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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98화 (98/304)

98화 가치 증명 (5)

* * *

한나절이 채 지나기도 전에 강후 일행은 어느덧 마지막 방을 앞두고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앞서 증식의 방에서 강후가 상대했던 데스 나이트는 한 번 쓰러진 뒤,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강후가 목뼈를 집중적으로 공략한 다음, 혈화로 깔끔하게 마무리를 해 버렸기 때문이다.

숙련도 최대의 수준을 뛰어넘은 그 이상의 경지. Ultimate 스킬인 만큼, 위력은 강력했다.

속도전은 통했다.

덕분에 강후는 마지막 방을 앞두고 레벨을 무려 98까지 올릴 수 있었다.

들어오기 전만 해도 97을 찍으면 정말 많이 올린 거겠다 싶었던 예상이었는데.

신속한 공략으로 풍족하게 들어온 경험치 덕분에 걱정을 덜었다.

이 정도면 마지막 방을 공략했을 때, 99도 가능할 듯했다.

미로 던전 공략 후에 윤상미를 만나 던전을 한 차례 더 간다면 레벨 100은 확정이 된다.

【사령의 침묵】

【스킬 숙련도 : Lv Max】

【초당 마나 10을 소모해, 언데드로 위장합니다. 그들 고유의 기운을 풍기므로 들키지 않습니다.】

【단, 성스러운 기운을 보유한 존재는 사령의 침묵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내가 사용하지 못할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겠군.’

강후가 데스 나이트로부터 강탈한 스킬, ‘사령의 침묵’에 관련된 툴팁을 읽고는 웃었다.

성스러운 기운이란, 보통 신성력을 일컫는다. 줄여서 성력이라고도 한다.

이를테면 네임드 중에 잘 알려진 구원의 성녀, 엘리자베스가 성력을 주로 쓰는 헌터다.

‘동시에 열세 개의 별이기도 하지.’

성력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보다가 자연스레 떠오른 엘리자베스.

생각해 보니, 그녀 역시 열세 개의 별이다. 아마 이 무렵부터 열세 개의 별의 일원이 됐을 터.

하지만 대외적으로 그녀가 열세 개의 별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5년 후다.

그녀가 완벽하게 자신의 정체를 위장하고, 사람들이 찬양하는 ‘성녀’ 행세를 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99.9%의 헌터는 마력을 기반으로 싸우지만, 엘리자베스처럼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암흑기.’

하나 더 떠오른 것은 암흑기였다.

신성력이 빛을 상징하는 힘이라면, 암흑기는 어둠을 상징하는 힘이다.

데스 나이트의 스킬이었던 사령의 침묵은 바로 암흑기를 간접 체험할 수 있게 하는 스킬이었다.

사령의 침묵은 마나를 이용해서 언데드로 위장을 하게 하지만.

암흑기는 태생이 언데드의 기운이다. 즉, 사령의 침묵이 맛보기를 시켜주는 셈이다.

‘원작에서 암흑기는 그림의 떡이었지. 강탈 능력을 가진 존재도 없었으니까.’

세계관 설정 속에 암흑기 콘셉트는 존재한다.

특화 던전 또는 지금보다 높은 수준의 던전을 가면, 암흑기 전용 스킬도 종종 등장한다.

그 스킬을 강탈한다면 암흑기를 기반으로 하는 스킬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차원 강탈자라는 성좌를 보유하고 있는 강후이기에 가능한 선택지이기도 하다.

즉, 다른 헌터는 암흑기 스킬이 있음을 알아도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 마력을 암흑기로 바꿔주는 스킬도 존재할 거야. 내가 떠올렸던 스킬이니까.’

강후는 무의식을 믿고 있었다.

원작자로서 이 세계에 남긴 무의식은 많은 요소를 구성하고 있다.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암흑기 전환 스킬을 손에 넣는다면……. 그땐 헌터로서의 정체성도 달라질 터다.

‘내 글솜씨가 썩 괜찮았단 말이지. 쓸만한 설정이 많아. 개연성도 제법 있고.’

강후가 반쯤 자뻑(?) 섞인 미소를 지으며, 혈루에 아직 묻어있는 피를 닦아냈다.

“하아아암…….”

그때.

직전 방에서 한숨 자고 있는 전세혁의 하품 소리가 들렸다.

30분의 휴식 시간 동안 무엇을 하려나 싶었는데,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잠을 선택한 모양.

그사이.

마력 회복과 무기 정비를 마친 반세영이 강후의 옆으로 슬쩍 와서는 말을 걸었다.

“오빠.”

“응.”

“어떻게 그리 공격이 깔끔해? 모든 상황에서 전부 자로 잰 듯이 공격을 하니까 신기해.”

“평정심을 유지한 결과지.”

강후가 솔직하게 답했다.

지금까지 전투에 임하면서 평정심을 잃은 적은 거의 없었다.

물론 긴장은 항상 했다. 언제든 죽어도 이상할 게 없다는 생각도 분명 했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마음이 편안했다.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은 아직까진 살아있다는 뜻이니까.

아마 평정심의 이유를 풀어 설명해 줬다면, 반세영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미쳤다고 했을 터다.

“팽창의 방이나 증식의 방도 놀라웠지만. 한계의 방이랑, 억제의 방에서도 오빠가 거의 다 했어.”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나도 나댈 수 있는 거지.”

공을 반세영에게 돌렸다.

그녀의 지원을 믿었기에 신나게 뛰논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정말 좋은 파트너였다.

무엇보다 극한의 근거리, 원거리 공격을 선호하는 직업군이기에 동선이 거의 겹치지 않는다.

따로 움직이나, 전장을 놓고 보면 한 몸으로 움직이는 것과 같기도 했다.

“솔직히 좀 무서워. 오빠 같은 사람이 레벨에 아이템까지 받쳐주면, 그때는 호칭이 바뀌거든.”

“뭐라고?”

“네임드.”

그녀가 고글을 닦으며 말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고 있었지만, 사실 반세영은 강후가 두려웠다.

마치 비밀을 잔뜩 가진 남자가 힘을 숨기고 지내고 있는 느낌이었다.

오죽했으면 전세혁에게 강후의 성좌가 혹시 레벨 정보를 ‘왜곡’하는 성좌가 아니냐고 물었을까?

“멀었다. 레벨 100도 안 됐고.”

“그래서 무섭다는 거야. 레벨 100도 안 됐는데, 전투력은 레벨 300, 400을 뺨치잖아.”

“사촌 오빠 앞에서 그런 말하면 실례다.”

“오빠도 인정했는데?”

“아무튼 종종 호흡을 맞추자고. 너나 나나, 우리는 선수필승, 선공차단이 승리 방정식이니까.”

“말 돌리긴, 쳇. 어쨌든 오빠가 멋지다는 얘기야. 나, 아무한테나 칭찬 안 한다구.”

“감사히 듣지.”

강후가 엄지를 들어 보였다.

극한의 솔로 플레이를 추구하는 자신이기는 하지만.

반세영처럼 호흡이 맞는 파트너라면 팀플레이도 얼마든지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재밌었다.

말동무도 있고 하니, 덜 심심한 것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파트너가 좋다고 해도, 딱 한 가지 걸리는 것만큼은 외면할 수 없었다.

바로 전리품 문제.

독식을 항상 원하는 강후로서는 파트너의 존재가 마냥 반가울 수는 없는 부분이었다.

상대가 일방적으로 양보를 해 준다면 모를까. 물론 그것은 미덕이 아니다.

* * *

마지막 방 공략도 변수 없이 끝났다.

물론 마지막 방이라는 상징성에 걸맞게 공략 시간은 제법 걸렸다. 머리를 써야 했기 때문이다.

이곳은 최소 3인이 강제되는 방이기도 했다.

모든 지역이 안전지대인 상태로 시작했다가, 시간이 지나며 위험지대가 늘어나는 구조였다.

도전자들이 가장 오래 밟고 있는 위치가 위험지대가 되는 형태이다 보니.

그 유도는 반세영이 전담했다.

방 외곽에서부터 위험지대로 바꿔야 내부 동선이 편해져서다.

그래서 강후와 전세혁은 부지런히 움직이며 특정 지역을 오래 밟지 않도록 했다.

보스 몬스터 디루드.

이 녀석의 공략이 생각보다 일찍 끝난 것은 바로 강후가 가진 ‘사령의 침묵’ 스킬 덕분이었다.

언데드 몬스터인 디루드는 사령의 침묵으로 위장한 강후를 동족으로 인식했다.

그 덕분에 가볍게 횡 이동으로 디루드의 뒤를 잡은 강후가 녀석에게 쉽게 치명상을 입혔다.

보스 몬스터 전투치고는 허무하기 짝이 없는 마무리였지만, 결코 의미가 가볍지는 않았다.

애초에 언데드로 위장할 수 있는 스킬을 가졌다는 자체가 희소성이 높은 것이기 때문이다.

끝까지 강후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 디루드의 모습을 보면서, 전세혁과 반세영은 놀랐다.

자신들의 움직임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쫓는 디루드가 강후의 움직임은 신경도 안 썼다.

그것이 강후를 ‘언데드 취급’해서 그렇다는 것은 둘 다 잘 알았다. 그래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흑마법사라던가, 위장에 관련된 스킬을 가진 버퍼 직업군이라면 이해라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강후는 암살자다.

게다가 단순하게 외형을 바꾸는 위장도 아니고, 아예 기운을 언데드로 바꾸지 않았던가?

도대체 어떤 스킬을, 어떻게 얻어서, 이렇게 깔끔하게 위장에 성공했는지 의문이었다.

질문해도 알려줄 리 없고, 질문하지 않자니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황이 됐다.

어쨌든 그렇게 레벨 99 달성에 성공했다.

반세영은 약속한 대로 강후에게 적요석을 건넸고, 덕분에 강후의 적요석은 총 7개가 됐다.

레벨 100을 찍는 대로, 스킬 업그레이드와 함께 사라질 재료들이지만.

하나를 구하기도 힘든 적요석을 일곱 개나 가졌다는 것으로도 매우 큰 자산이었다.

억만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것이 적요석이니까. 그만큼 이 녀석은 귀하다.

[던전 전체의 공략 과정을 꼼꼼하게 채점한 결과. S+ 판정을 받았습니다.]

[최종 판정과 더불어 지름길 루트 공략에 성공한 대가로 주황색 마석 10개를 제공합니다.]

“와……!”

“와우. 1,000억 원이야?”

앞서 지급된 적요석을 포함, 최종 보상이 확정되는 순간 반세영과 전세혁이 탄성을 터뜨렸다.

지금껏 보상을 최대치로 받았던 것이 주황색 마석 2개였다.

시가로 따지면 200억 원의 가치. 결코 적은 것이 아니었다. 충분히 한탕이라고 할 만했다.

그런데 이번 공략에서는 최대치를 가뿐히 갱신하고, 무려 5배의 보상을 얻어낸 것이다.

강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많이 준 건가?”

알고도 모른 척한 것이 아니라, 정확히 감이 안 와서 물어본 쪽에 가까웠다.

보상이 섭섭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면 정말 크게 퍼주는 셈이었다.

“일단 밖에서 뵙죠!”

전세혁이 바로 던전 밖으로 향하는 출구로 들어갔다.

그는 처음에 말했던 대로 던전의 공략 과정 및 보상에 욕심낼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괜히 껄끄러워지지 않도록 눈치껏 자리를 비워준 것이다. 그 다운 매너였다.

이윽고 강후가 마석 열 개의 분배에 대해서 운을 띄우려는 순간.

“오빠, 난 하나만 가져갈게.”

반세영이 먼저 선수를 쳤다.

눈치 싸움이 될 것 같았던 분배가 1초 만에 끝났다.

* * *

호의는 거절하지 말랬던가?

하지만 강후는 반세영에게 주황색 마석 하나를 더 얹어주고는 자신이 여덟 개를 갖고 끝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반세영의 호의대로 주황색 마석을 아홉 개 갖고, 배를 충분히 채울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에게 받은 호의를 또 한 번의 호의로 돌려주고, 원하는 바를 더 얻어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좀처럼 던전 공략 기회를 얻기 힘든 강후가 그녀에게 해 두는 투자였다.

전세혁을 통해 던전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만큼, 일종의 ‘뇌물’을 건넨 셈이다.

100억 원어치 마석 하나를 주고, 앞으로 던전 공략 기회를 몇 차례고 얻을 수 있다면?

돈값은 차고 넘치게 하는 셈이다. 강후는 그렇게 좀 더 큰 그림을 그렸다.

한편.

미로 던전에서 얻은 주황색 마석은 전세혁을 통해 그가 잘 아는 마켓에서 전부 처분을 마쳤다.

그러고 나니 잔고가 폭등했다.

2등급 무기 아이템을 어렵지 않게 바꿀 수 있을 견적이 서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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