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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90화 (90/304)

90화 Lv. 100 (1)

* * *

한나절 후.

한 남자가 잔에 가득 채운 보드카를 단번에 들이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시선은 아까부터 계속 모니터를 통해 출력되는 CCTV 화면에 멈춰 있었다.

해당 영상의 출처는 바로 전종두의 오쇼 용병단이 비밀 회합 장소로 이용하던 폐공장.

오늘 그곳에서 김수경 용병단과의 교전이 일어났고, 전종두가 죽은 상황이었다.

“변변찮은 놈들. 그동안 번 돈을 도대체 어디에 쓴 건지 모르겠군. 나름 투자도 많이 했는데.”

남자가 허공에 손을 휘휘 저었다. 실망이 잔뜩 묻어나는 제스처였다.

그의 이름은 니콜라이 스트라크. 러시아의 까쉬마르 길드를 운영하고 있는 마스터였다.

까쉬마르는 러시아어로 ‘악몽’을 뜻하는데, 그가 하고 있는 일을 생각하면 꽤 의미가 맞았다.

까쉬마르 길드는 해외에서 쓸만한 헌터를 납치해 데려온 뒤, 인간 병기화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폐공장에 있었던 베주미예도 까쉬마르 길드의 작품이었다.

워낙 극악무도한 방법으로 만드는 공정이라 인권은 둘째치고, 방식이 정말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인내와 수고가 꽤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라 공급이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언제 어디서나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인간 병기에 대한 수요는 전세계에 존재했다.

특히 뒤가 구린 길드나 조직일수록 더 많이 선호했고, 정화 길드도 구매 건이 있을 정도.

어쨌든 까쉬마르 길드가 헌터를 외부로부터 공급받는 주요 거래처 중 하나가 오쇼 용병단이었는데.

이번에 김수경 용병단에게 완전히 공중분해 당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어지간해서는 죽을 것 같지 않았던 전종두가 죽어버렸다.

그만 살아 있어도, 용병단의 세를 다시 불려주는 것은 일도 아닌 부분이었지만.

뿌리가 뽑혀버렸으니, 위에 달린 줄기로 살릴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덕분에 한국 쪽의 헌터 공급 루트가 끊겨버렸다. 적어도 대체자를 찾기 전까지는 말이다.

“도대체 누구지?”

스트라크는 화면 속에서 포커싱한 강후의 모습을 반복해서 살피고 있었다.

2층에 있던 전종두의 비밀 장소에도 내부 CCTV가 있었는데, 그 장면을 확보한 것이다.

외부인은 볼 수 없지만, 전종두가 스트라크의 명령은 절대적으로 따랐기에 열람 권한이 있었다.

전종두에게 한 방 먹었음에도 능숙하게 대응한 강후의 움직임이 놀라웠다.

보이는 외형만으로도 충분히 전종두에게 압도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후는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정석적인 역공의 패턴을 한 번 더 꼬아서 허를 찌르는 묘수도 있었고.

더 나아가 정신계 스킬을 활용한 정황도 포착됐다. 암살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스킬이다.

전종두를 죽였다는 사실에 대한 분함보다, 강후에 대한 관심이 더 갔다.

누구일까.

확보된 화면을 토대로 길드 내부에서 개발한 서치봇을 돌려봤지만,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실력만 봐서는 한국의 헌터 관련 방송이나 기사에 사진 한 번쯤은 실렸을 실력자 같은데.

서치봇은 그에 대한 정보를 단 하나도 찾아내지 못했다. 유사한 인물도 존재하지 않았다.

“저런 녀석이라면 전종두의 대안으로는 충분하다. 오히려 그 이상일 수도.”

스트라크는 한국에서의 ‘재료’ 공급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한국에서 넘어온 헌터들은 판매 가치도 높고, 실험이나 약물에 대한 순응도도 높다.

여러모로 개조가 쉽고 통제하기 수월한 면이 있어 투자 단가도 훨씬 쌌다.

한국에서의 매입 루트를 포기한다는 건, 값싼 원산지와의 계약을 끊는 것과 같았다.

“사람을 좀 보내봐야겠군.”

한국이 아닌 러시아 땅에서 백날 고민해 봤자, 강후에 대한 정보를 더 얻을 수는 없다.

스트라크는 강후와 직접 접선할 수 있는 루트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사람이야 찾으면, 어떻게든 결국은 찾아진다.

특히 이번 일로 김수경 용병단과 접점이 생겼을 테니, 연결고리는 만들 수 있을 터.

스트라크는 이미 머릿속에서 강후를 전종두 다음의 후임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정작 떡 줄 놈은 생각조차 않고 있는데 말이다.

* * *

그 무렵.

“400억 원. 입금됐습니다. 확인해 보시죠. 거액이라 조금 시간이 걸렸네요.”

“빠른 처리 감사합니다.”

강후는 김수경에게서 정산받은 400억 원의 입금을 막 확인하고 있었다.

잔고가 366억 원에서 766억 원으로 훌쩍 뛰었다.

여기에는 김수경에게서 받은 의뢰 보상금 100억 원과 전종두의 아이템을 판매한 200억 원.

또 일전에 얻은 주황색 마석을 처분한 100억 원까지 합쳐진 금액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추가 입금은 개인적인 감사입니다. 덕분에 일찍 전투가 끝나, 피해가 크게 줄었습니다.”

이어 김수경이 별도로 50억 원을 추가 송금했다. 강후의 활약에 대한 감사 표시였다.

덕분에 816억 원의 잔고가 만들어졌다. 이제 1,000억 원이 가시권에 들어온 것이다.

돈.

작정하고 모으려고 하면 참 벌기 어려운 것이 돈이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일에만 전념하며 모으다 보니 어느새 이만한 금액이 모였다.

물론 이제 시작일 뿐이다.

더 값지고 가치 있는 아이템을 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상한선이 없는 것이다.

강후가 처음으로 찍어보는 800억 원대 잔고를 보며, 제법 오래 흡족해하고 있는 사이.

김수경이 슬쩍 제안을 꺼냈다.

“우리 용병단과 함께 할 생각은 없습니까?”

“어디에 소속되는 것을 가장 싫어해서요. 눈치 보기도 싫고, 신경 쓸 식구가 늘어나는 것도 싫습니다.”

그의 얘기를 듣자마자, 칼같이 답을 들려주었다. 예전부터 늘 하고 있었던 생각이라서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후는 모든 상황에서 오롯이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싶었다. 그래도 살아남기 힘든 세상 아닌가.

“역시.”

김수경이 웃었다.

예상한 대답이라 당황스럽지는 않았는데, 너무 빨라서 단호하게 느껴졌다.

강후의 속마음을 알면서도 자신의 용병단이 그렇게 매력 없나 싶기도 했다.

어쨌든 제안은 결렬.

하지만 김수경은 강후와 연결될 수 있는 다른 방식의 ‘끈’을 꺼내 들었다.

“그럼, 의뢰꾼은 어떻습니까?”

“그건 좋죠. 저야 부담이 없는걸요. 선택할 수 있는 권한도 제게 있고.”

변형 형태로 꺼낸 김수경의 제안은 강후도 받아들였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앞으로 김수경과 그의 용병단이 계속 우상향의 곡선을 그리며 성장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원작에서는 아웅다웅하는 적대 세력이었던 오쇼 용병단도 사라졌으니 가속이 붙을 터다.

그렇다면 김수경과는 어떤 식으로든 연결고리를 만들어두는 것이 좋았다. 무조건 이득이다.

‘이제 강원도 쪽으로도 의뢰길이 뚫리겠군. 전보다 더 자주, 많이 말이야.’

이예린이 물어오는 의뢰도 지역 배분이 제법 되어 있는 편이기는 하지만.

강원도 쪽의 의뢰는 지금껏 늘 적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아마도 김수경 용병단과의 관계 때문에 일부 조심하는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덕분에 의뢰에서 확장성이 생겼다.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될 듯했다.

* * *

그 무렵.

“……뭐가 이리 바쁜 거지.”

흑골단 대장 신준호의 의뢰로 강후를 쫓고 있는 해결사는 대전역 일대를 서성이고 있었다.

이곳에 강후의 흔적이 있었다. 제법 많이. 그렇지만 거점으로 삼았다고 하기에는 양이 적었다.

강후의 흐름을 추적하면서 느낀 것은 위치가 한 곳으로 쉽게 특정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헌터들은 보통 자신이 안전하다고 여기면서, 중추적으로 활동하는 거점 지역이 존재하는데.

강후에게는 그런 곳이 전혀 없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대전역이 들른 횟수가 좀 있다, 정도랄까?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 이런 녀석은 비밀이 진짜 많단 말이지.”

해결사가 혀끝으로 입술을 핥았다.

그가 다시 천천히 걸으며 두 눈을 감았다.

마나의 흔적들과 교감하는 것이다. 영적 능력과도 결합되어 있어 금방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그때.

“짙다.”

멀지 않은 곳에서 강후의 흔적이 꽤 남아 있는 사람의 등장이 느껴졌다.

강후 본인은 아니지만, 관련자임은 틀림없어 보이는 흔적을 지닌 사람이었다.

해결사의 눈에 보인 것은 기다란 대검을 들고 대전역 앞을 활보하고 있는 한 여자였다.

‘연결고리를 찾았군.’

해결사가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강후와 연결된 끈의 시작점을 찾았다. 이제 추적에 속도를 낼 차례다.

* * *

쏴아아아.

태풍의 북상으로 예정된 장대비가 쏟아지는 밤.

차를 운전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날씨기에 강후는 김수경의 배려로 제공받은 안전 호텔에서 쉬었다.

김수경 용병단에서 직접 운영하는 호텔이므로 안전에 대해서 걱정할 것은 없었다.

도청이나 불법 촬영이 있진 않을까 싶었지만, 확인한 결과 별도의 장치는 없었다. 기우였다.

방으로 들어온 강후는 널찍하게 마련된 직사각형의 수영장에 뜨거운 물을 잔뜩 채웠다.

시간이 제법 걸렸지만, 아무 생각 없이 침대에 누워 쉬면서 기다리니 또 금방 갔다.

이윽고 수영장에 열이 모락모락 풍기는 뜨거운 물을 잔뜩 채운 강후가 몸을 깊숙이 담갔다.

아예 머리까지 통째로 잠길 만큼의 잠수였다.

강후가 수영장 바닥까지 쭉 내려가서는 침잠의 세계에 빠졌다.

생각을 정리하고 다듬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간이었다.

‘레벨 100을 최대한 빨리 찍으려면 던전을 가야 하는데. 빌어먹을 용병의 단점이 던전 출입이 자유롭지 않다는 거지.’

혼자 다 해 먹는 용병.

좋아 보이기는 하지만 딱 한 가지 문제가 바로, 소속이 없어 던전의 연결고리가 적다는 점이다.

길드 소속이면 길드 소유의 던전 공략에 쉽게 배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라이센스 확보 및 공략 일정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길드 차원에서 다 해결이 된다.

하지만 용병들은 오픈형 던전을 가는 것 외에는 쉽게 던전에 접근할 방법이 없다.

‘이현석 찬스를 쓰기는 너무 아깝고. 아직은 아냐.’

쉬운 길이 없지는 않다.

이현석이 민수현 구출과 관련해서 자신에게 신세를 졌으니, 던전 라이센스를 요구할 수는 있을 터.

하지만 그가 소유한 던전의 가치와 난이도를 생각하면, 지금 써먹기는 너무 아까웠다.

나중에 레벨이 좀 더 올랐을 때 도전하면 유용할 던전이 많다. 지금은 많이 아쉽다.

‘전세혁도 있잖아?’

이현석을 떠올리니, 자연스럽게 그의 친구인 전세혁이 생각났다.

그는 독자적인 힘을 갖추고 있는 용병이라, 자기 소유의 던전도 몇 개 있을 것이다.

고민은 짧게, 행동은 빠르게.

강후가 전세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이 잘 풀리려는지, 신호가 한 번을 끝까지 울리기도 전에 바로 그가 전화를 받았다.

- 네, 신강후 님.

한서연과 더불어 유이하게 자신의 본명을 아는 그다.

항상 정선규라고 불리다가 본명이 불리니, 아이러니하게도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잘 지내셨나요?”

- 본론부터 말씀하시지요. 어설픈 안부 인사나 미사여구를 싫어하는 성격인 것은 압니다.

척하면 딱이라더니.

이러면 말이 더 편해진다.

피차 요구할 내용이 확실하다면 굳이 돌려 말할 필요는 없다.

강후가 운을 뗐다.

“혹시 공략에 쓸만한 던전이 있습니까? 경험치 파밍만 할 수 있으면 됩니다. 전리품은 됐습니다.”

모든 전리품 포기.

전세혁에게 남는 던전이 있다면 구미가 당길 만한 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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