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전종두 (2)
침입자를 감지하기 위한 결계의 유일한 약점은 그물처럼 촘촘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 경우, 결계에 구축된 각각의 선이 영향을 주면서 접촉 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 하나가 옆으로 들어갈 만한 틈과 면적 정도가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물론 그렇게 구축돼도 큰 문제가 없긴 했다.
결계에 연계된 마나 흐름을 정확히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으니까.
탐색할 수 있는 장비가 있기는 하나, 부피가 크고 사용이 까다로워 이런 전투에는 맞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나는 복 받았지.’
다만 선천성 마나 과민증은 복잡한 절차나 과정들을 ‘감각’으로 극복할 수 있게 해 줬다.
남들에게는 없는 특혜였다.
반대급부로 과도한 마나 사용에 대한 대가를 몸으로 톡톡히 치르게 만들기는 하지만…….
어쨌든 결계나 트랩 같은 함정을 미리 감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점은 큰 강점이었다.
스윽.
강후가 간단히 결계의 틈 사이로 몸을 밀어 넣어 접촉 없이 사이를 지나갔다.
호리호리한 몸뚱이에 딱 달라붙게 입은 옷이 시너지를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찾는다, 전종두.’
눈에 불을 켜고, 어딘가에 숨어 있을 전종두를 찾기 시작했다.
그놈에게 거액의 의뢰 보상금이 걸려 있다. 포기할 수 없다.
주머니 속에 고이 모셔져 있는 매드 솔라키움을 조심스럽게 만지작거렸다.
오랜만에 녀석을 씹을 때가 된 듯하다.
* * *
같은 시각, 전종두는 이를 박박 갈고 있었다.
“빌어먹을.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어도 원만하게 흘러갈 그림을……. X미.”
분함을 참을 수 없었다.
김수경 용병단이 이상하다는 생각은 전부터 하고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대담하게, 그리고 갑자기 공장을 공격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안전 불감증이기도 할 것이다.
적대 세력이나 다름없는 김수경 용병단이 움직이더라도 오늘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했으니.
팔딱. 팔딱.
한편 전종두의 발밑에 있는 헌터의 ‘시체’가 일정한 박자를 두고 꿈틀대고 있었다.
이유인즉, 전종두에게 ‘생기’를 흡수당하고 있어서였다.
전종두는 광전사이면서, 동시에 생명체의 생기를 빨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성좌의 능력이다.
이 능력은 체력 회복으로도 쓰이고, 체력이 최대치일 때는 전투력의 상승으로 이어졌다.
이를테면 근력 증가, 스킬 화력 증가를 도모하게 되는 식이다.
지금의 경우 체력 회복은 진즉에 끝났고, 전투력 상승을 준비하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아직 원하는 만큼의 향상이 이뤄지지 않았다. 최대치의 40% 수준이었다.
그래서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인데, 돌아가는 흐름이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
전종두가 CCTV 속의 화면들을 다시 살폈다.
1층과 2층이 아닌, 지하 1층과 2층에 가둬놓은 헌터가 제법 있었다.
내일 러시아에서 오는 화물선에 실어 보낼 헌터들이었다. 판매 상품인 것이다.
사전 판매 예약가만 도합 500억 원에 육박할 정도의 나름 양질의 ‘물건’들이었다.
하지만 이래서는 거래 성사는커녕, 보관 창고가 통째로 날아갈 판이다.
아니, 생각해 보니까 그 정도가 아니라 오쇼 용병단의 운명이 통째로 날아가기 직전이다.
“X발!”
결국 성미 급한 전종두가 더는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퍼억!
이미 죽은 시체에 발길질로 괜한 화풀이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다운 반응이었다.
“더 기다리다가는 나 빼고는 다 죽겠군.”
전종두는 마탄 저격수들이 전투 초반에 일찍 제거된 것이 가장 분했다.
나름 위치도 잘 잡고 있던 녀석인데 웬 헌터 하나에게 소리소문없이 암살을 당해 버렸다.
내부 CCTV로는 얼굴을 정확하게 볼 수가 없어 답답한 상황.
하지만 어떤 녀석인지는 몰라도 잡으면 허리부터 접어 끝장을 내주고 싶었다.
꾸드드득. 꾸드드득.
생기를 제법 머금은 팔뚝이 타이어보다도 더 두꺼운 굵기로 팽창했다.
전장에 나서기 전에 보통 주섬주섬 자신의 무기나 공격용 아이템을 장착하는 헌터와 달리.
전종두는 맨손을 까딱이고 마디마디를 풀어주고 있었다. 그는 몸이 무기인 사람이기에.
바로 그때.
“흠.”
전종두는 아주 작은, 미세한 먼지지만 뭔가가 안으로 휙 흘러들어오는 것을 확인했다.
‘비밀 구역’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전종두 말고는 절대 들어올 수 없다.
정확히는 들어올 권한이 없다.
게다가 침입자 감지를 위한 결계가 있어, 소리소문없이 들어오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불청객이 있는 것이다.
길목에 설치한 CCTV에도 잡힌 게 없었는데, 누가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온 걸까.
“네가 그 쥐새끼냐.”
전종두는 불청객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이 녀석이 마탄 저격수를 죽인 놈이다. 현장에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았던 놈 말이다.
쪽문에 의도적으로 배치한 베주미예의 소식도 없는 걸 보면, 베주미예 역시 제거한 게 분명하다.
가까이 있는 게 틀림없는데, 상대는 말이 없다.
전종두가 가장 싫어하는 직업군이 바로 암살자 부류다. 음침함과 은밀함을 즐기는 것을 혐오했다.
그때.
휘리릭!
어둠 속에서 강후의 모습이 드러나며, 동시에 투척용 단검 하나가 날아들었다.
전광비도를 곁들여 날린 강력한 단검 투척이었다.
와작!
이어서 강후가 매드 솔라키움을 씹었다. 전종두와의 전투를 ‘부스터’ 없이 할 수는 없을 듯하기에.
푸욱!
이윽고 날아간 단검이 전종두의 굵은 팔뚝에 꽂혔다.
애초에 피하는 선택지는 생각에도 없었던 듯이 전종두의 대응은 너무 자연스러웠다.
“좀 아프군.”
전종두가 팔뚝 안까지 깊숙하게 박힌 단검을 쓱 내려보고는 그것을 손으로 직접 잡아 빼냈다.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지만 전종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자주 있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팔뚝이 그렇게 두꺼워서야, 팔뚝 뒤에 연고라도 제대로 바를 수 있겠어?”
강후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두껍고 육중한 전종두의 몸을 보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전종두는 강후 몸의 두 배는 될 듯한 두께와 크기를 갖고 있었다.
질문이 대꾸할 가치도 없다 여겼는지, 전종두는 대답 대신 이야기의 방향을 돌렸다.
“어디서 온 놈이냐? 김수경 용병단 소속이냐?”
“알고 싶으면, 직접 쓰러뜨리고 나서 물어봐.”
강후가 손끝을 까딱이며 전종두를 도발했다. 그러자 전종두가 씨익 웃으며 답했다.
“쓰러뜨리긴 무슨. 접을 건데.”
지금까지 들어봤던 멘트 중에서 가장 소름이 끼치는 멘트였다.
상황이 상상이 돼서일까?
꿀꺽.
강후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 * *
전투에 돌입하기에 앞서 전종두에 대한 성좌 정보를 스캔한 이후로는 생각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전종두를 생포할 수 있도록 판을 크게 짜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래야 의뢰 보상에서 300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여기로 들어온 것을 김수경이 본 만큼, 곧 지원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다.
어쨌든 생포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것이 맞으면, 300억에 준하는 보상은 확정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의뢰의 주체가 김수경인 만큼, 본인 스스로에게 보상금을 주지는 않을 테고 말이다.
들어오기 전까지는 분명 생포라는 키워드를 두고 접근한 것이 맞았다.
하지만.
전종두를 직접 보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전종두와 계약하고 있는 성좌는 총 다섯.
【무정한 탐식가】
【전장의 개】
【인내의 구도자】
【바람의 인도자】
【야바위의 달인】
이 중에서 가장 관심이 가게 만든 성좌는 바로 무정한 탐식가였다.
【무정한 탐식가】
【중립 성향의 성좌입니다.】
【몬스터 또는 헌터로부터 생기를 흡수하여 체력을 회복하거나 전투력을 높일 수 있게 합니다.】
예상이 맞았다.
체력 회복은 혜택 중에 일부고, 전투력을 향상하는 효과까지 덩달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다른 네 성좌의 효과도 강후에게는 시너지가 좋은 것들이었다.
이런 그림으로는 전종두를 생포하고 300억 보상을 얻는 것보다.
차라리 죽이고 100억을 얻는 그림이 나았다.
그를 죽이면 강탈할 수 있는 성좌 계약만 봐도 200억 이상의 가치는 충분히 하기 때문이다.
야바위의 달인 같은 성좌는 의외성이 높지만 대박 날 확률도 있는 복권 같은 특전도 있었다.
‘무정한 탐식가는 솔로 플레이를 지향하는 내 방향성에 가장 잘 맞는 성좌이기도 하고.’
무정한 탐식가까지 얻을 수 있게 되면, 더 이상 강후에게 힐러 같은 존재는 필요가 없어진다.
체력 물약? 필요 없다.
그저 잠깐의 시간만 주어지면, 언제 어디서든 회복을 도모할 수 있다. 과정이 단순해진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저런 성좌 능력이라면 전종두의 손에 붙잡히는 순간, 내용물을 다 빨린 팩 음료 신세가 되겠군.’
전종두와의 전투에서 극도로 경계해야 할 위치가 떠올랐다는 것이었다.
몸의 어딘가를 붙잡히고, 그 상태로 흡수당해서 바람 빠진 풍선처럼 되어버리는 광경!
그것이 영화나 소설 속 장면이 아니라, 현실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전종두는 상대를 어떻게든 잡아서 체술로 조져버리는 육체파이기 때문에.
한 번 붙잡히면 거기서 삶이 끝난다고 봐도 무방했다. 장담할 수 있었다. 바로 죽는다.
극한의 아웃복서 스타일로 상대해야 하는 적이었다.
‘내가 전종두도 뛰어넘지 못하면, 강동현 선에서 정리될 거야. 아니, 거기까지도 못 간다.’
강후는 전종두와의 전투를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어야 다음이 있다.
지금 전종두와의 전투를 포기하고 밖으로 나갈 수도 있다. 적만큼이나 아군도 많으니까.
하지만 앞으로도 언제나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지진 않을 것이다. 적의 수준도 그렇고.
그렇다면 어렵고 힘들어 보이는 그림이라도 이겨내는 것이 꼭 필요할 듯했다.
30분.
매드 솔라키움의 약효가 떨어지기 전에 전투를 끝내야 한다. 다음은 없다.
“뒈져, 새끼야……!”
전종두가 성난 물소처럼 강후를 향해 돌진했다.
애초에 기동 반경이 그리 큰 공간은 아니었다. 집으로 따지면 34평형 정도 되는 면적이다.
덜커덕. 덜컹덜컹.
게다가 전종두가 돌진하기 전에 책상 위에 있던 버튼을 누른 터라 퇴로도 자연스럽게 막혔다.
열린 형태의 공간인 줄 알았는데, 개폐 장치가 있었던 모양. 강후가 놓친 부분이었다.
강제적으로 일대일 구도가 만들어졌다. 퇴로가 막혔으니, 이제는 임전무퇴일 뿐이다.
【그림자 걸음】
파앗!
접촉을 피하기 위해, 강후가 그림자 걸음으로 공간 이동의 선택지를 다양화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여차하면.
죽기 직전까지 가게 되면, 순간 이동을 활용해 현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도 있다고.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는 보험을 떠올린 것이다.
믿는 구석이 생기면, 그만큼 걱정과 근심이 사라지고, 과감성이 더해지게 되니까.
세컨드 플랜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한 번 더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패기가 필요할 듯했다.
성난 황소를 잡으려면, 그 소보다 더 날뛰지 않고는 끝을 볼 수 없으니까.
그렇게 사냥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