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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82화 (82/304)

82화 여수행 (4)

* * *

‘실력 좋네.’

‘역시 바로 옆에서 보니까 확실히 보인다. 전부 계산하고 피하는 거야. 운이 좋은 게 아니라.’

불닭(?) 카나비스를 쓰러뜨리기 위한 전투가 심화 될수록, 강후와 백선태는 서로에게 매력을 느꼈다.

물론 실력에 대한 호감을 느낀 것이었다. 혹자가 생각할 법한 감정적인 호감이 아니라.

어쨌든 백선태는 강후의 스킬과 회피 대응이 의도적이면서 계산된 것임을 확인했고.

강후는 백선태의 실력이 지방의 중소규모 군벌에서 썩기에는 아쉽다는 결론을 내렸다.

김자호가 얼마만큼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백선태의 실력이라면 정화 길드도 쉽게 들어갈 정도였다. 당연히 권할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두 암살자의 치고빠지기식 공략에 카나비스는 죽을 맛이었다.

카나비스의 특징은 강력한 화력을 가진 불을 뿜어내면서 적의 접근을 저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불을 뿜어내는 것이 무한대로 가능한 것은 아니어서, 약간의 대기 시간이 꼭 필요했다.

문제는 이 빈틈을 강후와 백선태가 절대 그대로 두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특히 강후는 굳이 카나비스에게 접근하지 않고서도 전광비도 같은 스킬로 원거리 타격이 가능했다.

게다가 접근하면 접근한 대로, 대참수 스킬을 이용해서 파괴적인 일격이 가능했다.

그렇다 보니 카나비스는 강후가 멀리 있어도, 가까이 있어도 계속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뿜어내는 불의 경로도 읽혔는지, 뿜어내기도 전에 먼저 위치를 바꾸곤 했다.

그림자 걸음이나 환영술까지 탑재한 강후인지라, 더욱 타격하는 것이 어려웠다.

“흐억. 허억. 흐억.”

가쁜 숨을 토해내고 있는 것은 강후와 백선태가 아닌 카나비스였다.

인간처럼 목소리도 낼 수 있는 터라, 등장부터 무게를 잔뜩 잡으면서 나섰는데.

결과적으로는 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부끄러움을 잘 안다면 얼굴이 화끈거릴 상황이었다.

그러는 사이.

강후가 다시 카나비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녀석의 목숨을 위협해야 꼼수 상황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나비스는 인간형 마법사였던 발트만과 생김새나 공격 방식은 다르지만.

큰 틀에서 보면 결국 꼼수에 활용되는 패턴은 똑같았다.

카나비스에게도 까다로운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태워 먹기’라는 스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강후가 전광비도를 활용해 혈루를 던질 자세를 취하자, 카나비스가 몸을 흠칫했다.

앞서 저 공격으로 날개에 중상을 입은 경험이 학습됐기에, 먼저 긴장한 몸이 반응한 것이었다.

이어서 강후가 힘껏 던지는 자세를 취하자, 카나비스가 빠르게 대응에 나섰다.

“캬아아악!”

카나비스가 입을 힘껏 벌려 토해낸 것은 앞선 것과는 비교도 안 될 화력의 불길이었다.

아예 날아오는 혈루를 녹여 없애버리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긴 대응이었다.

태워 먹기 스킬의 전개.

‘역시 닭대가리인가?’

예상대로의 흐름에 강후가 미소를 지었다.

발트만도 그랬고, 지금의 카나비스도 그렇고. 고통이 학습된 몬스터는 은근히 기만에 잘 당한다.

강후의 손끝을 떠난 것은 혈루가 아니라, 품속에서 꺼낸 야만의 시대 스킬북이었다.

하지만 짐작조차 할 리 없는 카나비스는 태워 먹기를 활용하여, 순식간에 스킬북을 없애버렸다.

동시에 푸른빛 정수의 형태로 치환된 내용물이 카나비스의 입안으로 쏙 들어갔다.

본래 태워 먹기 스킬은 상대의 공격을 태워 없애면서, 마나 보충을 유도하는 형태다.

하지만 카나비스는 애꿎은 스킬북을 태웠고, 정수를 먹어서 얻은 것은 뜬금없는 스킬이었다.

세팅은 그렇게 끝났다.

다만.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영문을 알 리 없는 백선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후가 던진 것은 단검이 아니라 책이었기 때문이다.

강후의 스킬 강탈 능력에 대해서 전혀 알 리 없는 백선태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이제 때가 된 것 같네요.”

물러나라는 신호를 줬다.

카나비스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백선태가 대미지를 보조해 준 덕분에 생각보다 시간이 훨씬 많이 단축됐다.

이제 남은 것은 스킬북을 먹인 불닭에게서 다시 스킬을 회수하는 일뿐이다.

밥상은 차려졌다.

숟가락만 들면 됐다.

* * *

그로부터 5분 후.

【야만의 시대】

【스킬 숙련도 : Lv Max】

【학습자의 마나 스탯이 50 미만인 경우, 모든 스킬의 마나 사용 값이 50% 감소합니다.】

강후는 카나비스를 죽이고 강탈에 성공한 야만의 시대 스킬을 확인하고 있었다.

본래 광전사 전용이었던 스킬이지만, 꼼수 덕분에 직업이 일치하지 않는 패널티는 사라졌다.

만약 그대로 학습했더라면 보통 기존 효율의 1할로 떨어지는 페널티가 적용되는 만큼.

마나 사용값이 50%가 아닌 5%가 감소하는 극히 미미한 효과를 봤을 것이다.

하지만 꼼수로 완전한 스킬 체득이 가능해진 덕분에 원래의 효율 그대로 계승할 수 있었다.

‘레벨 95 달성에 야만의 시대도 챙겼고. 여기에 주황색 마석까지 먹은 거면 완전 이득인데.’

강후를 더 기분 좋게 만든 것은 죽은 카나비스에게서 전리품으로 얻은 마석이었다.

주황색 마석은 시장에서의 거래가가 최소 100억 원에 육박하는 녀석이다.

중, 대형 길드에서 수요가 많은 편이라 판매도 잘 되는 축에 속해 현금화가 쉬웠다.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마석을 던전에서 전리품으로 얻기는 쉽지 않다. 확률이 매우 낮아서다.

하지만 그 낮은 확률을 뚫고 보상이 나와줬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좋은 소식은 더 있었다.

【불의 영혼】

【화염 ‘절대’ 내성이 7.5% 상승합니다.】

카나비스가 죽는 순간, 영구 버프의 형태로 화염에 관련된 내성이 체득됐다.

절대 내성이란.

어떤 경우에서도 무시되지 않는 내성이다.

예를 들어 화염에 대한 절대 내성이 100%가 된다면, 어떤 화염 공격에도 끄떡없게 되는 것이다.

다만 절대 내성은 최상위 헌터들도 쌓아 올리기 힘들 만큼, 획득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카나비스로부터 화염 절대 내성을 얻었다.

7.5% 절대 내성을 금전적 가치로 환산한다면, 최소 750억 원은 된다고 말할 수 있었다.

보통 100%의 절대 내성을 가진 헌터의 능력 가치를 1조 원으로 보기 때문이다.

특정 속성 공격에 있어 완전히 무적이 되기에 그 정도의 가치 평가가 비현실적인 것도 아니었다.

“정말…… 의미가 깊은 감시였습니다.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는 하루네요.”

자연스럽게 말을 거는 백선태의 손 위에는 뭔가를 빼곡하게 적어 넣은 노트가 들려 있었다.

“뭐. 도움이 됐다면야.”

강후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저렇게까지 자신을 보고 ‘공부’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다시 여수에 올 일이 있으실까요? 아무래도 없으시겠지요? 굳이 오실 이유가 없는 곳이니.”

백선태가 어느덧 열려버린 출구를 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왠지 지금이 아니면 다시 강후를 볼 일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여기서 인연의 끈을 만들어두지 않으면, 연결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 것이다.

존경심은 알량한 자존심을 가볍게 무시했다. 마음이 강하게 원한다면 그깟 체면이 무슨 의미일까?

백선태가 강후의 앞으로 후다닥 달려가서는 고개를 숙였다.

“꼭 한 번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연락처라도 교환할 수 있을까요? SNS를 알려주셔도 됩니다.”

“연락처를 제가 받죠. 의미 없이 교환하고 싶지는 않아서.”

“아, 예. 예. 알겠습니다.”

강후가 선을 확실히 그었다.

백선태가 처음부터 쭉 호의적이었고, 지금도 나쁜 마음이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리 쉽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관심은 어디까지나 백선태 개인의 욕심이다.

강후는 백선태에게 흥미를 느낀 것은 맞지만, 그가 누구인지 진지하게 궁금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굳이 먼저 다가갈 필요는 없다. 강후는 그렇게 생각했다.

백선태가 다급하게 노트에 자신의 이름과 핸드폰 번호, 몇 개의 SNS 주소를 적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뜯어서는 잘 접어서 강후에게 건넸다. 부디 잃어버리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백선태가 말을 덧붙였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생각나시면 꼭 한 번 연락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나가는 대로 수습을 진행하겠습니다. 나머지 보상들은 저희 군벌의 몫이니까요.”

“얼마든지.”

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된 부분에 대한 얘기고, 강후도 이미 얻은 것이 많아서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야만의 시대를 학습하러 온 던전이지만, 생각보다 정말 많은 보상을 얻었다.

주황색 마석만 시장에 잘 팔아도, 잔고를 466억 원까지 쭉 불릴 수 있다.

* * *

백선태와 헤어진 뒤.

강후는 전투로 쌓인 피로를 달랠 겸, 인근의 호텔로 향했다.

피로를 먼저 풀고 싶어서다.

확실히 던전 수준이 높았기 때문인지 몸에 알게 모르게 쌓인 피로감이 상당했다.

객실 안으로 들어온 강후는 바로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서는 반신욕부터 했다.

몸 전체를 타고 올라오는 노곤한 느낌이 좋았다. 이 맛에 반신욕을 하는 거겠지.

“이렇게 된 김에 1,000억 원을 목표로 모아볼까. 2등급 아이템이면 훨씬 수월해질 듯한데.”

욕심이 났다.

지금 3등급 아이템인 혈루를 갖고 있는 것으로도 던전 공략에 얻는 동력이 꽤 컸다.

레벨을 한참 상회하는 던전 공략이 가능한 배경에는 혈루가 주는 무게감이 상당했다.

특수 효과인 ‘피의 맛’ 덕에 중복 부위 타격에서 상당한 대미지 이득을 보는 데다가.

혈루 자체가 항마, 맷집을 올려주는 정도가 높아 방어적인 측면에서도 효율이 좋았기 때문이다.

3등급 아이템 혈루가 이럴진대, 한 단계 더 위의 아이템이라면 사는 세계가 달라질 듯싶었다.

당장에 스탯 측면만 해도 혈루보다 최소 2배에서 3배 이상의 상승폭을 경험할 것이고.

특수 효과도 한두 개가 아니라, 예닐곱 개를 줄줄이 달고 나타나는 형태가 될 테니까.

괜히 네임드 헌터들이 2등급, 1등급 아이템 장착에 욕심을 내는 것이 아니다.

새로 태어난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헌터로서의 능력과 방향성에 격변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물론 돈을 갖고 있어도, 자신과 궁합을 잘 맞는 아이템을 찾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다.

강후는 만약 2등급 아이템 구매에 필요한 돈을 모으게 되면 국내가 아닌 국외로 눈길을 돌릴 생각이었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아이템은 미국이나 중국에 비해, 물량이나 다양성이 부족한 측면이 있었다.

“주황색 마석을 팔고. 여기에다가 전종두에 관련된 건수만 잘 마무리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700억 원대까지 자산을 불리는 것도 가능해진다.

전종두가 죽으면 의뢰비가 100억 원이지만, 생포할 경우는 300억 원이니까.

스마트폰에 잔뜩 쌓여 있는 스팸 문자와 재난 알림 문자를 귀찮은 표정으로 지워내고 나니, 몇 건의 부재중 전화 알림과 톡 알람이 보였다.

“훗. 생각보다 일찍 그라운드 제로에서 나왔네.”

강후가 처음으로 번호를 교환한 사람. 언젠가 그라운드 제로에서 나오길 바랐던 사람.

- 어디야? 나 서울 왔어!

- 전화 안 받는 것 보니 던전에 간 거구나? 나중에 확인하면 연락해 줘! 기다릴게!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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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리의 연락이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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