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80화 (80/304)

80화 여수행 (2)

* * *

짓궂은 검문이 여러 번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골목길을 지나려는 데도 불구하고 통행료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고.

테러범을 방지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걸고, 전신에 금속 탐지기를 돌리기도 했다.

애초에 단검 하나만 들고 있어도 금속 탐지에 걸리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

자강의 헌터는 그것을 트집 잡아, 왜 금속이 탐지되냐며 역정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웃긴 것은 그렇게 한참 진을 빼놓고는 별것 아니니 통과! 하는 처분을 내린다는 점이다.

그제야 강후는 이곳의 돌아가는 구조가 진심으로 안전, 보안을 위해 검문검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다들 용돈 벌이나 할 생각으로 꼬장을 피운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대응을 바꿨다.

가까운 ATM 기기에서 넉넉하게 5만 원권을 뽑은 다음.

각각 100만 원, 200만 원의 뭉텅이로 만들어, 앞을 가로막는 헌터들에게 내밀었다.

대신, 조건을 걸었다.

“날 가장 깍듯하게 모시는 녀석에게만 주지. 한 명이야. 여러 명 안 골라.”

그때부터 공기가 달라졌다.

검문검색 같은 것은 저세상으로 사라져버렸고.

앞을 다퉈 길을 열고, 장애물을 치우고, 갑자기 얼음물을 구해와서 강후에게 대접하고는 했다.

역시 자본주의의 맛이 이런 걸까?

강후는 돈 쓰는 재미를 느끼며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확실히 여수 일대를 꽉 잡고 있는 군벌이라 그런지, 어디를 가도 자강의 깃발이 나부꼈다.

이현석이 이끄는 심연에 비하면 규모가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역 군벌이라는 타이틀을 달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아마 이 정도 세력이면 지역 상권이나 경찰, 헌터 치안청과도 제법 유착이 이뤄져 있을 터다.

그러니 무서울 것 없이 아랫것들도 날뛰는 것이겠지. 이상할 것 없는 그림이었다.

대장을 만나기는 어렵지 않을까 했던 예상과 달리, 김자호와의 만남은 빠르게 이뤄졌다.

강후가 관계자에게 문의할 때, 던전 대여 건과 더불어 최소 금액 10억 원을 보장해서 그런 듯했다.

여수까지 내려와서 외부의 헌터가 던전 라이센스를 대여할 일이 흔치는 않을 테니…….

궁금해서 만난 부분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곧바로 김자호를 만날 수 있었다.

그의 집무실은 온통 박제된 야생동물의 머리로 가득했는데.

죄다 눈을 부릅뜬 채 죽음을 맞이하고 박제되어 있어 섬뜩했다.

정갈하고 깔끔한 형태로 집무실을 구성하는 서울권의 헌터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제 막 해가 중천에 뜬 대낮이었지만, 김자호가 잔에 채운 보드카를 들이켜며 말을 걸었다.

“외부인이 오는 일도 흔치 않은데, 뜬금없이 와서는 우리 자강의 던전을 공략하고 싶다고?”

“전부터 관심이 있는 던전이 좀 있어서.”

“어떤 던전인지 얘기는 미리 들었는데. 그 던전에는 딱히 특별할 것이 없는데?”

“뭐랄까. 감이랄까? 이번에 가면 왠지 좋은 아이템이 나올 것 같은 느낌?”

“이봐.”

“음?”

“혹시 너, 약 빠는 놈이냐?”

갑자기 이야기가 확 튀긴 했지만, 충분히 예상 범주 안에 있는 반응이 나왔다.

예전에 한승혁도 그랬다.

이미 자신들이 수십, 수백 번을 공략한 던전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강후가 이상한 것이다.

차라리 공략 횟수가 적거나, 정말 뭐가 있는 곳이라면 흠칫 놀라기라도 하겠지만.

그런 것이 없는 평범한 던전이다 보니, 갑작스레 관심을 보이는 게 이해가 갈 리 없었다.

게다가 라이센스 대여 비용으로 주겠다는 10억 원이 결코 적은 돈도 아니고 말이다.

“그냥 모험을 좋아하는 헌터 정도라고 해 두면 안 되려나?”

“우리 던전에 와서, 우리 조직에게 돈을 쓴다는 거야 말리진 않겠는데. 너무 이상하잖아?”

“세상이 원래 그렇지.”

“이 새끼, 이거. 진짜 약 빠는 새끼네, 이거.”

김자호가 혀를 끌끌 찼다.

특히 여수 일대는 중국에서 들어오는 각성제가 많았다.

굳이 마약이 아니더라도, 마약에 준하는 효과를 지닌 각성제는 차고 넘쳤다.

김자호는 강후의 말도 안 되는 호기심을 그렇게 이해했다. 그러면 이해가 갈 듯했다.

어차피 자강 입장에서는 라이센스 장사를 해서 돈을 버니, 손해 볼 것이 전혀 없었다.

강후가 물었다.

“콜?”

“좋아. 라이센스 대여는 문제가 없어. 하지만 우리는 한 번도 외부인에게 단독으로 던전을 열어준 적이 없어.”

“동행?”

“정확히는 감시자에 가깝지. 도와주진 않을 거니까.”

“남이 좋은 거 먹는 꼴은 못 보겠다 이건가?”

“후후. 끝까지 들어보라고.”

강후가 팔짱을 낀 채, 그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즉흥적인지, 아니면 원래 가지고 있는 매뉴얼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름의 대여 방식이 있는 모양.

강후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자, 김자호가 보드카를 한잔 더 들이켜고는 말을 이었다.

“던전 라이센스 비용은 1억 원만 받지. 대신 중간에 나온 전리품은 모두 우리가 갖는다.”

“그리고?”

“미들 보스, 메인 보스의 드롭템은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아. 대신 나머지는 다 우리가 갖는다.”

“그걸로 충분히 10억 원을 퉁칠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이네.”

“솔직하게 말해 줄까?”

“거짓말할 건 또 없잖아.”

“여차해서 공략하다가 네가 죽으면 네가 가진 아이템이 전부 우리 거지.”

“……기가 막히군.”

강후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김자호의 생각이 꽤 그럴듯했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강후가 공략 도중에 목숨을 잃는다면, 착용하고 있던 아이템은 자연스럽게 자강의 소유가 된다.

누가 찾아와서 소유권을 주장할 것도 없고, 그렇게 찾을 수 있는 게재도 아니다.

“어때?”

“뭐, 나는 볼 일이 보스 몬스터 쪽에 있는 것도 맞으니까. 그렇게 하자고.”

손해는 아니었다.

처음부터 스킬을 추가할 목적으로 이 던전을 찾아왔으니까.

게다가 가장 중요한 미들 보스, 메인 보스의 보상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하기도 했고.

“던전 관련 정보는 친절하게 넘겨주지. 대신 레벨 스캔은 꼭 해야 해.”

“얼마든지.”

강후가 고개를 끄덕이자, 김자호가 직접 꺼낸 스캔 장치를 활용해 강후의 몸을 스캔했다.

레벨 스캔 작업은 보통 1분 정도가 걸리기에, 잠시 어색한 적막이 흘렀다.

그리고 얼마 후.

스캔 장치에 뜬 강후의 레벨을 확인한 김자호가 화들짝 놀랐다.

“이봐. 이 레벨로 던전에 들어가겠다고? 그럼 입구 컷이야. 죽고 싶지 않으면 참지?”

“목숨까지 걱정해 주시고. 너무 친절하신데? 그럼 없던 일로 할까?”

“여기 몬스터 레벨 대가 전부 200대야. 100도 안 되는 레벨로는 정말 힘들 텐데?”

“힘들지 안 힘들지는 들어가고 나서 보자고. 어차피 죽어도 내가 죽지 당신이 죽진 않잖아?”

“하기야 내 오지랖이군. 그래. 그럼 안내해 줄 녀석을 붙여주지. 명심해. 걔는 네가 죽을 위기에 빠져도 도와주지 않을 거야.”

“다 된 밥에 재나 뿌리지 말라고 해.”

강후가 퉁명스럽게 답했다.

김자호의 말투나 리액션이 조금 거슬리는 구석은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꽤 협조적이었다.

지역 군벌이다 보니, 꽉 막힌 구석이 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대화가 잘 풀렸다.

마침 던전도 공략 대기 상태이다 보니, 별도의 기다림 없이 바로 입장을 준비할 수 있었다.

시작이 좋다.

* * *

강후가 ‘감시자’와 함께 던전에 입장한 것은 그로부터 15분이 지나서였다.

나이가 꽤 어려 보이는 헌터였는데, 아무리 높게 잡아도 스무 살이 되지 않을 듯했다.

바로 통성명이 이뤄졌고, 감시자의 이름이 백선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연히 가명일 터다.

던전에 들어오자마자, 백선태는 팔짱을 낀 채로 강후가 공략해 나가는 과정을 살폈다.

힘을 보탤 이유가 전혀 없다 보니, 무기를 꺼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다만 백선태는 강후의 움직임을 흥미롭게 살피고 있었는데, 자신과 똑같은 직업군이어서였다.

얼마나 강후를 관찰했을까?

강후가 초입부터 부드럽게 몬스터를 제압해 나가면서, 확실하게 몸풀기를 끝냈을 무렵.

백선태가 강후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마침 몬스터의 등장이 끊기는 구간이라,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느낌 좋은 암살자는 꽤 오랜만에 보네요. 자세도 좋고, 빈틈도 없어 보이고. 신기한데요?”

“암살자 보기가 힘들죠.”

“정확히는 실력 좋은 암살자를 보기가 힘들죠. 다들 멋만 부리다가 뒈지는 놈들 천지라.”

백선태의 말에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수준에 못 미치는 다른 암살자에 대한 경멸이 함께 묻어났다.

사실 강후의 생각도 비슷했다.

암살자 직업군이 되면 어디서 본 건 있어 가지고, 열심히 똥폼이나 잡는 녀석들이 허다한데.

그런 녀석들은 평균 수명이 짧다.

암살자는 수많은 헌터의 직업군 중에서도 가장 예민한 직업군에 속한다.

한 번의 실수로 목숨을 잃기 좋은 직업군 순위에서 늘 최상위권에 랭크되는 것이 암살자이기 때문이다.

노림수가 실패하면.

타깃에 가장 가깝게 접근한 상태일 수밖에 없는 암살자는 가장 맛 좋은 먹잇감이 된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위험 부담이 정말 크다.

백선태가 말을 이었다.

“꼭 던전 하나를 이렇게 지정해서 와야 할 이유가 있나요? 보상도 대부분 포기하면서.”

“모험심이랄까.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불규칙함을 찾아 떠나는 느낌이랄까. 뭐, 그런 거죠.”

강후가 생각나는 대로 말해 놓고도 어이가 없었는지, 고개를 살짝 돌리고 웃었다.

이유야 명확하다.

스킬북 꼼수로 스킬을 배울 수 있으니 온 것이다.

하지만 굳이 처음 보는 사람에게 천기누설을 하고 싶지 않으니, 시쳇말로 개소리가 나오는 거다.

“어쨌든 좋은 구경하고 있습니다. 지금 선규 님의 레벨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요.”

백선태는 자신의 진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의 레벨은 250.

강후의 레벨을 기준으로 비교하면 2.5배는 높은 실력자였다.

하지만 그는 전투 내내, 강후의 움직임에서 완벽에 가까운 완성도를 느꼈다.

깔끔하고 간결하며.

무리하지 않는 듯하면서도, 모든 동작이 날카로웠다.

그러면서 허술하지도 않았다.

이런 수식어들의 나열이 얼마나 공존하기 힘든 것인지는 헌터라면 다들 알 것이다.

저 말을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 만들면 딱 한 단어가 나온다.

완벽.

지금 강후가 보인 움직임의 완성도가 딱 그러했다.

한편 백선태의 칭찬과는 별개로.

강후는 지금의 전투를 훈련처럼 활용할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더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어야 해. 내가 원하는 타이밍을 만들려면.’

초보적 시각으로 본다면, 처음부터 확실하게 피하는 것이 상책이기는 하다.

위험에 빠질 확률을 시작과 동시에 크게 낮출 수 있어서다.

하지만 실전은 그리 호락호락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미리 회피하는 대응을 보면, 노련한 헌터는 회피 과정을 보면서 다음의 대응을 맞춘다.

상대가 미리 패를 까는 형국이 되기에 노림수를 가져가기가 수월해지는 것이다.

노련한 헌터가 한 수, 두 수 앞을 대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최대한 늦게 피할수록, 시간과 공격권을 모두 낭비하게 만들 수 있다.’

피하는 시기를 최대한 뒤로 미룸으로써, 상대로 하여금 다음 수를 꺼내기 어렵게 만드는 것.

그것이 강후가 생각하는 성장의 다음 스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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