 벽이었다.
흑마법사의 레벨 50 기본 스킬.
흙이나 모래 같은 변동성이 있는 지형 위에 있을 경우, 직접 그것을 끌어올려 벽을 구축한다.
무형의 방어벽에 가까운 강후의 보호 결계와 비교하면, 악마의 벽은 눈에 훤히 보이는 벽이었다.
‘빨라.’
해결사의 반응은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빨랐다.
강후가 도약과 함께 도움닫기를 시작하려는 무렵에 이미 벽이 구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숙련도를 상당히 높였는지 만들어진 벽으로부터 흐물거리는 검은 손들이 무리 지어 나왔다.
솨악! 쇄액!
키에에에에!
강후가 뒷걸음질 치며 손을 잘라냈다. 그러자 손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이내 벽 속으로 다시 모습을 숨겼다.
다시 한번.
도약을 시도하면서 거리를 좁혀보려고 했지만, 해결사는 이미 삼중의 벽을 구축해 둔 뒤였다.
‘숙련도가 상당하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자신의 주력 스킬의 숙련도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
해결사의 흑마법사 스킬을 일반적인 숙련도의 스킬로 생각해서는 안 될 듯했다.
어쩌면 부리는 기본 스킬의 숙련도를 전부 최대(Max)로 맞춰놨을 수도 있겠지 싶었다.
방심은 금물이다.
‘그렇다면.’
파앙!
변주를 주기로 했다.
그림자 걸음을 전개하며 여러 갈래로 공격 루트를 예측할 수 없게 분산시켰다.
악마의 벽은 정면 루트에만 구축되어 있는 만큼, 결국은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흠.”
그림자 걸음처럼 다섯 개의 그림자가 제각각의 방향으로 흩어지면 당황할 법도 하지만.
해결사는 침착하게 그림자와 강후의 본체를 번갈아 가며 살폈다.
어느 한쪽에 시선이 치우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과도하게 분산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빈틈은 있었다.
해결사의 눈이 담지 못한 시야 밖으로 그림자 하나가 도착하는 순간!
강후가 그림자 위치로 이동을 시도했다. 아니, 정확히는 시도하려고 했다.
한데 바로 그때.
프스스슷.
‘……없어졌어?’
그림자가 사라졌다.
따로 공격을 받은 것도 아니고, 이동 가능 거리 밖으로 나간 것도 아닌데 그림자가 없어진 것이다.
“클클클. 잔재주를 부린 것까지는 좋은데, 마나 태우기 앞에서는 결국 평등하다고.”
해결사가 강후를 향해서 검지를 좌우로 흔들어 보였다. 소용없다는 제스처였다.
해결사는 침착했다.
그리고 각각의 기본 스킬 숙련도가 높았다. 이런 방식이면 많은 스킬이 차단당할 여지가 많았다.
강후가 좀 더 자세를 낮추고 다른 스킬의 선택을 고민하는 사이.
해결사가 웃으며 말했다.
“레벨이 300쯤 되는 건가? 도약력도 매우 우수하고, 가진 스킬도 상당히 독특한데?”
해결사는 강후의 레벨이 자신과 엇비슷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강후의 입장에서야 착각은 자유고, 고쳐 줄 필요는 없으니 대꾸는 하지 않았다.
‘그간 내가 너무 날로 먹긴 했지. 그래, 그건 인정하자.’
해결사의 여유로운 반응이 자극이 된 걸까? 강후도 자연스레 웃음이 나왔다.
지금까지의 전투는 자신에 대해서 분석이 안 된 적의 빈틈을 일방적으로 공략했던 맛이 있었다.
어찌 보면 강력한 패를 가지고, 항상 이기는 싸움을 해 왔던 느낌이 강했다.
그만큼 자신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존재였고, 힘을 가늠할 수 없는 상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결사는 다양한 전투를 바탕으로 여러 변수를 미리 차단하는 통찰력을 가졌다.
지금은 해결사가 자신을 동등한 레벨의 헌터로 본다는 것 자체가 그를 더 용의주도하게 만들 터.
‘좀 더 판을 벌여 볼까.’
수 싸움, 머리싸움은 강후도 즐기는 바다. 간 보기는 이쯤 하고, 난타전으로 가기로 했다.
【기교의 장막】
반경 11m의 장막이 깔리고, 강후의 모습이 사라졌다.
마나 소모가 많아 부담되는 스킬이나, 야만의 시대 덕분에 마나 요구량이 반토막이라 쓸만했다.
“…….”
강후가 장막 속에서 무영 스킬로 기척까지 확실히 숨긴 뒤, 조용히 가장자리를 따라 움직였다.
결사와 가까워지기도 했고, 외곽으로 이동하며 확 멀어지기도 했다.
“절대 은신 스킬이다, 이건가.”
해결사가 혀끝으로 입술을 핥으며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강후의 작은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해결사가 하늘 높이 양손을 뻗으며, 자줏빛의 불길을 소환해내기 시작했다.
흑마법사의 레벨 40 기본 스킬, 진염 낙하였다.
각각의 자줏빛 화염구는 격렬하게 진동하고 있었는데, 강후는 그 노림수를 알아차렸다.
‘탐지는 할 수 없지만, 파동에서 간섭이 일어나는 위치를 탐지하겠다?’
적이지만 칭찬해 주고 싶을 만큼 대응이 깔끔했다.
해결사에게 절대 은신도 까다롭지 않게 여길 수 있는 대응법이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물론 감탄은 거기까지다.
해결사가 대응한다면 저런 방식일 것이라는 것을 미리 짐작한 만큼, 강후는 다음 계획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간단하지만 칼 같은 거리 재기가 필요한 납치였다.
강후가 기교의 장막을 펼쳐놓은 위치와는 약간의 거리가 있었기에 바로 쓸 수는 없었다.
그래서 기교의 장막, 그 범위의 끝에서 동시에 세 개의 스킬을 연달아 썼다.
매드 솔라키움을 먹었기에 버티지, 안 그랬으면 머리가 쪼개지는 고통에 시달렸을 연계였다.
【가속】
【도약】
【납치】
순식간에 연계가 이뤄졌다.
“크악!”
도약으로 단번에 이동이 가능한 반경인 13.2m와 납치 가능 반경 16.5m를 합쳐, 무려 30m에 달하는 거리를 단숨에 좁힌 것이다.
자신이 가까워짐과 동시에 상대를 끌고 와서, 체감상으로는 찰나의 순간에 가까워지게 되는!
눈 깜짝할 사이의 포획이었다.
“이……?”
해결사의 표정이 굳었다.
이게 된다고? 하는, 딱 그 표정이 해결사의 얼굴에 아주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