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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95화 (95/304)

95화 가치 증명 (2)

* * *

“저렇다니까. 노림수가 확실해.”

팔짱을 끼고, 첫 번째 방에서의 전투를 지켜보던 전세혁이 강후에 대한 감탄이 담긴 말을 내뱉었다.

자신이 미끼가 된 강후는 풍뢰진을 깔아놓고, 그 안에서 몰려드는 몬스터를 모조리 잡았다.

전투력이 향상된 각성형 오크라고 해서 맷집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바람과 전류의 힘으로 할퀴어대는 풍뢰진은 전세혁이 봤을 때도, 오래 버티기는 힘든 스킬이었다.

광역 스킬인 데다가, 그 안에서 휘몰아치는 공격의 빈도가 많아서 치명적이었다.

끄웨에에에!

돼지 멱따는 소리와 함께 각성형 오크들이 사방에서 넝마가 되어 쓰러져 갔다.

그리고 강후가 전광비도로 단검을 날릴 때면, 오크 네댓 마리가 줄줄이 머리가 관통당해 죽었다.

단검이 화력 자체가 엄청난 탓에 머리를 부수고, 또 다음 오크의 머리를 부쉈던 것이다.

한편.

강후도 만족스럽게 자신의 화력을 감상하는 중이었다.

‘이번에 전종두에게 빼앗은 칼립스 반지 세트가 효과가 탁월하네. 근력 250의 체감이 확실히 되는데?’

대폭 오른 근력은 그 값어치를 톡톡히 해 줬다.

근력 스탯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암살자의 특성상 당연한 결과다.

‘생기 흡수가 있으니 체력 부담도 없고.’

강후는 널브러진 각성형 오크의 시체를 보며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아직 체력에는 문제가 없지만, 설령 문제가 생긴다 해도 대안이 있으니 걱정이 없었다.

힐러나 포션이 없을 경우, 체력 관리를 강제 받는 다른 헌터를 생각하면 큰 걱정을 지운 셈이다.

‘빨리.’

강후가 더 속력을 냈다.

각성형 오크는 복잡하게 머리를 굴려야 하는 몬스터가 아니다.

전투력과 지능 측정은 끝났다. 결론은 빠르게, 신속하게 두들겨 패면 된다는 것. 간단했다.

【환영술】

오크들 사이로 아예 보란 듯이 환영술로 만든 분신을 적극적으로 날려 보냈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통찰력이 떨어지는 녀석들은 일단은 가까이 보이는 것부터 쳤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사이.

얕은 혼돈과 시야 강탈을 마음껏 오크들 사이에 뿌려둔 강후가 그 안에서 칼춤을 췄다.

애초에 이런 정신계 스킬에 저항할 스탯 자체가 없는 오크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방향 감각을 상실하고서 동족의 머리를 치거나, 엉뚱한 곳에 가서 몸을 들이박았다.

강후는 그렇게 삽질을 하는 오크들의 뒤로 가서, 경추에 단검을 쑤셔 넣고 꺾으면 그만이었다.

타앙! 타앙! 타앙! 타앙!

“진짜 편하네. 밥상이야?”

포인트를 잡고 엎드린 반세영이 흐뭇한 표정으로 손쉽게 방아쇠만 딱딱 당겼다.

강후가 몬스터들의 주의를 전부 끌고 있는 탓에 자신 쪽으로는 아예 오크들이 오지도 않았다.

얼마나 여유가 있는지, 그녀가 중간중간 고개를 돌려서 전세혁을 쳐다보기도 할 정도였다.

예전에 박동재와 왔을 때는 그녀가 최전선 공격 포지션이었다.

전세혁은 도움을 주되 관망하는 존재고, 박동재는 버퍼라서 전투는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박동재가 아닌 다른 근거리 딜러 계열의 헌터와 왔을 때도 반세영의 전투는 쉽지 않았다.

지금의 강후처럼 깔끔하게 주의를 돌려주는 센스 있는 헌터가 많지 않을뿐더러.

자기 편하겠답시고, 은근히 역할 분담을 요구하는 헌터도 꽤 많았기 때문이다.

혼자 고생하기 싫어하는 마음이야 이해하기는 했다.

하지만 조준, 저격, 위치 선정이 중요한 거너에게 잦은 이동은 득보다는 실이 많았다.

이런 부분에서 고생을 한 경험이 많은 반세영은 지금 이 순간이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거너가, 거너로서, 팀원만 믿고, 조준과 사격만을 반복하면 된다는 이 사실!

레벨 250이 될 지금까지 거너 생활을 하면서 거의 경험해 본 적 없는 ‘신세계’였다.

‘정말 안 믿을 수가 없잖아!’

반세영이 환하게 웃었다.

전투 돌입 직전.

자신 있게 말했던 강후의 말에는 틀림이 없었다. 헛소리가 아닌 현실 그 자체였다.

확실히 편했다.

동시에 공략 속도도 극적이라고 할 정도로 빨라졌다.

반세영의 마탄 저격이 보통 강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따금 각성형 오크 예닐곱 마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가는 광경을 볼 때면, 강후도 놀랄 정도.

어쨌든 일부 오크가 반세영에게 관심을 갖는 것 같으면, 그 역시도 강후가 방향을 돌렸다.

그림자 걸음처럼 시야를 어지럽히고, 상황에 따라서 위치를 바꿀 수 있는 스킬까지 있다 보니.

멀리 있는 반세영에게 마음 놓고 접근할 수 있는 각성형 오크는 한 마리도 없었다.

그나마 일부는 접근하는 과정에 그녀의 마탄에 목숨을 잃었고 말이다.

결국 강후와의 강제된 전투에서 오크들은 속절없이 죽어 나갔다.

완벽한 속도전!

수백 마리 오크를 상대해야 했던 방에서의 전투는 수월하게, 몇 분 만에 끝이 났다.

그리고 시스템의 채점이 시작됐다.

* * *

“고생했어.”

“내가 고생은 무슨. 오빠가 다 했는데.”

채점 결과를 보기 위해 강후가 반세영의 옆으로 왔다.

각자의 상태창에 표시되기는 하지만, 결과의 기쁨이나 슬픔은 가까이서 공유하는 게 좋으니까.

[임의로 선별한 유사 던전의 데이터 1만 개를 수치화하여, 이번 공략에 대한 평가를 진행합니다.]

시스템의 안내 메시지가 동시에 출력됐다. 강후와 반세영, 전세혁 모두 같은 시기였다.

세계는 넓다.

이번에 공략한 형태와 같은 방을 공략한 헌터의 수는 당연히 전세계에 차고 넘칠 것이다.

그래서 데이터 1만 개를 수치화한다는 시스템의 안내가 허무맹랑하게 들리진 않았다.

“예전 최고 기록은?”

“A. 각성제 풀도핑 하고, 비싼 아이템까지 대여해와서 작정하고 밀어봤는데 A가 최대였어.”

반세영의 실력과 전투가 불가능한 박동재의 상황을 고려해서 B 정도를 예상했는데.

박동재의 버프 효과가 좋긴 좋은 모양이었다. 예상보다 한 등급이 더 높았다.

어쨌든 그건 그거고.

이번 판정 결과가 궁금했다.

꽤 빠르게 공략한 것 같기는 한데, 비교할 지표가 마땅치 않으니 예상이 안 된다.

바로 그때.

[공략 시간과 몬스터가 입은 분당 평균 대미지를 합산하여 채점한 결과. S+ 판정을 받았습니다.]

[S+ 판정에 대해 시스템이 부여하는 특전에 따라, 해당 던전의 ‘지름길’ 루트가 열립니다.]

[S+ 판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신속하게 던전을 공략할 경우, 적요석 두 개를 ‘확정’ 보상합니다.]

“와, 이거 실화야? 미쳤네?”

반세영이 화들짝 놀라서는 몇 걸음을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고글을 벗고 몇 번을 눈을 비볐다.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후가 분명 깔끔하게 판을 짜준 것은 맞으니, 아주 높게 잡아서 S를 생각했던 그녀였다.

전세혁의 생각도 다를 것이 없었다. 그는 좀 더 보수적이라 A+를 예상했었다.

그런데 모두의 예상을 깨고 최상의 판정을 받은 것이다.

그만큼 공략이 빨리 됐고, 동시에 모든 몬스터에게 강력한 위력의 공격이 들어갔다는 뜻이었다.

우연이 겹쳐서 몬스터들이 죽은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화력 집중이 됐다는 얘기다.

“적요석을 확정한다라…….”

“오빠, 진짜 미쳤나 봐!”

퍼억!

반세영이 강후의 어깨를 쳤다.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다행이지, 아무 생각 없었으면 어깨가 휙 돌아갔을 한 방이었다.

그만큼 반세영은 놀라 있었다.

강후 역시 이 속도를 잘 유지해서 끝까지 간다면, 적요석을 얻을 수 있다는 보상에 눈길이 갔다.

스킬 업그레이드에 필수인 적요석은 돈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희귀 물품이기 때문이다.

돈이 차고 넘치게 있어도 못 산다. 구하기가 어려워서다. 누구도 팔려고 하지 않고 말이다.

그래서 시장에서 통용되는 가격은 실제 거래가가 아니었다.

친구 또는 가족 사이에 거래가 이뤄진, 지극히 개인적인 거래의 공식 기록일 뿐.

[특히 해당 도전자의 경우, 가장 낮은 레벨에도 불구하고 몬스터의 급소를 정확히 노렸습니다.]

[수집된 던전 데이터 상, 가장 레벨과 간극이 큰 실력을 보여준 멋진 도전자입니다.]

“시스템이 칭찬도 해 줘……?”

이어진 시스템의 칭찬과 강후의 모습을 담은 사진 출력에 반세영이 입을 떡 벌렸다. 생전 처음 보는 메시지여서다.

“훗.”

강후가 피식 웃었다.

미로 던전 계열은 이런 식으로 도전하는 헌터에 대해서 자체 평가를 하고.

실력이 매우 우수한 헌터에게는 메시지로 그의 능력을 칭찬한다. 원작의 설정이다.

그래서 생소하지 않았지만 반세영은 첫 경험인 모양이었다. 전세혁도 그녀와 비슷한 표정이었다.

[던전 카운트에 합산되지 않는 5분의 휴식 시간이 주어집니다.]

[재정비를 마치고, 다음 방으로의 입장을 준비해주세요.]

짧은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강후가 회수하지 못한 투척용의 연습 단검을 각성형 오크의 시체 사이에서 뽑아 들었다.

그리고 반세영은 과열된 총구를 특수 장비로 냉각시키며, 강후를 향해 엄지를 세워 보였다.

“오빠. 나 버스 탄다?”

버스.

레벨이 한참은 높은 그녀가 자신에게 할 말인가 싶었지만…….

상황은 정말 그랬다.

판을 짜고 흘러가게 만드는 원동력은 분명히 강후에게 있었다. 강후의 생각대로였다.

* * *

다음.

강후 일행이 입장한 다음 미로 던전은 ‘팽창의 방’이었다.

앞서 미친 듯이 전투만 해야 했던 콘셉트를 생각하면, 팽창의 방은 구성이 간단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멀어져가는 던전 끝 지점, 작은 제단 위에 있는 골드 버튼을 누르면 됐다.

그 즉시, 공략이 종료되는 것이다.

물론 던전의 팽창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해서, 공략에 실패하는 것은 아니었다.

최대 정점을 찍은 팽창의 방은 다시 수축하게 설계되어 있고, 그때 버튼을 누르면 됐다.

문제는 그때까지는 사방의 리젠 포인트에서 몰려드는 몬스터를 상대해야 한다는 점이다.

처음 세팅된 몬스터를 제외하고, 리젠 몬스터는 경험치를 주지 않기에 장기전은 절대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몬스터들이 살상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죽으면 끝이었다. 다음이 없다는 얘기다.

입구.

진입 전의 30초가 대기 시간이었다. 던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견적을 가늠한다.

강후는 나름의 생각을 끝낸 상태였다. 그때, 반세영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오빠, 예전에 내가 봐둔 포인트가 있어. 거기만 지키면 일당백도 가능해.”

“버티기로 가자?”

“좋은 생각 있어?”

“내가 직접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확신할 수 없어서 말하지 못했는데. 이거, 될 것 같다.”

“뭐가 된다는 얘기야?”

“골드 버튼, 내가 누를 수 있을 것 같다고.”

“뭔 소리야, 안 돼. 내가 동재 오빠한테 가속 버프를 한계치까지 받고 해도 새 발의 피도 안 됐어.”

“쉽게 생각하자. 일당백 포인트는 네가 지키고 있어. 나는 버튼을 쫓을게.”

“오빠. 그러다 꼬이면, 돌아오는 길에 몬스터 지옥이야! 앞방이랑 몰린 개념이 다르다구!”

“내기하자. 만약에 내가 골드 버튼을 쫓아가서 못 누르면, 그때는 나중에 적요석 하나를 양보하지.”

“……오?”

생각지도 않은 제안에 반세영의 귀가 쫑긋했다. 적요석의 유혹은 그만큼 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강후가 빠르다고 한들 급속도로 팽창하는 끝을 쫓을지 의문이었다.

입장하자마자 골드 버튼이 코앞에 있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소형 던전 구성 요건에 맞춰, 500m 이상 떨어진 곳에 제단과 버튼이 있다.

그리고 1초에 수십 미터씩 멀어지는 끝을 쫓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럼 그 이상의 속도로 쫓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중간에 몬스터의 방해도 있고 말이다.

반세영이 솔깃한 표정만 짓고는 별다른 말이 없자, 강후가 그녀에게 채근했다.

“서로 적요석 하나 걸고. 한다, 못한다. 어때? 무료한 던전 공략에 이런 재미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

어느새 강후는 이 던전을 즐기는 중이었다.

반세영과 전세혁만이 진지하고 심각하게 임하고 있을 뿐이었다.

강후의 입가에 좀처럼 보기 힘든 미소가 걸려 있었다.

자신의 몸이 도전할 수 있는 한계, 그 끝을 시험하는 재미가 있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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