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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78화 (78/304)

78화 위기는 곧 기회 (3)

본보기가 필요하겠지 싶었다.

기교의 장막을 깔면서 바로 모습을 숨긴 강후는 신속 회피 스킬을 이용해 마법 공격을 피했다.

애초에 자신의 뒤통수를 노렸던 것을 뻔히 알았기에 보지 않고도 피하는 것이 가능했다.

동시에 장막이 만든 은신 속에서 목숨을 노린 마법사 헌터의 이마를 정확히 조준했다.

샤아아!

전광비도 스킬 덕에 엄청난 추진력을 탑재한 혈루가 순식간에 마법사 헌터에게로 날아갔다.

강후가 은신한 상태에서 혈루를 던졌기 때문에 상대의 인지는 더욱 늦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푸욱!

“커헉!”

혈루의 날카로운 검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헌터의 이마에 깊숙이 박혔다.

얼마나 세게 박혔는지, 두개골이 함께 으스러지는 소리까지 났을 정도였다.

“헐…….”

“단검이 도대체 언제 날아온 거야?”

남은 일동이 모두 얼어붙은 것처럼 제자리에 멈춰 섰다.

조금이라도 강후를 향해 움직였다가는 옆에서 명을 달리한 동료의 신세가 될 것 같아서였다.

“분수에 맞게 부스러기만 주워 먹으면 됐지. 왜 내 요리에 관심들을 갖는 거냐?”

“죄…… 죄송합니다!”

포기는 빨랐고, 체면 따위는 곧바로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동료의 죽음으로 확실한 공포를 학습한 ‘악어새’들은 자신들의 분수를 바로 알아차렸다.

아주 잠깐, 악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자신들의 그릇된 생각을 크게 반성하면서.

이제부터는 강후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의 문제였다.

남은 놈들을 다 죽여버릴 수도 있고, 괜한 곳에 힘 빼기 싫으니 살려줄 수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맛있는 먹잇감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성좌 계약 하나 붙잡고 있는 녀석이 없었다. 한마디로 잔챙이라는 얘기다.

바로 그때.

“……?”

갑자기 느껴지는 찌릿한 느낌에 강후가 몸을 움츠렸다.

폭발을 일으킨 던전이 곧 앞이었다. 거리를 계산하면, 300m 남짓한 지점까지 왔을 정도.

그래서 진입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심상찮은 기운이 감지된 것이다.

‘왜 해소 흐름이 아니지?’

강후는 앞서 던전 쪽에서 느꼈던 마나의 기운보다 훨씬 어지러워진 파형을 느꼈다.

보통 폭발을 한 번 일으켰으면, 마나의 파형이 안정화되는 흐름으로 가야 하는데.

갑자기 뒤엉킬 대로 뒤엉킨 마나의 흐름과 복잡한 파형이 느껴진 것이다.

오직 강후만 이것을 느꼈는지, 주변의 다른 헌터들은 열심히 던전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저 멀리 반대편에는 케낙스 소속으로 보이는 헌터도 제법 몰려오는 중이었다.

폭발의 뒷수습을 해야 하니, 현장으로 앞다퉈 달려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순간.

‘이게 진짜다.’

강후가 잴 것도 없이 바로 호신 2단계를 펼쳤다. 짚이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스아압! 콰아아앙!

주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듯한 전조가 일더니, 곧바로 대폭발이 일어났다.

앞서 던전에서 일어났던 폭발은 일종의 예고였고.

이번 폭발이 진짜였다.

쿠우웅!

“크윽!”

아슬아슬했다.

정말 간발의 차이로 호신 2단계가 만든 방어막이 충격파를 받아냈다.

단순하게 보호 결계만 펼쳤으면 부상을 면치 못했을 정도로 위력적인 폭발이었다.

재앙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스콰앙!

2차 폭발이 일어났다.

강후가 호신 2단계의 연속 사용 옵션을 활용하고, 또 한 번 몸을 보호했다.

정말 호신 2단계였기에 다행이지, 1단계였다면 속절없이 당했을 것이다.

“…….”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강후로서도 예상하지 못한 연속 폭발이었다.

호신 2단계가 신의 한 수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만큼, 아슬아슬했던 순간이었다.

휘이이이이.

적막 속에 공허한 바람이 불었다.

강후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앞서 불규칙한 폭발에 휘말린 헌터들은 모두 죽어있었다.

얕은 신음 하나 들을 수 없는 완벽한 전멸이었다.

던전에 가까이 접근했던 케낙스의 헌터들은 풍선처럼 터져 죽거나, 몸이 여러 갈래로 찢겼다.

애초에 인체로 버텨낼 수 있는 수준의 충격파가 아니라, 뻥튀기처럼 터져버린 셈이다.

“지랄 맞은 폭발이군.”

강후는 어느새 닫혀버린 던전 입구를 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2차 폭발이 일어나면서, 쌍방향으로 열렸던 던전의 통로가 다시 일방통행으로 바뀐 것이다.

던전 폭발이 99%의 확률로 한 차례의 폭발만 일으킨다는 기존의 통계를 생각해 보면.

1%의 희귀한 확률이 걸린 셈이었다. 애초부터 먹지 못하는 떡이었다.

여기에 불나방처럼 휘말린 헌터들은 전부 개죽음을 당했고, 강후만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대재앙 – 어둠’이 죽음도 거스른 당신의 통찰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음?”

갑자기 나타난, 그런데 심상찮은 성좌의 메시지에 강후가 몸을 움찔했다.

메시지 속에 언급된 성좌의 이름은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차원 강탈자도 받지 못하는 특혜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녀보다 훨씬 윗선이라는 얘기다.

성좌들의 모든 질서를 조율하는 주체인 대성전.

대성전에서 전체 서열 50위 안에 드는 성좌의 이름은 황금빛으로 빛난다.

강후는 차원 강탈자를 현재 기준 60위권 정도로 파악하고 있었다.

한데 그것보다 훨씬 위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죽음만 열심히 구경하러 다니는 변태 같은 놈인데, 이 녀석이 여기서 이렇게 나오나?】

어지간한 성좌의 등장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차원 강탈자가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였다.

그녀가 반응을 보이는 성좌라면 무게감을 굳이 가늠할 필요가 없다.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이니까.

그때.

후원을 한 번이라도 한 성좌가 아니라면, 열리지 않는 대화 채널이 열렸다.

채널을 연 주체는 당연히 대재앙 – 어둠이었다. 의외의 상황이 연속되고 있었다.

【신기하군. 보통 이런 식의 폭발이 일어나면 대부분 죽던데. 아니, 전부라고 해도 무방하려나?】

목소리가 차갑게 깔렸다.

차원 강탈자도 뺨 때릴 만큼의 한기였다.

“결과는 보다시피.”

강후가 어깨를 으쓱였다.

【흥미로운 녀석이군. 실로 오랜만이야. 너는 충분히 주시(注視)할만한 자격이 있겠어.】

‘주시까지 한다고?’

강후가 놀랐다.

주시란, 성좌가 헌터 셋을 지정해서 상시 살피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인터넷 쇼핑으로 따지면 일종의 장바구니, 찜 같은 개념인데 강제성이 좀 더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성좌가 헌터 셋을 ‘주시’하기로 했으면 반드시 셋 중의 하나와는 계약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대재앙 – 어둠이 계약자 신강후를 ‘주시’했습니다. 남은 주시 계약자는 한 명입니다.】

【또 보자, 계약자 신강후.】

‘대재앙 – 어둠’은 홀연히 나타나 일방적으로 주시하고 할 말을 전한 뒤 사라졌다.

선물도 하나 있었다.

【‘대재앙 – 어둠’이 다량의 성력을 소모하여, 당신에게 엄청난 양의 버프를 후원합니다.】

【경험치 증가 +100%】

앞서 다른 성좌들이 열심히 후원해 온 것이 무색할 정도의 엄청난 후원이었다.

【미친 것.】

차원 강탈자의 반응은 즉각적이면서도 잔뜩 날이 서 있었다.

가뜩이나 ‘황야의 전략가’도 잠재적인 메인 성좌의 경쟁자로 자리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던가?

그런데 거기에 자신보다 서열이 훨씬 높은 성좌가 나타났으니, 몸이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훗. 몸값이 오르겠군.”

강후가 씨익 웃었다.

그저 매사에 열심히 임하고 있을 뿐인데, 몸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예전만 해도 갑을이 명확했던 차원 강탈자와 강후의 관계는 이제 역전되려 하고 있었다. 아니, 이미 역전됐다. 차원 강탈자가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 * *

강후는 그 길로 홍천 해방구를 나왔다.

던전 폭발로 일어난 뒷수습 때문에 해방구 내의 모든 이벤트가 올스톱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데스 매치는 이미 재미를 봤고, 마켓은 임시 폐점 상태가 되어 더 볼 것도 없었다.

이미 챙길 건 다 챙겼다.

에밀리아와 인연을 만든 것은 물론, 쓸만한 반지 아이템도 손에 넣었다.

거기에다가 박상오에 대한 기억을 이용해서, 손쉽게 300억 원을 벌어들였고.

던전 폭발에 성공적으로 대응한 덕분에 상당히 서열이 높은 성좌의 주시까지 받게 되었다.

뭘 해도 잘 풀린다는 말이 딱 어울릴 수밖에 없는 탄탄대로였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홍천 해방구를 나온 강후는 곧바로 서울로 향했다.

박민성의 부모가 이미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영국에서 어떻게 이리 빨리 왔나 싶었는데, 앞서서 일본에 먼저 와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 짚이는 것이 있어 일본으로 갔었던 모양.

하지만 본래 국적이 대한민국이었던 아들의 출신을 생각하면, 살짝 아쉬운 행보였다.

한편 김수경 용병단에서도 연락이 왔다.

서울까지 들렀다가 움직이면 일정이 빠듯해지겠다 싶었는데, 변동이 생긴 것이다.

“네, 정선규입니다.”

- 김수경입니다. 이예린님을 통해 정보는 확인했습니다만, 통화는 처음이군요.

“혹시 변동사항이 있습니까?”

예정대로면 내일 봐야 한다.

보통 일정에 변동이 없으면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 타깃이 예상했던 것보다 던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네요. 일정을 미뤄야겠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이후의 가일정은?”

- 3일 후로 하죠.

“알겠습니다. 그때 뵙죠.”

그렇게 짧은 통화는 끝났다.

빠듯해질 듯했던 일정에 자연스럽게 숨통이 트였다.

어차피 전종두를 처리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는 아닌 만큼, 꼭 서두를 이유도 없었다.

“차라리 그럼 여기서 야만의 시대까지 배우는 그림으로 가?”

박민성의 부모와 관련된 만남에 시간이 오래 소요될 것 같지는 않았다.

김수경이 사흘의 여유를 줬으니, 오늘 서울에서의 일정을 소화한다고 해도 이틀이 남는다.

딱히 처리해야 할 의뢰도 없고, 그렇다고 꼭 다녀와야 할 장소도 없는 만큼.

이참에 지난번처럼 스킬북 꼼수를 이용해서 빨리 야만의 시대를 학습하는 것도 좋겠지 싶었다.

가깝게는 수원역의 온누리 길드에서 다시 한번, 발트만 던전을 대여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게 아니어도 세컨드, 써드 플랜은 있으니 문제 될 부분은 없을 듯했다.

휴게소에 막 들른 강후가 스마트폰을 열어, 이예린에게 온 보안 메일을 확인했다.

아침이 되면 만나게 될 박민성의 부모에 대한 정보였다.

과연 누구이기에 영국의 네임드 헌터라고 불릴 만큼 위상이 높은 걸까?

네임드라는 조건 하나만으로는 짚이는 인물이 너무 많기에 강후도 쉽게 짐작할 수 없었다.

그리고 메일을 확인한 순간.

“스핏파이어(Spitfire) 길드. 여기 마스터와 부 마스터가 박민성의 부모였다고?”

생각한 것 이상으로 거물인 헌터 둘이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영국의 모험 전문 길드 스핏파이어. 그 길드의 주인이 바로 박민성의 양부모였다.

강후의 입장에선 일본에 이어, 영국으로도 활로를 뚫어볼 기회가 생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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